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건강과 사회
  • 2014/11 창간준비1호

에볼라 사태, 아프리카에 덮친 새로운 비극인가기사읽기

  • 채수용 의사
올해 2월 기니에서 첫 에볼라[1] 감염자가 발생한 이후로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을 중심으로 감염자가 속출했다. 에볼라의 기세는 더욱 커져 이제 대륙을 건너 미국, 유럽 등에도 감염자가 발생해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아직까지 예방 백신도 치료법도 없는 ‘죽음의 바이러스’ 앞에 세계는 속수무책. 10월 말까지 1만 141명의 감염자 와 492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에볼라 바이러스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이고 가장 긴 시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에볼라 출혈열의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8월에 '국제 공중보건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사태는 악화일로다. 미국 질병통제센터(CDC)는 최 악의 경우에 향후 넉 달간 에볼라 감염자가 무려 55만 명에서 140만 명에 달할 수 있 다고 보았다.
 

기업의 숲 파괴로 깨어난 질병들. 에이즈, 에볼라

에볼라 바이러스는 에이즈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열대 우림 지역의 야생동물 사이에서 유행하던 질병이 인간에게 옮겨진 경우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은 아프리카의 무분별한 삼림벌채 방식과 관련이 있다. 온더스테푸어트 수의학 연구저널은 "방대한 규모의 삼림 벌채와 깊은 숲에서의 인간 활동이 인간과 알려지지 않은 바이러스와의 직간접적인 접촉을 더욱 확대"한다고 경고한다.
 
서아프리카 지역은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와 기업식 농업과 자원 채굴을 하며 최근 수년새 가장 높은 수준의 삼림벌채와 파괴가 일어나는 지역이다. 더불어 이 지역은 가난한 사람들과 내전으로 갈 곳 없는 수만명에 달하는 난민들의 거주지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에 더 큰 생태적 부담을 지우는 한편, 가난한 이들이 질병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있다.
 

빈곤과 의료시스템의 붕괴로 맹렬히 확산

에볼라의 과거 발병 사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장기간의 내전이나 개발 실패로 경제 와 공공의료가 심하게 훼손된 곳에서 발생했다. 바이러스 전문가인 대니얼 바우슈 교 수는 생물학적·생태학적 요인으로 1~2건의 감염이 발생할 수는 있어도, 대규모의 지 속적 발생은 명백히 사회정치적 환경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바이러스 확산의 원인 을 서아프리카의 극심한 빈곤과 열악한 의료시스템에서 찾는다.
병원균을 옮기는 박쥐 등은 보통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적은 깊은 숲속에 서식하 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먹을 것과 자원을 구하러 깊은 숲까지 들어가면서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불러왔을 것이다.
취약한 의료시스템 역시 감염 전파에 기여한다. 의료진들은 적당한 보호 장비나 훈련 또는 보수도 없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장갑, 가운은커녕 안전한 물조차 공급이 부족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한 후 환자를 치료하던 의 사와 간호사들이 가장 먼저 2차 감염의 피해자가 됐다.
 
에볼라 환자 치료에 필요한 장소조차 충분치 않다. 국경없는의사회는 몬로비아(라이베리아 수도)에서만 800개의 에볼라 병상이 더 필요하다며 지원을 촉구했다. 많은 에볼라 감염자들이 처방전 대신 집으로 돌아가라는 충고를 듣는다.
 

제약사들 외면, 돈이 있는 곳에 약도있다

38년 전에 처음 발견된 에볼라 바이러스엔 아무런 치료제가 없다. 제약회사들이 가난한 서아프리카에 약을 팔아 얻을 기대수익이 적어 약개발에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P통신은 "치료제에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제약회사들은 에볼라 치료제 에 대한 본격적인 인체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나마 이루어져왔던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 연구마저도 질병 예방과 치료가 목적이라기보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물 테러" 가능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존 애슈턴 영국 공중보건전문가기구((FPH)회장도 에이즈가 1980년대 미국.유럽 까지 전염된 뒤에야 치료제 개발이 본격 시작된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힘없는 소 수집단과 관련된 질병에 대처가 늦어진다"며 "이는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탄"이라고 비판했다. 저개발국에서 주로 발병하는 말라리아 백신은 최근에야 상용화에 첫걸음 을 뗐다.
 

국제사회, 에볼라 확산 막을 수 있나?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에볼라에 대한 가장 중요한 대응책은 환자들의 격리 와 방역을 통해 전파를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국가들에서는 이런 예방적 조치들과 대증요법도 실시하기 어렵다. 오히려 많은 의료진이 감염되거나 도망치면서 취약했던 기존 의료시스템마저 붕괴했다. 의료진에게 무작정 헌신과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시스템이 붕괴하자 다른 환자들도 덩달아 고통을 받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외국기업이 상당수의 인력을 철수시키고, 이동제한 조치로 음식과 물자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은 탓에 식량난까지 덮쳤다. 수 백만 비감염자의 삶도 악화되고 있다.
 
국제사회는 별다른 뾰족한 수를 못 만들고 있다. 감염환자가 자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만 급급하다. 서아프리카 3개국의 사망자가 전체의 99.8퍼센트를 차지함에도 세계 언론의 '에볼라' 보도는 스페인, 미국 등 '선진국'에 집중된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서아프리카 국가들이 모든 책임을 질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는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를 전 세계적인 사안으로 여겨 해결에 힘써야 한다. 무엇보다 해당국들에서 질병통제가 제대로 될 수 있게 인력, 장비, 약품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늦었지만 특허권 없는 공적인 치료제 개발도 절실하다.
 
근본적으로 에볼라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경제적 원인들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들이 자체적인 의료시스템을 바탕으로 질병에 대처할 수 있도록 공중보건 의료인프라 구축을 위한 지원을 해야한다. 나아가 우리부터 아프리카의 빈곤, 내전, 질병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아프리카에 새로운 비극이 덮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아프리카 공중보건의 핫 이슈는 에볼라가 아니다?

에볼라보다 더 많은 사망자를 낳는 질병들

언론은 아프리카에 에볼라 발생으로 인해 대재앙이 도래한 것처럼 보도한다. 하지만 실제로 아프리카에서 가 장 많은 사망자를 내는 질병은 에볼라가 아니다.
 
국제보건기구(WHO)는 에볼라가 창궐하기 시작한 올해 3월 이후 아프리카 대륙에서 에이즈와 말라리아로 사 망한 사람을 각각 62만 명과 32만 명으로 추정했다. 기아로 숨진 사람도 20만 명이나 된다. 같은 기간 동안 에 볼라 사망자는 4555명이었다.
 
에볼라는 어쩌면 빈곤과 취약한 의료시스템이 계속적으로 만들어온 아프리카의 비극에 양념 하나 첨가된 것 뿐일 수도 있다. 질병과 가난으로 인한 ‘대량 학살’이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음에도 그동안 아프리카는 방치되어 왔다.
 

기니,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에볼라 발생 중심지 세 나라의 현대사

기니는 1968~84년 아메드 세쿠 투레의 독재 가 지속되면서 경제가 파탄에 이르렀다. 1984 년 쿠데타로 정권을 얻은 란사나 콩테의 통치 하에서도 절반 이상의 국민이 국가 빈곤선 이 하의 수준으로 살았다. 2008년 또 한 번의 쿠데 타를 겪으며 국가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라이베리아는 오랜 내전을 겪었다. 1980년 새뮤얼 도가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정치를 펼쳤고, 찰스 테일러가 그에 반기를 들며 1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되었다. 정부군과 반군의 대결, 반군끼리의 내분은 9년 동안 지속되었다. 테일러가 정권을 잡지만 1999년에 다시 2차 내전이 시작되었고, 테일러가 망명한 2003년에 오랜 내전이 종식되었다.
 
14년에 걸친 내전은 참혹한 상처만 남겼다. 두 번의 내전 동안 인구 400만 명 중 25만 명이 목숨을 잃 었다. 국가 기반시설과 경제는 초토화됐다. 수도 몬로비아 거주 인구의 0.58퍼센트만 전기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전력 공급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며, 전체 인구의 41퍼센트가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 60퍼센트가 하루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가난하다.
 
이웃 나라 시에라리온도 1991년부터 2001년까지 긴 내전에 시달렸다. 아프리카 북서부 지역은 한 해 시장에 나오는 다이아몬드의 20퍼센트를 공급하는 지역이다. 1961년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 시에라리온은 다이아몬드 채굴권을 둘러싼 무장 세력의 다툼에 휩싸였다.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용어로도 익숙한 이 내전은 다이아몬드 판매가 호조를 띠며 시장이 성장할수 록 더욱 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11년에 걸친 내전으로 12만 명이 목숨을 잃고, 인구의 3분의 1이 난 민이 됐다. 시에라리온에서 태어난 남아의 기대수명은 40.2세, 여아의 기대수명은 45.2세로 전 세계에 서 평균수명이 가장 짧다.
 
제국주의 지배가 아프리카를 잠식하던 지난 세기, 실제 공동체와 무관한 열강의 땅따먹기식 영토분할 은 결국 극단적 종족갈등의 불씨를 만들었고 아프리카는 식민 지배를 벗어난 후에도 다시 내전으로 피 비린내 나는 시간을 겪었다.
 
유력 국가들은 여전히 이들 나라에 국제적 원조 조건 등을 지시하고 제재를 가하고 있으며 사회 통합 을 저해하는 자원 전쟁에도 깊게 관여하고 있다. 최근 에볼라 발병 이후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군대가 인도주의를 앞세워 과거 식민지 국가들에 주둔하고 있어 논란이다. 세계화의 제단 위에 놓인 검은 땅은 세기에 걸친 비극의 복판에 놓여있다.

Footnotes

  1. ^ 에볼라 바이러스는 급성 열성감염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로, 감염자는 약7~10일의 잠복기 후 발열, 두통, 구토 등의 증상부터 시작해 저혈압과 전신성 출혈로 진행하며 50~90퍼센트의 높은 치사율을 보인다. 바이러스는 감염자 혹은 감염 숙주의 혈액이나 체액의 접촉을 통해 전염되며, 가장 유력한 감염 숙 주는 과일박쥐와 원숭이다. 1976년 수단과 자이르(현재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처음 발견된 이 바이러스는 현재까지 20회 이상 중서부 아프리카 국가들을 중심으로 발생이 확인됐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처음 발견된 장소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5개의 아종이 있다. 이번에 기니에서 발견된 것은 가장 치명적인 자이르형 바이러스로, 이전에는 중앙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됐고 서아프리카에는 처음이다.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이 두 지역 사이에서는 숙주인 박쥐가 바이러스 이 동의 매개체가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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