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5/04 제3호

한국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대안은 무엇인가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한국의 소득불평등, 오해와 진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격차의 나라다. 새정치연합과 개혁 진영 일부에서는 이명박의 감세 탓에 어마어마한 문제가 발생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 소득불평등은 2008년 이후 새누리당 정권 7년보다 1998년 이후 민주당 정권 10년 동안 더 빠르게 커졌다. 단적인 예로 가계소득10분위 지표를 보자. 노무현 정부 5년간 상위 10퍼센트가 하위 10퍼센트보다 소득증가율이 11퍼센트포인트나 더 컸었는데, 새누리당 정권 7년간은 반대로 하위 10퍼센트가 상위 10퍼센트보다 소득증가율이 15퍼센트포인트 더 컸다(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물론 그렇다고 새누리당 정권이 소득재분배에 신경을 썼단 이야기는 아니다. 원체 소득 재분배 제도가 거의 없기 때문에 정권의 성격에 따라 소득불평등이 커지고 작아지는 게 아니란 것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의 성장과 위기의 성격이다. 


재벌과 ‘나머지’

최근 정부가 강조하는 기업소득과 가계소득 증가율 격차 문제를 보자. 우선, 기업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이는 기업 모두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일부 대기업이 잘 나가서다. 2013년 기업순소득은 176조 원인데,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상위 20개 기업(상장기업기준)이 44퍼센트를 차지한다. 2002년에는 이 비중이 32퍼센트였다. 이 중에서도 삼성과 현대차 성장이 두드러졌다.

가계소득이 크게 늘지 못한 것은 이들 재벌대기업에 포함되지 못한 ‘나머지 경제’의 정체 탓이다. 나머지 경제는 임금근로자의 90퍼센트인 1600만 명의 비재벌기업 노동자와 700만 자영업자로 이뤄져있다. 

대부분이 재벌대기업 정규직인 근로소득 상위 10퍼센트의 연평균임금은 2006~13년 8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2000만 원이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나머지 하위 90퍼센트의 연평균임금은 1900만 원에서 2300만 원으로 400만 원 느는데 그쳤다. 
 
자영업자의 상황은 더하다. 국민소득통계에 나타나는 자영업자 소득은 2002년 105조 원이었는데, 2013년 118조 원으로 실질 통화가치로 보면 30퍼센트 가량 줄었다(한국은행, 〈제도, 부분별 소득계정〉). 이 기간 자영업자가 800만 명에서 700만 명으로 14퍼센트 줄어든 것을 감안해도 수입 자체가 급감한 것이다. 현재 자영업자들의 연평균소득은 1인당 17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노동시장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정규직, 비정규직 격차를 이야기하지만 노동시장 임금 격차에도 고용형태보다 기업규모, 더 정확하게는 재벌대기업(그리고 재벌대기업 수준에 맞춰 임금수준을 조정할 수 있는 일부 공공기관)이냐 아니냐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2013년 현재 500인 이상과 10~29인 사업장의 임금격차는 167만 원에 이르지만 정규직 평균과 비정규직 평균의 임금격차는 이보다 작은 112만 원이다(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
 

자본주의 속살은 불황의 손실을 나누는 경쟁법칙

소득이 분배되는 양상은 성장기냐 불황기냐에 따라 다르다.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경제가 성장할 땐 별다른 분배 체계가 없어도 전체적으로 소득이 증가해 격차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하지만 불황기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다른 사람의 파이를 빼앗지 않으면 내 몫이 줄어든다. 어려울 때 사람의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는 말이 있듯이, 불황기에 자본주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소득분배의 실체 역시 그러하다.

자본주의의 중장기 성장과 위기를 보여주는 이윤율(총 투하자본 대비 이윤 비율) 추이를 보면 한국 국민경제 전체가 성장하는 호황기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10년 정도에 불과했다(한국은행 〈국민대차대조표〉의 고정자산 순자산스톡과 〈국민소득〉의 영업잉여로 계산). 평생직장, 4인 가구, 내 집 마련의 꿈, 자가용 같은 중산층 프레임이 만들어진 시기도 이때다. 소득의 상향평준화는 이때말고는 없었다.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가 1985~89년 3저(저달러, 저금리, 저유가) 호황을 만나 능력을 발휘했고, 1987년 6월 항쟁과 7,8,9월 노동자대투쟁은 기업들의 이윤이 소득으로 분배될 수 있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1970년대도 고도성장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이 시기는 ‘잘 살아보세’를 향한 성장이었지, 잘 사는 성장 시기는 아니었다. 한일협정, 베트남전 참전으로 받은 차입금을 정부가 중화학공업화에 투자해 나타난 성장의 부(富)는 대부분 기업들의 설비 자산으로만 존재했었다. 

3저 호황이 끝난 1989년 이후에도 한국 경제 성장은 한동안 계속됐는데, 실제 생산과 소비가 느는 성장은 아니었다. 재벌들이 이윤율이 하락하자 자본투자를 늘려 이윤 총량을 늘렸기 때문에 경제가 성장한 것처럼 보인 것뿐이었다. 공장이 늘어 고용도 늘었지만, 결국 재벌들이 해외차입금으로 과도하게 투자한 결과는 1997년 외환위기로 나타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는 매우 단순하다. 김대중 정부가 재벌의 부채를 국부로 해결해 준 이후 수출재벌은 초국적기업이 되었고, 노동자들은 극도로 유연화 된 노동시장에서 바닥을 향한 경주를 하게 되었다. 소득세 자료를 이용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1998년 이후 상위 10퍼센트를 제외하면 하위 90퍼센트의 실질근로소득은 거의 정체하였다(김낙년, 〈한국의 소득불평등, 1963~2010: 근로소득을 중심으로〉, 2012).

이윤율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물론 해외에서 생산해 해외에서 상품을 파는 재벌들과 운 좋게도 그 재벌들의 부를 일부 공유할 수 있는 소수 하청기업들은 예외다. 하지만 여기서 배제된 기업과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불황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한 손실 전가의 경쟁뿐이다. 2000년대 잠깐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2008년 경제위기에서 결국 나타났듯 이 또한 실제 성장이 아니라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과열이 만들어 낸 신기루에 불과했다. 

요컨대 한국 경제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반짝 성장하며 과실을 나누는 분배가 이뤄졌지만, 나머지 기간은 불황 속에서 재벌을 제외하고는 손실을 서로 덜 떠안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이야기되는 소득불평등 문제는 특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경제의 예외적 10년을 제외하면 사실 한국 경제 그 자체였다.
 

손실 전가의 경쟁을 완화하는 제도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와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도 1980년대 이래 이윤율 하락을 겪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국처럼 소득격차가 크진 않다. 산업구조의 현저한 차이 때문이 아니다. 이들 나라 역시 대기업 비중이 한국보다 큰 재벌의 나라다. 하지만 한국처럼 대기업을 경계로 극단적 소득격차가 나타나진 않는다. 

이는 임금 격차나 노동 조건의 격차를 줄이는 제도들 때문이다. 이런 제도들은 손실을 전가하는 경쟁으로부터 노동자들을 일정하게 보호하는 반작용을 한다. 대표적으로 노조의 단체교섭이 그렇다. 한국 이상으로 대기업 집중도가 높은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는 단체협약 적용률이 전체 사업장의 80~90퍼센트에 이른다. 초기업노조와 초기업적 단체협약이 일반적인 이들 나라에서는 기업의 지불능력에 상관없이 노동자 대부분이 비슷한 수준의 단체협약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반대다. 기업별 지불능력 격차 이상으로 노동자들의 단체협약 보호 격차가 크다. 기업별 노조 체계인 한국은 기업에 노조가 없으면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 노조 조직률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리고 조합원 10명 중 7명은 대기업 노동자다. 지불능력 좋은 기업의 노동자는 좋은 단체협약을 가지지만, 나머지 기업의 노동자는 아무런 보호 없이 방치되어 있다.
새정치연합을 비롯한 개혁진영에서는 세금을 통한 해결을 선호한다. 재벌에게 세금을 거둬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나눠주잔 이야기다. 하지만 북유럽 사례에서도 나타나듯 세금을 통한 재분배 이전에 생산 현장에서의 손실 전가를 막는 게 우선이다.

예를 들면 노조의 ‘노’자도 구경할 수 없는 중소기업에서는 법정 최저임금이 올라 기본급이 오르면 그 대신 상여금을 깎는다. 법정 노동시간이 줄면, 그만큼 임금을 깎아 잔업특근을 더 하도록 만든다. 노동자들을 현장에서 노조가 없다면 재벌에게 세금을 걷어 나눠준다 해도 결국 그만큼 더 빼앗기고 만다.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이 
보편적 제도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

민주노총을 비롯해 새정치연합까지 최근 소득불평등에 대한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론이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그럴싸해 보이긴 하지만 결국 임금 인상을 통해서 ‘성장’이 가능하다는 낙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득불평등 때문에 성장이 위기에 봉착한 게 아니라, 성장이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가운데 손실전가 경쟁을 완화할 제도가 없어 극단적인 소득불평등이 발생한 것이다. 북유럽이 그나마 소득격차가 덜한 이유는 성장을 해서가 아니다. 성장이 멈춘 1970년대 이래 손실이 전가되는 걸 노동자 80퍼센트 이상을 포괄하는 노조(단체협약)를 통해 완화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조 진영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하는 건 미조직 노동자의 상태를 꼼꼼히 살필 조사다. 또한 요구해야 할 제도개선은 노조를 좀 더 수월하게 세울 수 있고, 기존 단체협약의 적용을 넓힐 수 있도록 노동관계법을 바꾸는 것이다. 또한 민주노조는 교섭권을 초기업적 노조 또는 상급단체로 집중해 스스로 기업별 노조 형태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현재 상태로는 민주노총이 열심히 임금투쟁을 할수록 임금격차는 오히려 커진다. 

노조 스스로를 강하게 하고 보편화하는 제도개선 요구들이 최선의 소득불평등 대책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노동조합의 요구는 노조가 없어도 정부가, 또는 개별적 고용이나 임금계약을 통해 해결해 줄 수 있는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것 같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요구안에 근접할수록 노조는 약화된다. 물론 이는 조금도 사태를 개선시키지 못한다. 오늘 뺏길 걸 내일로 미루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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