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03 제14호

대책도 전략도 없는 더불어성장론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존재감 없는 제1야당

경제위기, 민생위기가 지표상으로도 체감상으로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심각하다. 하지만 정권 레임덕은 고사하고 여당에선 진박(진짜 친박), 가박(가짜 친박)으로 논쟁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집권 후반기에도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이 이 정도로 유지되는 건, 야당의 비판이 그만큼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집권당을 심판하자는 목소리 이상으로 무능한 야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경제정당을 표방한 더불어민주당(더민주당)이지만, 오히려 존재감이 더 낮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위기 대책도 없는 뜬금없는 성장론

더민주당이 무기력한 이유 중 하나는 경제 정책의 한계 탓이다. 더민주당은 정부 정책을 제대로 비판하지도, 설득력 있는 대안도 내놓지도 못한다. 최근 총선 경제 정책이라고 발표한 ‘더불어성장론’이 대표적이다. 

더민주당의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는 지난 2월 1일 〈더불어성장론 보고서: 저성장 시대 새로운 성장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더불어성장론이 “뉴노멀 시대의 유일한 성장모델”이며  “지속해서 추진한 경제민주화, 소득주도성장, 분수 경제를 이어받으면서 국제적 합의인 포용적 번영에 기반을 둔 한국적 성장모델”이라고 주장했다.

여기 담긴 내용은 한눈에 봐도 익숙한 것들로 일부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왜 새로 발표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정책들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새롭지 않다는 것보다 틀린 정책이란 점이다. 무엇보다 더불어성장론은 현 경제위기, 민생위기의 핵심을 비켜나갔다.

예를 들면, 현장에선 사용자들이 정리해고에 일반해고까지 들이밀며 인력 구조조정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더불어성장론은 태평하게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청년 일자리 70만 개를 만들겠다고 이야기한다. 수출대기업의 생산량 급감으로 공단에서는 일감 자체가 주는 상황인데, 더불어성장론은 마치 일감은 넘치는데 수익배분이 잘 안 되는 상황인양 원하청 이윤공유제를 하겠다고 한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이 매출급감과 부채로 당장 파산 직전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더불어성장론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중소기업 기술개발을 지원하겠다고 이야기한다.

현실 가능성 문제는 둘째치고라도, 현실에서 실제 문제가 되는 것들에 대해서 완전히 무대책이다. 더군다나 더민주당은 더불어 성장하자고 외치며 정작 대기업의 인력 구조조정 폭풍을 가져올 박근혜 정부 원샷법에 찬성했다. 일관성마저 없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뜬금없는 새로운 성장모델이 아니라 당장 손에 칼을 들고 노동자의 목을 치고 있는 대기업들에 대한 과감한 규제책과 재벌의 손실 전가를 막아낼 제도들이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중소기업도, 청년 고용도 이야기할 수 있다. 현재 경제 위기는 일부만 성장해 발생하는 게 아니라 그나마 성장하던 수출 대기업마저 활로를 찾지 못해 발생했고, 이 수출대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 비용을 노동자에게, 국민경제에 떠넘기며 더 심각해지고 있다. 현 정세에서 경제 정책의 첫 번째는 수출대기업들이 손실을 떠넘기고 있는 상황에 대한 해법이어야 한다. 
 
2월 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성장론 정책기자회견 ©연합뉴스
 

장기전략 없는 선심성 정책

더불어성장론 중 그나마 언론에 오르내린 건 청년층을 위한 공공임대 5만 호 정책이었다. 국민연금을 이용해 기금 10조 원을 조성하고 다세대, 다가구를 매입해 월세 30만 원 이하로 청년층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선심성 공약이다. 국민연금에 관한 장기 전략이 없기 때문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이야기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이용한 것일 뿐이다.

현재 500조 원이 넘게 조성된 국민연금기금은 한국에서 가장 갈등적인 경제 쟁점 중 하나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데 어떻게 지속가능한 연금체계를 만들 것인지, 장기불황 속 한국에서 가장 큰 뭉칫돈인 이 자금을 어떻게 생산적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연금에 관한 공적 통제 방안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지. 굵직한 쟁점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 연기금은 세계에서도 가장 큰 투자기금 중 하나다.

더민주당이 진정성이 있다면 국민연금에 관한 전략이 먼저 있고, 활용 방안 중 하나로 복지 재정이 이야기되어야만 한다. 연기금에 대한 장기 전략 없이 500조 원 중 10조 원 떼서 청년 임대주택을 하자는 식의 정책이라면, 국민연금으로 못할 사업이 없을 것이다.
 
 

벤치마킹도 제대로 못해

'포용적 경제'를 주제로 개최된 2015 APEC 정상회의
더민주당의 더불어성장론은 미국 민주당의 ‘포용적 번영’(Inclusive Prosperity)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하지만 그 핵심을 제대로 따라하지도 못했다.

포용적 번영 정책의 이론적 배경은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이 최근 주장하고 있는 구조적 총수요 부족론이다. 총수요의 두 요소인 소비와 투자 모두 일시적이 아니라 장기간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단 주장이다. 소비 감소는 임금 정체와 임금수준이 높은 숙련 노동력의 부족이, 투자 감소는 기업들의 단기 수익 추구와 장기 관점의 경영전략 부재가 원인이다. 더군다나 2007~10년 세계금융위기로 기업과 가계의 소비가 더 많이 감소했다. 구조적 총수요부족론은 시장의 자정능력으로 이 수요 부족 사태가 해결될 수 없다고 진단한다.

이런 이론을 근거로 미국 민주당은 임금 인상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 조직률 확대, 최저임금 인상을 제기하고, 숙련 노동력을 확대하기 위해 평등한 교육 체계를 정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투자 확대 방법으로는 기업들의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제도, 지역 산업클러스터 육성을 제시하고 있다. 클린턴과 샌더스 사이에 강조점 차이가 있지만 미국진보센터가 정리한 위 표의 정책들이 대체적 합의점이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전통적 경제 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재정을 통한 일자리 확대나 통화 공급을 통한 경기 활성화보다 노동자 스스로가 제 권리를 집단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 늘고 있다. 미국 민주당 임금인상 정책의 핵심에 ‘노조’가 있는 이유다. 미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중 한 명인 래리 서머스가 대표 집필한 포용적성장위원회의 보고서도 노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확대를 위한 제도 개선을 임금 인상 정체를 해결할 첫 번째 정책으로 꼽는다.

하지만 더민주당의 경제 정책에는 노조법 개정이나 노조 조직률 향상 같은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오히려 포용적 번영 정책이 비판하는 전통적 정책만 있는데, 정부가 재정을 쏟아 일자리를 만들고 기업을 지원하겠단 이야기들뿐이다. 한국 역시 장기 불황 속에서 전통적 경제 정책들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 이미 박근혜 정권에서도 확인한 바다. 시중에 돈이 아무리 공급되어도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정부가 재정 지출을 늘려도 경기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다. 사실 몇 가지 각론을 제외하면 더민주당의 정책도 박근혜가 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Report of the Commission of Inclusive Prosperity"
(2015)에서 필자가 재구성
 

체제에 도전할 대안 가져야

물론 미국 민주당의 포용적 번영론 역시 한계적이다. 현재 세계경제위기 원인을 수요 부족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이 실물경제의 투자처를 찾지 못해 일자리가 늘지 않고, 노동생산성이 향상하지 않아 자본은 노동을 쥐어짜 이윤을 늘리려고 한다. 즉 수요 부족으로 위기가 표현되긴 하지만 그 자체가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지금의 위기는 경제체제가 축적된 자본을 확대재생산할 만큼 충분히 수익을 내지 못해, 축적이 둔화하고, 자본이 남아도는 게 핵심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소비를 늘려도 투자가 늘지 않고, 일시적으로 투자가 늘어도, 후에 과잉설비로 문제가 더 크게 발생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상태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라고 불렀다. 정부가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데 한계가 크고, 실제 일시적으로 성공한다 해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노동자운동의 여러 세력이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미국 민주당 정책을 많이 빌리고 있으며, 또 그만큼 더민주당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조합원도 늘었다. 하지만 민주노조나 진보정당들은 야권연대란 이름으로 더민주당에 목을 매기 이전에 현 정세에서 진짜 필요한 요구와 정책들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봐야 한다. 조삼모사식 정책보단 체제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도전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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