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세계
  • 2016/07 제18호

올랜도 참사의 진정한 교훈

  • 임월산 공공운수노조 국제국장
 
6월 12일 새벽 오마르 마틴이라는 아프가니스탄계 2세 미국인이 플로리다주 올랜도 시에 위치한 나이트클럽에서 총기를 난사해 49명을 숨지게 하고 5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사상 최악의 총기난사 사건’, ‘911테러 이후 최대 규모 테러’로 불리는 이 참사의 함의와 대응책은 무엇일까?


미 정치권의 반응

참사 이후 미 대선 후보들은 사건에 대한 논쟁을 그들의 선거운동과 정책적 목표에 유리한 방향으로 통제하려고 경쟁에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과 민주당은 총기 규제의 필요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클린턴은 이 사건을 ‘테러 행위이자 증오 행위’로 규정하며 ‘테러리스트나 범죄자들의 손에 총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참사가 발생한 다음 주 로이터통신과 입소스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과반 이상의 공화당 당원을 포함해 약 70퍼센트의 미국인이 최소 온건한 총기 규제를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3년과 2014년의 조사에서 같은 입장이 60퍼센트 정도였던 것에 비해 증가한 수치이다.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도 이러한 여론에 일정한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의 규제 반대 노선에서 이탈하여, 총기가 테러범의 손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다소 수정했다. 그러나 ‘나이트클럽에 총기를 소유한 사람이 있었으면 대참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총기 소유권 옹호자로 자신을 내세워 민주당과의 차이를 강조하려 애를 쓰고 있다. 여론의 변화를 떠나서 매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기부하는 전미총기협회(NRA)가 총기규제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의미한 규제 법안이 가까운 시일 내에 통과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더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올랜도 참사를 급진적 이슬람 테러리즘의 위험성을 선전하기 위해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면 ‘모든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 ‘미국이나 동맹국에 대한 테러공격 사례가 있는 모든 나라로부터의 이민 금지’, ‘미국 내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감시 강화’ 등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오바마 행정부가 극단적 이슬람 테러에 대한 진지한 대책이 없고 클린턴은 ‘중동으로부터 이민자를 대폭 들어오게 하고 싶어한다’고 민주당에 대한 비난에 나섰다. 

클린턴보다 트럼프가 참사의 여파를 자기 이익으로 활용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여론조사에서 참사가 발생한 6월 12일에 트럼프를 14.3퍼센트포인트 차이로 앞섰던 클린턴은 트럼프와의 차이가 10.7퍼센트포인트로 감소했다.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주장에 대한 지지도 41.9퍼센트에서 45퍼센트로 증가했다. 초기에 ‘극단적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던 클린턴은 여론과 트럼프의 비판에 밀려 며칠 후 ‘극단적인 지하드 테러리즘 또는 극단적 이슬람을 막아야 하며 막을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배적 프레임의 한계  

클린턴과 트럼프가 사건 규정을 두고 대결하고 있지만 서로의 입장에는 공통된 점이 있다. 두 후보와 그들이 속한 정당 모두가 참사를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미국 사회 외부로부터의 위협이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적 위협을 ‘극단적 이슬람’과 ‘무슬림 이민자’라고 특정한 트럼프에 비해 클린턴과 민주당은 ‘지하드 테러리즘’, 혹은 ‘미국의 가치관에 대한 공격’과 같은 추상화된 용어를 쓰지만 양쪽 다 이 끔찍한 범죄가 미국의 본질에 반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사건의 경과가 밝혀지기 전에도 미국 언론들은 이미 ‘테러리즘’과 ‘극단적 이슬람’을 주요 동기로 보도했고 오마르 마틴과 IS와의 관계 추적에 나섰다. 그가 IS와 어떠한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 후에도 이 프레임은 크게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가장 직접적으로 느끼는 집단, 즉 유색인 성소수자들은 주요 언론과 정치권의 프레임에 분노하면서 ‘테러 행위’ 규정을 비판하고 사건의 국내적인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참사가 근본적으로 미국 사회에 내재된 구조적 인종주의와 성소수자 혐오의 표출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사건 이후 정치권의 논쟁과 대응에서도 인종주의와 성소수자 혐오가 다시금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색인과 성소수자의 문제를 다루는 온라인 잡지 《컬러라인스(Colorlines)》가 지적했듯이 “안타깝게도 이번 참사는 애플파이만큼 미국적인 것”이다.


보도되지 않은 사실들

‘미국적인 것’으로 사건의 성격을 설명하기 위해서 유색인 성소수자단체들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몇 가지 사실에 주목한다.   

주요 언론은 사건이 발생한 나이트클럽 ‘펄스’가 성소수자 전용 클럽인 것을 언급하지만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라틴계 성소수자들이었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6월 12일은 이 클럽의 ‘라틴 나이트(라틴계 고객을 위해 특정된 행사)’ 날이었다. 인종차별·성차별적 발언을 일삼았다고 알려진 오마르 마틴이 ‘라틴계 성소수자’를 특히 증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날 학살을 당한 사람들이 미국 사회의 ‘일반’ 공공장소에서 성소수자로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고 라틴계 미국인으로서 인종주의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곳을 찾았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성과로 한국에 비해 미국 성소수자들은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미국 사회에서도 일상적이다. 참사에 표면적인 애도를 표한 많은 정치인들이 지금도 성소수자들의 자유로운 결혼을 막고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고용이나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들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개인적 폭력행위들이 벌어진다. FBI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증오범죄의 20퍼센트 이상은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다.

유색인에 대한 폭력도 만연하다. 인종차별적 폭력의 가장 제도화된 형태는 유색인들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과 폭행이다. 언론은 오마르 마틴의 IS 추종 맹세를 크게 주목했지만 뉴욕경찰 복장을 하고 찍은 페이스북 사진과 그가 경찰이 되려 했던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스스로의 행동을 지하드의 일환으로 봤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극단적 이슬람뿐만 아니라 미국 경찰의 인종주의와 폭력성이 또 하나의 영감이었을 수 있다. 
 
ⓒ오마이뉴스
 

인종주의의 재생산

또한 언론 보도와 달리 이번 사건은 미국 본토의 사상 최대 총기난사 사건이 아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낳은 총기난사 사건은 1890년에 미국 원주민을 미국정부가 지정한 ‘보호구역’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사우스다코타주 운디드니 마을에서 발생한 원주민 대학살이었다. 수백 명의 원주민이 사살된 운디드니 학살은 미국의 서부 확장과 건국의 토대가 된 사건이며, 미국이라는 국가의 인종차별적 뿌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북미대륙의 식민화 시대부터 정착 백인 식민주의자들은 원주민을 ‘야만인’이라 쫓아낸 후 흑인은 ‘노예’로 속박했고, 나중에는 아시아인과 남미인을 ‘외국인’과 ‘불법’으로 배제했으며, 현재는 무슬림을 ‘테러리스트’로 내몰고 있다. 당연히 운디드니 학살은 테러 행위로 불리지 않는다. 

1년 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시의 한 흑인 교회에서 발생한 총기난사도 테러리즘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이 사건의 가해자는 백인우월주의를 표방하는 백인이었다. 911테러 이후 백인우월주의와 같은 극단주의 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백인이 살해한 사람은 이슬람극단주의자의 테러에 의한 희생자 숫자보다 2배가량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백인의 범죄는 테러로 규정되지 않고 ‘이슬람 테러리즘’만큼 언론이나 정치권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올랜도 참사의 국내적 요인에 눈을 감고 ‘테러리즘’으로만 규정하는 것은 의도하든 안하든 결국 정치적인 목표에 복무한다. 미국의 세계패권을 떠받치는 외교정책을 정당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국내 이민자와 유색인과 ‘안보’에 위협이 되는 모든 집단에 대한 감시의 빌미가 되는 것이다. 

유색인과 성소수자들은 이미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참사 이후 유색인 거주 지역과 성소수자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테러방지부대가 배치돼 무슬림뿐 아니라 모든 소수자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 총기규제만으로는 경찰의 군사화와 제도화된 차별을 해결할 수 없다고 활동가들은 지적한다.


한국에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일부 진보언론과 단체들이 이미 지적한 바, 극단적 이슬람 테러리즘은 미국 외교정책의 결과이다. 그러나 이것이 올랜도 참사의 주요 교훈은 아니다. 비슷한 비극을 방지하려면 미국 사회의 구조화된 인종주의와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부터 모색해야 한다. 

인종주의와 성소수자 혐오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비록 올랜도 같은 총기난사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한국에서도 이주민과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은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출입국의 단속추방이라는 제도적 폭력이 두려워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폭언과 폭행에 저항하지 못한다. 수많은 성소수자들은 가까운 가족부터 사회 전반에 이르는 경멸을 두려워해 1년에 단 한 번 퀴어 퍼레이드에 나가 보수단체의 증오로 포위된 채 순간적인 자유를 찾아야만 한다. 이들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일상적·제도적인 폭력에 맞서 같이 싸우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것이 올랜도 참사가 우리에게 던져주는 진정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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