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평등
  • 2015/11 제10호

집-가게-일터-거리에서 누구도 쫓겨나지 않는 세상!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
 
“동업자랑 같이 식당 문을 열었어요. 중간에 동업자가 그만 둬야겠다고 해서 동업자가 투자했던 돈을 저랑 딸아이가 살던 방 보증금을 빼서 주고 그때부터 식당에서 살면서 혼자 장사를 해 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건물주가 재건축을 해야겠다고 가게를 빼달라고 하는 거예요. 처음 들어올 때 냈던 권리금도 못 받고, 가게 보증금도 겨우 5000만 원밖에 못 주겠다는데 이 돈 가지곤 저랑 딸이 같이 살 방 한 칸도 얻기 힘들어요. 너무 막막해서 석 달을 울기만 하면서 지냈어요. 건물주에게 사정도 해보았지만 나가라는 말 뿐이었어요. 그러다가 맘상모를 알게 돼서 이렇게 함께 싸우고 있는데, 여기 계신 사장님들 중에 저 같은 상황에 계신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바보같이 매일 울기만 하지 말고 열심히 싸워야겠다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8월 20일 광화문 정부청사 앞에서 ‘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모임’(이하 맘상모)이 진행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 100일 집회에서 한 회원이 한 발언이다. 그 분은 이야기를 하면서 중간부터 먹먹함에 울먹이더니 마지막엔 대통령께서 제발 도와달라며 오열을 하셨다. 집회 자리에 모인 모두가 먹먹해 울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 발언자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바쳐 차린 가게에서 쫓겨나면, 이들은 어떻게 될까? 건물주가 되지 못한 ‘사장님’들에게 건물주의 횡포는 너무나 가혹한 것이었다.

빈곤한 사람들은 집에서, 일터에서, 거리에서 항상 쫓겨난다. 그리고 쫓겨난 이들은 더욱 빈곤해진다. 노동자들은 계약만료로, 해고로 일터에서 쫓겨난다. 이들의 집이나 가게가 재개발지역에 속하면 철거민이 되고,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면 법적인 보상대책이 전혀 없는 빈털터리가 된다. 일터나 가게에서 밀려나 노점이라도 차릴라치면 노점상은 불법이라며 계고장을 붙이고 마차를 수거해간다. 이렇게 자신의 소득을 모두 사라져 수급 신청이라도 해보기엔 복지의 문이 너무 좁다. 결국 아무 것도 없이 맨몸으로 나와 지하 역사에서 박스라도 덮고 자려 할 때 이들은 그 공간에서조차 공공질서라는 이름하에 쫓겨나 버린다. 거리에서까지 밀려난 이에게 남은 건 삶에서 쫓겨나는 일 뿐이다. 

지난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은 이렇게 쫓겨나는 이들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자리였다. 쫓겨나지 않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누가 감히 쫓아낼 수 없는 위치에 서거나, 누구도 쫓겨나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는 것. 전자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노점상이나 임차상인이 쫓겨나지 않는 방법은 자신의 건물에서 장사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계약만료당하거나 해고당하지 않는 법은 사업주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수급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도 되어야 복지제도에서 쫓겨나지 않을까? 

빈곤철폐의 날에 모인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후자이다. 올해 슬로건인 ‘누구도 쫓겨나지 않는 세상, 빈곤을 철폐하자!’는 우리가 가진 자가 되자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도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다.
 

제3차 세계주거회의(UN-Habitat III)까지 만들어야 할 흐름

올해 빈곤철폐의 날을 준비하며 주목했던 점은 내년 개최 예정인 제3차 세계주거회의(UN-Habitat III)까지 국내에서 민간위원회를 구성하고 주거권 운동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주거회의는 20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회의로 1996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이후 내년 10월 17일 에콰도르 키토에서 개최 예정이다. 2차 회의 이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 주거 문제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뉴타운 재개발 광풍으로 도심에서 철거민들이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졌으며, 부동산이 주거가 아닌 자산형성의 수단으로 완성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극도로 불평등한 부동산 소유구조는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어선 지 오래되었음에도 주거빈곤층을 계속해서 양산하는 원흉이다.

내년 개최될 회의의 중심의제는 ‘새로운 도시 아젠다’와 ‘주거 및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이다. 도시개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쫓겨나는 사람들’이다. 흔히 도시빈민이라고 묶어 말하는 노점상, 철거민, 홈리스들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도시의 정체 지역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으로 인해 쫓겨나는 임차상인들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도 이러한 주거권 운동에 함께하고 올해를 넘어 내년까지 계속해서 흐름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주거 및 지속 가능한 도시개발’이란 결국 ‘누구도 쫓겨나지 않는 세상’으로 동치 할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쫓겨나지 않기 위한 우리의 실천

지난 10월 5일 프란치스코 회관에서는 2015 세계 주거의 날을 맞이하여 “모두를 위한 적절한 주거” 토론회가 개최됐다.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에서도 주요하게 참가한 이 토론회는 내년 열릴 예정인 제3차 세계 주거회의 한국 민간위원회를 구성하고자 제안됐다. 여기에 분야별 주거권 현안 토론으로 전국세입자협회, 민달팽이유니온, 홈리스행동, 장애와 인권 발바닥행동, 맘상모가 참가하여 각각 전월세 세입자문제, 청년주거권, 거리의 홈리스와 쪽방주민, 탈시설 장애인운동, 임차상인 문제에 대해 알렸다. 나아가 이들은 모두 내년 세계 주거회의를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10월 10일에는 빈곤철폐의 날 주간캠페인을 마로니에 공원에서 진행했다. 여기에는 현재 투쟁을 하고 있는 성동공고 노점상과 맘상모, 발바닥행동이 참여했다.

캠페인 한 켠에선 <청계천 복원 10년, 잊혀진 사람들> 사진전이 열렸는데, 도시개발 과정에서 쫓겨나고 버려진 상인들의 사진이 전시됐다. 또 우리나라 주거불평등 현실에 대한 스티커 설문과 주거불평등 탑 코너가 전시됐는데, ‘한국 집부자 1위, 2291채 보유’, ‘여관, 쪽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등 비주택 거주자 21만 명’, ‘서울 가구당 평균 전세가격 3억 7000만원’ 등과 같은 구체적인 숫자들이 시민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호응을 끌어냈다.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위해선 기존에 이미 진행된 개발을 돌아보며 지속되는 문제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올해 청계천복원 10주년을 맞이해 서울시에서는 10월 첫째주 하이서울 페스티벌과 맞물려 청계천 걷기대회 등 대규모 행사들을 기획했다. 그러나 여기엔 10년 전 청계천을 복원하며 쫓겨난 청계천 상인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가든파이브 이주대책 실패로 고통 받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하는데 서울시에선 화려한 외관만을 축하하는 것이다. 

이에 노동당, 빈곤사회연대, 빈민해방실천연대, 2015반빈곤권리장전 실천단 등은 서울시의 청계천복원 10주년 사업에 대응하는 사업들을 펼쳤었다. 청계천 걷기대회에서 우산과 현수막 등으로 선전전을 하고, 청계천 생태복원 사진전에 맞서 청계천 사람 사진전을 진행하는 식이었다. 서울시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청계천 복원 공개 포럼도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개최됐다.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위해 투쟁!

우리는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외치기 바로 전날에도 쫓겨났다. 빈곤철폐의 날을 하루 앞둔 10월 16일 서소문과 사당동이 강제집행을 당한 것이다. 시청 삼성화재 건물 옆 서소문 철대위는 전두환 아들 전재용이 일대 땅을 사들였다가 2013년 전두환 세금 탈루 건으로 그동안 소강상태에 있던 곳이었다. 

같은 날 노점상들은 집회를 하고 강남구청으로 행진을 했다.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서울시 25개 구 중에 노점상 없는 구도 하나쯤 필요하지 않겠냐”는 망언을 한 사람이다. 강남은 딱 1년 전 빈곤철폐의 날 당일 오전 행정대집행이 벌어진 곳이었다. 작년 빈곤철폐의 날에도 강남을 포함하여 인천, 화성 등 세 지역의 노점상들이 행정대집행을 당했다. 빈곤철폐의 날을 기해 빈민들을 때려잡는 일이 매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10월 17일 빈곤철폐의 날 전국 곳곳에서 빈곤철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울에서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에서 모여 투쟁대회를 열고, 이후 <쫓겨나지 않을 거야>라는 슬로건을 걸고 보신각까지  행진했다. 같은 시간 부산에서도 철거에 맞서 투쟁중인 만덕5지구에서 빈곤철폐 현장 활동을 진행했으며, 대구에선 대구백화점 앞 쪽방체험관, 2015년 4인 가구 최저생계비 마켓바스켓, 헬조선 헬게이트 등을 전시해 시민들에게 빈곤 현실을 알렸다. 
지역별로 기조는 조금씩 달랐지만 목소리는 하나였다. 우리 모두의 문제인 빈곤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말이다. 숨가쁘고 즐거운 투쟁, 올해 빈곤철폐의 날 사업은 끝났지만 누구도 쫓겨나지 않는 세상을 위한, 빈곤철폐의 목소리를 내는 투쟁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빈곤에 맞선 대중운동의 싹은 지금-여기에서 자라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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