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세계
  • 2015/11 제10호

역동적으로 부상하는 인도네시아의 노조운동

  • 조은석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2014년 12월 10일,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약 1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수도인 자카르타에서는 약 5만 명이 거리에 나섰는데 매년 11월 결정되어 그 이듬해 적용되는 최저임금 수준과 노동자들의 요구가 크게 차이 났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주와 시·군별로 최저임금이 다르다. 수도인 자카르타는 그 상징성 때문에 다른 지역의 최저임금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자카르타 노동자들은 최소 350만 루피(약 30만 원)를 요구했지만 주지사는 노동자들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을 270만 루피(약 23만 원)로 결정해 버렸다. 

연말이 되면 벌어지는 인도네시아의 최저임금 투쟁은 2014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2012년에는 전국 총파업을 성사시키며 자카르타에서 무려 44퍼센트의 최저임금 인상을 이끌어 냈고(여기에 최종 승인을 한 주지사가 지금 인도네시아 대통령인 조코 위도도다), 2013년에도 200만 명이 20개 주에서 최저임금 50퍼센트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바 있다. 

인도네시아의 노조의 역동성은 최저임금 투쟁에 그치지 않는다. 수많은 노조가 행동위원회를 만들어 전 국민 의료보험이나 연금 제도와 같은 사회보장 제도 입법화를 관철시킨 투쟁이나, 베카시(Bekasi) 같은 제조업 산업단지에서 노동자들이 공장 간 연대를 통해 불법적인 아웃소싱을 하거나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업체를 습격해 교섭을 하고 요구안을 관철시키는 그레벡 파브릭(공장습격) 등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1998년 수하르토 정권 붕괴 후 찾아온 민주화 국면에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역동성을 꽃피우고 있다.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 노조운동의 부활 

1967년 집권하여 32년간 절대 권력을 유지하던 수하르토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경제난 속에서 민중들의 퇴진 요구 시위가 인도네시아 전역을 덮친 1998년 5월 권좌에서 물러난다. 이렇게 수하르토의 통치가 끝나면서 인도네시아는 리포르마시(개혁)라고 불리는 민주화 국면을 맞게 된다. 

공산주의자가 대량으로 학살(추정치에 따라 100만 명에서 300만 명)당하고 각종 사회운동 지도자가 암살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수하르토 정권 아래서 사회운동은 억압되었고,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단결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복수노조가 금지되어 정권이 설립한 어용노조 이외에는 노동조합 결성이 금지되고, 파업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하르토 정권 붕괴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ILO 핵심 협약 중 하나인 87번(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을 1998년 비준하고 2년 만에 5개 핵심 협약을 비준하는 등 국제기준에 맞추어 결사의 자유를 일정 수준까지 보장해 주는 조치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민주화 국면’은 ‘유연화 국면’과 함께 진행되었다.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결사의 자유와 파업권을 인정하였지만 이와 함께 계약직 노동과 아웃소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노동법도 개정이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공장습격 전술이다. 처음에는 외주·하청 노동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알려진 공장 주변의 여러 노조들이 연합하여 공장을 찾아간다. 그리고 공장에서 불법적인 고용 관행이 확인되면 공장을 점거하거나 심지어 경영진을 인질로 잡고 정규직화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는 노사분쟁 해결 기관인 노동법원이 사용자와의 유착 관계로 처벌 받는 등 제도적인 분쟁 해결 절차에 대한 인도네시아 노조운동의 뿌리 깊은 불신도 한몫했다. 인근 사업장에 일이 생기면 인근 민주노조에서 달려와 연대를 하던 전노협의 경험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목이다. 
 
'노동자가 경제의 주역'이라고 쓰인 피켓을 든 집회 참가자

 

극심한 분화와 행동에서의 연대 

인도네시아 노조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노조의 극심한 분화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포르마시 이후 첫 5년 동안 등록된 노조연맹만 80개에 달할 정도로 극심하게 분화되어 있던 인도네시아 노조운동은 사회보장 입법 투쟁을 계기로 연대운동을 활발히 진행한다. 67개의 노동자, 농민, 어민과 대학생 조직이 참가하는 ‘사회보장을 위한 행동위원회’(KAJS)는 2004년 40호법으로 제정된 ‘전국사회보장제도’(SJSN)를 조속히 가동시킬 것을 요구하고, 2011년 법안 시효만료를 하루 앞둔 시점에서 의회 통과가 이루어졌다. 민주화 국면에서 도입된 사회보장입법이 사용자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념적 정치적 지향이 크게 다른 노조들이 모여 행동위원회를 구성한 경험은 이후 서로 매우 경쟁적인 3개 노총이 인도네시아노동자의회(MPBI)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에서 최저임금인상을 위한 투쟁 역시 활발한 연대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는 구조에서 기업별로 임금편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지역별 최저임금교섭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고, 최저임금이 지역별로 결정되다 보니 지역의 노조들은 힘을 합쳐 최저임금 인상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노동조합연맹 대다수는 경제적 이익을 ‘거리의 정치’를 통해 관철시키는 전략을 취하고 발전시켜 왔다. 지난 10여 년간 다양한 수준의 사안별 연대(알리안시)와 공동행동이 실험되었다. 조직간 연대를 통하여 거대규모의 시위동원이 가능해졌고 일관된 요구사항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조합연대는 작년에 인도네시아노동자의회(MPBI)를 결성하는 수준까지 발전하였고 총파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이후에는 거대노총들이 군소노련들과 좌파노련까지 포함하는 더 광범한 노동운동전국회의(KNGB)를 결성하였다. 이념과 조직을 초월한 노동자들의 연대가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을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
 
2015년 노동절 모습,
요구는 민영화 반대, 최저임금 인상, 저임금정책 반대, 복지확충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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