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칼럼
  • 2015/01 창간준비3호

케이블 노동자들의 ‘파업, 그 이상’을 기록하다

  • 박장준 미디어스 기자
Cable&More. 서울 1위, 전국 3위 케이블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씨앤앰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케이블, 그 이상.” 가입자들은 씨앤앰의 방송과 인터넷서비스가 다른 업체의 동축케이블과 뭐가 다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가격은 얼마나 더 싼지, 다른 업체에 있는 채널이 여기에도 다 있는지, 그리고 위약금은 대납해주는지…. 아마도 이런 기준으로 우리는 업체를 선택합니다. ‘위약금 전액 지원!’ 전단지만 전봇대에 나부낍니다.

아무리 떼어내도 다음 날 같은 전단지가 붙어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방송통신업계는 설치·AS·영업 같은 필수업무를 외주화한 지 오랩니다. 우리 집에 케이블을 설치하러 오거나 AS를 하러 오는 케이블 엔지니어는 대부분 하도급업체 소속(간접고용)이거나 재하청이거나, 소사장(특수고용)입니다. 원청은 하청에 영업실적을 배당하고, 노동자들은 이를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전봇대를 뛰어다닙니다. 실적을 못 채우면 반성문을 써야 하고, 제때 퇴근을 못합니다.

그래서 가족이며 지인 이름을 빌려 상품에 가입(속칭 ‘자뻑’)하기도 합니다. 기본급은 쥐꼬리 수준이고, 월급이 실적에 비례해 나오는 탓입니다. 하루 12시간 중노동은 기본입니다. 이사철인 봄과 가을, 그리고 여름에 바짝 벌어놔야지 ‘일 없는’ 겨울을 버틸 수 있습니다. “여름휴가 가는 꿈을 꾼 지도 오래”됐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잠깐. 이들을 기억하나요? 아마도 못 할 겁니다. 실적과 ‘해피콜’에 쫓겨 다니는 이들은 언젠가부터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됐습니다.
 
 
저는 봄부터 케이블 노동자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해 수백 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는 씨앤앰의 하도급업체들이 임금 20퍼센트 삭감안을 제시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업체 변경 과정에서 조합원만, 그것도 109명이 줄줄이 해고된 상황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2013년 노동조합(민주노총 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이 설립되고, ‘노조와의 상생’을 ‘사회적 합의’ 모델로 홍보하던 씨앤앰이 돌변한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2008년 씨앤앰 인수에 성공한 MBK파트너스와 맥쿼리가 ‘투기자본’이니 뭐니 해도 그 동안 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매각’을 앞두고 달라졌습니다. 씨앤앰이 포함된 MBK펀드1호는 2016년 만료됩니다. 적어도 내년에는 ‘매각차익’을 위한 구조조정을 끝내야 합니다. 이 간단한 사실 하나가 모든 걸 설명합니다. 씨앤앰 경영진은 ‘이름 모를 투자자’를 위해 노동 몫을 줄여야 하고, 노동조합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 시장에서 노동조합을 없애면 2천억 원을 더 쳐줍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임금을 3퍼센트 올려주겠다는데도 정규직 노동조합(희망연대노조 씨앤앰지부)이 파업을 시작한 이유도 같습니다. “구조조정을 앞둔 정규직은 비정규직과 같기 때문”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바라는 것은 ‘해고자 원직복직’과 ‘매각 전후 구조조정 금지’ 뿐입니다. 국회와 정부부터 시민운동단체와 노동운동진영까지, 그야말로 전방위의 압박에도 씨앤앰이 시간을 끄는 것은 “여기서 노조에 지면 제값을 못 받는다”는 위기감 말고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서울 한복판에서 넉 달 넘게 노숙해도 기자는 없었습니다. 기자가 노동자보다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접근’ 뿐이지만 MBK의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주무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노사문제라 어쩔 수 없다”고만 했습니다.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곳은 씨앤앰 단 한 곳뿐이지만 씨앤앰은 “협력업체 노사문제라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기록도 멈췄습니다. 두 노동자가 프레스센터 앞 20미터 높이 전광판에 오르기 전까지 그랬습니다.

이 싸움이 가까스로 세상에 알려진 뒤에도 씨앤앰은 꿈쩍을 안했습니다. ‘무노조’ CJ헬로비전도, ‘반노조’ 티브로드도 상상 못할 일을 했습니다. 노동자들이 MBK파트너스 김병주 회장을 찾아가니 그 앞에 집회신고를 내고 판촉행사를 열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맥쿼리를 찾아간 현장에 기자들보다 빨리 도착한 사람은 씨앤앰의 시설관리업체 직원이었습니다. 결국 언론과 정부에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했지만 씨앤앰은 투자자를 위해 방패 역할만 했습니다.

투쟁이 길어지고 있는데도, 운이 좋게도 이 싸움은 더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오는 줄지 않고 오히려 연대단위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 덕에 “아직도 배가 덜 고파 하는 소리”라는 말을 뱉던 경영진은 머리를 숙였고, ‘꼼수’를 쓰다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안’을 고민 중입니다. 2014년 크리스마스 현재 노숙농성은 170일, 고공농성 44일입니다. 지금까지 노동자 20명이 제 머리를 깎았습니다. 퇴임을 앞둔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도 동참했습니다.

“노동자들이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자와 비해고자가 함께 싸우는데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케이블, 그 이상”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자본의 모습을 수첩에 적고, “파업, 그 이상”의 싸움이 진행 중인 현장을 기록하고, 추위에 빨갛게 얼굴이 얼어버린 입에서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절절한 사연을 들으면서 이 싸움의 끝을 생각합니다. 뜨거운 소주 한 잔의 현장을 기록해야겠습니다. 내일도 이곳으로 출근합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주제어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