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7-8.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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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Yes와 No 사이, 그 어두운 혼돈의 블랙홀

장귀연 | 회원, 서울대사회학과 박사과정
이제서야 반성하기/말하기

새삼스럽게 뒷북치는 격이지만, 몇달 전 100인위원회의 성폭력 사례 공개가 워낙 논란이 되다보니, 몇몇 군데에서 그와 관련하여 글을 써보라는 제의를 들었었다. 그 때마다 나는 상식적인 얘기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넘어갔다. 물론 서너번 이상 (성폭력해결을 위한 서명용지에) 서명을 했고 몇몇 성명서에도 이름을 내걸었다. 그 때도 '어쨌든 나쁜 놈들이잖아'라는 정도로 생각하면서 이름을 빌려줬던 것이다.
비난을 받더라도 솔직히 말하자. 나는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었고, 크게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100인위원회의 문제제기와 해결방식에 대해서 동의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왠지 계속 답답했다. 그러한 눈에 보이는 것 외에 뭔가 더 있는 것 같은데, 짙고 어두운 안개 속에 가려있는 듯한 답답함. 잡힐 듯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없음을 고수했다.

당시 내 주위에서는 별의별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한동안 좋은 술안주거리(!)였다. 논란은 명백히 파렴치한 성폭력보다는 몇몇 사례들, 100인위원회 게시판에서 이른바 '실패한 카사노바 행각'이라고 누군가가 명명했던 사례들로 집중되었다. 많은 나의 친구들, 남자들의 말에 숨겨져 있는 것은 "그게 왜 성폭력이냐?"는 거였다. 공식적으로는 그런 말들을 못했을 것이고, 아니, 사석에서도 차마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았다. 진보적인 관점을 견지하고자 하는 나의 친구들은 100인위원회에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매우 꺼림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완전히 납득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건대, 나 역시 그 자리에서 매우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


·선배 K : 이제 남자들은 다 성형수술해야 돼. 사실 '지금부터 키스할게' 말하고 키스하는 경우가 어딨냐? 술 먹다가 키스해서, 좋으면 연애가 되는 거고, 싫으면 성폭력이 되는 거지. 잘 생긴 남자라면, 성공 가능성이 높을 거 아냐?

뭔가 아니다 싶긴 했지만, 경험적으로 일말의 진실(?)이 있는 말이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하고 우물거리기만 했다.

·친구 P : 정말 충격이야. 우리 남자들이란 여자의 No도 Yes라고 생각해왔는데, 여자의 Yes도 No라니, 그걸 받아들이기 쉽겠어?

이 때도 나는 아무 말도 덧붙이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근래 이한별 성폭력 사건을 접했다. 하나의 사건으로서 그건 그 동안 밀쳐놓고 있었던 생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였다. 나는 한동안 다시 생각했고 안개 속을 더듬거렸다. 그 안개 속에서 나와 내 친구들의 얼굴을 보았다. 나는 반성했다.
친구 P의 말이 생각났다. 여자로서 나는 어떤 때 Yes라고 했으며 어떤 때 No라고 했는가? 그런데 사실 그건 정말 Yes나 No였던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미리 말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나는 여기서 '명백한' 성폭력에 대해서 다루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여성으로 자라온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예외없이 성폭력을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산다고 나는 확신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예뻐해주는 척 무릎 위에 앉혀놓고 가슴 속으로 손을 집어넣던 선생이 있었다. 대학생 시절 내내 좌석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옆 좌석에 앉은 남자의 손이 스물스물 허벅지로 뻗어오는 것은 지겹도록 경험했다. 직장 다닐 때 회식자리에서는 상사들이 여사원들을 끌어안고 부르스를 추곤 했다.

나는 반성한다. 초등학교 때 그것이 성폭력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치한에게 큰 소리로 화를 내는 대신, 대부분 내가 자리를 옮겨 버렸다. 상사가 끌어안을 때면 당혹해 하면서도, 평소엔 존경할 만한 사람인데 술 취한 거니까, 하며 너그러운 마음(!)으로 항의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이러한 행위들이 범죄라는 것은 합의되고 있으며, 대처방안도 알려져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쉬운 일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고 중요한 의제다. 그러나 지금 얘기하려 하는 것은, '진보적인' 남자들, 나의 친구들이 인식하지도 합의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다.

또 한 가지, 이 글의 내용과 백인위원회 사례들이나 이한별 성폭력 사건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 사례들과 관련된 사람들 중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으며, 따라서 공개된 내용에 덧붙여 달리 해석할 여지나 이유도 없다. 오히려 그 사건들과 그에 대한 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나의 경험들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나의 친구들, 남자들

# T가 말했다. "어쩌다 보니 술자리에 여자들은 A, B, C 셋만 남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셋이 다 나랑 같이 잔 여자들이잖아. 나중에 S(남자)에게 그 얘길 했더니 기분이 어땠냐고 물어보더군."

S는 T에게 어떤 말투로 물어보았을까? 함부로 해석하지 말라지만, 나는 감히 추측한다. 호기심 그리고 부러움. T는 많은 여자들과 잤으며, S는 그렇지 못하다. '같이 잔 여자들'인 A, B, C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리고 그것을 의식하고 있는 T의 모습은, 하렘의 후궁들에게 둘러싸인 황제의 실루엣을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S는 황제의 권력, 즉 많은 여자를 거느린(!) 남근의 권력을 선망하며 물어본다. "야, 기분이 어땠니?"
이 질문은 남자들의 잠재적인 꿈, 황금의자에 앉아 미인들에게 둘러싸여 그녀들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이른바 '천국'에 대한 상상이다.

그리하여 나는 T의 말을 들었을 때 매우 기분이 나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T나 S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못했다. 괜히 꼬치꼬치 따져서 편한 친구라는 나의 위치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얘기를 들은 이후에 나는 T와 성관계를 가졌으며, 그 후부터는 T가 있을 때 A나 B, C와 같이하는 자리를 극력 피해다녔던 것이다. 물론 나는 T가 나를 포함하여 '같이 잔 여자들'의 목록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아니, 싫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을까? 그 묘한 찜찜함, 하렘의 후궁이 되어버린 것 같은 수치스러움을.

그러나 나는 지금 반성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A와 B와 C를 피할 필요가 없었다. 스스로를 수치스러워할 이유도 없었다. 차라리 A와 B와 C에게 툭 털어놓고 이야기하는 쪽이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깔깔대고 웃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구멍동서(한 여자에 대해서 성관계를 가진 여러 남자들 사이를 가리키는 비속어)라는 말이 있지. 그럼 우린 막대기동서라고나 할까? 하하."

천박하긴 해도, 그리고 최선의 길도 아니지만, 홀로 괴로워하기보다는 차라리 이런 말로 남자들을 비웃어주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수치스러워 함으로써 내 욕망의 주체성을 부정하고 후궁의 지위에 머물렀으며, A와 B와 C를 피해다님으로써 남근주의를 여자들 사이의 관계에 투사해 버렸다.
T나 S는 스스로 여성주의적 관점을 지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며, 나 역시 성적 자기결정권을 실천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T는 술자리의 곁에 남은 '나의 여자들'의 목록을 세면서 남성과 여성 사이의 남근주의를 구현했고, T와 S는 그것을 과시하고 부러워하면서 남성과 남성 사이의 남근주의를 표현했으며, 나는 A와 B와 C를 피하면서 여성들 사이의 관계에 남근주의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의식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끼고 행동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느낌 및 행동과 T나 S의 느낌 및 행동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자, 그러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다른 경험들을 구성했다.


# L은 D와 잤다고 말했다. 술 마시고 집에 바래다주다가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별로 과시하는 말투가 아니었으므로 크게 귀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L과 나는 매우 가까운 친구였으며 내가 아는 한 L은 그런 일을 함부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그저 친구와 생활상의 약간 은밀한 이야기를 하듯 내게 얘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L이나 D, 둘 다 각자 굳건한 애인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냥 일회적인 에피소드이겠거니 생각하고 잊어버렸다. L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이야기하게 되었을 때 L은 상당히 분개한 표정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며칠 후 D가 L을 불러내서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며 강력하게 항의했다는 것이다. "내가 억지로 그랬나? 자기가 먼저 좋다고 붙들고 그랬으면서. 정말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구. 근데 내가 뭐 강간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야. 그 자리에서는 열심히 사과를 했지만, 사실은 억울해."

그래, 좋다. 난 친구 L의 말을 믿는다. 그는 강간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의 말대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을 것이며, D는 No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L은 정말 억울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말을 글자 그대로 믿는다 하더라도, 그의 억울한 심정 또한 이해한다 하더라도, 나는 D의 마음을 헤아릴 수밖에 없다. 그런 '사건'이 있고 항의를 하기까지 며칠 동안 D는 곱씹고 곱씹어 생각했을 것이다. 그 때까지의 L과 자신과의 관계, 그 당시의 상황, 그리고 그 이후의 감정적 문제들…. D가 항의를 했다는 것은, 그 모든 과정과 맥락을 통해서 그녀는 그 사건을 억압적인 것으로 경험했다는 의미다.

나야 L에게 들은 것밖에 없으니 그가 이야기한 것처럼 술 취해서 둘이 잠깐 '실수'한 것이었다고 믿어보자. 그러나, L은 그저 에피소드로 생각한 일을 D는 곱씹어보고 의심하고 괴로워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 정황에서 (적어도 L이 해석하기에는) Yes였을 수도 있었겠지만, D는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No였다고 결론내렸다. 그건 L이 생각하듯이 뒤통수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남자들과의 관계 또는 성적 관계에 대해, D가 경험해 오고 생각해 온 것들, 결국 사회적 경험과 맥락의 산물이다. D는 오해나 악의로 항의한 것도 아니고, 순결주의에 붙들려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D의 경험 그 자체이다. 남자인 L에게는 상쾌한 추억으로 남았던 일이, 여자인 D에게는 억압과 고통의 기억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둘의 경험과 기억 사이에는 그렇게 먼 거리가 존재한다.


어둡고 혼돈된 블랙홀의 영역

위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결국 무엇인가? 나는 나의 친구들, 남자들에게 소통의 손을 내미는 것이다.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은 투덜대곤 한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성폭력이고 어디서부터가 아닌 거야? 요새 같아선 도무지 모르겠군."

그러나 사실 여자의 No는 No가 아니며 Yes도 Yes가 아닌 것이다. 정말 나도 No는 No이고 Yes는 Yes였으면 좋겠다. 그러면 얼마나 명쾌할 것인가 말이다. 그러나 Yes와 No 사이에는 어둡고 혼돈된 영역이 있다. 여자들의 경험과 의식에는, Yes와 No라는 주체성의 표현을 빨아들여 혼란시키는 블랙홀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 블랙홀은 바로 여자와 남자,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사이의 모든 사회적 관계에 스며들어 있는 남근주의의 어둡고 끈질긴 그물망이다. 성적 행동과 경험과 기억은 그를 통해서 구성된다.

그러므로 순결주의도 프리섹스주의도 해답이 아니다. 성은 고귀하고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도 아니며, 즐겁고 쾌락적인 유희도 아니다. 그것은 남근주의의 쇠그물망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있는 어떤 것이며, 그것과 따로 떼어놓고 간직하거나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쇠그물망이 존재하는 한, 그것을 사이에 두고 이쪽 편과 저쪽 편에 존재하는 남성과 여성의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No라고 말하는 여자는 절대로 건드리지(?) 않아."라고 말하는 장한(!) 나의 친구들, 남자들이여.

그래, 그대들은 과연 훌륭한 생각을 가졌으며, 우리 사회의 평균과 비교해 보았을 때 정말 진보적이다. 그러나 진실로 성폭력적이지 않은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 그대들이 알지 못하는 블랙홀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 블랙홀은 여성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의 기반 위에서만, 그대들은 어디까지가 폭력이고 아닌지, 무엇이 Yes이고 No인지, 어렴풋하게라도 윤곽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성적 경험과 남근주의에 관하여 나를 포함하여 많은 여성들도 반성하고 성찰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 남자들에게 더 힘든 일이 주어져 있다. 여자들은 남근의 권력에 찔리고 피흘리는 경험을 통해 그것을 날카롭게 의식할 수 있지만, 남자들은 그 자체를 인식하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한 손만 뻗어서는 손을 맞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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