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03 제14호

진보정당, 사회운동 활성화가 우선이다

  • 구준모 편집실장

정의당의 원내정당, 수권정당 전략?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올 1월 기자회견에서 범야권 전략협의체 구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심상정 대표는 “야권이 유능하고 책임 있는 연합정부의 비전을 제시하고 인정받을 때만이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허락할 것”이라며 ‘연합정치 2.0’을 주장했다. 지난 대선 때의 연합정부 구상을 되풀이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전일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와 진보정치의 현실에 대한 낙담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자유주의 세력과의 권력 나누기가 진보정치의 전략이 될 수는 없다.

그동안 정의당은 국회 중심으로 활동하는 원내정당화의 모습을 보였다. 진보정당이 분열과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지지층과 활동가들이 축소된 상황에다, 노동자 투쟁이나 안보 이슈에서 민중운동과의 차이를 강조하는 전략은 이런 경향을 강화시켰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후, 정의당은 유일한 원내진보정당으로 언론 노출이 늘었고, 한편에서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의당은 민주노조운동의 기반이 매우 취약하고,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계성도 높지 않다. 통합 전까지 상당수 광역지자체에서 당 조직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할 만큼 토대가 약했다.

정의당은 작년 11월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더하기를 포함한 재창당 방식으로 통합했다. 통합 세력들은 진보정치에서 정의당의 대표성을 확장할 뿐만 아니라, 정의당의 계급성 내지 사회운동성을 강화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정의당 내 구조 속에서 아직 그 구상을 적극적으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 정치의 왼쪽 방

더민주당이 이전과 다른 정당으로 환골탈태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새누리당 집권기에도 중도포괄 전략과 개혁노선 전략에서 그네처럼 왔다갔다하는 모습만 보여줬다. ‘한미FTA의 전도사’이자 삼성그룹 사장 출신인 김현종 씨를 영입한 것은 이 정당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이런 정치세력과 연합정부까지 구성하면서 자유주의 정치의 왼쪽 방을 차지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지향하는 진보정치가 지향해야 할 전략이 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실패 요인 중 하나도 노무현 정권에서 열린우리당과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었다.
김대중과 김종필

한편 대통령제에서 연합정부는 제도적 기반이 허약하다. DJP연합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대중과 김종필은 내각제 개헌을 약속하고 선거연대를 통해 집권까지 성공했으나, 김대중 대통령이 개헌을 포기하면서 연합은 싱겁게 끝났다. 대통령제는 내각제와는 달리 당선 후에는 대통령 임기가 보장되기 때문에, 연합 파기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의회 내 권력을 통해 연합을 강제하는 것도 어렵다. 4월 총선 후 구성될 20대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기에 정의당 의석수가 미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의 일부 세력이 이런 전략을 취하는 것은 운동을 통한 자본주의 사회변화라는 진보정치의 ABC를 낡은 것으로 치부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자본주의의 위기마저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정치는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비전을 더 분명히 세워야 한다.


좌파들의 귀환

작년부터 지금까지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정치적 사건들은, 진보정당운동의 방향을 전환할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대표적으로 그리스 시리자의 집권과 분열, 영국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제레미 코빈의 압승,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의 약진을 들 수 있다. 기존의 사민주의 내지 중도진보 노선을 비판했던 좌파 정치세력의 부상 사례를 짚어보면 공통의 교훈들을 찾을 수 있다. 

첫째, 신자유주의의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꾸준한 저항의 목소리를 낸 정치세력(또는 정치인)이 부상했다. 시리자는 그 전신 조직부터 보면 1990년대 초반부터 스탈린주의적 구좌파와 신자유주의와 타협한 사민주의에 맞서 좌파 혁신과 규합 프로젝트를 20년 이상 추진해왔다. 또 2004년 이후 그리스에서 분출한 대안세계화운동과 2010년 이후의 반긴축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성장했다. 
제레미 코빈

영국 노동당의 코빈은 노동조합 활동가 출신의 하원의원으로 노동당 내 좌파로 평생을 투쟁해온 인물이다. 30여 년간의 의원 활동 중에 노동당 주류 노선에 반대해 500회 이상의 반대투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니 샌더스
 
샌더스도 1960년대 이후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 활동해왔다. 그는 무소속 하원 및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며, 레이건·부시·클린턴·부시·오바마 정부에서 지치지 않고 빈부 격차 확대와 침략전쟁을 규탄했다. 즉, 이들은 모두 신자유주의에 굴복한 중도좌파에 동조하지 않고, 오랜 기간 이를 비판하고 투쟁해온 세력들이다.
 

대중운동에 기반을 둔 성장

둘째, 각국에서 벌어진 대중적인 투쟁에 기반을 두고 성장했다. 시리자는 그리스의 대안세계화운동과 반긴축투쟁에 헌신적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06~07년 사립대학교 설립을 위한 헌법개정에 맞서는 학생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정부 정책을 중단시켰다. 2011년부터 ‘분노하는 사람들’ 운동에 참여해 유럽의 채권자들이 강요하는 긴축정책에 반대한 것은 집권의 기반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코빈이 부상한 것도 반긴축 투쟁의 효과로 볼 수 있다. 2010년 보수당 캐머런 총리가 집권한 후 영국에서는 전면적 긴축정책이 펼쳐졌다. 3배에 달하는 등록금 인상에 맞서 2010년 영국 대학생들은 보수당 당사 점거 등의 강력한 투쟁을 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주류는 투쟁과 반긴축 요구에 소극적이었고, 이런 불만은 반긴축 투쟁에 적극적인 입장을 가진 코빈에 대한 노동조합과 청년층의 지지로 이어졌다. 

샌더스 열풍은 2011년 오큐파이운동이나 2015년 ‘15달러 최저임금운동(Fight for $15)’이 기반이 되었다. 오큐파이운동의 참여자들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금융과세 강화, 보편적 의료보장 도입 등을 공약한 샌더스의 선거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또 최근 부상한 15달러 최저임금 투쟁도 이를 명확히 지지하는 샌더스 열풍의 배경이 되었다. 비록 여전히 많은 노조들이 민주당 주류인 클린턴을 지지하고 있지만, 체신노조(APWU) 등의 대형 노조들과 여러 노조의 지부 단위에서 샌더스 지지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즉, 그리스, 영국, 미국에서 모두 진보정치의 부상에는 사회운동과의 긴밀한 연계가 필수적이었거나 최소한 그 배경이 되었다.
 
2011년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에 모인 반긴축 시위대
 

진정한 변화를 이끌기 위한 전략

셋째, 인기와 선거 열풍만으로 현 사태를 해결하기는 만만치 않다. 반긴축을 내걸고 집권했다가 유럽 채권단의 압력에 굴복하고 긴축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시리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결국 2015년 8월 당내 좌파세력은 시리자를 나와 ‘인민연합’을 결성하고 총선에 나왔지만 의회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작년 11월과 12월에는 시리자 정부의 연금개악과 민영화에 맞서 총파업이 벌어졌다. 

코빈의 경우에도 철도 재국유화, 대학등록금 면제 등을 내걸고 있으나 강건한 노동당 의원들의 기득권을 깰 수 있을지, 또 2020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낙관하기는 어렵다. 특히 반전운동가이기도 한 코빈은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도, 보유하는 것도 반대한다. 나는 핵무기 없는 세상을 바라고 있으며, 이는 실현 가능하다”며 핵무기 폐기 의사를 내비쳐 당내 주류의 큰 반발을 낳았다. 이러한 코빈의 공약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반긴축운동과 더불어 평화운동이 성장하는 가운데 노동당 주류를 압박해 변화시키고, 나아가 영국 사회의 세력관계를 바꿔내야 할 것이다. 

샌더스의 돌풍이 실제 미국 정치 구조를 부술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박빙이 예상되는 민주당 경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클린턴을 큰 표차로 따돌려야 한다. 경선을 거칠 필요 없이, 민주당 주류를 대변하는 슈퍼대의원이 15퍼센트에 달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고 해도 공약을 추진하기에는 미국의 정치구조가 매우 제약적이다. 민주당 주류는 물론이고 상하원에서 모두 공화당의 강력한 견제에 부딪힐 것이기 때문이다. 더 큰 운동과 사회 변화의 흐름 속에서만 샌더스 열풍이 보여준 희망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그리스, 영국, 미국의 사례가 모두 보여주듯이 새로운 ‘바람’이 선거 이후에도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사회운동의 성장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인기와 선거열풍에만 의존한 활동은 불길처럼 타올랐던 열망이 급속히 꺼지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운동의 활성화를 통한 진보정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중적인 사회운동이고 이에 함께할 수 있는 진보정당이다. 민주노조운동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대중적 진보정당은 불가능할 것이다. 선거에 매몰되지 않는 진보정치의 새로운 목표 속에서,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끝내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정의당의 행보에는 우려되는 점이 많다. 정의당은 자충수에 가까운 연합정부론이 아니라, 자유주의 정당과 다른 어떤 노선이 가능할지, 한국 진보정치의 전략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또 노조할 권리의 강화에 제도적, 실천적으로 기여하는 노력을 통해 민중운동 전반에 신뢰를 쌓을 때 지지를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최근 창당을 선언한 민중정치연합에 대해서도 매우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투쟁하는 노동자, 농민, 청년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구 통진당의 일부 세력이 독단적으로 민중운동의 성과를 참칭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분열을 불러왔던 운동 내 패권의 문제에 대해서 이들이 반성하지 않고, 변화하지도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의 위기가 해결책을 못 찾고 더욱 심화되고 있고, 한편으로는 북한과 노동운동을 공격해 반사 이익을 얻고자 하는 보수 세력의 시도가 강화되고 있다. 흙수저, 헬조선이 유행어인 현실이 보여주듯이, 분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조직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노동자운동이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보여주고, 새로운 운동을 형성하고, 나아가 진보정당이 바로 서는 것이 더욱 중요한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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