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책보다
  • 2016/07 제18호

문화대혁명, 한 차례의 민주수업

조정로, 《민주수업》

  • 김정래 사회진보연대 사무국장
 
《민주수업》은 문화대혁명 당시 ‘조반파’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작가 조정로(차오정루)는 중국 문단에서 저층문학의 개척자로 불린다. 저층문학은 개혁개방 이후 노동자·농민(무산계급)이 사회적 생산과정과 분배구조에서 철저히 소외된 하층계급으로 전락해, 더 이상 사회주의 사회의 주체세력으로 표상되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낸다. 《민주수업》은 오늘날 중국이 갖고 있는 사회문제의 근원을 문화대혁명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는다.
 

문화대혁명의 발발과 좌절

문화대혁명을 상징하는 구호는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역에는 정당한 도리와 이유가 있다)이다. 그러면 과연 이 시기 ‘조반파’는 누구였는가가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본격적인 조반운동이 시작되기 전 혈통론에 기반하여 교사나 지식인을 탄압한 문혁 초기 홍위병들을 보통 노(늙은)홍위병(보황파 또는 보수파)이라 부른다. 노홍위병들은 당조직의 지지를 받으며 결성되었으며, 실제로는 공산당 고급 간부의 자제들이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6년 가을 이후 등장하는 실질적인 조반파는 사회주의 정권 수립 이후 당과 대중 사이의 모순을 해소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던 대중운동 조직을 말한다. 출신 성분, 역사 문제로 탄압받았던 세력이 조반파의 주요 활동 인자였다. 이처럼 ‘노홍위병’들과 ‘조반파’는 명확한 대척점에 서 있는 관계라 할 수 있다. 조반파를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쟁점은 문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직접적으로 연관된다고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은 혁명 이후에도 낡은 국가장치와 경제적 토대가 바뀌지 않았다는 문제인식에서 출발했다. 마오쩌둥은 ‘당내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당권파’(주자파: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들의 영향력을 제어하고, 문화대혁명의 방향을 전환시키기 위해 개입한다.

문화대혁명의 강령 〈문혁16조〉의 핵심은 대중에 의한 관료의 직접 선출과 직접 소환, ‘대중 스스로에 의한 해방’이라는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는 당 중심의 위로부터의 운동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운동, 즉 “대중 스스로 하라”의 방식으로 혁명의 방향을 전환시켰다.

이후 문화대혁명은, 세력들 간의 대립이 격화되자 당을 중심으로 ‘질서의 길’로 들어서고, 대중운동을 봉쇄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가장 먼저 ‘파리코뮌 원칙’을 폐기하고, ‘좌파 지지’를 명분으로 군이 개입한다. 또 이단사상들을 ‘반당=반사회주의=반혁명’으로 규정해 탄압한다. 1968년 여름 이후에는 홍위병이 해체되고, 비판받고 무너진 당 관료 대부분이 부활한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해방하고, 대신 될 수 없는 혁명”이라는 파리코뮌적 구호는 “노동자계급이 일체를 지도한다”로 대체된다. 이처럼 당과 군이 운동을 주도하는 상황은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의 한 순환이 마감했음을 의미했다.

문혁은 ‘새로운 정치적 주체’로서 전면에 등장한 대중들이 어떻게 ‘낡은 구조’를 변혁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데 실패했다. ‘주자파’는 낡은 토대의 담지자인 동시에 새로운 국가장치의 담지자로 이해된다(‘구조의 의인화’). 문제는 ‘구조적 문제’를 ‘주자파’로 의인화하면서, 이들을 적발하고 비판·개조하는 것을 지상 과제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문혁의 또 다른 문제는 ‘당’으로 집약된다. 당과 대중 사이 모순이 격화되면서 마오쩌둥은 결국 대중운동의 ‘무질서’보다 당의 ‘질서’를 택했다. 이는 사회주의의 모순을 해결하고 ‘계속혁명’을 하기 위해 대중운동(조반파)을 지지하던 마오와 당이 당에 대한 대중운동의 공격이 시작되자, 대중을 억압하게 된 역설적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 대중의 해방은 대중 스스로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문혁의 초기 급진적 테제는 전복되고 만다.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문화대혁명은 국가-당 정치(제도/구조)에 갇히지 않는 대중정치의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대중의 자율성과 그것을 억압하는 구조를 이어줄 이념적·실천적 고리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좌절되고 만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민주수업》은 문혁 시기 조반파의 실천과 사고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이면서, 동시에 현재적 함의를 던져주는 작품이다.

소설은 과거를 회상하는 남성 화자(조간사)와 여주인공(소명)의 연애 이야기로 전개된다. 하지만 두 인물은 각자의 위치에서 문혁을 다르게 경험한다. 조반파 활동가 소명의 이상주의와 좌파 지지 군인 조간사의 현실주의 간의 대립, 당을 대표하는 정치위원과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지식인(류사리: 소명의 아버지)의 간극은 결코 메워질 수 없는 정치적 대립으로 드러난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른 여주인공 소명의 고민과 질문은 실제 문혁의 전개과정에서 조반파가 봉착했던 난관이었다.

소명은 T시에서의 조반파 활동 초기, 중앙에서 파견된 당 공작조에 의해 ‘어린 우파’로 찍히면서 박해 당한다. 하지만 소명은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말하고, 우리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한단 말인가?”(96쪽)라는 베이징 조반파의 연설에 동조하면서 견실한 활동가가 된다.

그러다 좌파 지지 명분으로 해방군이 등장하고, 비판받았던 당권파들이 복권된다. 소명은 스스로에게 말한다. “인민은 언제든 불합격 받은 지도부를 소환할 수 있다. 이게 바로 파리코뮌의 가장 매력적인 정신이다.”(125쪽)

방향과 목표를 상실했다고 느낀 소명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 감정과 혁명적 대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조간사는 ‘좌파 지지’라는 현실적 입장에서 소명의 혁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진심을 끝내 이해하지 못한다. 석관문촌으로 하방(중국에서 당 ·정부 ·군간부들의 관료화를 막기 위하여 실시한 운동)하게 된 소명은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죽음의 수난을 기꺼이 받아들인”(332쪽) 혁명 원로들의 이야기를 통해 반성적 성찰로 나아간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게 되는데 이때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죽음에 감춰진 진실을 마주한다. 한때 부정했던 아버지가 관료계급의 부당함에 맞서면서 지속적으로 발언(조반)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 차례의 민주수업’

이제 소명은 아버지 류사리를 ‘반동’, ‘나약한 지식인’이 아니라 문혁 과정에서 고군분투한 ‘인민’의 한 사람으로서 역사의 무대에 진입시키려 한다. 그는 류사리에게도 ‘조반의 권리’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한다. 부친의 수난을 개인사가 아니라 역사의 현실로 마주하면서 혁명의 비극 속에서 ‘민주’를 되살린다.

조정로는 다큐멘터리 영화 <팍스콘: 하늘에 발을 딛는 사람들>의 제작에 참여해, ‘혁신’과 ‘창조’의 상징인 애플의 중국 협력업체 팍스콘 노동자들이 기계의 부속품처럼 취급되고 있는 지옥 같은 현실을 고발한 바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 ‘민주’에 대한 질문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문혁의 현재성은 오늘날 노동자들이 처한 수많은 난관과 고민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한 주인공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아마도 그것이 바로 한 차례의 민주수업이었을 것이다. 칠판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신이 자신을 교육한다.’”(47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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