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세계
  • 2015/05 제4호

비정상회담에 비친 우리의 얼굴

한국사회가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어떤 방식에 대하여

  • 임월산 전국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
 
JT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비정상회담>을 처음 봤을 때, 사회적 변화를 목격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에 오래 살았다는 느낌에 약간의 충격을 받았다. 2006년에 내가 처음 만난 한국 사회는 수십만 명의 이주민들이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일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이 여전히 강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주민과 직접 일하거나 활동하지 않는 한 외국인과 말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고, 외국어 악센트가 드러나는 한국어 발음에 상당한 불편함을 보였다. 지하철에서 세계의 다양한 외모가 보이고 수개국의 언어가 한꺼번에 들릴 정도로 코스모폴리탄적인 뉴욕에서 살다온 난 숨쉬기 힘든 순간들이 많았다. 이랬던 한국사회가 20대 외국인 남성으로 구성된 ‘회담’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상당한 변화로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나은 방향으로의 발전인지는 따져보아야 한다. <비정상회담>이 한국 사회의 규범과 감수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동시에 ‘차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 프로그램에서 용인되는 ‘차이’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문화주의와 ‘미녀들의 수다’

<비정상회담>의 전신 격의 프로그램으로 2010년 KBS에서 방영된 <미녀들의 수다>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생활하는 젊고 예쁜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 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에 서툰 한국어로 답하면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의 존재를 드러내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하더라도, 스튜디오의 배치부터 내용과 제목까지 이 프로그램에서 용인되는 외국인들은 철저히 대상화되었으며, 이들은 일반적인 한국 사람보다 분명히 낮은 위치에 놓인 존재였다.

나는 그즈음 한국 다문화주의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2006년 노무현 정권이 <여성 결혼이민자 가족과 혼혈인·이주자의 사회통합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처음 등장한 ‘다문화주의’라는 표현은 몇 년 후 전 사회에 전파되어 학교와 교과서, 이주지원 NGO의 활동, 대중미디어에서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다문화주의’는 표면적으로 한국에 사는 외국인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용과 이해를 도모했지만, 실제로는 이주노동자를 외면하면서 결혼 이주여성과 그들의 가족들이 한국 문화와 언어를 배워 한국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NGO들은 이주민과 위계적인 ‘은인-수혜자’의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했다. 정부의 정책이 저출산 극복을 목표로 결혼 이주여성을 동화시켜 한국 사회의 재생산을 담보하는 것이라면, 은인-수혜자 관계는 계몽되고 관대한 선진국 국민으로서의 한국 사회의 새로운 정체성을 재생산하는 것이었다. (임월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한국의 이주노동자> 《사회운동》 2011년 7-8월호)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들 모두 결혼이주민은 아니었지만 그 시기의 다문화주의 시각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외국인이었다. 
 
 

비정상회담이 취하는 형식과 내용

한눈에 봐도 <비정상회담>은 <미녀들의 수다>에 비해 상당히 발전된 구상으로 보인다. <비정상회담>에 나오는 외국인들은 한국 사회에서 잘 적응하고 즐겁게 살고 있는, 꽤 주체적인 남성들이다. 스튜디오 관객(과 시청자들)이 관람할 수 있도록 줄줄이 앉아서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는 미녀들과 달리 이들은 협상테이블에 둘러앉아 토론한다. 토론의 내용은 한국 생활의 어려움보다 해외 뉴스와 문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2010년에 한국 사회가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외국인을 받아들였다면, 2015년에는 ‘나와 평등한 위치에서 토론할 수 있는 외국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뜯어보면 완전히 평등하지 않은 요소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첫째, 한국인과 비(非)한국인 출연자의 상이한 역할이다. 고정출연자 중에 비한국인들이 그들의 나라를 대표해서 발언을 하지만 나이가 더 많은 한국인 3명은 토론을 진행하는 의장과 사무총장의 역할을 한다. 

언어도 문제다. 비한국인 출연자의 능숙한 한국어 구사는 시청자의 흥미를 끄는 요소가 분명하지만 문자나 그래픽으로 강조되는 불완전한 발음이나 의사표현은 유머의 핵심 코드이다. 비정상회담의 외국인은 <미녀들의 수다>의 외국인보다 좀 더 평등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한국인과 동등한 지위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내용은 또 다른 문제다. 비정상회담에서 소개되는 외국의 소식은 미국 퍼거슨 시위부터 일본의 ‘가베동(남성이 여성 앞에서 한쪽 손으로 박력 있게 벽을 치며 여심을 흔드는 행위)’ 체험까지 주제가 다양하다. 문제는 인종주의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토론으로 발전될 수 있는 퍼거슨 시위와 같은 주제들이 사소한 흥밋거리와 동일한 수준에서 짧게 보고된 후 깊게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정상회담은 세계의 정치사회적 이슈보다 한국인 게스트들이 제출하는 개인 고민(예컨대 ‘친구를 위해 돈 쓰기 싫은 나는 비정상인가?’)이 훨씬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비한국인 출연자들이 이 문제를 토론하면서 그들의 나라의 ‘문화적’ 관점을 소개하면 한국인 의장들이 비한국인 간의 이견을 코믹한 방식으로 중재하고 결론내리며 토론을 마무리한다.
 

‘다문화’에서 ‘문화다양성’으로

2000년대 말과 2010년대 초에 한국정부의 다문화정책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진보세력은 결혼이주민의 한국 사회 적응에 초점을 둔 정책은 진정한 다문화주의가 아니라 단순한 동화정책이라고 비판했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지원확대와 더불어 이주민의 본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증진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우파세력은 결혼 이주 여성과 그들의 가족에 대한 지원이 과도하다고 주장했으며, 외국인 범죄 증가(사실 외국인의 범죄율은 내국인의 범죄율보다 낮다)에 대해 떠들며 지나친 다문화적 관용을 탓했다. 

이러한 비판들은 정부 정책에 두 가지 변화를 야기했다. 집권 초 이명박 정권은 정책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다문화’에서 ‘문화다양성’으로 바꾸고 결혼이주민에게 본국 문화를 가르치는 문화다양성 교육과 그들의 자녀를 위한 이중 언어 교육을 도입했다. 보다 중요하게는 이주민 지원사업 예산이 대폭 축소됐고 이주민 정책의 주요 내용은 사회 안전 확립(국경과 국내 체류 이주민에 대한 통제 강화)과 외국 전문 인력과 투자 유치로 변했다.

박근혜 정권은 기존 정책방향을 유지하면서 계몽 사회로서 한국의 국격과 한국 문화의 우월적 지위를 보다 강조하고 있다. ‘효과적인 국경관리 및 법질서가 존중되는 외국인 체류환경 조성’과 ‘신성장동력 관광산업 지원, 우수인재, 투자자 유치 활성화를 통한 경제 활성화’와 더불어 ‘전통(한국)문화와 유입문화의 융합발전 지원’, ‘문화 다양성 증진과 문화교류 협력 확대’, ‘인문·정신문화의 진흥’과 ‘콘텐츠 산업의 한국 스타일 창조’가 주요 정책 목표로 채택됐다. 즉,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다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를 계속해서 경계하면서 한국 문화가 다른 세계적인 문화와 경쟁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육성하는 것이 핵심 기조이다.
 
 

<비정상회담>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미녀들의 수다>가 노무현 정권의 다문화적 감수성에 부합한 프로그램이었다면 <비정상회담>은 박근혜 정권의 문화다양성 기조와 이에 따른 사회적 감수성에 부합한 프로그램이다. 다문화적 감수성이 우리보다 못사는 외국인에 대한 관대와 지원에 초점을 두었다면 문화다양성은 선진국 문화와의 교류와 경쟁을 강조한다. 네팔, 가나, 러시아 출연자도 있지만 비정상회담의 토론을 지배하는 출연자들이 선진국 출신 백인인 것은 분명하다. 그들이 누가 한국어를 가장 잘하는지 경쟁하고 한국인 의장과 사무총장의 중재를 받는 모습은 선진국과 선진 문화로서 인정받기를 지향하는 한국 사회가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외국인의 모습이다. 

끝으로 <비정상회담>의 가장 위험한 요소를 지적하자면 ‘역사’를 ‘문화’와 혼동하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의 불균형적이며 폭력적인 역사 발전이 야기한 국가나 인종화된 집단 간의 불평등을 문화적 차이로 축소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팔 출연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모든 것을 ‘빨리 빨리’ 원한다며 이것을 네팔의 ‘느긋한’ 문화와 비교한다. 그러나 이 ‘문화적 차이’와 동시에 수많은 한국인들이 네팔 여행을 쉽게 갈 수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없는 현실, 한국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수많은 네팔 노동자, 이 현실의 배경이 되는 두 나라의 상이한 경제발전 수준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한국 사회의 감수성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존재인 이주노동자들이 비정상회담의 회담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국가 혹은 사회적 집단 간의 위계적 관계나 역사가 예능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매스미디어는 결국 지배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어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면 매일 즐기는 매스미디어의 한계와 위험성을 인식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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