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여는글
  • 2016/06 제17호

두 죽음과 애도

  • 김유미 편집실
5월 11일 한 남자가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삼성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였던 그는 갑작스레 직책 강등 통보를 받았다. 이어질 구조조정을 생각하면 해고나 다름없는 조치였다. 

거제 백병원 장례식장에는 작업복을 입고 문상 온 조선소 노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동료들은 고인의 절망과 모멸을 자기 일처럼 가까이 느끼고 있었다. 조선업 구조조정 때문에 매일이 살얼음판을 걷듯 위태롭던 참이었다. 관리자들은 작은 일로도 트집을 잡아 욕을 퍼붓고 협박을 일삼았다. 불과 보름 전에도 현장에서 목을 매 자살한 사람이 있을 정도로 회사 분위기는 흉흉했다. ‘거제통영고성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 살리기 대책위원회’는 이번 일이 조선업 구조조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입장과 함께 삼성중공업 정문 앞에서 회사의 책임을 물었다.
 
17일에는 한 여자가 강남 번화가의 화장실에서 죽임을 당했다. 가해 남성은 ‘여성들이 나를 무시한다’며 공용화장실에 여성이 오기를 기다려 살인을 저질렀다. 

누군가 ‘피해 여성을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꽃 한 송이와 추모메시지를 남기자’고 제안했다. 며칠 새 수많은 시민들이 이 행동에 동참해 강남역 10번 출구는 포스트잇으로 뒤덮였다. 여성들은 일상적으로 겪어온 폭력과 공포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 역시 그녀와 다르지 않다. 운이 좋아서 살아남았을 뿐”이라 증언했다. 경찰은 가해 남성이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그의 행동을 ‘여성혐오 범죄’로 명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발표했지만 그것이 이 사건에 대한 너른 공감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두 경우를 두고 ‘구조조정이 죽였다’, ‘여성혐오가 죽였다’고 단순하게 규정했을 때 놓치는 부분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모든 사건에는 다양한 층위의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비극의 이유를 개인적 차원이나 또 다른 사회적 차원에서 설명하는 일도 가능하긴 할 것이다. 사직서를 제출한 노동자가 술을 마시고 감정이 격해져서, 무노조 삼성의 노무관리가 비인간적이어서, 조현병을 앓고 있는 가해자가 망상에 빠져서, 사회가 정신질환을 관리하지 못해서,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어떤 죽음 이후, 고인과 비슷한 불안을 겪고 있는 집단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슬픔과 두려움에 빠졌다면, 사회가 주목해야 하는 건 바로 그 측면이다.
 
내가 겪는 괴로움이 다른 삶을 위한 공동의 움직임이 되지 못하고, 개별적 죽음 혹은 약자를 향한 극단적 폭력이 되는 세계. 그것이 때로 지옥에 비견되는 오늘날 한국사회의 비극일 것이다.

삼성중공업 하청노동자의 자살은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줄 제도나 집단이 없는 대다수 노동자의 불안을 대변한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헬조선’조차도 남성과 여성에게 전혀 다르게 경험된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죽음은 개별적이었지만 애도는 집단적이다. 그것은 이미 정치적 행위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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