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05 제16호

다단계 하도급에 맞선 건설노동자의 생존전략은?

유럽 연대책임 제도에서 배우자

  •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

 

건설업의 다단계 하도급

건설업은 수주를 받아야 작업이 시작된다. 따라서 공장처럼 작업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옥외작업 특성상 날씨가 나쁘거나 추우면 작업이 쉽지 않다. 기초, 토목, 골조, 설비 등 복합공정을 통해 생산되므로 한 기업이 모든 인력, 기술 및 생산수단을 보유하기 어렵다. 그 결과 건설사들은 자본, 설비, 노동 등 생산요소에 대한 고정 투자를 회피하고, 핵심 인력을 제외한 대다수 노동력은 하도급을 통해 외주화 한다. 다단계 하청구조와 일용직 노동력이 보편적인 이유다. 

예를 들어 2015년 시공능력평가에서 2위를 차지한 현대건설은 국내 50여 개 공사, 해외 20여 개 공사를 수주하고 있다. 그 중 국내 수주액만 19조 6천억인데, 한 해 동안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공공사 물량이 40조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실로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임직원 수는 7000명이 조금 넘는다. 7000명으로 50개가 넘는 대규모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이유는 하도급의 형태로 외부노동력을 대거 활용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동관련법 체계가 제조업 노동자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어 건설업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건설사가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하도급 구조를 활용해도 현행 법으로는 규제가 어렵다. 
 

임금체불, 함께 책임져야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임금지급 의무였다. 흔히 오야지, 반장, 십장 등으로 알려진 노동통제 겸 중간착취 구조에서 중간업자에 의한 체불은 잦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휴대전화 한 대가 회사의 전부나 다름없는 페이퍼컴퍼니 같은 영세 건설사들의 부도와 도주도 비일비재하다.

다행히 2008년부터 이러한 중간 착취구조를 합법화해온 시공참여자 제도(건설업계의 무원칙한 하도급 관행으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이후 시공 책임자를 파악조차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자, 1997년 정부는 현장을 관리하는 작업참여자를 ‘시공참여자’로 올려 사고가 나면 시공참여자까지 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문제는 제도 도입 후, 어차피 노동자에 불과한 팀장이 시공참여자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만으로 복지, 4대보험, 산재, 체불임금 등 원청과 하청 건설사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를 떠맡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시공참여제는 기존의 불법 하도급을 양성화 하는 결과만을 낳았고, 이 제도의 폐지는 건설노조의 숙원사업이었다.)가 폐지됐다. 하지만 시공참여자 제도를 폐지한다고 불법화된 다단계 하도급 체계가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체불 문제도 여전했다. 사라지기는커녕 문제가 너무나 심각한 나머지 건설업에만 특별히 적용되는 규정이 근로기준법 상에 신설될 정도였다. 

그 중 하나가 직상수급인(다단계 하청에서 바로 윗 단계에 있는 기업)의 임금지급 연대책임으로, 불법 도급이 이루어진 경우에도 불법 도급을 받은 업자에 의해 임금체불이 발생한 경우 합법적 하도급 업체 중 최하위 업체가 연대책임을 지는 조항이다. 하도급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경우에도 중간 업체가 부도와 같은 이유로 임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경우, 하청이 받아야 할 돈을 원청에 직접 요구해 임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특례 조항이 신설됐다.

하지만 이 조항들 모두 하도급 관계에서 상위수급인의 책임을 사후적으로, 그것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규정하는 셈이다.
 

유럽의 연대책임 제도

유럽의 경우를 살펴보자. 통합 후 유럽에서는 하도급 연쇄에서의 노동자 권리와 노동조건 보호책임에 관한 논의들이 펼쳐졌다. 

유럽의 ‘연대책임(joint and several liability)’ 논의는 유럽연합의회 고용사회위원회가 발표한 <생산 사슬에서 하도급 업체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유럽 의회 결의안>에서 시작되었다. 이 결의안은 ‘연대책임’ 혹은 ‘발주자 책임’ 제도를 제안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유럽 내 기업들은 임금, 사회보험료, 세금, 산재사고에 대해 ‘기업책임’을 진다.

주목할 것은 위와 같은 기업책임에 의도나 사전 인지에 관한 요건이 없다는 것이다. 즉, 하도급 업체의 부정이나 과실을 원청이 알고 있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원청이 법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다. 이렇게 원청의 연대책임을 강하게 묶어 놓으면 원청이 하도급 업체를 선정할 때 그 업체가 사업을 영위하는 국가의 임금, 사회보장, 세금 및 기타 법을 제대로 준수할 것인지 여부를 좀 더 고려하게 만든다. 

예컨대 독일에 본사가 있는 모기업이 네덜란드에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고 가정해보자. 이 기업은 3개의 주요 하도급 업체에 사업을 도급하는데, 그것이 핀란드의 전기공사업체, 네덜란드의 골조업체, 이탈리아의 건축회사라고 하자. 핀란드 전기공사업체는 포르투갈 2차 하청업체에 광섬유 케이블 공사를 도급한다. 이 포르투갈 2차 하청은 영국 기업과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 노동자들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는다.

만약 이 영국 기업이 리투아니아 노동자들에게 합의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거나, 정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가 문제다. 연대책임에 따르면 네덜란드 정부와 리투아니아 노동자는 이 하도급 연쇄선상에 있는 모든 업체에 각각 세금과 임금에 대한 책임을 부과할 수 있다.
 
 

한계와 과제

하지만 유럽연합에서 이 제안은 법적 효력이 없는 ‘결의안’ 형태로만 통과(2009년)되었다. 기업들이 강력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고의성을 입증하지 않아도 연대책임을 진다는 것은 하도급 업체의 부정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부담이 너무 크다는 논리였다. 또 이 결의문 초안이 건설업뿐 아니라 전 산업에 적용될 수 있어 너무 광범위하다는 것도 반대 이유였다.

유럽 지침으로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유럽 연합 중 8개 국가에서는 다양한 수준의 연대책임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건설업 등으로 업종을 한정한다면 앞으로 통과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여전히 한계는 존재한다. 연대책임 제도는 고용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있는 독립 계약자들(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은 아예 논의에서 배제되어 있다.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고 책임의 사슬에 포함시킬 수 있는 논의가 함께 진행되고 있는 이유다.
 

사후약방문 넘어서려면

현재 한국의 법에서 상위수급인에게 부과되는 연대책임은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하도급 연쇄에서 사용자가 가져야 할 책임도 불명확하게 규정돼 있다. 더 큰 권한을 가진 원청이나 상위수급자가 책임 있는 하도급자를 선정할 ‘실사 의무(due diligence)’를 규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건설업의 산업적 특성상 하도급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원청이나 상위수급인의 의무와 책임을 더욱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체불임금 방지뿐 아니라 고용안정, 사회보장비용 납부, 불법하도급 활용 방지 등 공급사슬 안에 있는 사용자들이 져야할 책임을 단계마다 명문화하는 것을 중장기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과 함께 하도급 구조 속에서 원청을 위시로 한 사용자 책임을 명확히 하는 투쟁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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