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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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HWP

신자유주의와 이행의 문제

홍석만 | 편집실장
들어가며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이행’은 쉽게 표현될 수 있는 아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가 내포하고 양산시킨 자본의 내적인 모순과 이에 대한 민중의 저항과 그 운동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규명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를 나열하고 이에 대한 즉자적인 대안을 또한 나열하는 것으로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도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 대안을 마련하는 일도 아닐 것이다. 이행이 적어도 이행인 한에 있어서 그것은 권력관계에 대한 전제 그리고 이를 구성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제출되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위기가 지속되는 국면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의 문제는 결국 정치의 문제로 표현되어야 하며, 주체의 형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하고 계급관계를 정확히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주체의 과도한 희망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혹은 관념적인 분석으로 객관적인 계급투쟁의 양상을 왜곡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래에서 신자유주의가 이행의 정치적, 경제적, 주체적 조건을 어떻게 양산하고 있는지를 분석해 볼 것이다. 첫째,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정치적 상부구조로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이 갖는 정치적 동학과 통치의 불안정성을 살펴본다.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이 국민적 통합과 안정을 확보한 것이 아니라 거꾸로 신자유주의의 고유한 반동성으로 인해 계급갈등을 격화시키고 지배세력의 분열을 촉진시키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에 따라 각 부문에서 민중의 자생적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의 전개 양상과 특질에 대해 규명하고자 한다. 두 번째로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토대에서 축적의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를 더 확산시켜 놓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이행이 단지 관념적인 구상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과정에서 필연화 될 수 있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셋째, 더 근원적으로는 민중의 투쟁과 그 요구들이 어떻게 이행과 결합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결합의 의미로서 민중민주적 결합이 어떤 조건하에서 가능하며,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추출해 보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형성배경

신자유주의는 독점자본의 이윤율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 노동자 민중의 복지 축소와 민중생존권의 약탈을 동반한다. 여기에 제3세계 또는 신식민지에서 이에 조응하는 정치권력 구성은 두 가지 길이 존재한다.(상부구조의 상대적 자율성) 하나는 파쇼적 길로서 신자유주의에 고유하게 내재해있는 억압적, 착취적 성격을 국가권력의 물리적 폭력을 통해 이를 그대로 표출하는 길. 그것은 남미에서 주로 나타난 바 있듯이 파시즘의 형성이었고 이에 따라 이 국가들의 구조조정은 대부분 대통령 긴급명령권에 의존해 격렬한 저항 속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남미의 사례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듯이, 노동자 민중의 저항과 그에 따른 정치적 위기의 발생은 좌파정권의 등장을 가져오기도 하고 구조조정의 파탄을 낳기도 하였다. 그에 따라 또 다른 길이 제시된다. 이것은 계급갈등을 은폐하고 봉합하며 계급의 해체를 통한 국민동원을 목표로 중도(우파)적 권력을 구성하는 길이다. 우리는 이것을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이라고 규정하였다.

87년 이후 노동자 민중운동의 성장 그리고 90년 이후 전노협, 전농 등 계급대중운동의 분출 속에서 군사파쇼는 종말을 고하게 된다. 그 이후 한국사회에서 군사파시즘으로의 회귀는 계급투쟁의 지형상 불가능하게 되며 이 상황에서 김영삼 문민독재가 등장하게 된다. 군복에서 양장으로 옷 모양이 바뀐 김영삼 문민독재는 민간파시즘의 형태로 구조조정과 함께 사회의 전반적인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시도하게 된다. 하지만 구조조정의 유인책을 확보하지 못한 채 계급투쟁을 관리하고 조절하는데 실패한 김영삼 정권은 구조조정의 성공적 완수를 달성하지 못한다.
이 상황에서 경제위기의 발발과 함께 탄생한 김대중 정권은 한국의 불완전한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와의 결탁을 통한 중도우파적, 계급연합적 정권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정권의 구성은 물리적 폭력을 통한 국민동원과 억압체제의 형성보다도 개혁 이데올로기를 통해 국민통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과 국제적으로 돋보이는 전투력을 자랑하던 한국 노동운동진영의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완화시킬 수 있는 정치권력의 구성을 의미했다. 또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일관된 집행과 정치적 안정성 확보의 필요에 따라 그 파트너를 선별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선택적 구성) 이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집권 초기 김대중 정권은 신자유주의 개혁이데올로기를 통해 재벌과 관료 및 정치권의 개혁을 촉구하고 이를 통해 재벌과 같은 한국사회의 지배적 경제주체와 대별되는 개혁적 정치주체라는 이미지를 형성해 낸다. 구조조정의 초기국면에서 이러한 개혁성의 부각은 다양한 방식으로 관철되었다. 수평적 정권교체라는 이미지와 IMF의 재벌개혁요구와 함께 시도된 재벌에 대한 규제 및 빅딜의 추진은 대중매체를 타고 적극적으로 선동되었다. 또한 김영삼 정권시절 이동통신 사업자 비리, 대선자금 모금과 관련한 비리를 들추어내면서 깨끗한 손의 이미지화가 이루어졌다. 여기에, 집권 이전 발발한 외환위기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불가피 한 것으로 정당화시켰다. 결국 구조조정의 추진 주체로서 개혁적 정치주체의 이미지를 오버랩 시키는데 성공한 김대중 정권은 선행된 경제위기를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구조조정을 요청하며 국민적 동원을 호소하게 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사회의 전부문으로 확장되고 각 부문에서 이에 대한 저항이 격화되기 시작하자(신자유주의 내생적 반동성)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정치적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재편을 시도하게 된다. 98년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정권의 지지율은 99년 중반 급감하여 불과 20% 안팎을 맴돌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의 저항은 날이 갈수록 격화되었다. 이렇게 되자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와 NLL(북방한계선) 논란 그리고 정치개혁 공세를 통해 보수주의세력을 상대화시키면서 보다 개혁적인 정치적 파트너를 구성하여 새로운 정치구조를 형성하게 된다. 이를 통해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노동자 민중의 저항을 완화하고 이완시키는 강력한 사회적 합의구조를 형성시키고자 하였다. 여기에는 정치적 신망이 있는 강력한 중간세력을 필요로 하였고 그 새로운 정치구조의 파트너로 386세대와 시민운동진영이 동원된다. (이처럼 한국에서 시민운동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안정감 있게 집행하기 위한 갈등의 조절과 관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합의구조로서 동원되었다.) 2000년 4월의 총선에 형성된 국면은 바로 이러한 요청에 부응한 것이었다. 386세대의 젊은피와 개혁적이고 참신한 인사들 영입하여 ‘새천년 민주당’을 탄생시켰고 이전부터 개혁의 외곽지원세력으로 존재하던 시민운동진영을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을 통해 직접적인 정치적 영향을 행사할 수 있게 하였다.

구조조정 그리고 금융화를 통한 계급해체와 분할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구조조정의 원활한 수행과 노동계급의 공략, 중간계급의 포섭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이 전략들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전 과정을 통해 면면히 유지되면서, 이른바 배제와 포섭을 통해 중간계급을 견인하고 노동계급을 분할․해체시켜 나아간다.

첫째,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계급의 이해를 분할하고 연대를 파괴하기 위하여 이른바 '시차적 구조조정'을 단행해한다. 금융, 기업, 공기업, 노동이라는 4대부문의 구조조정의 대상을 정하고 맨 먼저 금융부문의 구조조정을 단행하게 된다. 이를 표본으로 하여 더 강화된 형태로 기업(제조업)과 공기업 구조조정을 순차적으로 단행하여 결국 전부문의 구조조정으로 확산시켜 나아갔다. 1998년 5월부터 9월까지 제1차 금융구조조정으로 4만 2천명 금융노동자들의 감원이 있었다. 또한, 같은 해 5월부터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한 제조업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8년 7월 3일 1차 공기업 민영화방침으로 포항제철, 한국중공업 등 5개 공기업이 즉각적인 민영화에 착수하고, 한국통신, 한국전력 등 6개 공기업의 단계적 민영화에 돌입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공기업의 민영화 일정을 조율하게 된다. 이렇듯 산업별로 노동자를 고립시켜 공격하는 과정에서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일자리의 손실에 대한 위협으로 인해 업종과 산업을 넘는 연대투쟁에 적극 동참하지 못하게 되고 구조조정은 시차적으로 그렇지만 전 부문으로 확산된다.

둘째, 조직된 노동계급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을 비정규직이나 하청노동자들을 회유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노동자들의 계급적 이해의 분할을 가능케 할 수단을 확보하였다. 특히 구조조정 초기에 금융노동자들의 특권을 널리 선전하며 이들이 비정규직을 포함한 다른 산업의 노동자들과는 달리 경제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따라서 당연히 구조조정 해야한다는 압박을 가했다. 즉, 금융산업 노동자의 특권을 회수하는 구조조정이라는 이미지를 확산시켰고 대중적으로는 민영화 또는 매각을 통해 금융서비스가 향상될 것이라 선전하였다. 마찬가지로 뒤이어 기업 구조조정에서는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수준을 공격하며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이들만 잘 살고 있는 것처럼 공격하였다. 이에 따라 순차적, 산업별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최초로 감행된 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은 이들 노동자들을 노동계급 전체로부터 고립시켜 효과적으로 타격 하였다. 1998년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파업투쟁, 만도기계 노동조합의 공장점거 투쟁도 양보교섭과 정권의 무력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또한 민주노총의 총력투쟁 역시 1998년 6월 5일 정부와 양보교섭 수용, 6․10총파업 철회, 다시 7월 23일 총파업 투쟁을 철회하는 등, 양보교섭과 총력투쟁을 오락가락하면서 단위노조차원에 대한 대응력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셋째, 구조조정이 지속되자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소폭 보장하면서 노동시장 내 위계화된 구조에서 다른 노동자들의 이해와 대립하게 하였다. 구조조정에서 동일사업장에 근무하는 부부는 당연히 한쪽(여성)이 정리해고 되어야 한다고, 정규직이 정리해고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정규직을 정리해고 해야 한다는 논리로 압박하였다. 이를 통해 노동계급의 이해를 산업별로도 분할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할하고 남성/여성, 대공장/중소․하청공장으로 분할시키게 되었다. 노동법 개악으로 대표되는 노동유연화의 확산도 노동계급의 이와 같은 분할․해체 과정에서 관철된다. 98년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의 도입 이후 여성관련 근로기준법의 개악과 기업연금제 그리고 노동시간단축을 빌미로 한 총체적인 노동유연화 공세속에서 각각의 노동자들의 이해는 분할되어 이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을 통해 불안정 노동은 일반화되어 갔으며 수백만의 실업자군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양산하였고 대다수 여성 노동자들을 가사노동과 불안정 노동의 이중적 착취구조 속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넷째, 금융화를 통해 중간계급 및 노동계급 일부를 포섭해 나갔다. 1998년 이후 본격화된 코스닥 시장은 이른바 정보통신 벤처 기업의 재원조달기구로 작동하였다. 게다가 기존 은행의 경우도 2000년 들어 1조원 이상의 자금을 주식 시장에 투자했는데, 이는 은행대출자금을 초과하는 액수였다. 즉, 은행이 고유한 기능을 상실하면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금융화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금융적 팽창과 세계수준에 걸맞는 투기적 감각과 상징-조작능력을 보유한 소수의 억만장자 계급인 ‘골드칼라’를 탄생시켰고 금융화 속에서 일시적 성공을 거둔 금리생활자를 양성하고 350만명에 달하는 개미군단을 양산하였다. 성공한 이들에게는 세계적 수준의 소비가 제공되었고, 영어와 달러의 사용에 적합한 정체성들을 형성시켰다. 게다가 국민국가 차원에서도 이들은 성공한 국민으로써 주요한 정치적 세력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주식시장을 통해 불투명한 미래의 가치에 기대를 걸게 함으로써 다수의 중간계급을 금융화에 동참시켜 나아갔다. 또한, 노동대중의 일부를 우리사주나 종업원 지주제 혹은 스톡옵션을 확대하여 금융화에 전략적으로 포섭하였다.

새로운 계급대중의 형성과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반동적 재편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 공세의 결과 자본의 금융적 팽창과 골드 칼라를 탄생시켰지만 사회적 빈곤과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나갔다. 불안정 노동의 확산으로 전체 노동인구의 60%가 비정규직화 되고 1천만의 빈민이 양산되었다. 지속된 노동권에 대한 공격으로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의 도입, 노동시간 단축을 빌미로 한 노동유연화 공세가 성공적으로 노동현장을 파고들었다. 농촌경제는 파탄나고 농민의 자살이 줄을 이었다. 이처럼 현상적으로 나타난 신자유주의적 재편은 마치 성공한 듯이 보였다.
그러나, 불황기에 토대에서의 축적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금융불안의 가중, 경제위기의 지속, 민중생존권의 해체, 부정부패의 확산으로 국민동원전략은 파탄나고 그에 따라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안정성은 해체된다.(개량의 물적토대의 취약성) 특히, 금융화로 포섭된 중간계급이 금융시장의 불안과 경제위기의 지속으로 인해 이반되기 시작하였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대규모 금융사기 사건의 연이은 발발로 스톡옵션과 종업원지주제를 통한 노동계급의 금융적 포섭은 무력화되고, 수백만에 달하던 개미군단을 자극하여 이들이 점점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구조조정과 이에 따른 생산시설의 축소 그리고 재벌중심의 독점이 강화되자 비독점 자본분파의 이탈도 가시화되고 있다.
한편,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확대되면서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계급갈등은 폭발하여 신자유주의와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특히, 국가보장의 민중 생존권이 시장질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전민중적인 저항이 발발 했다. 교육의 시장적 재편과 경쟁의 격화는 교수와 교사, 학생 등 교육주체들의 저항을 야기했고, 의료개혁의 이름아래 단행된 건강보험의 시장적 재편과 공공의료기관의 민영화 역시 보건의료계의 거센 반발을 받아야 했다. 또한, 새만금 간척사업과 관련한 환경운동, 정보통신과 인권 등 각 영역에서 신자유주의와의 전투가 지속되면서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민중전선의 맹아들은 형성 되어갔다.

무엇보다도, 노동분할전략과 불안정 노동의 확산의 결과로 과거에 조직되지 못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조직되어 새로운 계급 형성의 동력과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조직 노동자들의 저항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 2000년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한 비정규직․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신자유주의 정권과의 대결과정에서 확산되어 왔다. 최초의 이들의 투쟁은 처절했지만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동안 대공장의 대규모 투쟁에 익숙해 왔던 사람들에게 수 십 명에 지나지 않는 조합원들의 투쟁이 정세의 반전은커녕 미미한 영향조차 가져올지 의심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공장의 노동자들이 타협적, 실리적 경향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와 타협없이 투쟁해왔고 스스로를 노동조합으로 조직하고 전국적인 연대를 확산시켜 왔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더불어 이주노동자, 여성, 실업노동자, 장애인들도 독자적인 요구를 내걸고 투쟁의 공간으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계급 계층의 대중적 투쟁은 신자유주의가 양산 불안정 노동의 확산과 노동권 등 기본권에 대한 공격 속에서 등장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상부구조로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착취구조의 반동적 성격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국민동원을 통해 이를 은폐하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김대중 정권에 대해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나 김영삼 문민독재에 비해 상대적인 개혁성을 강조하는 일부의 주장은 계급갈등을 은폐하고 국민동원을 형성하기 위한 정치적 상부구조로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성격을 오해한 것에 다름아니다.) 그 결과 마침내 국민동원전략은 파탄나고 정치 구조의 선택적 구성의 여지마저 없어진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무력을 동원하기 시작하였다.(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반동화) 2000년 총선이 끝난 직후 여름부터 정권은 노동자에게 본격적인 물리력을 동원하기 시작한다. 롯데호텔과 사회보험 노조의 파업투쟁에 대한 폭력진압에 이어 김대중 정권은 2001년 신년사를 통해 강력한 정부를 표방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대우차 노동조합에 대한 폭력탄압과 울산 효성, 태광섬유,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조에 이르는 대대적인 노동탄압이 자행된다. 또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반동성이 노골화되고 국가보안법의 유지, 집시법 개악, 검열 강화 등 반민주적인 폭거가 자행되자 종교계 등 양심적인 민주세력들도 점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따라서 불황국면에서 독점자본의 이윤율 회복을 위한 신자유주의 정책의 노골화는 개량의 물적 토대의 취약함, 그로 인한 중간계급의 이반, 부정부패의 확산 및 무엇보다도 경제위기의 지속 가운데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은 위기를 맞고 있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반동적 재편이 시도되고 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적 변용

경제위기 이전 신식민지적 종속적 축적구조를 지니고 있던 한국자본주의는 국제수지상 만성적 적자를 자본도입에 의한 적자의 보존과 대외채무의 누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독점과 비독점 부문간의 성장의 불균등성이 심화되어 양자간 구조적 격차가 더욱 커져 나갔다. 또한, 세계시장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열악한 경쟁력조건에서 대외적으로 국제분업의 변화에 적응해야 했고 대내적으로는 열악한 경쟁력조건을 만회하기 위해서 노동력의 초과착취와 중소기업이나 농업, 자영업 등 비독점부문의 수탈, 정부의 강력한 재벌지원 정책이 필요하였다. 그럼에도 자본과 생산력의 대외종속에서 비롯되는 대외부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수출주력상품의 세계적인 과잉생산과 수익률 하락에 의해서 독점자본의 이윤율은 하락하게 된다. 따라서 97년 외환위기는 종속적 발전메커니즘과 결합된 독점재벌의 축적의 위기로서 파악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제위기를 배경으로 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이 보다 노골적으로 동원된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지시하는 바, 공기업과 은행의 민영화 및 해외매각, 과잉생산시설의 축소, 금융시장의 팽창과 재벌의 금융화를 동반하게 된다. 요컨대, 이윤율 하락에 맞서 반경향을 조직하는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통해 신식국독자의 축적의 위기는 어떻게 변화 확산되고 있는가?

세계상품시장에서 과잉생산의 조절을 주로 한국과 같은 세계자본주의의 중,하위그룹의 생산량을 축소하면서 돌파한다. 이에 신자유주의(구조조정)는 자동차, 반도체, 철강시장 등 국제적으로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이윤율 하락을 부추겨 왔던 과잉생산의 조절을 시도했다. 자동차 시장의 과잉공급의 조절로서 대우차의 몰락과 하이닉스 반도체(매각)으로 표현되는 반도체 시장에서의 공급조절은 일국에서 특히 신흥시장국에서 생산시설에 대한 해외매각과 생산량의 축소로서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한 방식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자본의 자기파괴에 따른 생산량 조절의 의미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경쟁력 있는 자본에게 시장의 독점적 지배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귀결된다. 또한, 공기업과 은행의 민영화 또는 해외매각의 대상은 현실적으로 국내독점자본이 아니면 해외의 초국적 기업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통해 독점은 더 확대된다. 일례로 한국철도차량은 애초에 공기업이었던 것이 현대모비스(옛 현대정공), 대우종합기계(옛 대우중공업), 한진중공업 등 3사의 철도차량으로 분리 매각되었고, 지난 99년 3사가 통합하여 한국철도차량을 설립했으나, 2001년에 다시 현대자동차 그룹으로 통합되었다.

한편, 금융시장 개방과 확장을 통해 초과잉여의 수탈을 더 강화하게 되는데, 이것은 기존의 잉여수탈구조를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기술적, 상업적 잉여수탈보다도 회전속도가 빠르고 신속한 금융적 방식을 취했다. 금융시장의 팽창과 재벌기업의 금융화 경향은 독점자본의 이윤율 저하를 금융시장을 통하여 비독점 부분으로 이전시키는 방식을 통해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초국적자본 역시 개방된 금융시장의 직간접적인 참여를 통해 초과잉여의 수탈량을 늘렸으며, 이 모든 과정을 국가의 주도하에 집행되고 관철되었다.(신식국독자적, 종속적 착취구조의 유지확장) 여기에 김대중 집권 초기 기업투명성과 기업소유지배구조의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압박가해진 재벌개혁은 실상 월스트리트에 재벌의 재무제표를 그대로 공개하는 것을 의미했고, 그 결과 초국적 자본의 독점 재벌로의 자본침투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주식시장을 통한 초국적 자본의 침투가 일정수준에 오르자 재벌기업의 규제를 강화했던 것에서 서서히 규제를 풀어 독점을 강화시키고 있다.(구조조정을 통한 독점의 강화와 재재벌화) 이에 따라 IMF 관리 기간에도 독점재벌의 시장지배력은 45%이상으로 확대되었고 초국적 자본은 재벌기업의 자본 1/3 이상 잠식했다.

결국 과잉생산 과잉자본으로 표현되는 세계경제위기속에서 한국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확산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축적구조의 변화가 아닌 그 양상의 변화를 낳았다. 이것은 다음과 같다. 수출중심의 공업화에서 재벌중심의 금융화를 포함하는 금융으로의 자본집중을 낳았다. 또한 이 과정에서 과거 외채의존적이던 자본도입 방식은 금융 및 주식시장 개방과 함께 초국적 자본의 직접투자로 변화된다. 이에 따라 과거 상품생산과 수출에 내재해 있던 기술적, 상업적 종속보다도 금융적 방식을 통한 잉여의 초과착취를 확대시키는 형태로 재편하게 되며, 이것이 세계경제의 불황국면속에서 더 효과적인 착취방식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과잉생산부문에 대한 생산시설의 축소와 공기업과 은행의 민영화를 통해 사적독점을 더욱 강화시켜 나아갔다. 이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외환위기 이전
외환위기 이후
산업구조 변화
차관의존적 재벌주도의 수출중심의 공업화
(초국적자본의)직접투자의존적 독점재벌중심의 금융화
지배적 독점 방식
수평적 독점의 확대
과잉생산의 축소와 민영화를 통한 독점 확대
지배적 종속 방식
기술적, 상업적 종속
금융적 종속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범람이 제3세계에 끼친 영향은 경제적 종속의 심화와 금융시장을 통한 잉여의 손쉬운 수탈 그리고 이윤율 축소에 따른 노동자 민중의 권리에 대한 공격, 사회복지의 축소, 불안정 노동의 확산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위기극복전략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은 축적의 위기를 극복한 것도 아니었고, 외환위기의 근저에 있던 부실과잉자본을 청산할 수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는 모순적이고 위기를 심화시키는 정책이었다. 기본적으로 이윤율 저하경향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처방은 금융적 팽창을 통해 국내외 독점자본의 이윤량을 늘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성장의 동력이 되는 자본축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자본의 집적이 없는 자본의 집중으로 위기를 대응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독점부문과 비독점부문간의 격차는 구조조정을 통해서는 물론이고 금융화를 통해서도 더욱 커지고 있다. 또한, 외환위기를 초래하였던 대외종속적 축적메커니즘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고 오히려 금융화되면서 새로운 위기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의 민중민주적 결합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미국 등 제국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세계 금융시장을 통합하여 금융시장을 통한 잉여의 수탈구조를 강화시켜 놓았으나, 일국의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위기로 전염, 악화될 수 있는 불안정한 경제상황을 지속시켜 놓았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는 금융적 종속의 심화와 자본집적 없는 자본집중을 이루어 축적의 위기를 더 확산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구조적이면서도 반복적인 경제위기가 도래하게 된다.
․물질적 성장없는 금융적 팽창을 시도한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자본주의의 기생성과 부후성은 확산되어 전대미문의 금융사기와 같은 대규모 부정비리가 발생하고 있다.
․계급관리와 구조조정의 국민동원적 위해 구성된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정치적 안정성은 해체되고, 이에 따라 정치권력의 반동화 및 지배연합 내부의 균열이 확대되고 있다.
․불황의 지속과 금융불안의 확산속에 금융화를 통한 중간계급의 포섭은 실패로 돌아가고 중간계급의 이탈이 증가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모순의 확대에 따라 전민중적인 저항이 표출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노동분할전략과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으로 비정규직, 여성, 이주노동자 등 노동계급 내부의 새로운 저항주체가 형성되고 있다.

이 조건을 바탕으로 이행의 문제를 보다 전략적으로 사고해 보자. 앞서도 지적한바있듯이 제조업, 금융, 공공부문, 그리고 최근 공무원까지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투쟁을 진행해 왔다. 또한 보건의료, 교육, 인권, 정보통신, 환경에 이르기까지 각 부문에서 대중투쟁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신자유주의 정권과의 대결에서 실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투쟁들이 각 부문별 행동으로 제한되고 고립되어 있으며 서로가 연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계급해체적 노동분할 전략으로 인해 노동계급의 해체와 분절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내부의 교란에 의해서도 연대가 가로막히고 있다. 그것은 좌파의 이데올로기로 위장된 실리주의적 경향에 의해서, 또는 시혜적, 생산적 복지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외곽지원세력으로서 시민운동과의 결합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비록 신자유주의 저항주체로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주체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노동분절화를 극복할 만큼의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노동계급 내부의 단결을 확대시키는 데에도 아직 제한요인이 많다.

그러나, 한계적이나마 눈여겨보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 반대전선을 담당하는 사회운동체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 한․일, 한․칠레 투자협정의 체결을 시도하는 정권과의 투쟁과정에서 ‘투자협정․WTO 반대 국민행동’의 형성으로 모아져 반세계화운동의 매개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또한, ‘민족자주․민주주의․민중생존권 쟁취 전국민중연대’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연대투쟁이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각 부문에서 투쟁이 비록 고립적이라 하더라도 부문내에서 계층적 연대를 확장하고 있다. 교육운동에서 교육의 시장적 재편과 7차교육과정 및 성과급제 도입을 반대하는 투쟁을 통해 교사와 학생간의 연계를 확대하고 있고, 초-중-고-대학을 연계하는 교육구조 속에서 교육주체들간의 연계 역시 강화되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공공성 요구와 함께 민중 생존권의 공공성 확보를 중심으로 교육과 의료 등 각 부문들간의 수평적 연대의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노동자 민중의 과제는 이를 기반으로 상호간 연대를 어떻게 더 확대하며, 민중투쟁을 단지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것이 아닌 주체적 결합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첫째, 토대의 위기 속에서 신자유주의 지배세력의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전략이다. 이것은 독점재벌에 대한 공격과 그를 통해 비독점분파를 견인하는 것 그리고, 금융자본에 대한 적극적이고 실질적 통제를 요구하고 압박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둘째, 신자유주의 지배연합의 반동성과 반민주성을 폭로하여 제 중간계급들과의 연대를 실현하는 전략이다. 셋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 부문에서 분투하고 있는 다양한 대중운동의 요구들과 위의 투쟁과 결합시키는 것에 있다. 현재와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신자유주의와 민중의 요구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적대적 성격이라는 점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부단히 공격받고 있는 일자리, 음식, 건강, 교육, 토지, 주거, 문화, 정보, 민주주의, 정의, 평화, 자주 등 ‘민중의 요구’를 반신자유주의 연대전선으로 수렴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형태로 민중대회를 매년 주요 시기마다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최근 몇 년 동안 진행된 민중대회는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각 계급계층간 결합이 확대되기보다는 나름의 급진성을 상실해 오는 과정이었다. 민중대회는 생존권연대라는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정치적 요구들을 수렴시키지 못하고 있고, 계급대중의 동력을 조직하는데 있어서도 관성화되는 경향이 강했다. 그에 따라 민주노총, 전농, 전빈련 등 대중조직의 요구에 기반해 있지만 대중의 정치적 각성은 늦춰지고 생존권적 요구를 단순히 나열하는 것으로 민중대회가 진행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결국 계급대중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으로는 전선의 급진화와 계급적 연대가 동반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그간 몇 년동안의 민중대회가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눈에 띄는 행사 하나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고용안정, 노동권 보장, 차별철폐 등 7대 요구로 바탕으로 한 ‘민중복지 노동권․생활권 쟁취를 위한 연대한마당’은 그 어느 행사보다도 의미 있는 행사였다. 이 행사는 3일간이나 진행되면서 비정규직, 산재, 장애, 실업, 이주노동자 등 신자유주의의 핵심 저항주체들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과 비록 표현은 같아도 다른 어느 것보다도 힘과 무게가 실린 7대 요구를 제출하였다는 점에서 반신자유주의 민중민주전선의 맹아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중들의 자발적인 요구들을 수렴시키고 각 부문간 계급계층간 연대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 반신자유주의 전선의 민중민주적 강화를 위한 최대의 과제라 할 것이다.

바야흐로 오늘날 한국사회는 신유주의 지배연합의 반동적 재편을 맞이하고 있다. 심화되는 경제위기와 강화되는 민중수탈에 맞서 노동자 민중의 유일한 전망은 이와 같은 민중민주적 전망을 찾아 나가는 길뿐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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