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7-8.17호
첨부파일
.hwp

평범한, 벗은 몸이 보여주는 많은 것들

이진숙 | 인천지부
<b>'평범한 몸'이 주는 낯설음</b>

'몸'이라는 것, 우리 사회에서 언제인들 대중적 관심사가 아니었나 싶기는 하다. 규제와 검열, 그리고 표현의 자유가 벌여온 숨바꼭질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새삼스럽지 않다. 최근만 해도 섹슈얼리티에 대한 (반성적)성찰의 분위기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몸'에 관한 많은 책들, 안티미스코리아,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한 연예인의 다이어트논란 등 몸을 둘러싼 설왕설래는 한창이었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만나게 된 한 미술교사 부부의 '나체사진 사건'은 어딘가 모르게 낯설다.

아니, '사건'이 낯선 것이 아니라 사건이 되어버린 그 한 장의 사진이 그렇다. 두 아이를 낳은 몸, 그리고 뱃속에는 또 한 아이가 자라고 있는 몸, 그 시골마을 어딘가에서 뛰어놀고 있을 두 아이의 성장사를 늘어진 가슴과 살찐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 몸. 그리고 뒤늦게 원하지 않은 아이를 가지게 된 사람에게나 어울릴 법한 마르고 구부정한 또 다른 몸. 그 몸들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낡은 화장대 거울, 분무기, 전깃줄과 같은 초라한 일상의 흔적들. 결국 이 낯섦의 정체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지 굳이 뭐라 말할 것도, 그럴 이유도 없는 그저 평범한 몸이기 때문이 아닐까?


<b>권력, 망각, 모든 것이 한 달이면 족하다 </b>

인터넷은 미술교사이며 미술작가이기도 한 김인규씨가 자신의 창작물을 게시하는 전시장이었다. 그 곳은 일상의 사소한 것들과 사소하지 않은 것들,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이 만든 소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는데, 작년 가을경 올려놓은 부인과 함께 찍은 나체사진이 지난 5월경 갑작스레 문제가 되면서 사회적 논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교사신분을 망각하고 아이들에게 유해한 음란물을 게재했다는 일부 학부모들의 항의로 시작된 논란은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간동안 긴급체포, '청소년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에 근거한 두 번의 구속영장 청구와 기각, 홈페이지 폐쇄, 교사직위해제를 거쳐 '음란성여부'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교육도 미술도 그 자체가 목적이지 않으며,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하는 것일 뿐'(MBC 100분토론)이라는 시골 미술교사의 일상은 이렇듯 하루아침에 무참히 망가져 버렸다. 다시 운영되기 시작한 그의 홈페이지는 문제의 사진과 함께 음란물로 지정된 몇 점의 작품이 삭제된 채다. 음란성 여부를 가리는 수사를 진행한다고 하면서 하루 빨리 문제작들을 삭제토록 하여 스스로 '증거인멸'을 강요한 공권력, 수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지 너무나 뻔한 수순이었고, 또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사회적 관심 역시도 여기까지이다. '몸'에 관한 문제인 한, 더구나 그것이 '음란물'이라는 외피를 둘러쓴 것인 이상.


<b>나체사진이 만든 논란거리들</b>

언론에서 하도 떠들어대는 통에 '나체사진 사건'에 담긴 논란의 요소가 무엇이었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부부의 늙은 몸을 담은 사진은 음란물인가 아닌가, 그런 사진을 게시한 것은 교사신분으로 합당한 행동이었는가, 인터넷과 같은 열려진 공간에 그런 사진을 올리는 것이 적절한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란들을 판가름하고 처벌하겠다고 나선 공권력의 개입과 대응 방식은 타당한가라는 점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이유들도 내가 사진에 담겨 있는, 그리고 사진의 존재를 통해 드러난 우리 사회의 여러 단면들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여러 논란의 요소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면, 그들 문제들이 타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각각 따로 떼어놓고 김인규씨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령, 이 나라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교사라고 해서 못할게 뭐가 있겠느냐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과 부인의 알몸사진을 게재한 김인규씨의 교사신분을 문제시하지는 않을 테지만, 사진이 음란물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지는 모를 일이다. 또한 공공의 안정과 청소년 보호를 빌미로 한 인터넷 공간에 대한 검열과 통제를 거부하는 사람일지라도 네티즌이라는 익명의 존재가 아닌, 교사신분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알몸사진을 게재하는 것에 대해 용납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b>결국 진실은 '몸'이 아닐까?</b>

결국 회자된 이러한 논란의 지점들은 사실 이 사회의 각 영역에 존재하는 무수히 많은 보수적 이중잣대들이 이번 사건을 통해 단지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알몸사진을 드러낸 교사만 문제적인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들에게는 수업을 내팽개치고 거리로 나서는 교사도 문제이고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교사도 용납되기는 힘들다. 김인규씨 홈페이지의 경우도, 학교와 교육을 깔아뭉개는 내용의 아이들 작품들이 많이 게재되어있는데 이를 문제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김인규씨의 홈페이지와 비슷한 시기에 문제가 되었던 자퇴생들 중심의 사이트인 아이노스쿨의 경우,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의해 즉각적인 폐쇄조치를 취하면서도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인터넷이라고 해서 뭐 별다른가? 인터넷사이트가 충동질해서 소중한 생명을 내버렸다는 식의 한심한 생각들은 조선일보나 하는 소리는 아니다. 이러한 논란이 된 잣대들은 김인규교사의 알몸사진이 드러내고자 하는 '몸'에 대한 진실, 그리고 '몸'을 둘러싼 현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그리고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할 것이다. 이는 이 사건을 주제로 진행되었던 굴지(?)의 시사토론에 나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들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청소년 성상담가는 한결같이 교사신분에 따른 청소년 유해성만을 집착했고, 변호사는 검찰수사에 영향을 끼칠까 우려된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음란물이라는 단정 하에 공권력 개입의 정당을 역설하기에 바빴다.

'몸'은 신성한 것이어야 하고, 아름다운 것이어야 하고, 또한 은밀한 것이어야 한다. 더군다나 함께 아이를 낳고 기른 부부의 몸이라는 것이 그 둘 사이를 벗어나서 존재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이것이 아닌 상황을 한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걸 생각할 수 있게 된 기회가 드디어 온 것이었다. 물론 미술관 어딘가에서는 부부의 몸이라는 것은 이미 실험적인 주제에 꼽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나체사진의 '음란성'을 듣기만 했지, 직접 보거나 노력해서 보고 욕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직접 보았다 한들, 작가의 예술적 취향이라 여기거나 예술을 이해 못하는 자신의 안목을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김인규씨는 저명한 미술가도 아니고, 게다가 자신들이 문화생활을 담보로 목매달아 투자하는 아이들 교육을 일선에서 담당하는 교사다. 또한 문턱 높은 미술관에 비해 인터넷은 얼마나 접근이 용이한가? 결정적으로 익명의 네티즌들이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에 알아서 싸워주는 각종언론이나 기독교윤리실천이니 하는 단체를 대표로 하는 건전사회를 꿈꾸는 집단과 세력들은 또한 얼마나 많은가?

'몸'에 대한 많은 편견과 왜곡된 시선, 이는 김인규씨가 알몸사진을 게재하면서 말하고 싶었던 바이기도 했고, 이 사진을 포함한 '나체미학'이라는 제목 아래의 여러 작품들에 잘 드러나 있다. 음모와 성기, 또는 얼굴이 거세되어 온 과거의 누드화들, 규격화된 아름다움의 강조 속에 상품화되어 온 현대의 몸들. 바로 이들 아래 김인규씨 부부의 늙은 몸이 있다. 아이를 낳고 노동을 하느라 처지고 굽어져버린 몸 말이다. 김인규씨 말대로, '그런데 그것이 어쨌다는 말인가?', '나의 몸이 내꺼이기나 한 건가?'

'몸'에 대한 문제는 왜 이다지도 어려운가를 생각하게 되면 문제는 다시 원점이고, 누구나 알고 있는 여러 논란거리들로 다시금 되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보다 개악된 모습으로 나타나 인터넷공간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검열하고 다닐 통신질서확립법, 이와 마찬가지로 음란물과 불온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수많은 예술작품과 출판물, 매체들에 대한 검열, 이들을 우회하고는 어떠한 기대도 할 수 없다. 또한 긴급체포, 구속수사의 남발이라는 유형화된 폭력성뿐만 아니라, 일상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나아가 그러한 감시와 통제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만드는 권력이라는 이름 말이다.


<b>특별하지 않은 일상, 감시와 통제</b>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김인규씨의 홈페이지에는 문제의 알몸 사진의 빈자리를 각종 영장들과 그에 대한 자신의 소견서들이 채우고 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들에 난자당한 많은 동물시체들의 사진모음에 '장엄한 일상'이라는 제목을 달아놓은 작가의 창작의도에 비추어볼 때, 그들 서류들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이 사회의 일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작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전 홈페이지에 '그래도 우리의 발자취가 서로에게 힘이 될까요'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져 있던 방명록의 자리에는 '그리스도의 책형'이라는 그림이 들어서 있다. 골고다 언덕에서 함께 못박힌 다른 죄수들과 다르게 유독 예수만이 벌거벗은 알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림 아래 씌어진 "근데 이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것 같다"는 말에 담긴 작가의 생각은, 안타깝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일치하고 있는 것 같다.
주제어
태그
구조조정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법정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