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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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9.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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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소, 나는 공산주의자요

장귀연 | 편집위원, 서울대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많은 '사회주의자'들

에피소드 1.
▷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 정책위의장이 1일 전교조를 '사회주의적 집단'이라며 색깔론을 제기하고 나선 데 대해 전교조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김 의장은 이날 인터넷매체인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교조가 사립학교법을 개정, 경영과 운영을 완전히 분리하겠다는 것은 자기들이 학교를 접수하겠다는 발상과 똑같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 집단이 전교조"라고 주장했다.(2001.8.1) 한나라당 김만제(金滿堤) 정책위의장은 2일 "전교조는 사회주의적 집단"이라고 발언한 데 대해 "지극히 부적절한 표현이었다"며 "전교조 활동전체를 매도하는 것처럼 비친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전교조와 민주노총, 전국언론노조 등은 이날 한나라당 당사를 방문, 한나라당의 공식입장과 공개사과를 촉구하는 공개질의서를 전달했다.(2001.8.3)
▶ 전교조 관계자 : 우리보고 사회주의자라니, 그렇게까지 봐주니, 솔직히 김만제가 고맙지.

에피소드2.
▷ [제목 : 인의협의 의료사회주의자들에게] 과거 노이로제에 집착해서 단순히 자신들을 위한 자위행위를 하지 말라. [제목 : 싸구려 사회주의자들이 말아먹은 의료] 나는 왜 의사들 중에서 정부의 이 엉터리 의약분업안에 목을 매달고 있는 의사들이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무의식중에 솔직하게 말해준 모 단체의 의사가 있었다. 가난한 사람도 부자들과 똑같은 진료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똑같은 것을 먹어야 한다면 이것은 웃기는 일이다. 부자들은 왜 호텔에서 맛있는 것을 먹고 가난한 민중은 왜 자장면만 먹어야 하냐고 강조한다면 이들은 이미 공산주의자들인 것이다. [제목 : 인의협과 의료사회주의가 싸움의 중심을 통과하고 있다] 그들의 의료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구조는 의료의 사회주의화입니다. 그들이 인도주의와 거리가 있다는, 오히려 안티인도주의라는 사실은 개원가에서 일찌기 회자되고 있었습니다. 전공의들은 인의협의 정체에 대해 노출된 경험이 없으며 그 이념의 환상만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작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사들 사이트인 www.medigate.co.kr 게시판 중에서)
▶ 인의협 관계자 : 사실은 말야, 우리끼리 모이면 하는 얘기지만, 사실 우리 의료사회주의자들 맞거든.

에피소드3.
▷ 내 선배 : 후배를 만났는데, 진지하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김대중이 사실은 빨갱이라고, 그거 아느냐고 말이야. 무슨 비밀 이야기하듯이, 그러니까 예전 군사독재 시대에 떠돌던 유비통신 얘기하듯이 소리죽여서, 사실은 김대중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더라니까.
▶ 내 친구 : 아이구, 복장 터져!


색깔론을 부추기자

사전에서 '가든'이라는 어휘에 '도시 교외에 자리잡고 숯불갈비 등의 음식을 파는 음식점'이라는 정의를 추가해야 하듯이, 나는 요즘 '사회주의자'라는 단어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어의(語義)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대로라면 아마 국어사전의 개정판에 다음과 같이 나올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자 : 1. 사회주의를 믿고 신봉하는 사람 2. (俗) 나라 말아먹고 집안 망칠 막돼먹은 놈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욕설.
즉, "야, 개새끼, 씨발놈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삿대질하며 "야, 이 사회주의자야!"라고 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레드컴플렉스의 연원에 대한 슬픈 옛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배울 만큼 배웠다는 사람들이 그 유명한 사회주의가 뭔지조차 모른다는 점을 들어 한국의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무식함을 개탄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사회주의자'라는 단어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가 욕설로 쓰이는 상황이 속상한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사회주의자'라는 말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그러한 사태를 방관하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내가 사석에서 만난 전교조 관계자나 인의협 관계자처럼 말이다.
전교조는 김만제의 발언에 대해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다. 물론 김만제가 전교조를 사회주의적 집단이라고 하면서 댄 근거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전교조 성원들 모두 또는 대부분이, 내가 만난 사람처럼 사회주의자이거나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만제의 말은 '무식한 소리'지 '욕설'은 아니지 않은가? 무식하다고 비웃어주면 될 일이지, 그게 그렇게 펄쩍 뛸 일일까?
사립학교법 개정에 대해, 전교조는 찬성하고 한나라당은 반대한다. 그거야 새삼스러울 것도 문제가 될 것도 없다. "파문이 인" 것은 전교조를 "사회주의적 집단"이라고 했기 때문이며, 전교조가 항의한 것도 그 점에서였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인 집단이 전교조다'라고 한 발언은 전교조 및 교육·시민단체가 그동안 수행해 온 교육개혁 및 사회개혁, 그리고 민주화를 위한 제반 활동을 전면 부정 혹은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음해하려는 것"-전교조, 김만제 정책위 의장의 망언 관련 한나라당에 보내는 공개 질의서, 2001.8.3). 마치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차마 듣지 못할 욕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속상하다.
역시 개인적으로 만난 인의협 관계자는, 위에서 인용한 말을 한 그 자리에서 어떤 다른 사안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얘길 하면 또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들을 테니 내놓고 대응할 수도 없어 벙어리냉가슴 앓고 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또 나는 속이 상한다. 사회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게 뭐가 문제이길래, 냉가슴까지 앓아가며 말을 못한다는 것인가? 끼리끼리(?) 모이면 그런 이야기를 할지라도, 내놓고 할 수는 없다니? 예를 들어, 배은망덕한 놈, 못된 맘보를 가진 놈, 지조없는 놈 등등의 말을 듣게 되는 상황이라면, 공개적으로 말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런데 사회주의자라는 단어가 그런 것이던가?
전교조나 인의협은 대중조직이고, 한국에서 사회주의자라는 말이 대중적 활동력과 영향력을 떨어뜨릴 지도 모른다고 우려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그 구성원들 중에서도 사회주의라는 말에 섬뜩해 하고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교조나 인의협이 사회주의 조직이 아닌 것도 분명하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사회주의자라는 말에 마치 욕설을 들은 것처럼 민감하게 반응하고 화를 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도대체 레드컴플렉스는 언제 없어질 것인가?
사회주의자라는 욕(!)을 먹는 단체나 인물들의 대응방식, 즉 "보수파가 멋대로 색깔론을 들이대고 있다"는 비난이나, "이러이러한 제도들은 구미 등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것"이라는 변명이나, "이런 말을 하면 색깔론 시비에 휘말릴지도 모르지만"이라는 단서 등을 보면서, 나는 참 서글프다. 물론 아직도 남아있을 대중들의 레드컴플렉스를 우려해서 그렇게 대응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레드컴플렉스의 망령이 떠도는 곳은 사실 국민대중들 사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 사이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색깔론에 항의하지 말고 맘대로 말하게 놓아두라. 사회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적어도 한국의 레드컴플렉스를 진정으로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대응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너희들이 사회주의자라고 부른다면 어, 그래, 그러지 뭐."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자거나 빨갱이가 되어버린다면, 우리나라의 적색민감증도 오히려 사라질 것이다. 색깔론, 지금보다 열배쯤 떠들어대도록 내버려두고 부추겨도 좋을 것이다. (하긴 김대중과 같은 색으로 분류되는 것은 정말 '복장 터질' 일이긴 하지만.)


나는 공산주의자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나는 '-주의자'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쩌면 나도 이 땅에서 살다보니 '-주의자'라는 말에 섬찟해 하던 전세대의 경험이 무의식에 전수되어 왔을 수도 있겠고, 걸핏하면 딱지붙이기에 골몰하는 운동판의 일부 세태가 못마땅해서이기도 하고, 또 내 자신이 '-주의'에 걸맞게 사고하고 실천해 왔는가에 대해 자괴감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를 들어 "당신 마르크스주의자요?"라든지 "여성주의자요?"라는 질문을 받는 경우에는, 대개 어물어물하면서 "글쎄, 그것에도 여러 가지 갈래와 해석이 있고, 일부는 동의하지만 일부는 동의하지 않는 면도 있어서……."라면서 얼버무리곤 했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의자'가 어느 정도 일관된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그 관점에 따라 변화를 위한 실천을 추구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인 이상, 그것은 결코 욕이 아니다. 오히려 자부심 있고 당당한 삶이요, 우리가 의식적으로라도 추구하고 선언해야 할 말일 수도 있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나는 아무래도 공산주의자인 것 같다. 나는 공산당원도 아니요, 공산주의 혁명을 위해서 하고있는 일도 없지만, 공산주의가 상상하고 원하는 理想의 많은 부분을 나 역시 상상하고 원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그 실현을 위해서 무언가 하고싶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나는 공산주의자다.
'공산주의자'. 음험한 눈빛과 꽉 막힌 귀, 독재와 빈곤을 휘두르는 손을 가진 부류들. 심지어 나에게조차도 언뜻 반사적으로 이런 이미지가 스쳐가니, 지금 한국사회에서 욕설로라도 감히 입에 올리기 어려운 단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공산주의는, 자유와 평등의 너른 땅, 교환가치의 물신에 쥐어짜이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능성을 한여름의 초록처럼 싱싱하고 풍요롭게 피워올리는 삶, 그런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단어가 욕설이 될 것인지 찬사가 될 것인지 하는 것은, 사회적 맥락에서 결정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를 자칭하는 사람들의 몫이다.PS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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