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세계
  • 2015/02 창간호

섬유산업과 글로벌 착취구조③

감시를 넘어 연대로

  •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에서 벌어진 한국 기업의 인권 노동권 탄압을 계기로 한국의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은 두 나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더욱 가까이서 들여다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글로벌 패션산업의 가장 바닥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의 현실을 통해 세계화된 착취구조를 선명하게 보게 된 것이다. 두 번의 현지조사에서 수많은 국제단체가 이 두 나라의 노동자운동에 많은 역량과 자원을 쏟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지 활동가들은 이러한 국제적인 관심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작년 9월 17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공동행동에 참여한 캄보디아 노동자들 (출처: Reuters/Samrang Pring)
 

“바이어가 책임져라! 공급사슬망 전반에 걸친 인권·노동권 보장”

작년 초 최저임금을 160달러로 인상하라고 요구하며 자발적 파업에 나섰다가 유혈진압에 부딪친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전열을 재정비했다. 캄보디아 의류산업민주노동조합연맹(C.CAWDU) 소속 한 활동가는 민주노총이 주최한 7차 아시아 노동조합 활동가 교육교류 프로그램(2014.8.24~28)에 참가하여 캄보디아 의류산업 민주노조들이 모여 만든 공동투쟁 계획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캄보디아 정부는 생산업체들의 철수 위협을 구실로 삼고, 한국 같은 동아시아 자본이 주를 이루는 생산업체들은 바이어(원청)들의 생산단가 압박을 핑계 삼아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조들은 물가인상 등을 반영하여 요구안을 177달러로 조정하고 정부, 공장주뿐 아니라 바이어들에게도 책임을 물었다. 캄보디아를 주요 아웃소싱처로 삼는 브랜드를 열거하고 “유명 패션 브랜드들이 우리를 굶겨 죽인다”며 바이어들에게 적정임금 보장에 대한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9월 17일을 공동행동의 날로 정하고 국내에서는 각 공장별 중식 행동을, 국제적으로는 목표가 되는 매장 앞에서 직접 행동을 전개했다. 최저임금교섭에서 정부와 사용자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바이어들이 임금 인상분에 대한 지불 책임을 약속하라는 것이었다. 

의류노동자들을 대표하는 국제 산별 조직인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IndustriALL)은 이런 요구를 받아 초국적기업과 체결한 국제기본협약(GFA)이 해당기업의 해외법인뿐 아니라 공급사슬망의 모든 하청 노동자들을 포괄하도록 갱신하고 있다.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은 자라(Zara) 등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인디텍스(Inditex)와 맺은 GFA(2014년 11월 갱신)가 공급사슬망을 포괄하는 최초의 협약이라고 소개하고 있다(www.industriall-union.org/inditex). 방글라데시 의류산업 소방 안전에 관한 협약 역시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이 주도하여 190개 의류브랜드들이 서명한 협약이다.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를 계기로 원청·최종구매자가 공급사슬망 전반에 걸쳐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컨센서스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책임이 어디까지인지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공급업체들이 노동·안전 기준을 준수하는지, 적정 임금을 지급하는지 ‘관리감독’하는 역할로 자신의 책임을 한정하면서 비용 지불 등 실질적인 책임은 피하려 한다고 비판한다.
 

임금·노동기준 향상을 위한 국제 공동투쟁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더 낮은 임금을 찾아 떠나겠다’는 것은 자본의 고전적인 위협이다. 여기에 각국 정부는 해외투자 유치를 위해 수출가공지대(EPZ), 경제특구(SEZ) 등을 만들어 초국적 기업들에게 노동자들의 기본권 박탈이라는 선물을 얹어준다. 이렇듯 더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찾아 생산기지를 옮기며 노동자들을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내모는 초국적 기업의 전략을 저지하기 위해 다수의 나라가 공동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국제적인 연대투쟁 전략이 제시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 최저 임금 캠페인(Asia Floor Wage Campaign)이 대표적이다. ‘깨끗한 옷 캠페인(Clean Cloth Campaign)’ 등 국제 NGO들과 아시아 몇몇 나라의 노동조합이 참여하고 있는 이 캠페인의 주장은 “일자리를 잃을 것을 두려워하여 임금 인상 투쟁에 주저할 것이 아니라 주요 의류생산국의 임금을 공동으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의류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 생계비를 산출하여 이를 구매력지수(PPP$)로 표시하고 이를 임금인상의 목표로 삼아 공동투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디어만 제시되었을 뿐 캠페인 주체와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명확하지 않다.

국제노총(ITUC) 쪽은 더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국제노총은 지난 12월에 열린 일반이사회에서 초국적기업의 공급사슬망 전역에 걸친 생활임금 보장과 비공식노동의 공식노동화를 2015년 주요 활동 계획으로 결의했다. 초국적 기업을 위해 생산, 운수, 물류, 서비스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고 원청 기업의 노동조합이 연대한다는 구상이다. 아시아에서는 1차적인 목표로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홍콩 5개국을 선정하여 집중 캠페인을 펼친다. 이를 위해서 해당 국가의 노동기본권을 확대하기 위한 국제적인 투쟁 역시 중요한 과제로 제시된다. 해당국 정부가 단결권, 단체교섭권, 파업권을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하도록 국제적인 수준에서 압박하는 활동을 전개한다. 
 
 

“권리는 수입할 수 없다”

캄보디아 노동자들은 177달러 최저임금인상 국제공동행동을 조직할 당시 유럽의 노조들과 전술상의 이견이 있었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결정하는 데에는 공장주-정부-초국적 브랜드가 다 얽혀있지만, 브랜드들이 적정한 임금을 지불할 최종 책임을 지니고 있기에 이를 부각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럽의 노조들, 그리고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 등은 브랜드를 직접 겨냥하기보다는 이들의 힘을 빌어 캄보디아 정부와 공장주들을 압박하는 쪽이 효과적이라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활동가들은 국제단체들이 해당국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무역 제재나 불매운동은 실질적인 효과는 없으면서 오히려 현지에서 일자리 축소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마찬가지로 글로벌 브랜드들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 전술 역시 어떤 공장의 노동환경 기준 이행이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브랜드들이 거래를 끊게 하는 방식일 경우 노동 조건을 바꾸어내지는 못하면서 노동자들에게 악영향만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바로 해외 단체들이 자신을 ‘감시자’의 위치에 놓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오류다. 현지 활동가들은 “권리는 수입할 수 없다”며 스스로 단결하고 연대하는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국제 연대의 힘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것이다. 

최근 벌어진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진출 한국기업들의 인권·노동권 탄압은 한국의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이 이들 나라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 그리고 자신의 과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계기가 되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진출국의 법규 또는 인권과 환경에 관한 국제 기준을 준수하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넘어 글로벌한 착취구조 아래서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어 단결하고 연대함으로서 권력관계를 바꾸어 내도록 하는 연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연재 마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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