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5/02 창간호

민주노총 새 집행부에 바란다

단결된 투쟁의 구심, 그리고 2천만 노동자와 함께 하는 민주노총이 되었으면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조합원들은 ‘운동’하는 민주노총을 지지했다

사상 처음으로 조합원이 직접 선출한 민주노총 8기 집행부가 출범했다. 투표율, 선거관리 등에 여러 우려가 제기되었었지만, 투표율은 60퍼센트를 훌쩍 넘겼고 심각한 투표 부정도 없었다. 
 
민주노총의 조직 성격을 고려하면 이번 임원 직선제의 성공은 놀라운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란 명칭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은 조합원이 직접 가입하는 것이 아니라 산별노조(연맹)이 가입하는 조직이다. 금속노조,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와 같은 산별노조들은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교섭권을 가지고 있어 위원장이 단체협약의 체결권자로 조합원과 제도적으로 만난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을 직접 만날 매개가 없다. 교섭권이나 조합비에 대한 권한은 물론이거니와 사소한 결정도 가맹단체인 산별노조(연맹)을 통해서 조합원에게 전달된다. 

결국 민주노총은 일상적 임·단협과 같은 제도적인 과정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을 대표하는 한국 사회의 상징으로서, 정권과 자본에 맞서 투쟁해 온 역사적이고 이념적 운동으로서 조합원을 대면한다. 악법에 맞서기 위한 정치적 조직, 반전평화 같은 한국 사회 진보적 의제들을 다루는 사회적 조직, 사업장과 산업을 넘어 함께 투쟁하는 연대 조직 이 바로 민주노총이조합원들에게 갖는 의미인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의 높은 투표율은 60만 조합원이 여전히 노동조합을 노동자들의 투쟁하는 조직, 사회운동조직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노조가 실리화되었다는 비판이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조합원들은 투쟁하는 민주노총, 운동하는 민주노총을 지지했다. 
 
한상균 위원장


민주노총을 둘러싼 조건: 장기저성장과 극단적 소득불평등

물론 임원 직선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민주노총이 가지고 있었던 고질적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특히 민주노총의 조합원 구성이 한국 사회 노동자들을 온전하게 대표하지 못하는 문제는 최근 몇 년간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소득불평등 문제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심각한 것이기도 하다. 이번에 출범하는 8기 집행부는 박근혜 정부에 맞선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박근혜 정부는 연초부터 ‘귀족노동자론’을 앞세워 노동운동을 압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 수년의 경험상 총파업의 대의명분이 아무리 정당해도 민주노총이 기득권 세력으로 비난받아서는 투쟁도 기세 있게 조직되기 힘들고, 투쟁 후에도 소기의 성과를 얻어내기 힘들었다.

실제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보자. 2009년부터 현재까지 2013년 한 해 정도를 제외하면 실질급여는 계속 감소했다. 최근 유행하는 소득세 자료를 통해 분석해보면 세계경제위기 전인 2006년부터 2013년까지 근로소득 상위 10퍼센트의 실질임금은 약 3퍼센트 정도 오른데 반해 나머지 90퍼센트의 임금은 오히려 3퍼센트 감소했다. 그리고 이 감소폭은 당연히도 하위소득자로 갈수록 더 컸다. 임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상위 10퍼센트의 평균임금은 2013년 말 현재 연 1억 원이고, 나머지 90퍼센트의 평균임금은 2300만 원이다. 네 배 넘는 격차다. 민주노총 조합원 평균 임금은 2014년 임금 요구안 관련 조사 자료에 따르면 상위 30퍼센트 정도에 속하며, 민주노총에서 전통적으로 주력을 이뤄왔던 대기업 노조들은 이보다 더 높은 상위 10~20퍼센트에 속한다. 

더 큰 문제는 특별한 대책이 없으면 이런 임금 양극화와 민주노총의 대표성 하락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한국경제 자체가 오랫동안 저성장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성장의 과실이 더 적어지는 저성장 시기에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이나 정부의 재분배 정책이 없으면 소득격차는 지금보다도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친자본적 박근혜 정부조차 소위 초이노믹스란 이름으로 소득격차 문제를 향후 성장의 가장 큰 질곡 중 하나로 지적했을 정도니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민주노총 8기 집행부가 3년 임기 내내 부딪힐 문제는 민주노총의 투쟁이 조합원의 이해관계를 넘어 실제 임금 격차를 줄이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이다.


2015년, 박근혜 정권과 민주노총 총파업

민주노총 임원 직선제가 조합원들의 높은 참여 속에 치러지고, 총파업 투쟁전술을 내세운 한상균 선본이 당선된 데는 박근혜 정부도 한몫 한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작년 하반기부터 공무원연금 개악을 추진하더니, 12월부터는 정규직 해고 조건 완화, 비정규직 사용 확대, 임금 유연화 등을 공격적으로 발표해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긴장케 했다. 

정부는 입만 열면 경제를 외치지만 박근혜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사실 낙제에 가깝다. 일부 수출대기업을 제외하면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는 몇 년째 외환위기나 2009년 세계경제위기 상황에 가깝다. 물가인상률이 벌써 2년 넘게 1퍼센트대에 그치고 있어 디플레이션 위기설도 나오고 있다. 이미 전문가들 상당수는 한국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에 진입한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최근 한국경제의 문제점으로 이야기되는 저물가, 인구고령화, 가계부채 위험 등은 잃어버린 20년으로 표현되는 일본의 장기 불황 시작 시점과 흡사하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란 이름으로 발표되었지만 정부 정책은 경제적 의미보다 오히려 정치적 의미가 강해 보인다. 정규직에 대한 공격을 비정규직대책이라고 이름 붙여 내놓은 것만 봐도 그렇다. 2년 동안 정부 실책이 있을 때마다 종북몰이를 하더니 이제 경제정책 실패의 희생양을 노동조합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노사정위의 정부 측 인사들마저 비판하고 있듯이 정부의 노동시장 대책은 노동시장의 핵심문제를 완전히 비껴나갔다. 

저성장, 디플레이션 위기에 대한 가장 잘 알려진 대책은 사회복지를 확대해 출산율을 높여 노동력을 늘리고, 임금소득을 높여 가계소비를 부양하며, 부동산 시장 규제로 가계부채를 연착륙시키는, 이른바 서민 경제를 살리는 정책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정책은 정반대다. 12월 말에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라고 발표한 내용을 보면, 노동력 부족은 ‘휴먼FTA’를 체결해 노동자를 수입하는 것으로, 소비부족은 시장 규제를 더 없애 기업과 자산가들이 더 자유롭게 착취하고 투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가계부채는 정부 주도로 부동산 시장을 부양해 부동산 소유자들의 자산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아무리 보수정권이라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진보진영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반대로 정책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과 친기업적 디플레이션 대응 정책으로 발생하는 정부 재정 부실을 공공부문 노동자의 소득 삭감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다. 작년부터 공공기관 정상화와 공무원연금 개혁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정책들은 결국 지출의 최종 결과로 보면 정부의 인건비 지출을 줄여 기업 지원금을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친기업적 경기부양책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정부 부채 증가를 공공부문 노동자들에 대한 수탈로 상쇄하겠다는 발상이다.
 
 
 

조직 노동자의 단결된 투쟁의 구심, 그리고 2천만 노동자와 함께 하는 민주노총

민주노총 8기 집행부는 당장 올해 총파업을 조직해 박근혜 정부와 제대로 싸워보겠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총파업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해서라도 방향을 돌려놔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동시에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박근혜가 부당하다고 해서 민주노총 투쟁이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받는 것은 아니란 점이다. 다수의 노동자가 민주노총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거리감은 분명 물질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고용안정, 통상임금, 연금 등을 의제로 해 추진되는 민주노총 총파업이 논리적으로는 옳을 수 있어도, 노조 할 권리를 박탈당한 다수 노동자에게 그 투쟁은 상위 20퍼센트 노동자를 대변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노조를 무수하게 만들어도, 저임금 노동자들의 권리를 아무리 대변해도, 민주노총의 평균 임금과 전체 노동자의 평균 임금이 멀어지는 만큼 그 거리는 좁혀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단결된 투쟁을 위해 모든 조합원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별개의 축으로 8기 집행부가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좀 더 친근하게 다가 설 수 있는, 노동조합을 건설할 권리를 박탈당한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여러 방법들을 동시에 찾아봤으면 한다. 이를테면, 현재 민주노총 노동상담소를 대대적으로 확충해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겪는 고충을 해결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 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압도적으로 자본의 힘이 강해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만들어도 원청의 ‘갑질’에 노조를 유지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민주노총이 당장 이 노동자들에게 다가서는 방법은 누군가 도와줄 벗이 있다는 기본적 신뢰이다. 물론 이 신뢰는 또한 동시에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믿음직한 조직이 민주노총이란 걸 보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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