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필름X정치
  • 2016/01 제12호

기록의 힘, 기억의 힘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을 담담히 그려낸 <나쁜 나라>

  • 성상민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편집위원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의 누적된 병폐와 모순이 집약돼 폭발한 사건이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로 규정하며 ‘이제 그만 잊으라’고 강요하지만, 그러한 협잡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다.

<나쁜 나라>는 ‘기억하기’의 차원에서 기획된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는 사건이 벌어진 2014년 4월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나왔다.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가장 먼저 극장에서 선보인 <다이빙벨>, 곧 개봉을 앞두고 있는 <업사이드 다운>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온 편지> 연작처럼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들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세월호 기록영화들

하지만 <나쁜 나라>는 기존에 공개되었던 작품들과 다른 특징을 지닌다. 세월호를 다룬 방송 다큐멘터리는 많은 호응을 끌어냈지만 곁가지를 살피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고, 사건 이후의 상황을 다루지 않았다. 온갖 논란에 휩싸인 <다이빙벨>은 음모론적 인식에서 머무르고 말았다. 그나마 <바다에서 온 편지> 연작이 차이가 있었지만, 현장의 상황을 날것 그대로 담아내는 성격이 더 강했다.

<나쁜 나라>를 만든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영상기록단 다큐팀에 참여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바다에서 온 편지>의 제작에도 참여했고 그로 인해 <나쁜 나라>의 일부 장면들은 <바다에서 온 편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쁜 나라>는 <바다에서 온 편지>와 큰 차이가 없는 작품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상대적으로 짧은 호흡으로 구성된 <바다에서 온 편지>에 비해 <나쁜 나라>는 2시간의 상영시간 동안 2014년 6월부터 2015년 4월까지 약 1년의 모습을 순차적으로 따라가며 사건의 맥락을 짚어간다.

우선 촬영한 날짜와 장소, 사건 등을 표시하는 자막과 배우 문소리의 내레이션을 제외하면 별다른 터치 없이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제시한다. 자칫하면 지루할 수 있는 구성이지만, 충격적인 참사 이후 유족들의 심정은 강하게 전달된다.
 

변화하는 주체, 실체를 드러낸 정부

<나쁜 나라>가 이러한 기록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이다. 국회의원이나 고위 관료들의 철저한 자기반성과 진상 규명을 기대했던 유족들은 점차 그들에게 의지해서는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조금씩 뭉치며 행동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특별법 제정에 대한 시민 서명을 받는 것에서 시작했던 움직임은 어느덧 국회와 청와대로 찾아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요구하는 농성으로 발전한다. 울분을 참지 못해 분노와 눈물만 쏟아내던 유가족들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고 저항하기 시작한다. <나쁜 나라>는 이러한 유가족들의 변화를 통해 세월호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투쟁이 일종의 시민 불복종 운동이자 인권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낸다.
 

다른 하나는 거대한 참사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국가의 모습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 국회의원들이 직접 유가족들이 밤을 지새우고 있는 진도로 찾아가거나 국정조사에서 세월호 문제가 다뤄지는 등 얼핏 보기엔 진상 규명을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그 이면에 감춰진 실상을 낱낱이 드러낸다. 정치인들은 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그것은 유가족이 아니라 정치권력 자신의 안정을 위한 것이며, 유가족들이 더 이상 그들의 헐리우드 액션에 속아넘어가지 않자, 그때부턴 온갖 권력을 활용해 압박한다.

이들은 유가족들이 국회에서 농성하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제헌절을 이유로 바로 앞에서 풍악을 울리고, 이에 대해 항의하면 ‘국회의원에게 함부로 하지 말라’며 묵살한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알리려 거리로 나가면 차벽으로 원천봉쇄한다.

이처럼 <나쁜 나라>는 틀에 박힌 위로나 직접적으로 문제를 설명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의 대응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담아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이 제목 그대로 ‘나쁜 나라’라고 말한다. 유가족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부의 본 모습을 들추며 국가의 위선을 폭로한다.

 

충실한 기록의 힘

<나쁜 나라>는 충실하게 세월호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투쟁의 현장을 생생히 담아내지만 유가족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에는 소홀한 편이다. 또 국가 외에도 소위 ‘일베’나 극우세력처럼 유가족의 진상 규명 요구를 막는 이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아주 잠시 화면상에 등장할 뿐 적극적인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나쁜 나라>라는 제목답게 초점을 확실하게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본격적으로 참사 이후를 다루는 다큐인 만큼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짚지 못한 것은 분명 한계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엔 날이 강하게 벼려져 있다. 그것은 일방적이고 설교조의 주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기록에서 우러나오는 힘이다. 2012년 대선을 전후해 다양한 고발성 다큐가 제작되었지만, 이를테면 <MB의 추억>과 같은 경우 기록보다 주장이 홀로 앞서간 나머지 작품의 완성도는 물론 주제마저 망치는 악수를 둔 경우도 있었다. 그저 소리를 높인다고 운동이 잘 되지 않듯, 다큐멘터리 역시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영화 <나쁜 나라>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록을 넘어, 앞으로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길을 모색하는 하나의 단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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