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6/06 제17호

노조무력화의 서막,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 국장
 
어느 사무실로 보이는 배경. 직원들이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모으고 일렬로 서 있다. 한 직원은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쏟아져 나오는 울음을 감추려는 모습이다. 누가 봐도 앵글 밖의 누군가가 직원을 세워 놓고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는 광경이다.

5월 13일 언론에 공개되어 큰 충격을 주었던 이 사진은 지금 공공기관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막무가내 성과연봉제 도입

정부는 작년 노동개악 입법이 무산되자 노동개악 2대 지침(쉬운 해고 지침, 취업규칙 변경 완화 지침)을 발표해 현장에서부터 노동개악을 관철시키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지난 1월 22일 정부가 발표한 지침에 따르면 공기업은 6월까지, 준정부기관과 기타공공기관은 12월까지 전직원 대상 성과연봉제를 실시해야 한다. 3월 18일에는 저성과자 퇴출제 지침을 연내 도입하라는 지시도 내려왔다.

하지만 4월 중순까지도 도입 실적이 매우 저조한데다 새누리당 참패라는 총선 결과까지 나왔다. 그러자 청와대는 ‘노동개악 현장 관철’이라는 기조를 더욱 강화하여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부터 직접 챙기고 나섰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9일 직접 도입 실적을 점검하겠다고 발표하자 각 정부 부처는 공공기관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했다. 미도입시 인건비 동결 지침이 결정되었고 예산과 인력 불이익, 사업 축소 협박도 있었다. 기획재정부가 도입 과정에서 불법 논란이 발생해도 그 책임을 기관장에게 묻지 않겠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 기관장은 말 그대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고 있다. 4월 말을 지나며 노사합의 없는 이사회 일방 처리, 불법과 협박을 통한 노사합의 종용 등 각종 불법과 강압이 공공기관에 판을 치고 있다. 야당이 나서 불법 도입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공세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상황 변화가 없다면 5월 말 6월 초 대부분의 기관에서 이사회 일방 도입을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부문이 민간보다 성과변동급 비중 높은 이유

이러한 강공의 이면에는 지금 밀린다면 ‘식물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청와대의 위기감이 있기도 하지만, 이번 기회에 호봉제를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기업의 강력한 요구 탓도 크다. 임금체계 개편에 대한 경영계의 압박은 그 어느 시기보다 강력해 보인다. 왜 그럴까? 호봉제가 어째서 그토록 문제가 된다는 말인가?

흔히 공공부문은 민간에 비해 임금과 성과 연계가 약하다는 통념이 있다. 하지만 한국 공공부문 임금체계에는 성과주의가 민간 이상으로 도입되어 있다. 고용노동부 임금구성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민간부문은 전체 급여 중 성과에 따른 변동급여 비중이 5.8퍼센트, 공공부문은 6.4퍼센트다. 기관별 평가에 따른 성과급 제도, 개인 또는 부서에 따른 성과급 제도가 이미 10년 전부터 시행, 확대되어 왔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은 호봉제가 유지되고 고용이 안정적이라 실질적으로 호봉제가 가장 강력하게 적용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경우 3분의 1 이상이 호봉제를 연봉제로 대체한 상황이어서 민간에 비해 도입 비중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 문제를 민간에 비해 경직적인 공공부문의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으로 봐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민간을 포함한 전체적인 노동개혁의 맥락에서 바라 봐야 한다.
 
 

맥킨지도 ‘엉터리’라는 성과주의 임금체계

정부와 경영계나 호봉제를 공격하는 방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그첫째는 호봉제가 기업의 비용 부담을 가중시켜 장년층의 고용을 불안하게 하고 정규직 채용을 줄여 비정규직 확대와 청년실업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며, 둘째는 업무실적이나 능력과 무관한 보상체계이기에 ‘동기부여 효과’가 없고 공정성이 부족하여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첫 번째 주장은 별다른 이론적 근거나 실증이 없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가깝다. 호봉제나 노동조합과 같은 모든 제도를 경직적이라고 비판하고 시장과 기업에 의한 자유로운 임금 결정만을 해법으로 주장하는 극단적 시장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2015년 11월호, ‘불평등 원인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때문이라고?’ 참고)

두 번째 주장은 첫 번째 주장에 비해 꽤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것이 지난 수십 년 간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확대되어 올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이다. 하지만 점점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노동자의 의욕을 고취시키고 조직의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부정적 결론을 내리는 연구 결과가 늘어나며 그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특히 GE, MS, HP 등 한때 성과연봉제와 비슷한 제도를 선도적으로 도입했던 대기업에서 제도의 폐기가 이어지고 있다. 누구보다 많은 기업을 성과연봉제로 ‘전도’했던 세계적 컨설팅기업 맥킨지는 최근 “직원 성과평가라는 연례행사가 엉터리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평가에)시간만 잡아먹고, 지나치게 주관적이며, 동기를 부여하기보다는 동기를 잃게 하고, 궁극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진짜 목표는 노동조합 무력화

이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재평가하고 보완하려는 움직임이 있으나 여전히 대세 자리를 내놓진 않고 있다. 지난 5월 17일 국제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국제공공노련 연구소(PSIRU) 메리 로버슨은 표면적으로 내세웠던 목표가 달성되지 않고 있음에도 기업이 성과주의 임금체계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숨겨진 목표 달성에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즉, 성과주의 임금체계가 노동자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강화하고 상호경쟁을 통해 노동 강도를 높이며, 집단적 노사관계를 약화시키고 경영진의 재량권을 늘려 노동조합을 무력화하는 데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왜 혁신에 민감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민간 대기업은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는데 공공부문에서 오히려 성과연봉제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지도 이런 측면에서 설명 가능하다. 즉 경영진에게 성과연봉제의 의미는 즉각적인 비용 효율보다 조직 관리와 이데올로기적 효과가 더 크다. 

업무실적 평가에 임금과 고용이 연계되면 단체협약의 노동조건 결정력은 극히 미미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그 자리를 사용자의 인사권과 같은 경영권이 차지하게 된다. 무한경쟁, 공동체 파괴, 평가제도를 악용한 노조 탄압이 더해지면 노동조합 무력화는 불 보듯 뻔하다. 
 
 

시장중심 임금 결정을 노리는 정부

정부와 재계가 추진하고 있는 임금체계 개편은 개별 기업에서 사용자 권력의 극대화 뿐 아니라 전체 산업과 업종에서 사용자 권력의 극대화도 함께 목표로 하고 있다. 정부와 재계의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으로 성과주의와 함께 ‘직무 중심’이 함께 제시되고 있는 이유다.

직무중심 임금체계 개편은 주로 공공부문의 무기계약직 부문에서 앞서 추진되고 있다. 각 부처별, 기관별 무기계약직의 임금 수준과 체계의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직무를 기준으로 임금체계를 변경하고 상이한 임금수준을 조절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자의 실제 일과 직무등급을 연결하고 이에 따른 적절한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무등급과의 연결은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임금수준은 시장임금의 반영으로 결정되고 있어 문제다. 예를 들어 회계업무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들의 임금 수준을 비슷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으로 조절하는 식이다. 결국 노동조합의 결정은 배제된 채 시장 임금 결정이 그대로 합리화된다. 

결국 개별 기업에서는 사용자에 의한 임금결정권을 극대화하고 산업 차원에서는 시장의 임금결정권을 극대화하여 기업 수준과 산업 수준에서 모두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 현재 임금체계 개편의 진정한 목표다.
 

진정한 개혁을 위해

장기 불황이 예고되는 이 시점에 정부와 재계가 사활을 걸고 임금체계 개편을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유연성의 극대화,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통해 상시적 구조조정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작년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로 노동개악의 방아쇠를 당겼던 것처럼 올해에는 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가 그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저항 의지는 강력하다. 정부가 이사회 일방 의결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압박하고 있지만 공공부문 산별조직과 산하 조직들은 굴복하기는커녕 단결이 확대되는 분위기다. 6월 18일 공공부문 산별조직이 모두 함께하는 10만 명 목표의 대규모 도심 집회가 예정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6월 말~7월 초까지 쟁의권을 확보하여 주요 공공기관이 공동파업에 들어갈 것을 결의하고 그 시점과 전술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임금을 이슈로 투쟁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저지라는 수세적이고 부분적인 전선을 넘어 장기 불황 시대 재벌과 기업에 책임을 지우고 노동시장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며 노동자 전체가 함께 사는 대안을 요구하는 보다 공세적이고 전체적인 전선의 형성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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