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6/12 제23호

촛불이 광장에서 일터로 향해야 하는 이유

박근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노동조합운동의 길

  •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언론과 정치권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국정농단’이라 부른다. 이런 기준에서 해결 방안은 ‘국정을 바로 세우는 것’일 게다. 최순실에 조종당한 인형인 박근혜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을 몰아내자는 스토리다.
 
조선일보를 위시한 비박 보수는 박근혜를 그대로 두면 차기대권이 범야권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박근혜는 적당히 정리하고 새로운 권력을 만들고 싶어한다. 입에 맞는 대통령을 세우거나, 이 기회에 헌법까지 바꿔 내각제로 가자는 얘기도 덧붙인다. 실제 개헌이 안 되더라도 ‘개헌론’을 기조로 세력을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썩 나쁘지 않다. 이것이 조선일보·중앙일보가 그리는 ‘빅픽쳐’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자극적 속보들의 홍수에 정신을 잃고 저들이 그린 그림의 꽁무니를 쫓아야 할까? 아니면 노동자들의 그림을 그려야 할까? 민주노총과 노동조합운동은 어떻게 싸워야 하나?
 

저들의 프레임을 거부해야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저들이 만든 프레임을 벗어나야 한다. 지배세력 내의 ‘국정농단 논란’을 넘어, 지금껏 노동자들의 삶을 농락해온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노동자의 삶이 어떻게 농락되어 왔는가? 초등학생부터 청소년까지 경쟁 사회는 상수가 돼버렸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는 학교도 안가고 삼성 돈으로 비싼 말을 탔지만, 경쟁에 시달리다 세월호 참사로 죽어가던 청소년들의 삶은 농락당하고 짓밟혀왔다. 성인이 되면 취업 경쟁에 시달리고, 취직을 해도 바닥을 향한 경주를 벗어날 수 없다. 대다수 청년들은 저임금 알바를 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재벌들은 껌값 수십억으로 대대로 금수저로 산다. 노동자들은 아무리 좋은 기술로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해도 결국 쫓겨나거나, 거리에서 투쟁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삶은 이렇게 농락당해 왔다.
 
촛불을 일터로 확산시켜야 한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무실로, 공장으로, 매장으로 가는 것이다. 이 땅 민중들은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 때문에 주말 촛불에 나올 엄두도 내기 어렵다. 광장에서 “우리가 주인”이라고 외치다가도, 당장 월요일 아침 출근해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대통령제가 내각제로 바뀌면 우리의 일터가 달라지기나 할까? 박근혜가 아니라 다른 대통령이 등장하면 무노조 무권리 노동자에게 갑자기 선물이라도 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더 많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재벌·양극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투쟁을 벌일 때, 우리가 겪는 구체적인 억압과 착취에 맞설 때, 사장과 관리자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일할 수 있을 때 농락당한 삶이 바뀐다. 그러니 우리 일터부터 뒤집어 버려야 한다.
 
지난 11월 9일 인천 부평에서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퇴근길 행진을 하고 있다.
 

삶의 구조부터 바꾸자!

그렇다면 권력구조 개편의 우리의 최우선 과제일까? 그럴지도. 하지만 노동자는 삶의 구조를 개편하는 싸움부터 나서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이 노동자 뜻대로 가능하지 않다면, 곳곳을 포위하는 것부터 선행해야 한다.
노조 조직률이 10퍼센트에서 30퍼센트까지 늘어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수백만 노동자들의 삶이 변화하고, 힘이 생긴다. 타임오프 지키는 것에 안간힘 쓸 필요도 없고, 사측으로선 민주노조 파괴 시도조차 힘들어진다. 노동조합에 “빨갱이 과격분자, 회사 망치는 암덩어리”라고 말하기 쉽지 않다. 성과해고제 도입한다고, 노동법 개악한다고 덤비기도 어렵다.
 
인터넷에는 대통령의 시술 소문을 둘러싼 오만가지 소문과 비아그라 등 추문들이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노동조합운동이 이런 변죽만 울리는 소문들에 몰두해선 안 된다. 지배세력이 자중지란에 빠졌을 때, 이 틈을 타 일어서야 한다. 공단과 직장에서 투쟁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 지금 노동자가 해야 할 일이다.
 

노조 없는 노동자와의 마주침을!

지난 11월 9일 교대 시간을 맞아 퇴근하는 노동자 300여 명은 ‘헌법 유린, 국정 농단, 민주주의 파괴, 박근혜 정권 퇴진 한국지엠지부 조합원 시국대회’를 갖고, 공장에서 부평역까지 가두 행진을 했다. 이는 대공장 노동자들이 시도한 첫 투쟁으로 기록됐다.
 
알바노조는 ‘우리는 매장에서 퇴진을 외친다’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편의점 등 일터에서 박근혜 퇴진과 노동강도, 감정노동 등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인증샷을 찍어 전송하면, 토요일 촛불집회 시각에 알바노조 캠페인단이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99퍼센트 이상이 노동조합이 없는 아르바이트 현장의 미조직 노동자들과 만나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에도 촛불이 밝혀졌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소속 노동자 600여 명은 11월 30일 터미널 3층 중앙보도에서 집회를 열어 주민들과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12월 1일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서 이 지역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단인 ‘노동자의 미래’ 주최로 촛불집회가 열렸다. 촛불을 광장에서 공단으로 옮겨, 80년대 노동자들의 투쟁이 활발하게 불붙었던 공단지역에서 열리는 촛불집회라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노조가 없는 여러 노동자들이 퇴근길 자발적으로 이 집회에 함께 했다.
 
그밖에 전국의 여러 도시와 공단 인근에서 노동자들이 다수 참가하는 집회들이 열렸다. 광화문광장을 찾은 백만 군중도 상당수는 노동자, 그것도 노동조합이 없는 노동자들일 수밖에 없다. 동료시민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시대의 노동자로서 조우하는 기획이 필요하다. 공단과 일터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서 만나야 한다.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시위 공간을 열어 노동자들의 참여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 노동자운동은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이런 일을 해왔다. 지금 우리는 조직화 사업을 보다 폭발적으로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났다. 역동적 정세가 끝나지 않는 한 최고의 기회다. 이 시기에 노동조합이 무엇을 했는지는 이후 노동자운동의 기풍과 명분을 세우는 것이기도 하다. 광장의 선두에서 촛불을 들었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87년의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민주노조운동을 확산하는 중대한 사건이었다면, 우리에겐 21세기의 노동자 대투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회고담 하나쯤은 남겨봄직 하지 않을까?
 
“그때 우리가 시민들의 노동조합 할 권리에 불을 질렀더랬지. 어려운 시기였는데 그때 참 잘 해서 노조가 왕창 늘었거든. 그때 노동자운동의 2막이 시작됐던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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