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기획
  • 2016/02 제13호

"일할 수 있으면 한 푼도 아깝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구조조정 칼바람

  •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
2015년 12월 31일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보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함으로써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수급자들에게 서슬 퍼런 칼을 겨눴다. 

개정안은 2015년부터 근로장려금(일은 하지만 소득이 낮은 근로자가구을 위한 소득지원 제도로 연간 최대 210만 원까지 지원된다)이 기초생활수급자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에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기초생활수급자의 자활소득에 대한 30퍼센트 공제를 폐지하고 이를 근로장려금으로 통합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기본 취지를 파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첫 번째는 자활사업 참여 수급자들이 급여삭감과 의료급여 박탈로 생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이며, 두 번째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생활보호제도로 회귀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자활사업 참여 수급자란?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자들은 수급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근로능력을 평가받는다. 이 평가결과에 따라 고용노동부에서 진행하는 ‘취업성공패키지’ 수료 후 취업을 하거나, 보건복지부 자활사업에 참여하거나, 일반수급자로 선정된다. 이중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이들은 다시 근로능력 정도에 따라 시장진입형, 인턴·도우미형, 사회서비스형, 근로유지형으로 나뉜다. 참여 프로그램에 따라 급여수준은 상이하나 최저임금보다 낮고 일반수급자 수급비보다 높은 임금을 ‘자활급여’라는 이름으로 받는다. 이때 발생하는 소득이 전액 소득으로 산정될 경우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탈락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자활급여를 30퍼센트 공제하고 공제시 금액이 생계급여액보다 낮을 경우 자활장려금을 지급받고, 의료급여를 보장받았다. 
 

생계는 물론 생존까지 위협

이번 개정안의 통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수급자들이 생계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소득 산정방식에서 30퍼센트 공제 부분이 사라지면서 의료급여나 현금급여인 주거급여를 박탈당하는 기초수급자가 다수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단돈 천 원에도 희비가 갈리는 빈곤층의 현실을 생각하면 최소 몇 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 이상 급여가 줄어들면 생계에 큰 위협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급여 박탈은 병·의원 및 의약품에 대한 접근 자체가 차단되는 문제이며 이는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이어진다.

빈곤사회연대가 참여하고 있는 ‘기초법개악 저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민생보위’는 이런 문제를 지적한 의견서를 복지부에 제출했다. 복지부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우리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복지부는 소득공제의 폐지는 기초생활수급자들도 근로장려금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해결될 것이며, 의료급여의 경우 3년간 특례로 보장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나 수급자에 대한 근로장려금의 적용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애초에 2인 이상 가구 혹은 60세 이상 독신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근로장려금은 대부분 1인 가구인 기초생활수급자에게 해당이 되지 않는다. 또한 급여액이 연간 1회 지급으로 매월 현금급여를 지급받는 것과는 소득의 안정성에서 큰 차이가 나고 그나마도 턱없이 적은 액수일 뿐이다.

따라서 수급자들의 삶의 안정에는 전혀 도움이 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제도 설계를 따온 미국에서도 이미 명백히 밝혀진 바이다. 또한 의료급여에 대한 3년 기간 제한은 결국 수급권에 대한 시한부 판정에 지나지 않는다. 
 
 

기초생활보장법, 생활보호법으로 후퇴 중

과거 생활보호법의 보호대상은 아동 및 청소년, 노인, 임산부, 장애인 등 근로능력이 없는 빈민으로 한정되었다. IMF 경제위기를 겪고 1999년 제정된 기초생활보장법이 기존의 생활보호법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근로능력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권리’로서 보장한다는 점이다. 이는 빈곤층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를 인정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물을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번 개정안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과거로 후퇴시키는 것이다. 근로장려금의 적용을 빌미로 근로능력을 기준으로 최저생계 미만의 수급자들을 탈락시키고, 자립지원을 위해 개설된 근로장려금을 폐지하고, 이들을 의료급여에서 분리시켜 최종적으로는 복지제도에서 분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제도가 만든 ‘어쩔 수 없는 죽음’

‘근로능력 있는’ 수급자는 ‘국가가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사람이다. 그러나 근로능력의 지표인 의학적 판단과 평가문항은 실제 일을 하거나, 일자리를 구할 가능성과는 상당히 떨어져있다. 몇 가지 문항만으로 근로능력을 판단하기 어려울뿐더러,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단 받아도 취업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구청에서 일하거나 수급권을 포기하라는 태도로 인해 수급자들은 자신에게 내려진 판정에 대해 이의조차 제기할 수 없다. 

이러한 근로능력평가는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2003년과 2005년 심장 대동맥류 기형으로 인공혈관 수술을 받은 최인기 씨는 2005년부터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아 일반수급자가 되었다. 비정기적으로 근로능력평가를 받아오던 그는 2014년 1월에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았다. 몸이 안 좋고 일을 할 경우 건강이 나빠질 것이 우려된다는 점을 동주민센터 담당직원에게 호소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을 뿐이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지역 고용센터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2014년 2월 말부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청소부로 취업한 최인기 씨는 일을 하며 기침과 발열, 부종이 지속되었고 5월에는 일하던 중 쓰러져 응급실에 입원했다. 퇴원 후 다시 일을 하던 그는 6월에 다시 발작을 일으키고 결국 8월 28일에 운명했다.

최인기 씨의 죽음에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도, 보장기관인 지자체도, 근로능력평가를 내린 연금공단도 책임을 떠넘기기에만 급급했다. 잘못된 근로능력평가 제도에 의한 죽음을 책임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근로능력평가 폐지하고, 정부에서부터 좋은 일자리를!

이번 개정안은 근로연계복지 정책의 일환이다. 복지로 인해 빈곤층들이 나태하고 타성에 젖어 일을 하지 않고, 복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시각이 철저히 반영된 것이다. 그러나 일을 하지 않아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도 가난해지며, 일을 할 수 없으면 삶이 더욱더 비참해진다. 반빈곤운동은 그동안 빈곤층이 근로능력이 있건 없건 비참하지 않고 떳떳한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위해 당장 필요한 것은 근로능력평가의 폐지와 좋은 일자리의 제공이다. 

소득이 아닌 근로능력 유무여부에 따라 복지가 제공된다면, 근로능력이 있는 빈곤층들은 계속해서 저임금 일자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근로능력이 있어도 소득이 없을 때 수급권을 보장받는다면, 빈곤층들이 저임금 일자리로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따라서 근로능력평가의 폐지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에 맞는 제도 개혁이다.

그러나 근로능력평가를 폐지해도 좋은 일자리가 없다면 문제는 제자리로 돌아온다. 따라서 정부에서부터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병행해야 한다. 자활사업 참여자의 급여는 그 수준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친다. 이를 통해 탈빈곤하라는 말부터가 어불성설인 것이다. 정부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공공’ 일자리들을 만들어야 한다. 

작년 7월 맞춤형 개별급여로의 개편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정된 지 15년 만에 가장 큰 제도정비였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빈곤층을 옥죄는 크고 작은 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반빈곤운동은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모든 빈곤층들을 포괄하도록 요구하고, 노동자운동과 함께 좋은 일자리에 대한 요구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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