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사회운동
  • 2015/11 제10호

TPP 노동조항,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을까?

  •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지난 10월 5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최종문안이 타결됐다. 미국과 일본 등 태평양 인근 12개 나라가 참여하여 이들의 경제 규모를 합하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퍼센트 가량을 차지한다. 참여국들은 앞으로 후속 실무협상을 거쳐 최종 협정문안을 작성한 뒤 자국 내 비준절차를 밟게 된다. TPP 타결을 주도해 온 미국에서 지난 6월 무역협상촉진권한(TPA)이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합의된 협정에 서명하겠다는 의향을 서명하기 최소 90일 이내에 통보해야 하고, 60일 이내에 개정이 필요한 관련 법률 목록을 제출해야 한다. 의회는 체결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뿐 협정문안을 수정할 수는 없다. 
 
TPP 타결 소식이 전파되자마자 정부는 가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다. 뒤이어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방미 기간 동안 한미재계회의에 참석하여 “한국이 TPP에 가입하게 되면 양국 기업에 보다 많은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 TPP 가입을 위한 미국의 협조를 호소했다. 한국은 타결 전 협상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으므로 12개 참여국과 개별 협상을 거쳐 승인을 얻은 후에야 가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 참여국들의 요구 조건을 수용해야 한다. 
 

기업의 탐욕을 위한 레시피

TPP는 ‘자유무역’을 촉진하는 협정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무역의 범위를 넘어 초국적 기업의 국경을 넘나드는 이윤 추구에 장벽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관세철폐 외에도 지적재산권의 철저한 보호, 금융자유화, 인터넷 통제,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이 협정은 그 동안 철저한 ‘비밀주의’ 원칙 아래 논의되어 왔다. 노동조합 및 시민사회는 협상 과정에 참여는 물론 내용조차도 접근할 수 없었던 반면, 미국을 근거지로 하는 초국적기업들은 ‘협상 자문단’이라는 명목으로 협상의 장 내에서 자신의 이익을 반영해왔다. 무엇보다도 TPP는 수많은 자유무역협정에서 주권을 해친다고 비판받아온 ‘투자자-국가제소제도(ISD)’를 포함하고 있다. 

TPP 체결국의 노동조합, 시민단체는 물론 여러 국제조직들도 TPP가 초국적 자본의 이익만 극대화하는 협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전 세계 162개국 328개 노총을 대표하는 국제노총(ITUC)은 10월 6일 TPP 타결을 비판하며 이 협정이 ‘기업의 탐욕을 위한 레시피’라고 규정했다.


노동조항이 바닥을 향한 경쟁을 멈출 것인가?

TPP 협상이 개시된 후 협상 참여 12개국 노동조합은 “무역협정이 좋은 일자리 창출, 노동자들의 권리와 이익 방어, 장기적이고 균형 잡힌 경제발전 유도, 건강한 환경 촉진 등에 기여하지 않는다면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공동 성명을 통해 발표했다.
협상이 철저한 ‘비밀주의’에 따라 진행되어 노동조합이 공식적으로 협정 문안에 관하여 입장을 개진할 통로는 없었다. 따라서 각국 노동조합은 광범위한 사회운동들과의 연대를 통해 초국적 기업의 이익만을 보장하는 무역협정을 저지하기 위한 운동을 펼쳐왔다. 

이들은 특히 TPP가 노동자들에게 이롭기 위해서는 강력한 노동조항(Labor Chapter)이 포함되어 △최소 기준으로서 ILO 핵심협약 준수 △임금, 노동시간, 노동안전 등에 관한 국내법 준수 △노동법 침해에 대한 제재조치 △효과적인 분쟁해결 제도 등이 명시되어야 하고, 환태평양 역내 다국적 기업의 활동에 관한 규제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타결된 TPP는 이러한 노동조합의 요구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고 평가된다.

협상 타결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여온 미국 정부는 TPP의 노동조항이 매우 강력하여 체결국 노동자들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선전해 왔다. 미 무역대표부의 협정문 요약에 따르면, TPP 체결국들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정한 핵심 노동기준(결사의 자유 및 단체교섭권 보장, 아동노동 금지, 강제노동 철폐, 고용상 차별 금지)을 준수해야 한다. 또한 산업안전보건, 노동시간, 최저임금에 관한 기준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그러나 어떤 수준을 보장해야 하는지에 관한 규정은 없다). 강제노동을 통해 생산한 상품 수출을 자제해야 한다(그러나 이 역시, 어떤 방식으로 ‘자제’를 강제할 것인지는 규정이 없다). 이러한 노동조항을 준수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국가의 정부를 상대로 문제제기 하는 것이 가능하며, 문제제기가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벌금으로 제재도 가해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동조항이 협정 체결국마다 노동권 보장수준이 불균등하여 노동자들을 ‘밑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내모는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를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까?
 

 

기업은 국가를 제소할 수 있으나 노동자는 불가능

한미 FTA를 비롯하여 최근 미국이 체결한 FTA에는 이러한 노동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노동권 침해 또는 국내노동법 위반으로 분쟁 해결 시스템이 작동한 사례는 단 한건이다. 바로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DR)에 따라 미국 정부가 과테말라 정부를 분쟁 패널에 회부한 사례다. 이렇듯 각종 자유무역협정에 포함된 노동조항은 실제로는 거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노동조항 위반으로 분쟁 절차에 들어가려면 체결국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조항의 효과는 체결국 정부의 ‘의지’에 전적으로 좌우된다. 노동자들은 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노동권 침해 사안을 제기할 수 없다. 이는 TPP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투자자-국가제소제도’를 통해 개별 기업이 국가를 상대로 정부 정책으로 인해 침해된 혹은 침해될 이익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각국 노동자들의 공동 행동이 필요

한국 기업 또는 한국계 기업이 7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과테말라 섬유봉제업 노동자들은 고용주의 상습적인 법위반 (임금체불, 잔업수당 미지급, 장시간노동 강요, 사회보장 기여금 갈취, 위장폐업-야반도주)에 노출된 채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고용창출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의류봉제 수출기업들은 ‘10년간 법인세 면제’ 등 각종 혜택을 누리면서 법위반에 대해서도 사실상 ‘면책’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중미자유무역협정 과테말라 노동권 분쟁은 제기된 지 7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런 결론도 내지 못하고 있다. 과테말라 노동조합들은 올해가 가기 전 노동권 분쟁 패널에 회부된 과테말라 정부의 국제노동기준 불이행 건에 대해 결론이 내려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테말라 노동조합은 이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분쟁 패널에서 과테말라 정부의 국제노동기준 협정 위반 사실이 인정 되면 정부는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러나 법 위반 당사자인 기업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국 초국적 기업들의 무한한 이윤추구를 위한 레시피인 TPP에 곁다리로 들어가 있는 노동조항의 분쟁해결 절차나 무역 제재는 현실에서 효과가 없다. 노동자 민중을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내모는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와, 임금과 노동조건을 끌어올리기 위한 각국 노동자들의 공동 행동 강화가 유일한 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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