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12 제23호

'박근혜를 만든 체제'를 해체하라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노순택
 

우리는 무엇에 분노했나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가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을 아무 가식 없이 날 것 그대로 보여줬다. “이러려고 공부했나?” 촛불집회 발언 영상으로 화제가 된 대구 여고생의 한탄처럼, 노력보단 부모 재산에 따라 인생이 좌우된다는 건 인정하긴 싫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최순실과 정유라를 둘러싼 논란을 통해 부정할 수 없고, 벗어날 수도 없는 부익부빈익빈의 구조에 분노했다. 
 
박근혜 정권은 공권력을 이용해 두르려 패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여긴다. 따져보면 출범부터 그랬다. 국정원 대선 댓글 사건의 용의자를 갑자기 감금당한 피해자라고 우겼고, 서울경찰청장은 수사 축소를 지시했으며, 검찰은 적당한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집권 4년 내내 검찰, 경찰, 국정원의 공안몰이와 정치개입이 계속됐다.
 
국정농단의 물주가 재벌로 밝혀진 후 국민들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절망했다. '갑 중의 갑'이 재벌이다. 정치인도, 언론도 재벌 앞에만 서면 껌뻑 죽는다. 우리는 5년 임기 대통령을 뽑지만, 재벌 총수들은 임기 없이 영원히 경제의 군주로 군림한다. 재벌에게 대통령과 비선실세란 5년 간 이용할 임시직에 불과하다.
 
'박근혜 퇴진 요구'가 대세인 와중에 정부는 북한 정보 공유를 내용으로 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을 멋대로 체결해 시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과의 군사협정이란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박근혜가 협정 체결을 서두른 건 보수세력의 반북 정서를 자극해 다시 한 번 지지세력을 모아보자는 속이 뻔히 보이는 꼼수다.
 
“퇴진할 만큼 잘못한 일은 없다.”, “촛불은 바람 불면 다 꺼진다.” 
청와대와 친박 김진태 의원이 내뱉은 말이다. 국민에게 입 막고 굴종하라고 강요하는 건 박근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최순실 게이트에도 드러나듯 '박근혜를 만든 체제'는 민주주의와 공존하기 어렵다. 부익부빈익빈, 공안, 재벌, 평화위협 체제의 근본에 입막음 굴종 체제가 있다.
 
요컨대, 우리가 두 달간 경험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점에서 박근혜와 최순실 두 사람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게이트의 핵심 사건들의 배경인 부익부빈익빈, 공안통치, 재벌, 굴종, 평화 위협의 문제는 역대 정권에서도 형태만 달리해 국민들을 괴롭혔었다. 현 사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박근혜 퇴진과 함께 박근혜를 만들어 낸 체제들을 해체하는 운동이 있어야만 한다.
 


슈퍼갑의 나라: “재벌 체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재벌 게이트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재벌들이 깊이 관계되어 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박근혜 게이트로 확대된 계기도 전경련 모금 사건과 박근혜의 8대 총수 독대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재벌의 가장 눈에 띄는 문제는 기업집단 경영 전체가 총수에 의해, 총수를 위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번 게이트에서 눈에 띄는 재벌은 삼성, CJ, 롯데인데, 이 셋은 각종 편법과 불법을 통해서만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폭로된 바에 따르면 삼성은 국민연금이 이재용 경영권 승계를 돕도록 최순실에게 돈을 퍼부었다. 실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당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총수 일가 편에 섰다. CJ는 이재현 회장 특별사면을 위해 최순실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장은 선대와 후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만들어진 비자금 때문에 구속됐다. 형제의 난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롯데 역시 결과적으로 보면 경영권 승계와 관련이 깊다. 신 회장은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비자금을 조성하다 검찰 수사를 받았다. 
 
재벌의 또 다른 문제점은 부의 독식이다. 재벌은 기업 내에서 이익을 독점하고, 기업과 가계로 구성된 국민경제에서도 부를 독식한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 모든 기업이 축적한 이익(이익잉여금) 중 80퍼센트가 30대 재벌 소유다. 지난 10년 간 30대 재벌의 소득증가율은 가계 소득 증가율의 세 배 가까이 된다. 
 
재벌은 부를 독식하는 재주만큼 손실을 사회화하는 재주도 으뜸이다. 한국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100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으로 재벌의 부실채권을 해결하고 구조조정을 지원했으며, 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도 수출재벌을 지원한다고 고환율 통화정책과 법인세 인하 재정정책을 함께 사용했다. 
 
2015년부터 시작된 기업 구조조정에서도 정부는 재벌 대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을 지원하기 위해 해고를 유연화 했다. 이 모든 정부 정책은 결과적으로 재벌의 손실을 국민경제에 떠넘기는 것이다. 정부가 떠안은 부실채권, 법인세 인하로 발생한 재정적자, 대기업 고용감소로 인한 가계소득 감소는 모두 국민이 언젠가 해결해야 한다. 왜 이런 문제들이 발생했을까? 
 
첫째, 가족이 경영권을 독점하며 경영권 승계에 기업의 모든 것을 거는 족벌경영체계는 수출 대기업 주도 성장 전략과 이를 정치권력 유지에 이용해 온 한국의 오래된 정치, 경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승만 정권은 해방 후 일본인 재산을 소수 부자들에게 나눠줬고 그 대가로 통치자금을 챙겼다. 박정희 정권은 해외차관, 베트남전 용병참가, 기생관광 등으로 모은 달러와 병영적 노동통제로 착취한 자본을 중화학공업화를 위해 소수 기업에 집중시켰다. 1980~90년대 3저 호황과 문어발식 확장으로 재벌은 덩치가 커졌는데, 총수는 추가로 자본을 출연하지 않고 기업집단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순환출자와 비자금 조성 등의 기형적인 소유 형태를 심화시켰다. 수출재벌 주도 성장 외 별다른 성장 전략을 찾을 수 없었던(그리고그럴 의지도 별로 없었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은 이들의 초법적 행위를 눈감아주는 정경유착을 되풀이 했다. 
 
1997년 외환위기에도 재벌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재벌의 무분별한 해외차입으로 나라가 부도가 났지만 정부는 공적자금으로 재벌의 문어발식 사업구조를 합리화하고 부채 부담을 덜어주었다. 김대중 정권은 재벌에게 막대한 공적자금을 퍼붓고도 지배구조는 별로 손대지 않았다. 총수가 큰 돈 들이지도 않고 순환 출자 구조를 지주회사로 바꿀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고, 그래도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재벌은 법적 예외를 만들어줬다. 재벌개혁을 외쳤던 노무현 정부는 정권 초부터 삼성의 정부 운영안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결국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하며 재벌에게 쉽게 항복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아예 대놓고 수출대기업 중심 경제와 친재벌 정책을 주장했다.
 
둘째, 소수 재벌이 국민경제 부를 독식하는 것은 낮은 노조 조직률과 기업별 노조 형태 때문에 가능하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보면 대기업 중심 경제에도 불구하고 부의 분배가 꽤 잘되는 나라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북유럽 복지 국가들이 그렇다. 예로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은 한국보다 더 재벌의 경제장악력이 크지만 세계에서 가장 평등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한국과 스웨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다른 무엇보다 바로 노조의 규모와 형태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퍼센트가 되지 않는다. 더구나나 그 10퍼센트도 단체협약을 기업 내에서만 체결할 수 있는 노조들이다. 내핍을 통해 재벌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려 했던 군사정권들은 철저하게 노조를 억압했다. 그리고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조 설립을 원천봉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노태우 정권은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 대기업 노조가 중소기업 노조와 함께 초기업적 노조(전노협)를 만들려는 것을 공권력을 총동원해 막았다. 그 결과 기업 내에서만 유효한 단체협약이 이후에도 일반적이게 됐고, 기업별 노조는 기업의 수익률에 따라 임금 상승 폭을 제한받게 됐다. 
 
원청의 하청 수탈이 늘어날수록 재벌 대기업 노동자가 사측과 나눌 수 있는 몫이 늘어나지만, 하청기업 노동자는 그 반대 상황에 놓인다. 하청기업에서는 노조를 만들 동기가 줄어들고, 노조를 만들어도 임금 인상을 위해 희생해야 할 대가가 너무 커진다. 재벌 대기업은 법적으로 기업 내부만 아니면 노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보니 갖은 편법을 이용해 사내하청을 늘렸다. 현재 한국의 대기업 고용 비중은 OECD 평균의 절반도 되질 않는다. 재벌은 중소기업과 부를 나눌 이유가 없고, 노동자 대다수에게 소득을 분배하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받지 않는다.
 
스웨덴은 한국과 정반대다. 노조 조직률은 60퍼센트가 넘고, 초기업 노조 형태라 단체협약 적용률은 노조 조직률보다 더 높은 80퍼센트에 이른다.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노총이 대기업 사업주들을 앞에 놓고 전 국민 임금 교섭을 진행했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같은 임금, 단체협약에 따라 노동조건이 결정됐다. 어차피 임금이 기업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다보니 대기업이 하청을 수탈하는데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고, 대기업은 국민 대다수와 소득을 분배해야만 했다. 1980년대 이후 전국 교섭이 산업별 노조 교섭으로 바뀌긴 했지만 기본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스웨덴은 대기업 고용비중이 우리나라의 세 배 가까이 되고, 대기업 중소기업 임금 격차는 한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금수저의 나라: “부익부빈익빈 체제”

사드 미사일 배치를 기습 발표한 경북 성주군에서
군민들로부터 달걀 세례를 받고 있는 황교안 총리
국민의 분노 저변에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부익부빈익빈'이 있다. 박근혜 퇴진 운동의 한 축을 이루는 청소년과 대학생들은 최순실 가족의 입학비리와 부당경쟁에 특히 크게 분노했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부모가 가진 것에 의해 미래가 결정된다는 청년 세대의 좌절이 이 분노의 근원지다. 

알려졌다시피 우리나라는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격차가 크다. 소득에 있어선 대기업-중소기업, 남성-여성, 정규직-비정규직, 고학력-저학력, 고소득-저소득 등의 격차가 모두 OECD 최고 수준이다. 자산도 마찬가지다. 자산 불평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소득 불평등보다도 더 심각하다. 상위 10퍼센트가 전체 부(자산)의 70퍼센트를 소유하고, 하위 50퍼센트는 전체 부의 단 2퍼센트만을 소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커지는 속도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헬조선이란 말이 정말로 과장이 아닌 셈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기본적 배경은 앞서 이야기한 재벌 체제다. 1960년대부터 수출재벌 주도 경제성장을 해온 우리나라는 재벌 대기업과 비재벌 중소기업 사이, 재벌의 소득을 분배받을 수 있는 국민과 그렇지 못한 국민 사이 소득격차가 지속적으로 커졌다. 여기에 노동자가 초기업적 노조를 통해 임금 격차를 완화하지 못하면서 재벌의 소득을 분배받을 수 있는 노동자 수는 극소수로 더 제한되었다.
 
이런 가운데 2000년대 이후 해외 투자에 집중한 재벌은 부의 상당부분을 국민경제가 아닌 해외에 둘 수 있게 됐다. 초국적 자본이 된 재벌은 그나마 존재하던 수출의 낙수효과마저 줄였다. 재벌 주도 경제는 부(자산)의 격차 역시 마찬가지다. 해방 후 적산불하부터 한국에서는 인위적인 부의 재분배는 없었고, 오히려 정경유착과 자산(부동산, 주식 등)시장을 통해 부가 더욱 소수에게 집중되었다.
 
여기에 1990년대부터 본격화 된 신자유주의 정책은 소득과 부의 격차를 극단화했다. 노동시장 규제가 철폐되며 시장 내 지위가 약한 노동자들의 고용은 더 불안해졌고, 그만큼 임금도 하락했다. 금융시장 규제가 풀리면서 돈 놓고 돈 먹기 식 투기가 양성화됐고, 부동산 가격은 경제성장률과 상관없이 뛰었다. 집 없는 서민의 전월세 부담은 늘었고, 집을 사고팔며 재산을 늘리는 부자들의 불로소득도 늘었다. 시장 규제가 사라지며 소득과 부의 격차가 더 커졌다. 
 
최근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저성장도 부익부빈익빈을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경기침체로 저소득층 소득이 더 크게 감소하고, 소득 감소에도 자산가들이 걷어가는 임대료는 줄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이나 소득 재분배 제도가 없다시피 한 한국에서 저성장은 자산이 없고, 소득이 적은 사람에게 더 가혹할 수밖에 없다. 


검찰·국정원·경찰의 나라: “공안통치 체제”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함께 시작됐다. 이는 정권의 정당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만큼 문제였다. 그래서 였을까? 박근혜는 문민정부 이후 어느 정권보다도 공안기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2013년 중순부터는 종북몰이 마녀사냥을 하며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켜 공안 정국을 만들었다. 그해 말에는 5천 명의 경찰을 동원해 민주노총 사무실까지 침탈했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은 가차 없이 밟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낸 것이었다.
 
특히 박근혜는 다른 기관보다도 검찰을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박근혜 게이트의 심장부에 있었던 김기춘, 우병우, 황교안은 모두 검찰 출신이다. 국정농단의 전초전이었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을 덮은 것도 검찰이었다. 심지어 검찰은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와중에도 청와대는 지시로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
 
검찰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 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권 시기엔 광우병 보도를 한 MBC PD수첩을 비롯해 ‘미네르바’란 필명의 인터넷 논객까지, 정부 비판의 언로를 찍어 수사하기도 했다. 또, 선거가 끝나면 검찰은 매번 야당에 대한 표적 수사를 의례처럼 행했다. 2016년에는 여소야대 의석수 뒤집기 의도가 의심될 정도로 야당 의원들을 무더기 기소하기도 했다. 검찰이 정권과 유착해 무소불위의 폭력적 권력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국가 공권력의 폭력성을 검찰이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법적 중립성을 이야기하지만, 문제는 그 중립성 자체가 상당히 계급적이다. 예를 들어, 당장 박근혜 퇴진을 내세운 민주노총 파업은 중립적 검찰의 기소 대상이다. 사업주의 부당노동 행위는 처벌 수위가 낮고, 노조의 법외 파업은 처벌 수위가 높다. 
 
이건 검찰이란 기구가 잘못되어서가 아니다. 현재 중립적 검찰 행세를 하며 대통령을 수사하고 있는 김수남 검찰총장은 2013년 통합진보당 수사를 지휘한 공안 검사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정당 해산을 주도한 이념 편향적 검찰이 얼마든지 중립적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다. 검찰로 표현되는 국가 공권력은 체제에 도전하는 운동이나 세력에 대해서는 잔인한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둘째, 우리나라 검찰이 다른 나라에 비해 특히나 권위적인 까닭은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기소권과 경찰의 수사를 지위할 수 있는 수사지휘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검찰은 검사 모두가 한 몸이라는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검찰총장 1명에게 권력이 집중돼 있다. 여기에 검찰을 감독할 법무부도 검찰 조직이 장악하고 있다. 검사 또는 검사 출신들이 장관·차관·실장과 국장 등 법무부 주요 보직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다. 반면, 영미권 국가는 기소권과 수사권이 분리되어 있고, 독일은 기소편의주의 남용을 막기 위해 기소 법정주의를 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기소권의 일부를 판사가 갖고 있다.
 
셋째, 검찰 출신 인사들이 국정원과 청와대 민정수석실, 국회 등 사회 요직 곳곳을 차지하며, 거대한 권력 카르텔을 만들고 있는 탓이다. “검찰은 결국 검찰 편”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조직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강한지 “대한민국은 검찰공화국”이라 불릴 지경이다.
 

개돼지의 나라: “입막음 굴종 체제”

박근혜 정권의 권위적 성격은 국민이 그것에 굴종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지배계급이 “민중은 개돼지”, “국민은 시간이 지나면 잊는다”고 여기는 건 역사적으로 민중이 지배계급을 제대로 처단해 본 적이 없어서다.
 
1960년 4.19 혁명을 보자. 이승만 독재에 맞서 민중이 항거했다. 경무대 앞까지 진출한 민중은 대표를 뽑아 이승만과 면담했고, 이승만의 하야를 받아냈다. 이승만은 하와이로 망명했고, 권력은 야당인 민주당에게로 돌아갔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승만의 자유당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특히 장면 내각은 경찰 발포 책임자에게 무죄를 선고하는 등 이승만 정권의 부역자들을 사실상 사면해줬다. 민주당은 이후 신흥세력인 장면 총리와 구세력인 윤보선 대통령 사이에 극심한 권력 쟁투를 벌이며 분열됐고, 이 틈을 타 군부의 박정희가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독재정권의 부역자들은 정권을 끌어내린 국민에 의해서가 아니라, 또 다른 독재정권에 의해 적당히 처단됐다.
 
1987년 6월 항쟁도 비슷한 결말을 맞았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폭로되면서 군부 독재에 맞선 전국적 시위가 발발했다. 군부정권은 6월 29일 노태우 후보의 직선제 수용 선언으로 물러섰고, 30여 년간의 군부정권이 끝날 것처럼 보였었다. 
 
하지만 당시 투쟁의 구심이었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7월 이후 힘을 쓰지 못했고, 개헌 협상의 주도권은 야당에게 넘어갔다. 더군다나 야당은 8월에 김대중이 통일민주당을 탈당하고, 김영삼이 통일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면서 분열됐다. 군부정권을 끌어내렸던 국민은 두 후보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로 전락했고, 1987년 6월 항쟁은 노태우 군부정권의 재창출로 마무리됐다.
 
거리에서 투쟁한 국민이 무대 뒤로 밀려난 것은 그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1991년 5월 시민들의 거대한 민주화 투쟁이 있었지만, 1992년 여당과 보수야당 합당으로 독재정권의 후계자들이 문민정부를 이끌었다. 1996~97년에도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맞서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벌였지만, 결국 노동법 처리는 1997년 김대중 정권 손에 넘겨졌다. 총파업에 나섰던 민주노총은 외환위기 와중에 노동 악법 처리에 합의하고 말았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은 제대로 자신의 손으로 지배계급을 처벌해 본 적이 없다. 지배계급이 민중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다. 이런 굴종을 뛰어넘어야 한다. 또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작업장에서 우리는 주권자가 아니라 종사자일 뿐이다.노동자들은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굴종적 삶을 보낸다. 노조가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90퍼센트의 노동자에게는 노조가 없다. 정치 민주화가 이뤄졌다 해도 우리의 일터는 여전히 주권자가 아니라 굴종하는 ‘근로자’의 세계다.
 
국정원 간첩조작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

 
북한 탓하는 나라: “평화위협 체제”

10월 18일, 새누리당 원유철 전 원내대표는 남한도 북한 핵에 대처하는 ‘공포의 균형’을 갖추기 위해 “핵에는 핵으로 맞서는 독자적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핵우산에 기대고만 있을 수 없기에 우리만의 ‘핵 우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한이 핵무장에 돌입하면 북한보다 빠른 시간 안에 더 강력하고 많은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호언장담도 빼놓지 않았다.
 
이런 주장은 유별난 견해가 아니다. 보수세력 다수가 유사한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의 군사적 행동이 있을 때마다 핵무장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 노력해 왔다. 중앙일보, 뉴데일리 등 언론도 실질적 핵무장에 대한 여론화에 나서며 가능한 옵션을 진지하게 검토하는 모습이다.
 
때로는 미국의 의중조차 뛰어넘는, 남한 보수의 핵무장 집착은 기원이 깊으며 시대를 초월해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동명 소설로 잘 알려진 암호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 비밀 프로젝트를 가리킨다.
 
이러한 주장은 한국 보수세력의 논리구조를 반영한다. 북한의 직접적 위협과 일본의 잠재적 위협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굳건한 동맹관계의 틀 내에서 한국의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핵주권’이라는 호전적이며 국수주의적인 이데올로기를 활용하는 점이 사실상 그들이 비판하는 북한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는 것이다.


결론

박근혜 체제를 제대로 타격하려면, 박근혜 개인이 아니라 박근혜를 만들어 낸 구조적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 무엇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보수진영 내 집권 전략으로 기획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퇴진 자체로는 조선일보를 대변자로 내세운 비박 보수의 아젠다와 차이가 없다. 만약 박근혜 퇴진만을 주장하다보면, 보수재집권 프로그램 속에 대규모 집회가 대중적 좌절로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를 만들어 낸 구조적 배경이 촛불을 통해 규탄되어야 한다.
 
박근혜 게이트는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위기의 다양한 양상들이 중첩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금융세계화의 가장 대표적 현상인 부와 소득의 격차, 한국적 위기 형태인 재벌 경제와 국민 경제의 괴리, 정치의 사법화와 정보기관의 비대화,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를 통해 나타난 동북아시아 갈등 증가, 성공한 시민혁명의 부재로 인한 굴종적 체제가 그것이다.

또 다시 과거의 오류와 함정에 빠지지 않고, 박근혜 퇴진을 통해 한국 사회를 제대로 바꾸기 위해선 박근혜를 만든 ‘5대 체제’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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