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건강과 사회
  • 2015/12 제11호

"오늘 38명이 헬조선을 탈출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들의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최보경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오늘 하루 3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4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1만 3836명이다. 한 달 1153명, 일주일 265명, 하루 38명 꼴이다. 자살률은 11년째 OECD 국가 1위이다. 2011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자살률은 OECD평균보다 2.7배나 높다. 
 
1990~2006년 동안 OECD 국가의 자살사망률은 평균 20퍼센트 감소한 반면 한국에서는 235퍼센트(10만 명당 1990년 9.8명→2006년 23명)가 증가했다. 자살률은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특히  65세 이상의 노년층의 자살률이 10만 명당 80명에 육박하고 75세 이상 자살률은 OECD 평균의 4배를 보여주고 있다.
 

자살충동 원인 1위는 경제 곤란

연구에 따르면 자살의 원인은 실연과 같은 개인 심리적 요인과 빈곤, 실업과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 많은 경우 이러한 직접적 원인이 바로 자살로 이어지기보다는 이러한 요인들이 개인에게 스트레스, 절망, 우울 등을 유발해 우울증과 같은 개인적 병리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켜 극단의 결정인 자살로 나타나게 된다.
 
한국 사회의 높은 자살률이 사회경제적 요인과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매우 많다. 자살은 자살충동, 자살계획, 자살시도, 사망이라는 일련의 과정으로 구성된다. 
 
통계청에서 매년 발간하는 ‘사회조사보고서’는 2년 마다 자살충동과 원인에 관한 조사를 포함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사람’은 2008년에 7.2퍼센트 수준이며,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36.2퍼센트), 가정불화(15.6퍼센트), 외로움과 고독(14.4퍼센트) 등이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자살충동은 최근에 증가하는 추세다. 2010년에는 7.7퍼센트가 자살충동이 있었고 경제적 어려움이 원인인 비중은 38.8퍼센트였으며, 2012년에는 각각 9.2퍼센트, 39.5퍼센트로 늘어났다. 
 
최근 20년간의 자살률의 추세를 살펴봐도 자살과 사회경제적 원인의 관계를 알 수 있다. 1997년부터 자살률의 변화추이를 보면 전반적으로 증가 추세면서 1998년, 2003년, 2009년에  가파르게 증가했다. 1998년은 외환위기 이후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생계형 자살’이 급증했다. 2003년은 ‘신용대란’ 문제로 인해 신용불량자로 내몰리는 금융피해자가 양산된 것과 관계가 있다. 2009년 역시 2007년부터 시작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기였다. 
 

신자유주의적 죽음과 그 너머

보다 구체적으로 자살과 상관관계가 있는 사회경제적 요인을 살펴볼 수도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GDP성장률, 지니계수, 조이혼률 등이 자살률과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또한 40대, 50대 남성의 자살률의 경우 실업률과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실업률과 자살증가율은 시기 별로 매우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실업률이 증가할 때는 자살증가율도 증가하는 것이다. 자살증가율은 소득10분위배율(최하위 10퍼센트 소득계층의 소득 대비 최상위 10퍼센트 소득계층의 소득 간의 비율)과도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많은 연구들이 자살의 사회경제적 요인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 사회의 자살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체계가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실업, 빈곤, 불평등 등 사회구조적 모순이 개인과 가정에 농축되고, 스트레스, 절망, 우울과 같은 개인 수준의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자살을 ‘사회적 타살’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회적 타살이라는 말은 정부의 자살 예방 대책이 미시적이고 개인 심리적 차원에 한정되어 있음을 폭로하는 의미를 갖는다. 정부는 2004년부터 자살예방 기본계획을 내놓고, 2012년에는 자살예방을 위한 법률을 제정하였으나 자살률은 감소하지 않고 있다. 자살 예방 대책을 정신건강과 우울증의 문제로만 환원하는 것은 현 체제를 재생산하는 장본인인 자본과 정부의 책임을 은폐한다. 이런 왜곡은 문제를 더욱 해결하기 어렵게 만든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힘든 ‘헬조선’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기에, 올해도 1만 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탈출하고 있다. 여기서 살만한 나라를 만들자고 거리에 나선 이들에게 정권은 ‘살상용 물대포’를 쏘아 한 농민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이런 정부가 자살예방을 위해 생명존중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자살이 증가하던 19세기 불황기에도 혁명 운동이 정점에 달한 1848년 전후에는 자살이 줄어든 것을 관찰했다.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노동과 삶의 파괴, 보수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에 맞서 싸우며 대안 사회를 만드는 것이 자살을 막는 길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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