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꿀팁상담소
  • 2017/01 제24호

저는 프로죄송러랍니다

  • 정리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 삽화 이재임
  • 참고자료 웃다가 병든 사람들 우리는 감정노동자입니다(서비스연맹)
촛불의 힘은 아직 우리 삶 구석구석까지 미치진 못 하고 있다. 월요일이 되면 다시 출근해서 노예처럼 일해야 하는 신세니 말이다. 대형유통마트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가 찾아왔다. 그녀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머리가 폭발하기 직전이라고 했다.
 
“예전에 <코미디빅리그>라는 개그프로에 ‘갑과 을’이란 코너가 있었어요. 에어컨 고장으로 수리를 요청한 고객이 출동한 수리기사에게 온갖 갑질을 해대죠. 그리곤 수리기사가 일을 마치고 바로 그 고객이 운영하는 고깃집에 가는 거예요. 당한 만큼 복수가 시작되죠. 씁쓸하지만 웃겨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손님이 왕이라고 하잖아요. 평소에 억눌린 스트레스를 다 푸는 느낌?
가끔 어떤 고객들은 비하하는 식으로 말하기도 해요. 지나가면서 애한테 ‘너 말 안 듣고 공부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저런 사람들처럼 계속 일해야 된다!’ 이러는 거죠. 인간적인 모멸감이 심해요. 또, ‘이봐!’, ‘야!’, ‘너!’라며 반말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이 있어요. 지가 날 어떻게 안다고? ‘아줌마!’라고도 불러요. 이건 엄청난 실례 아닌가? 이럴 때도 우리는 참아야 하죠. 참고, 또 참죠.” 
 
고양이 : 하이고~ 손님은 왕은 개뿔~ 고양이가 봐도 말이 안 되는 개판이다냥.
 
“매장에 와서 제품 찾는 시늉도 않고 다짜고짜 ‘칫솔 어딨냐’, ‘양파 어딨냐’ 물어보는 사람도 많아요. 평소엔 괜찮아도 어쩔 땐 짜증나죠. 스트레스가 극도로 쌓이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우리가 종인가? 코너마다 쓰인 거 찾아보면 안됨? 바쁘지만 부딪치기 싫어서 하나하나 찾아주죠.
째려봤다고 억지 부리거나, 성희롱 같은 말을 들을 때조차 죄송하다고 할 수밖에 없죠. 관리자 나타나면 더 안 좋아지거든요. 우린 그냥 죄송하다고만 해야 하는 거죠. 저는 ‘프로죄송러’예요.”
 
꿀벌 : ‘고객은 왕’이란 식의 문화가 만연해 있어요. 사실 그게 ‘돈이 최고다’란 말이랑 똑같은 거죠. 사장들 입장에선 지들이 일하는 거 아니니까 가혹한 감정노동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거죠. 그래도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법에 근거한 권리가 있어요. 다른 장소로 옮긴다거나, 배치 전환도 요구할 수 있죠. 언어폭력이 명백하면 무조건 죄송하다고 할 필요 없어요.*

비둘기 : 실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 고객과 노동자, 기업 사이의 원칙과 약속을 만드는 게 필요해요. 그렇지 않고선 갈등이 잦고 노동자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소진되고, 자존감도 낮아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매장 입구나 눈에 잘 띄는 곳에 폭언·폭행에 대한 내용을 게시하면 훨 낫죠.
특히 성희롱에 대해선 강하게 대응해야 해요. 분명하게 경고하고, 현행법 위반이라고 말해야죠.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전담팀이나 경찰에 신고 후 자리를 피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소비자 의식 변화를 위한 캠페인도 중요한데, 감정노동과 연관된 10개 노동조합들과 여러 사회단체가 모여서 만든 ‘감정노동 네트워크’가 시민 대상 캠페인, 실태조사, 법률지원, 감정노동 보호입법 추진 등을 하고 있어요. ‘감정노동을 생각하는 기업 및 소비문화 조성 전국협의회’도 “정중하게 대우하고 정당하게 요구하기” 캠페인을 하고 있고요.
 
“꼭 성공했음 좋겠네요!”
 
 
비둘기 : 실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뭉치고 움직여야 바꿀 수 있는 거죠. 기업은 여러 변화가 필요해요. “우리 매장에서는 노동자에게 반말, 욕설하지 말아주세요”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훨씬 낫죠. 유니폼에 리본도 부착하고, 주변에 홍보물 설치해서 고객에게 알려준다든지.
그랬는데도 반말이나 욕설이 나오면 청원경찰이나 전담팀을 부르는 루트가 있어야 해요. 또 심리상담소를 운영한다든지, 노동조합이나 노사협의회를 통해서 노사 간 약속을 만들어야죠. 노조가 있는 곳에선 이런 진전이 꽤 이뤄진 편이에요. 회사가 알아서 이런 노력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노동자들이 힘을 모아서 요구하고, 감정노동에 대한 보호방안을 만들어야죠.
 
“고객 만족도 평가란 것도 사실 노동자들 쪼고 스트레스 받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뿐이지 별로 현실적이란 생각이 안 들어요.”
 
비둘기 : 가전제품 수리기사들이 진짜 심하대요. 그거로 엄청 모욕감까지 주고, 점수에 따라 근로조건도 악화시키고, 퇴근 시간 지나서도 강제로 반성문까지 쓰게 하고. 진짜 못된 거지 그건!

“미스테리쇼퍼 들어보셨죠? 고객으로 위장한 사람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일하는지, 규정 엄수하는지, 얼마나 친절한지 감시하는 거예요. “상냥하고 밝은 미소를 띄었다”, “활기차고 자신감 있었다” 같은 체크리스트에 점수를 매기는 거죠. 그래서 운 나쁘게 걸리면 점수로 압박을 주고, 점수 낮으면 들들 볶아요. 직원들 줄줄이 세워서 인사 시키고, 휴일엔 강제로 등산까지 해야 하죠. 이젠 어떤 손님이 미스테리쇼퍼일지, 누가 감시하고 있나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비둘기 : 감정노동자 미스테리쇼핑은 인권 학살이야요. 몰카까지 찍고 말이지! 그딴 걸 하니까 진상 고객한테 아무 소리도 못하고, 욕 먹어도 죄송하다 해야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꿀벌 : 안타깝지만 당장 이걸 법적으로 못 하게 할 방법은 없슈. 폐해가 심각하니까 적극적으로 알리고 제한 범위를 명확히 해야죠. 패널티를 주는 방식으로 평가해선 서비스질이 나아질 수도 없잖아요. 가짜 미소, 가짜 친절로 이뤄지는 감정노동이 고객이든 노동자든 좋을 리 없지!
 
비둘기 : 결국 웃으면서 일할 수 있는 직장 만들려면 일하는 사람들 권리가 강해져야 해요. 그래야 경영방식도 바꾸고, 고객 응대 매뉴얼도 다시 만들고(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한 <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 참고), 매뉴얼이 단협이나 취업규칙상 보호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런 직장이 있어요? 천국이겠네요~ 오늘 밤엔 꿈이라도 꿔봐야지 ㅋ”
 
꿀벌 : 아니 왜 꿈만 꿔! 차근차근 해봐야죠. 박근혜가 청와대에만 있는 게 아니랑께. 님들 회사에도 박근혜, 최순실 같은 인간들 넘치잖아요.
 
고양이 : 그게 쉽진 않다는 게 문제다옹!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양립 지원에 ‘남녀고용평등 및 일가정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14조의2(고객 등에 의한 성희롱 방지)

① 사업주는 고객 등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성적인 언동 등을 통하여 근로자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 등을 느끼게 하여 해당 근로자가 그로 인한 고충 해소를 요청할 경우 근무 장소 변경, 배치전환 등 가능한 조치를 취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② 사업주는 근로자가 제1항에 따른 피해를 주장하거나 고객 등으로부터의 성적 요구 등에 불응한 것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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