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건강과 사회
  • 2016/09 제20호

당신의 실손의료보험은 안녕하십니까?

  • 채수용
 
실손의료보험 가입자들은 올해 요금 폭탄을 맞았다. 삼성화재 22.6퍼센트, 현대해상 27.3퍼센트 등 보험료 인상률이 어마어마하다. 보험사들은 ‘비급여 진료의 무분별한 증가로 손해율이 높아져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언론에선 ‘실손의료보험을 통한 과잉진료 때문에 선량한 가입자들이 피해 받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실손의료보험 문제가 부상되자, 지난 6월 금융위원회는 획일적이고 표준화된 보장 구조를 탈피해 ‘기본형+다양한 특약’ 방식으로 실손의료보험 상품 구조를 개편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기본형 가격은 낮추고 과잉진료 항목들에 대해 특약 가입을 유도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높이고 선량한 가입자들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대책은 보험료 인상에 대한 해법이 아니다. 되려 민간보험 사업 확장으로 귀결될 게 뻔하다.
 

급격한 성장

병원비는 크게 ‘급여(건강보험 보장)’와 ‘비급여(건강보험 미보장 및 환자 전액부담)’로 구분된다. 급여의 경우에도 일정 비율은 본인이 부담한다. 실손의료보험은 특정 질병 발생 시 약정된 금액을 보상하는 게 아니라, 건강보험 급여 외에 실제로 발생한 의료비용 중 80~90퍼센트를 보상하는 보험이다. 쉽게 말해 병원에서 내가 직접 지불한 돈을 보상해준다는 의미다.

실손의료보험 성장의 배경엔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려는 정부와 수익성을 더 높이려는 보험업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줄곧 60퍼센트 초반을 맴돌았다. 100만 원의 의료비용이 발생하면, 40만 원은 환자가 부담하고 60만 원은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것이다. 이는 OECD 평균 보장률(약 80퍼센트)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낮은 수치다. 하지만 정부는 보장성을 강화하기보다는, 민간의료보험 확대를 통해 공적 재원 마련의 부담을 줄이면서 낮은 보장성을 보충하려는 정책을 일관되게 취해왔다.

그 방편으로 도입된 것이 실손형 의료보험이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에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앞다투어 가입하며 실손형 의료보험은 본격 출시된 지 10여년 만에 가입자가 3400만 명을 넘어설 정도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아동이나 노인층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성인이 가입한 셈이다.

하지만 지금의 보험료 인상률로는 보장은커녕 보험 가입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최근 3년의 평균인상률(7.1퍼센트)을 적용했을 때, 10년 뒤 보험료는 2배가 되며, 20년 뒤엔 4배 30년 뒤엔 8배가 될 것이다. 초기 보험료가 월 2만 원이라고 하더라도 이후의 부담은 매우 높아진다. 실제 실손의료보험 가입 5년 유지율은 48.5퍼센트로 5년 이내 절반 이상이 해지하고 있으며, 10년 유지율은 14.7퍼센트로 이보다 더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려진 진실

건강보장 문제를 손 안 대고 코 풀려던 정부의 얄팍한 꼼수에도 불구하고, 실손의료보험의 성적은 낙제점이다. 이는 민간보험사의 비효율적 구조와 과도한 수익 추구에서 기인한다. 보험사들은 손해율이 높아(136퍼센트)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지만, 2015년 기준 보험사 순이익이 전년보다 13퍼센트 증가한 6조 3000억 원이라는 사실은 이 ‘손해율’이 실제 적자가 아니란 것을 말해준다. 어떻게 된 것일까?

통상 보험사는 관리운영비(설계사 수당, 인건비, 광고비, 판촉비 등)와 주주배당금 등의 이윤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순보험료)을 토대로 손해율을 계산한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의 관리운영비는 1.3퍼센트인 반면, 보험사의 보험료 대비 사업비 비중은 27.7퍼센트다. 보험사들이 사업비로 얼마나 과도한 지출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고스란히 가입자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더구나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내며 누구든 필요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과 달리, 민간보험은 철저히 이윤 추구의 원리를 따른다. 우선 민간보험은 보험금 지출이 적은 젊고 질병이 없는 사람만을 선별적으로 가입시켜 건강불평등을 야기한다. 평생의 의료비 중 절반 이상을 사용하는 65세 이상 노인이나 만성질환자는 보험 가입이 어렵거나 혜택을 받기 어렵게 만든 것이다. 노인의 건강보장을 위해 2014년부터 노인실손의료보험 상품이 허용되었지만, 실태조사 결과 질병이나 기왕증이 없는 건강한 노인만이 선별적으로 가입할 수 있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

실손의료보험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90퍼센트 이상의 병원이 민간에서 운영되는 한국 특유의 의료공급체계이다. 급여항목은 건강보험이 가격을 통제하는데, 의료기관 입장에서 병원이 자율로 정할 수 있는 비급여 항목의 가격을 높게 책정하거나 그 진료량을 늘리면 시장 형성과 이윤 추구가 쉬워지는 것이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이유는 바로 비급여 의료비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급여 영역은 보험사들의 이윤 획득에 유리하다. 이처럼 보험사와 민간병원은 비급여라는 먹잇감을 통해 서로의 이윤 추구를 위한 자양분을 제공하는 것이다. 실제 비급여 영역에 대한 의료비용의 장벽이 낮아지자 의료 이용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민간병원과 보험사의 이런 이해관계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몇 년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등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보장성은 더욱 낮아졌다. 비급여 진료를 급여로 전환하는 것 이상으로 비급여 진료 자체가 늘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이 보험사와 민간병원의 주머니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건강보험 와해 프로젝트

보험자본의 궁극적 목표는 현재의 국민건강보험 역할을 대체해, 모든 의료 과정을 통제하는 것, 즉 건강보험의 완전한 장악이다. 실제 미국은 이러한 ‘관리의료’가 만연해 있다. 관리의료 하에서 의료기관과 네트워크를 구축한 보험회사는 수익성과 비용 절감 논리로 자사 보험가입자들의 의료 과정을 통제한다.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보험회사의 네트워크에 속해있지 않는 한 환자를 유치할 수 없기 때문에 보험자본의 이익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는 기우가 아니다. 2005년 유출 공개되었던 ‘삼성생명 내부전략보고서’에는 ‘실손의료보험→병원과 연계된 부분경쟁형→정부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을 계획으로 명시해, 한국 보험자본이 관리의료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계획을 내놓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앞서 말했듯 실손의료보험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은 상태를 선호한다. 낮은 보장성 때문에 값비싼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은 의료이용 시 체감비용 부담이 줄어들어, 국민건강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줄거나, 건강보험료 인상을 추가적 부담으로 인식해 반대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축소될수록, 시장에서 민간보험의 역할은 커질 것이다. 

고소득층일수록 소득에 따라 보험료가 책정되는 건강보험보다는 보장범위가 같은 실손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게 이득이므로, 질 낮은 건강보험을 탈퇴하기 위한 요구가 강해질 것이다. 이는 고소득층을 위한 민간의료보험 상품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질 낮은 민간의료보험 상품으로의 분리를 낳고, 의료비 상승과 건강불평등 심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병원에서의 인력감축, 비정규직 양산, 노동강도 강화,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 역시 불 보듯 뻔하다.
 

우리 건강권의 미래

민간보험사의 이해를 대변하는 보험연구원(KIRI)은 ‘기본형+특약형으로 상품구조 개선’과 ‘비급여 관리체계의 구축’을 실손의료보험의 제도 개선 방안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중 전자는 이미 정부 정책으로 수용되었다. ‘비급여 관리체계의 구축’은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을 심사해온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민간보험사가 활용할 수 있게 하자는 게 골자다. 이를 통해 보험사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는 비급여 비용은 통제하고, 수익성을 높이는 비급여는 활용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는 모든 의료행위를 통제하려는 보험자본의 궁극적 목표를 향한 발판이다. 국민의 세금을 보험자본의 원활한 이윤 추구를 위해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급여를 심사해 지출을 줄인다고 보험료가 인하될 리 만무하다. 6조 원이 넘는 수익을 거두면서도 막대한 보험료 인상을 단행하는 보험사에 대한 통제가 더욱 시급하다.

실손의료보험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2년에도 실손의료보험료의 지나친 인상이 문제가 되어 정부가 대책을 내놓은 바 있으나, 실효성을 거두지 못했다. 현재 17조 원의 건강보험 흑자가 쌓였지만 정부는 이를 통해 보장성을 확대하기보다 민간보험사의 영리 추구를 돕고 있는 셈이다.

보험에는 지급률이라는 개념이 있다.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 비해 얼마가 되돌아오는가를 보여주는 수치다. 국민건강보험의 경우 지급률이 110퍼센트인 반면, 실손의료보험은 50~80퍼센트에 불과하다. 1만 원을 내고 5000~8000원밖에 돌려받지 못하는 것이다.

실손의료보험으로는 우리의 건강이 조금도 나아질 수 없다. 정부와 보험자본의 공모를 폭로하고, 건강보험이 보다 강화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확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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