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08 제19호

밖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안전과 노동조합

  • 구준모 편집실장
 
한국 사회에서 간접고용은 외환위기 이후 크게 확대되었다. 한 공장 내에서 원청 정규직과 함께 일을 하는 사내하청 노동이 사용되었으며, 부품 조달이나 수리와 같은 업무의 외주화도 일반화되었다. 원청 사업주는 인건비를 줄이는 동시에 책임은 하청업체에게 떠넘길 수 있게 되었다. 또 하청업체 간의 경쟁을 이용해 비용을 줄이고 관리도 수월히 할 수 있다. 

그러나 외주화는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을 감내하고, 위험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도록 만들었다. 오늘날 외주화된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재해의 위험을 위험의 전가, 수용, 증대로 파악하고 이에 맞서는 노동조합의 대응을 살펴보자.
 

위험의 전가와 산재 은폐: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

조선업 현장에서 위험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전가되며, 발생하는 산재 사고도 체계적으로 은폐된다. 조선업종은 사내하청이 가장 많은 산업이다. 9대 조선소에 종사하는 하청 기능직 노동자의 수는 1990년 7360명에서 2012년 9만 342명으로 12배 증가했다. 반면 원청 기능직 노동자의 수는 같은 시기에 3만 4701명에서 3만 5989명으로 변화가 거의 없었다. 이에 따라 원청 기능직 대비 하청 기능직 노동자의 비율은 1990년 21퍼센트에서 2012년 251퍼센트로 늘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생산 작업의 60퍼센트 이상을 하면서 조선업의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조선업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취부(용접 전에 조립물을 맞추고 부분 용접 등으로 고정시키는 작업), 용접, 사상(용접 부위를 그라인더로 다듬는 작업), 도장과 같은 고강도 작업을 주로 담당한다. 반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노동강도가 낮은 작업 검사나 시운전 등을 맡는 경우가 많으며, 도장 같은 업무의 경우에도 비교적 유해성이 없고 쉬운 부분을 담당한다. 

그러나 강도 높은 노동으로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작업장 내 안전보건제도의 보호망에서도 벗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매월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안전보건교육은 교육을 했다는 ‘싸인’만 형식적으로 받는 식으로 진행된다. 작업장을 관장하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지휘·감독하는 원청은 안전교육을 방기한다. 원청이 직접 안전보건교육을 실시할 경우 불법 파견이라는 법적 시비가 붙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산재 사고를 당해도 ‘공상 처리’(국민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회사가 납부하는 방식)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내하청 노동자 입장에서 산재처리를 요구할 경우는 ‘산재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업체에 재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내하청 업체는 원청의 하청업체 선정에서 탈락하지 않으려고 산재를 은폐한다. 1년에 공식적인 산재사고가 2~3건 발생하면 물량 재계약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앰뷸런스가 아니라 포터 트럭 짐칸에 실어서 병원으로도 옮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위험의 수용과 성과급: 삼성전자서비스 건당 수수료

삼성전자의 수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의 노동자들은 이중의 간접 고용 계약 속에 일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삼성전자서비스와도 직접 고용관계에 있지 않고 각 지역의 서비스센터에 소속되어 있다. 해당 노동자들은 기술직이자 서비스직의 성격을 가지고 고객들을 상대한다.

비교적 작업 위험이 낮을 것 같은 삼성전자서비스에서도 매년 산재 사망자가 발생한다. 대부분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다가 추락사하는 경우다. 지난 6월 말에도 이런 사고로 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에 대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건당 수수료 제도가 문제의 구조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의 월급은 기본급과 성과급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급은 130만 원에 불과하고, 한 달에 60건 이상의 수리를 완료하면 수리 건수와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된 건당 수수료를 성과급으로 받게 된다.

일감이 적은 달은 기본 수리 건수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에어컨 수리가 몰리는 7~9월 달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이럴 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야 비수기를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건당 수수료 방식의 성과급 체계는 노동자 스스로 더 많은 일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이런 작업환경은 조금이라도 더 빠른 일 처리를 위해 노동자들이 위험을 스스로 수용하게 만든다.
 
 

위험의 증대와 구조적 취약성: 화물노동자의 과적, 장시간 노동

법적으로 자영업으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인 화물노동자 역시 이중의 간접고용 구조하에 일하고 있다. 화물 일감을 주는 화주가 있고, 이들로부터 화물운송을 하청 받는 운송업체나 주선업체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직접 운전해 화물을 옮기는 화물노동자들이 있다.  

화물노동자들은 화물차 짐칸의 구조를 변경하거나, 짐칸 면적보다 더 큰 짐을 싣거나, 중량을 초과하는 등의 방법으로 과적 운행을 한다. 위법적인 과적의 실제 행위자는 화물노동자들이지만 이들이 과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화주의 압박 때문이다. 

화주나 운송회사들은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과적을 강요한다.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화물을 옮기는 것이 이들이 수익을 높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화물노동자들이 화주의 과적 요구를 거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랬다가는 일감이 떨어져 배를 곯게 된다.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25톤 트럭의 경우, 화물 무게가 12톤 늘어나면 제동거리는 30미터나 늘어난다. 또 과적 차량은 무게 중심이 높아 전복사고 위험이 60퍼센트나 높아지고, 각종 돌발 상황에서 운전자가 차량을 조작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가운데 4명이 화물차 사고에 의한 것일 정도로 과적의 위험성은 매우 크다. 

화물노동자들이 과적과 장시간 운전을 감내하는 것은 화주나 운송사의 강요 외에도 낮은 운송료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조사에 따르면 화물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일일 12시간을 일한다. 반면 월평균 순수입은 180~200만 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시간당 소득으로 따졌을 때 법정 최저임금에 훨씬 미달하는 3600원(2012년)에 불과했다. 이런 구조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일감을 따내기 위해서 더 긴 노동시간과 더 많은 화물이라는 위험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장시간 노동, 과적 운행으로 발생하는 위험은 화주나 운송사가 아니라 화물노동자에게 떠넘겨진다.
 

노동조합은 노동자 안전을 향상시킬 수 있나

최근 노동조합 운동이 제기하는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나 ‘생명안전 업무의 외주화 금지’는, 그것을 달성할 경로가 다소 불분명하다보니 입법화에 초점이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제도 개선은 운동의 성패에 따라 달성할 수 있는 결과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일차적으로는 노동조합 스스로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운동을 벌이는 게 중요하다.

조선업에서 사내하청이 확대되는 과정에는 사측과 정규직 노동조합 간의 타협이 있었다. 원청 노동자들은 정규직의 숫자를 유지하는 대신 사내하청의 확대를 묵인했다. 고용에 대한 불안, 상대적으로 고령화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는 더 어렵고 힘든 일을 하청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데 일조했다. 조선업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조직화를 지원하는 일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2009년 산업안전보건 동향조사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노조 설립 여부”가 재해율 차이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제조업에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고 비제조업에서는 두 번째로 중요한 요인이었다. 즉 더 많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노동권을 확대하는 것이 노동자 안전을 향상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기업 내의 산업재해 대응 패러다임을 ‘처벌’에서 ‘원인규명’으로 전환해야 한다. 처벌 중심의 대책은 노동자나 하청업체와 같은 구조적 약자를 손쉬운 희생양으로 삼고, 사고의 진정한 원인에 대한 규명을 어렵게 만든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안전에 대한 관행 변화에 노동조합이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와 화물 노동자의 경우에는 불합리한 임금 체계를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보다 안정적인 수입은 노동자가 무리한 작업을 거부·회피할 힘을 부여한다. 또, 보다 적은 노동시간이 작업 집중도를 향상시켜 산업재해를 낮춘다.

따라서 화물연대가 ‘표준운임제’를 핵심요구로 삼아 투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호주의 안전운임제 사례에서 보듯 이런 제도는 안전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호주 사례는 2016년 5월호 특집 참조). 건당 수수료 제도 폐지와 기본급 인상을 요구하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대안(2015년 3월호 ‘위기의 삼성, 민주노조의 도전’ 참조)도 마찬가지다. 

또한 이중의 간접고용 관계 속에 있는 노동자들은 대기업 원청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투쟁이 중요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삼성전자의 책임, 화물 노동자들에 대한 풀무원이나 CJ대한통운의 책임을 묻는 것은 노동자 안전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구조에 대한 투쟁이다.

이런 노력이 모인다면, 자기 현장에서의 안전을 넘어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의 변화를 살피고 대응책을 찾는 것, 비정규직을 조직하는 것, 노동자 간 격차를 줄이고 단결을 도모하는 것 등, 관성을 깨고 노동조합 본연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 안전 문제에서도 중요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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