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6/06 제17호

헬조선 만든 재벌에 도전하다

고장난 한국사회 고치는 기술서비스 노동자들

  • 황수진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 공동상황실장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삼성전자서비스 AS기사들과 케이블·통신 노동자들(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티브로드·씨앤앰)은 노동의 특성이나 임금체계, 근로조건이 매우 비슷하다. 

이들은 각자에게 할당된 업무구역을 돌아다니며 전자제품을 수리하거나, 케이블방송·인터넷·IPTV를 설치·수리한다. 수많은 고객을 대면하며 감정노동을 수행하고, 경쟁과 평가제도에 이골이 나있다. 몸에 줄 하나 걸고 건물 밖이나 전봇대에 매달리기도 한다. 일하는 데 꼭 필요한 차량유지비, 휴대폰·통신비, 공구 및 안전장비를 회사에서 지급하지 않아 기사 자신이 부담하는 경우도 많다. 수리기사일 뿐인데 제품의 결함까지 변호하며 고객의 마음을 사야하고, 판매사원도 아닌데 케이블방송이나 인터넷상품을 팔아 실적을 올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고용 형태다. 이들은 모두 재벌 대기업의 협력업체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들이다. 이렇게 비슷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의 전략이 만든 결과다. 원래 기업 내부에 있던 업무를 외주·하청화해서 비용(노동자 임금)을 절감하고, 위험과 책임은 아래로 떠넘긴 것이다. 이러한 구조의 꼭대기에는 삼성전자서비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태광-티브로드, 씨앤앰이 있다.

‘갑-을-병-정…’의 다단계 사슬에서 노동자들은 점점 더 아래로 밀려난다. 재벌의 몸통과 관계 없는 노동자로 보이게 하려는 속셈이다. 케이블·통신업계에는 하청업체가 다시 그 밑의 하청을 통해 노동자를 고용하는 다단계 하도급, 노동자를 상대로 근로계약이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의 도급계약을 맺는 행위가 만연해있다.
 

재벌이 문제야

2013년 2월 씨앤앰을 시작으로 3월 티브로드, 7월 삼성전자서비스, 2014년 3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하청업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깃발을 세우고 치열하게 투쟁을 전개했다.

“삼성직원(SK직원, LG직원…)인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노조를 결성하고 나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있는 것들이 더해… 우리나라는 재벌이 참 문제야!” 고객과 시민들도 함께 목소리 높여 분노하고 노동자들을 지지해주었다. 

재벌이 자기들끼리만 잘 살고 국민은 빈털터리 만들었다는 근거 중 하나가 대기업 비정규직 비율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2015년 3월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공시를 분석한 결과를 보자. 300인  이상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율은 39.5퍼센트다. 10대 재벌 비정규직 비율은 37.7퍼센트(간접고용 비정규직 30.7퍼센트, 직접고용 비정규직 7.0퍼센트)다. 간접고용만 놓고 보면, 300인 이상 500인 미만 기업의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이 4.3퍼센트인 반면, 1만인 이상 거대기업의 간접고용 비율은 32.9퍼센트다. 거대 재벌기업이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이며, 특히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의 선도주자임이 드러난다. 더욱이 ‘간접고용’에는 삼성전자서비스기사, 케이블·통신기사들 같은 사외하도급은 포함되어있지 않다.

오늘날 일자리와 고용안정, 임금수준을 놓고 ‘바닥을 향한 경쟁’을 유발해서 헬조선을 만든 이들이 누구인가? 한국사회 경제 권력의 정점, 바로 재벌이다. 재벌이 바뀌어야, 희망이 생긴다.
 
©삼성전화서비스지회
 

공동투쟁에 나서다

지난 3월 희망연대노조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삼성·SK·LG·태광·씨앤앰 기술서비스노동자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했다. 공동투쟁본부는 우선 올해 임단협 투쟁을 공동으로 진행한다. 일정 맞추고, 쪽수 불리면 땡인 형식적인 공동투쟁을 넘어 서로 공감하고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단단한 투쟁을 만들고 있다. 이에 발맞춰 70여개 노동사회단체들이 ‘진짜사장 재벌책임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을 결성해 슈퍼갑 재벌에게 당당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공동행동은 지난 20대 총선 기간엔 각 정당과 후보들에게 ‘간접고용 노동자 3대 의제질의서’를 보냈다. 첫째, 원청사용주의 하청노동자에 대한 직접교섭 의무를 제도화하는 것에 동의하는가. 둘째, 하청 쟁의시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 금지에 동의하는가. 셋째, 하청업체 교체시 원청에게 노동자 고용·근속·단협 승계 의무를 부여하는 것에 동의하는가. 이 질문들은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고 투쟁하며 부딪쳤던 문제들을 담고 있다.

일단 재벌 원청은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로선 직접 교섭할 통로가 없다. 해고든 임단협이든 원청이 나서야 해결되는데, 법적 책임이 없다며 뒷짐 지고 있으니 노동자들은 자꾸 장기 투쟁으로 내몰린다. 기껏 합법적 쟁의권을 얻어도,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으로 파업 효과가 줄어든다. 노동조합을 열심히 할수록 폐업이나 업체 교체를 빙자한 해고의 위험이 높아진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주와 광명·시흥의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 50여명이 해고 상태에 놓여있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소모적인 싸움을 반복할 순 없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이런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꿔내지 못하면,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투쟁은 도돌이표처럼 제자리로 돌아오거나 후퇴하고 말 것이다. 그 때문에 공동행동은 3대 의제질의서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3대 요구를 만들었다. 진짜사장 재벌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사회적 요구를 내걸고, 이를 쟁취하기 위한 활동을 펼치려는 것이다.
 

우리가 헬조선 고치자

4.13 총선은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을 확인시켜주었다. 좌절과 냉소에 길들여진 모두에게 한줄기 희망을 보여준 다행스러운 결과다. 하지만 이렇게 분출된 변화의 열망이 현실을 바꾸는 힘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럴만한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어떤 정치세력도, 사회운동도, 대중조직도 뚜렷한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어서다.
할 일은 분명하다. 대중이 느끼는 절망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이해하고 공감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노동조합과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몸소 실천하는 것이다. 내 삶과 헬조선을 바꿀 희망이 남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와 삼성전자서비스 기술서비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6월, 본격적으로 펼쳐질 공동투쟁에 뜨거운 지지와 연대를 보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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