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평등
  • 2015/02 창간호

사람 버리는 복지, 사람 삼키는 병원

요양병원의 홈리스 장사를 고발한다

  •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서울역은 범죄 집단들에게 사냥터와 같다. 홈리스들은 일자리를 소개시켜 주겠다는 말에 염전, 김 양식장에서 노예처럼 부림당하고, 고시원을 얻어주겠다는 말에 명의도용 합숙소로 끌려가곤 했다.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인간관계마저 파산한 그들은 누가 내 편에 서 줄까 하고 속앓이할 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근래에 이와 사뭇 다른 형태의 착취가 유행하고 있다. 서울역, 영등포역 등 주요 노숙지역에 요양병원들이 차를 대고 홈리스들을 유인하여 입원시키는 일이다. 병원에 가는 일이 뭐 잘못인가 싶었고, 얌전하게 주는 밥 먹고 있으면 계절 걱정 할 일 없을 것 같았다. 경찰과 노숙인 지원기관 역시 그리 생각해서, 심지어 그런 병원으로 홈리스들을 안내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병원 역시 인간 사냥꾼이긴 마찬가지였다. 입원자의 수가 곧 수입으로 직결되는 ‘일당정액수가제’를 악용, 홈리스들을 사육 대상인 양 볼모로 잡고 정부로부터 부당진료비를 착복해왔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자 꽤 관심을 끌었다. “내가 낸 건강보험료가 이렇게 새다니”란 분노, 해당 병원들에 대한 일벌백계를 요구하는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정부는 근본적 대책 없이 불법 요양병원에 대한 처벌, 관리감독의 강화만을 이야기한다. 이는 오히려 보다 진화된 음성적 유인행위를 낳을 공산이 크다. 

실제로 최근 요양병원들의 픽업 행위는 종적을 감췄지만 홈리스들의 요양병원으로의 유입은 여전하다. 또한 ‘비용’의 측면만을 보는 것은 여타 홈리스 대상 범죄와 마찬가지로 유인행위의 토양으로 기능했던 홈리스의 열악한 처지를 묵과한다는 점에서 정의롭지 못하다. 

무엇이 홈리스들로 하여 요양병원을 선택하게 하는지, 요양병원이 갖는 이점은 홈리스 복지체계가 갖출 수 없는 것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회적 입원’을 선택하게 한 홈리스의 생활세계에 대한 점검 말이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홈리스행동은 요양병원 입원 경험이 있는 홈리스 15인을 심층면접하여 요양병원과 홈리스의 매개 고리를 찾고자 했다.
 
거리 홈리스에게 술을 사주며 요양병원 입원을 유혹하는 브로커
 

담배와 커피에 팔려가는 사람들

직원이 나와 가지고 거기 가면은 편하고 좋다고. 한 3개월 있으면 수급도 맹글어 주고 그 다음에 또 뭐냐 담배 같은 거 없으면 매일 준다고….
2012년 박 씨는 담배 제공과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게 해 주겠다는 말에 서울역에 온 ㅊ요양병원 차에 올랐다. 병원 측은 약속대로 담배는 물론 한 달에 3만 원 한도의 물품을 살 수 있도록 해줬다. 딱 그만큼이었다. 정신병원이기도 했던 그 병원은 십이지장궤양을 앓고 있던 그를 ‘우울증’ 환자로 둔갑시켰고, 성분을 알 수 없는 약을 먹게 했다. 그러나 정작 내과 약은 해당 과가 없다는 이유로 주지 않았고, 기초수급도 신청해 주지 않았다.

요양병원들이 홈리스들을 유인하는 술책은 대개 이렇다. 담배와 커피믹스 제공은 장기 입원을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고, 같은 이유로 입원자들의 음주도 묵인하곤 한다. 
 
술에 대해서는 갖고만 안 들어오면 통제를 안 해. 슈퍼에 가 가지고 술 먹고 있으면 직원들이 와. (와서 어떻게 해요?) 아, 같이 먹지 뭘 해?
그러나 홈리스 입장에서 이들 병원들의 이점은 무엇보다 숙식제공이다. 더 이상 하루하루 잠자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끼니를 때우러 발품을 팔고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병원 측은 몇 달 이상만 입원하면 기초생활수급권이나 일자리를 주겠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병원들은 장기 입원자들에게 진단서를 발부하여 수급신청을 돕곤 한다. 또한 외출 처리를 통해 입원자들이 건설직 일당노동에 참여하도록 하고, 입원자들을 보호사, 정문 경비, 식당 주방으로 취업시키는 일도 있다. 물론 병원으로선 남는 장사다. 환자로 등록하여 진료비도 챙기고, 헐값에 인력을 활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병원의 돈벌이에 이용당하겠다는 다짐만 있다면, 홈리스에게 요양병원은 꽤 괜찮은 도피처다.
 
홈리스 유인 요양병원 내부 사진. 
    담배를 제공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의료 지원의 공백, 불법 의료를 낳다

많은 홈리스들이 요양병원들을 여관인 양 선택하지만 치료 목적으로 입원을 선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현재 홈리스들은 국공립병원을 중심으로 짜여진 ‘노숙인 진료시설’만을 이용할 수 있다. 물론 노숙한 지 3개월이 넘었는지, 건강보험료가 6개월 이상 연체되었는지와 같은 선정기준을 통과한 이후의 얘기다. 진입 문턱을 높게 쌓고, 의료급여제도에 있지도 않은 지정병원제로 접근성을 저해한다. 진료 시 예사로 따라붙는 비급여도 문제다. 여기에 공공의료기관의 부족(급여 병상, 지역별 분포 등)이란 한계도 비켜갈 수 없다. 
 
보름 되기 전에는 나가야 되요. (최장 입원 기간은?) 그때... 13일 정도? 그 정도면 웬만하면 인자 퇴원 수속 밟는 거죠.
급성기 병원(급성 질환이나 응급 질환을 주로 담당하는 병원)인 공공병원들은 홈리스들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 부족한 병상, 특히 급여가 적용되는 다인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병원들은 의료적으로 급한 불을 껐다 싶으면 환자들을 속히 퇴원시킨다. 병상을 회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리, 응급잠자리, 쪽방 등지에서 치료와 재활을 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홈리스 의료에는 ‘약보다 집’이 중요하단 말은 이런 상황을 잘 대표한다.

홈리스들을 불법 요양병원으로 유입시키는 또 하나의 제도적 문제는 ‘요양병원’을 지정병원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법령상 근거가 없다. ‘홈리스가 병원에서 요양을? 쉼터가면 되지’라고만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설은 환자의 치료, 재활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사람들이 좀 우리들하고 다르더라구. 잠을 자고 있는데 계속 앉아서 나를 쳐다보더라구요. 이게 정신병동인지 시설인지, 덩치도 이만하고 인상도 더러운 놈이 노려보고 있더라구요. 자고 있는데
보건복지부의 ‘노숙인 1종 의료급여’와 ‘행려환자 의료급여’, 지자체의 ‘의료보호’로 분절돼 서로 책임 떠넘기기 경쟁을 유도하는 설계 등 홈리스 의료지원에는 언급한 것보다 많은, 다양한 문제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토록 공백이 많은 홈리스 의료지원체계가 불법 요양병원을 대안으로 만들고, 요양병원들의 불법 행위 수요를 낳는다는 것이다.
 
홈리스 유인 요양병원에 대한 복지부 현지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홈리스 복지의 강화가 우선

서울역 지하도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 홈리스들이 여럿 있다. 추위를 피할 수 있고, 지하철과 엘리베이터가 있어 이동하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갈 곳은 어디일까? 보증금이 없으니 쪽방, 고시원을 택하지만 이곳들 중 장애인에게 적합한 주택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달 출산일이 얼마 남지 않은 한 여성홈리스와 쪽방, 고시원을 찾아 헤맸지만 방을 구할 수 없었다. 임산부와 아기를 허락하는 집주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큼지막한 외투에 부른 배를 감추고서야 고시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당일 저녁 금세 들통이 났고, 그는 지금 출산한 아이와 함께 지인 집에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시설 중심의 왜곡된 복지체계를 갖고 있는 노숙인 복지(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 기초함)는 주거복지를 홀대한다. 거리홈리스에게 쪽방, 고시원을 한시적으로 제공하는 ‘임시주거지원’이란 것이 있으나 정책 대상의 3분의 1도 포괄하지 못하는 물량으로 구색 갖추기에 불과하다. 
 
(임시주거지원을) 두 번 인가 신청했어요. 근데 하는 말이 ‘아저씨 같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거예요. 300명으로 한정이 됐는데 지금 영등포는 어마어마하게 밀려 있다는 거예요.
이처럼 설령 대상이 된다 해도 갈 곳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부지기수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이란 이름의 임대주택 공급정책도 다른 곳에는 없는 ‛시설위탁 공급-시설을 통한 입주신청’이란 괴이한 방식으로 운영되며, 공급물량과 주택형태(1인 가구형 주택 부족)의 문제로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   
 
취업 때문에 갔는데도 별로 뭐 그 직원들이라는 게 있으나마나 입니다. 제대로 업무 분담을 못하더만요. 그래 몇 번 가고 다음부터는 아예 안 갑니다. 연락도 없고 뭐 갈 만한 데가 없다 이거라.
일자리, 급식 정책 등 여타 홈리스 복지 영역도 왜곡되거나 허술하기는 매일반이다. 노숙인 복지정책이라며 가짓수로는 서울에서 부산 갈 만큼 늘어놨으나, 당사자 입장에서는 기차표를 못 구해 난리다. 

행정 입장에서는 이런 저런 정책이 있다고 선전하기는 좋겠지만 정작 알아보면 젓가락 갈 데가 없다. 이렇듯 무능한 복지, 사람 버리는 복지가 요양병원의 부정을 촉발했고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복지부가 요양병원을 관리 감독한다는 게 허투루 들리는 이유다. 복지 당국이 제 할일 똑바로 하고,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맞는 옷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장사 야기하는 잘못된 제도, 이제는 바꾸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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