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조 할 권리
  • 2016/12 제23호

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노동조합은 뭘까?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 박경득 분회장 인터뷰

  • 이민영 사회진보연대 조직국장
 
우리는 누구나 아프거나 다쳤을 때 병원을 찾는다. 그런데 병원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다면? 환자와 그 가족들로 북적이고,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공간에서 파업을 하는 건 아마도 엄청난 부담을 마주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부담을 안고 환자의 안전과 모두에게 평등한 병원을 위해 용기내 싸워온 노동조합이 있다. 바로 의료연대 서울대병원분회다.
 
서울대병원분회는 공공의료를 위해 지난 4년 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파업을 해왔다. 게다가 서울대병원분회의 파업은 환자를 포함한 시민들로부터 열렬한 지지까지 받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의료민영화에 맞선 4년

2013년 7월 서울대병원은 재정 상태가 적자라며 비상경영을 선포했다. 비상경영의 목표는 오직 비용절감이었다. 같은해 12월, 정부는 병원이 자회사 설립을 통해 수익사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실상의 ‘의료민영화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맞서 노동조합은 ‘서울대병원의 경영위기설은 사실이 아님’을 밝히고, 서울대병원의 자회사 ‘헬스커넥트’를 통한 우회적인 의료민영화를 저지하기 위해 파업을 벌였다.
 
“2013년 첫 해는 정부 정책과 병원의 비상경영에 맞서 파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투쟁하면서 오히려 조합원이 늘어났죠. 사실은 용기가 필요했던 거예요. 물론 마지막에는 복지 삭감에 대한 평가가 있었지만, 병원이 시도하려고 했던 성과연봉제와 의료민영화 정책의 많은 부분을 막아냈죠.”
 
2015년 서울대병원은 취업규칙 변경을 통해 성과급제를 도입하고, 단체협약 해지를 시도하며 노동조합의 근간을 흔들려 했다. 병원은 과반수 노동자에게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았고, 취업규칙 변경 신고도 끝냈다. 하지만 서울대병원분회는 노조 탄압 시도에 꿋꿋이 맞섰다.
 
“그땐 완전히 전쟁이었어요. 못 이길 거라는 사람도 많았죠. 하지만 20일 동안의 파업을 통해 취업규칙 변경과 성과연봉제 도입을 막아낼 수 있었어요. 평가결과를 고용과 연계하지 않는다는 합의까지 받아냈죠. 성과퇴출제를 미리 막아낸 거예요.”
 
올해 서울대병원분회는 정부의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에 맞서 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이번엔 15개 공공기관과 함께였다. 노동조합은 성과연봉제가 각 병원이 수익성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게 해, 공공병원을 환자의 생명과 안전보단 이윤추구 기업으로 변질시킬 것이라 봤다. 이는 결국 의료민영화로 귀결될 게 뻔했다.
 
“불의한 권력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기 위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공공병원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고, 아프면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는 공공병원을 만들기 위한 싸움에 돌입했다. 기나긴 투쟁을 통해 서울대병원분회는 ‘2017년까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만들었다. 이는 정부 지침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조합원의 힘으로

서울대병원분회가 지난 4년 동안 파업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박경득 분회장은 조합원들의 신념과 철저한 교육을 이유로 들었다.
 
“공공기관으로서 정권에 반대하는 파업을 한다는 게 쉽진 않죠.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조합원들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에요. 조합원 스스로 확신이 없으면 로비 앞에 앉자고 해도 못 앉거든요. 세 개의 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환자들을 보면서 로비에 앉아 구호를 외친다는 건 엄청난 확신이 아니면 불가능해요. 이런 확신을 지키기 위해 교육에 많은 힘을 쏟았죠.”
 
투쟁 기간 서울대병원분회는 교육만이 아니라 민주적인 토론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토론하면서 의견의 차이를 좁히고, 그 과정에서 공통의 인식과 합의를 만드는 게 조직의 힘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정세에 대해 미리 교육하면서 우리 투쟁의 성과에 대해 조합원들이 냉정하게 판단하는 과정을 거치죠. 조합원들이 파업을 하면 안 할 때보다 요구도 커지고 파업에서 배우는 것도 있기 때문에 의식도 성장해요. 하지만 합의할 땐 그 수준에 미치는 합의가 아니라 거세게 항의하기도 하죠. 결과에 대해 조합원들이 투표만 하는 게 아니라 토론을 먼저 하고, 합의 후에는 그걸 우리 전체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감동적이죠.
 
”박경득 분회장은 집행부에 대한 신뢰 역시 탄탄한 조직을 유지하는 큰 동력이라 본다.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간 조합원들이 봐왔던 집행부의 성실한 모습과 방향성을 잃지 않으며 모든 걸 조합원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있다는 믿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정말 감사하죠. 선배들이 그런 신뢰를 가져온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어요.”
 

전체를 위해 싸우는 노동조합

특이하게도 서울대병원분회는 파업을 거치며 조합원 수가 늘었다. 2015년 1월 말 취업규칙 변경에 대응하면서 한 달 만에 430명이 가입했다. 이런 선순환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때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간부들이 24시간 조합사무실에 대기하다가 ‘출동해주세요’ 하면 밤이든 새벽이든 달려갔죠. 노동조합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도 중요했어요. 과반 노조는 아니지만, 많은 눈이 노동조합을 지켜보고 있거든요. 노조 게시판에 글이 올라가면 병원이 올린 글보다 조회수가 높아요. 430명이 가입했을 때도 단체협약 해지라는 최악의 탄압이 있었고, 병원은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받는 과정에서 불법적이고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괴롭혔거든요. 다들 화도 나고, 노동조합이 절체절명의 순간이 되면 가입한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입을 한 거죠.”
 
병원 내 수직적 관계와 집요한 탄압 속에서 노동조합에 가입하겠다는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다. 서울대병원분회는 당장 노동조합에 가입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을 비조합원이라는 이유로 밀어내지 않고 함께 하기 위해 그들보다 앞장서 싸워왔다. 노동조합의 그런 모습이 민주노조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자, 비조합원에게도 지지받는 노동조합이 된 이유일 것이다.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파업

서울대병원이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환자와 시민들의 지지였다. 서울대병원분회는 시민들에게 성과연봉제와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적극 알리며 우호 여론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서울대병원 노동조합은 1층 로비에 앉는 게 엄청 힘들어요. 중증 암환자들이 많이 오는데, 아무리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환자라도 병원에 들어섰을 때 집회하고 있으면 화가 날 수 있거든요. 박수치는 것도 하지 말라는 경우도 있어요. <파업가>에 ‘해골 두 쪽 나도’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나는 “두개골 오픈 수술을 했는데 그런 가사 듣기 힘들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환자들에게 우리 파업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응원하고 지지해달라고 하는 과정이 필요했죠.”
 
하지만 병원이라는 특성이 장점으로 발휘되기도 했다. 시민들과 접점이 많아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의 폐해를 더욱 와닿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병원은 수익을 내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더 많이 받게 만들 수밖에 없고, 이는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높인다. 또한 성과를 평가하는 가장 쉬운 기준이 ‘수익’인만큼 병원에 꼭 있어야 할 필요인력을 줄이거나, 저질 재료를 사용할 유인도 높아진다. 환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가장 중시해야 할 공공병원이 오히려 과잉진료를 반복하고,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병원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 비상경영을 선포했을 때 노동조합이 모르는 사이 부서별 차등성과급제가 도입된 적이 있었어요. 폐해가 심각했죠. 교육부에선 경영평가를 통해 한 거라고 했는데, 환자들에게 쓰는 의료재료를 저질로 바꾸고, 절감된 비용을 부서별 성과급으로 지급하는 거였거든요. 하나의 사례로 가래를 뽑는 고무관을 딱딱한 PVC로 바꾸면서 환자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줬죠. 그래놓고 부서별 회식하라고 몇 십 만원씩 카드에 넣어주며 ‘잘했다’는 거예요. 이런 부조리한 현실을 조합원 스스로 목격하고 있었고, ‘투쟁에서 지면 환자도 죽고 우리도 죽는다’는 결의가 있었어요. 환자들도 노동조합을 이해해주시고 파업에 동의해주셨죠. 장기입원 환자분들은 1층에서 저희 이야기를 듣고, 병실로 돌아가 파업에 안 나오는 간호사에게 왜 파업에 안 나가는지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어요.”
 
서울대병원분회는 노동조합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시민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다양하고 기발한 선전으로 나타났다. 파업 때마다 노동자들이 직접 손으로 쓰고 그린 대자보가 병원 복도 벽면을 뒤덮는다.
 
 
뿐만 아니다. 서울대병원분회는 병원이 위치한 혜화역 지하철 광고판에 공공의료를 지키는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는 광고를 하거나, 주변 시장 상인들에게 ‘의료민영화 반대’ 문구가 인쇄된 나무젓가락과 비닐봉지 뭉치를 나눠주는 등 시민들과 만나기 위해 여러 기발한 방법을 동원했다. 정부 지침을 거절할 용기가 없다는 병원장의 말을 인용해, 병원장에게 ‘일회용 용기’를 전달하는 기발한 퍼포먼스도 진행했다.
 
“확실히 파업을 여러 번 하다 보니 선전이 점점 늘어요. 젊은 사람이 있는 것도 중요하죠. 제일 중요한 건 현장 속에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현장이 ‘일터’를 칭할 때도 있지만, ‘시민이 있는 현장’에서 마주쳐야 돼요. 기발하고 신나는 투쟁만으론 못하는 게 있거든요. 환자들이 있으니 때로는 엄숙하고 진지해야죠. 그런 예민한 부분까지 고려하면서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까 끊임없이 고민해요. 그 과정에서 기본 방향을 잃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내용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해요.”
 
 
박경득 분회장은 한판 투쟁으로 지지를 기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에게 투쟁의 의미를 알리고, 이를 통해 병원이 변하고 있다는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장의 민주주의를 위한 꾸준한 노력과 새로움을 향한 시도가 ‘시민들과 함께 하는 투쟁’을 만드는 서울대병원분회의 비결이었다.
 

할 말은 하는 노동조합

지난 10월 6일, 서울대병원분회는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관련 대국민사과를 발표했다. 서울대병원의 한 구성원으로서 권력의 입맛대로 움직이는 서울대병원 원장의 사과를 요구했다. 노동조합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다.
 
“우리도 너무 충격이었죠. 사인이 병사로 발표된 것에 대해 구성원들 모두 ‘이건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고, 엄청 부끄러워했어요. 사람들이 우리 병원을 권력의 꼭두각시로 여길 거란 생각에 많이 수치스럽고 힘들었죠. 병원 앞에 1년 동안 백남기 농민 농성장이 설치돼 있었고, 조합원·비조합원을 떠나 지켜보고 있었어요. 우리 문제라는 생각이 마음 속에 있었죠. 수차례 파업을 겪으면서 조합원들도 성장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왜 백남기 농민 문제로 우리가 투쟁하냐’는 질문도 전혀 없었어요. 사망진단서를 못 바꾼 것이 여전히 마음에 큰 짐이에요. 이후에도 이 투쟁에 힘을 쏟아야 할 것 같아요.”
 

다른 관계를 상상하는 노동조합

노동조합은 단순히 임금을 올리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조합은 현장의 관계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사용자와 노동자의 수직적인 관계를 노동조합은 수평적 관계로 변화시킨다. 노사관계만이 아니라 노동자 간 관계도 바꾼다. 노동조합이 삶을 바꾼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개인적으론 인간관계의 새로움을 느꼈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게임의 법칙으로 관계를 맺잖아요. 하지만 직장 동료로 만나는 모습과 노동조합을 하며 만나는 모습은 굉장히 달랐어요. 자본주의적인 룰이 노동조합의 인간관계에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느꼈거든요. 새롭다고 생각했어요. 경제적 위화감, 경쟁, 경계, 이런 게 없이도 사람을 만날 수 있구나! 아직 우리가 꿈꾸는 그런 세상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노동조합이 그 실험장인 것 같아요. 앞으로 바뀔 세상에서는 경제체제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상을 만들어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조합은 인간관계뿐 아니라 조직문화도 변화시켰다. 병원 조직문화의 어두운 면을 노동조합이 계속 수면 위로 드러내고 싸우는 과정에서 현장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는 중이다.
 
“노동조합을 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분노라고만 생각하지만, 사실 그 분노는 애정에서 나와요. 내일 그만둘 사람이 직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내가 앞으로도 있을 곳이고, 그러니까 바꿔봐야지 하는 마음이 있어야 노동조합이 돼요. 최근에는 일자리가 없어서인지, 노동조합이 잘해서인지 간호사 이직률이 줄고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조직문화가 바뀐 것이죠. 파업하면서 간호부의 비민주적이고 비합리적인 면을 계속 알려냈죠. 그러면 수간호사나 병원도 부끄럽거든요. 그렇게 싸우면서 최근 5년간 엄청 바뀌었어요. 강제사직도 많이 줄었고요. 예전에는 비상식이 상식인 줄 알고 저항을 못했지만, 이제 사람들이 상식이 뭔지를 알게 되는 거죠. 조직문화가 바뀌는 것은 문구로는 합의할 수 없지만 엄청난 변화예요.”
 
서울대병원분회는 지금까지 건강한 노조의 모범을 만들어왔다. 그만큼 외부에서 거는 기대도 크고, 내부에서의 고민도 많다.
 
“서울대병원분회는 1800여 명이라는 규모에 비해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았어요. 조합원들이 헌신적으로 해온 것도 있고, 다른 공공기관의 투쟁 성과를 저희가 받은 것도 있죠. 이후 노조 운영에 있어서는 고민도 있어요. 노조 전임자들이 겪는 고충과 높은 업무강도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시작은 헌신일 수 있지만, 희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자기 성취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젊은 사람들도 노동조합을 할 것 같아요. 이건 어느 노조나 갖고 있는 고민일 거예요.”
 
서울대병원분회는 노동조합의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그 다음을 고민하는 노조다. 민주노조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시민들 속에서 호흡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조에 대한 사회적 지지가 높아지는 것은 이런 건강한 노동조합과 시민들의 일상적인 마주침이 많아질 때 가능할 것이다. 서울대병원분회와 시민들의 가슴 뛰는 만남이 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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