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기획
  • 2016/06 제17호

그때, 자네는 어디에 있었나?

떠들썩한 가습기살균제 보도를 돌아보며

  • 조윤호 《나쁜 뉴스의 나라》 저자, 미디어오늘 기자
©환경운동연합
 
 
“기자님, 3개월 후에도 가습기살균제 기사 쓰실 건가요?” 3년 전 가습기살균제특별법을 처음 발의하고 4년 내내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질의한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러 간 날, 장 의원이 물었다.

뜨끔했다. 대답을 하려는 찰나 장 의원은 이해한다는 듯 웃었다. 2011년 터진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공론화됐다. 장 의원의 질문은 이 관심이 지속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뒤늦은 판정, 뒤늦은 수사 그리고 뒤늦은 관심

2011년 전국 각지의 병원에서 원인을 할 수 없는 중증 폐질환으로 사망하는 환자들이 속출했다. 특히 어린아이와 임산부에 피해가 집중됐다. 그 해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살균제가 중증 폐질환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아이와 곧 태어날 아이의 건강을 좋게 만들기 위해 구입한 가습기, 그리고 살균제는 살인무기가 됐다.

모든 것이 더뎠다. 피해자 접수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2013년 7월에야 시작됐고, 2014년 3월에야 정부는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의 원인이라는 공식 판정을 내린다. 검찰 수사는 그로부터도 1년 6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에야 시작됐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을 힘들게 만든 것은 세상의 무관심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론이 있었다. 언론의 무관심 속에 5년 간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없는 사건이 됐다. 피해자가 대거 발생하자 떠들썩했던 언론은 금세 조용해졌다.

검찰 수사가 시작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를 강조하자 그제야 언론은 다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포털 기사검색 결과 한해 2000~3000건이던 가습기살균제 기사가 지난 한 달간(4월초~5월초) 5만 건이 넘었다.
 

“내 연기 어땠어요?” 옥시 악마 만들기 나선 언론

하지만 언론의 행태는 변하지 않았다. 언론은 ‘악마화’에 나섰다.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된 ‘옥시 레킷벤키저코리아’가 세월호 참사 당시의 유병언 일가와 같은 원흉이 됐다. 애경, 롯데, 이마트 등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다른 대기업에 대한 비판은 드물다. 아마 다른 기업들은 옥시가 불매운동으로 망하기라도 하길 내심 기다릴 지도 모른다. 이런 악마화로 인해 마치 이번 사태는 ‘부도덕한’ 기업 옥시의 문제로 치환될 것이다.

그간 책임을 방기한 정부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1994년부터 가습기살균제 800만개가 팔리는 동안 정부가 한 일이라곤 ‘허위과장광고’로 5천여만 원의 과징금을 때린 것뿐이다.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은 정부여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막혔다. 언론이 그리는 ‘부도덕한 기업을 응징하는 검찰과 정부’라는 그림, 이 그림을 제일 좋아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악마화는 확인되지 않는 옥시 대표의 발언으로 절정에 달한다. 뉴시스는 5월12일 검찰로 소환됐던 신현우 전 옥시 대표가 피해자들 앞에서 사과한 뒤 뒤에서 자신의 변호사에게 “내 연기 어땠어요?”라고 말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다른 언론이 이를 받아썼고 수많은 누리꾼들이 신 전 대표를 비난했다.

이 기사의 출처는 검찰이다. 신 전 대표가 이 말을 했을 때 가까이 있던 검찰 직원이 이를 듣고 중간 간부에게 보고했고, 이영렬 지검장 등 서울중앙지검 수뇌부에도 이 내용이 전달됐다는 것이다. 분노했다는 검찰의 이야기도 전한다. 신 전 대표 측은 “내 얘기 어땠어요?”라는 말을 검찰 측 직원이 잘못 들은 것이라 해명했지만 이미 신 전 대표는 악마가 된 이후였다.

의도했든 아니든 검찰은 ‘내 연기 어땠어요?’라는 멘트를 통해 신 전 대표를 악마로 만드는 데 성공했고, 이런 기사의 최대 수혜자는 늑장 수사의 책임을 피하고 포청천이 될 검찰이다. 언론은 제대로 된 확인도 하지 않고 검찰 측 멘트만 인용해 기사를 썼다.
 
©미디어오늘 이치열
 

떠들썩한 언론, 지금은 어디에

정부여당의 책임을 피해보려는 보도도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5월9일 리포트에서 “임기를 이제 20일 남겨둔 19대 국회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 대책을 놓고 연일 분주하다. 그런데 관련법은 이미 3년 전에 발의됐다”며 “여태 아무런 진척이 없었는 뒷북 논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더민주 측이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며 사과하는 모습을 방송에 담았다. 

이 리포트만 보면 3년 내내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법안을 막은 이들이 야당인 것 같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피해구제 법안들은 정부와 새누리당의 반대로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MBC는 또한 “청문회를 검찰 수사 지켜보고 하겠다는 것은 안 된다”는 피해 가족들의 목소리는 전하면서도 ‘검찰 수사 후 청문회’를 주장하는 이들이 집권여당이라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다.

MBC는 “최근 2~3년 내에 어느 정당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나? 주장한 행적이 없다”라는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의 말을 인용해 국회를 비판했다. 하지만 권 의원은 환노위 새누리당 간사로 관련 법안의 국회 통과를 막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권 의원은 3년 전에도 “환경성질환으로 인해 피해 입은 국민만 특별 보호해주고 교통사고 입은, 범죄행위로 인해서 상해 입은 국민들은 특별대우 안 해준다는 것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법안 통과에 반대했고 지금도 같은 입장이다. MBC는 법안 통과를 막은 의원의 입을 빌려 국회를 비판한 것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가톨릭 사제들의 집단적인 아동 성추행을 은폐한 변호사는 자신을 취재하러 온 기자 친구에게 “자네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라고 묻는다. 떠들썩한 한국 언론, 그리고 나를 포함한 기자들에게 묻고 싶다. “자네는 그동안 어디에 있었나?” 그리고, 지금은 어디에 있나? ●
 
 

 
 
필자는 최근 언론계의 명암을 파헤치고, 언론의 고질적 병폐와 구조적 모순을 분석한 저서 《나쁜 뉴스의 나라》를 펴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언론이 감추고 있는 것들의 허상을 깨고, 그들이 의도하는 왜곡된 현실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언론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이면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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