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7/02 제25호

집배원에게 GPS 대신 인력충원을

  • 허소연 전국집배노동조합 선전국장
핸들 아래에 블랙박스와 GPS가 설치된 오토바이 ©전국집배노조
 
2016년 4월 13일. 휴일도 없이 일하던 집배원들이 20대 국회의원 선거로 인한 임시공휴일을 쪼개 민주노조를 만들었다. 국내 최대 어용노조인 우정노조가 수십 년간 2만 집배노동자들의 생존과 노동권을 무시해온 현실을 딛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일터, 노동권이 살아 숨 쉬는 행복한 직장을 만들기 위한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노동조합 설립 이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한국노총 소속의 60여년 역사를 가진 제1노조가 있는데 핏덩어리 복수노조인 신생노조가 좌충우돌을 어찌 안 겪겠는가. 그동안 16개의 지부가 설립되던 기쁨의 현장부터 “어제 관리자가 어떻게 알았는지 배우자에게 전화를 했다. 민주노총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 하더라.”며 연락이 두절된 집배원 소식까지 희로애락의 모든 순간을 조합원들이 함께 공유하며 투쟁해왔다.
 

한 집배원의 죽음과 블랙박스·GPS 설치

그렇게 2016년을 마무리하며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아침부터 전화기에 불이 난 듯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전화를 건 조합원들은 “오늘부터 오토바이에 블랙박스랑 GPS가 설치됐어”, “이거 우리 감시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양쪽 핸들에 달아놨는데 한 번 넘어지면 바로 부서지겠는데?”라며 걱정을 쏟아 냈다.

우정사업본부가 시범사업으로 전국 집배 이륜차 700대에 블랙박스와 GPS를 보급한 것이다. 이는 전체 집배 이륜차 1만 4500여대 중 5퍼센트 정도이며, 2017년까지 2천 800여대 추가 보급을 예고하고 있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언젠가 들었던 사건이 생각났다. 충청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워낙 열심히 일해 선배 집배원들이 아끼는 후배 집배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여느 때처럼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돌아와야 할 그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우체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동료들이 배달구역을 샅샅이 뒤져도 봤지만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 그 집배원은 도로와 논 사이인 논두렁에 죽은 채로 발견됐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선배 집배원은 알고 싶었지만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크게 상심한 사건이 생겼을 때 끊임없는 가정과 직면하게 된다. ‘그때 블랙박스가 있었다면’, ‘그때 누군가 발견하고 신고했더라면.’ 이러한 가정이 집배원에게는 간절한 요구가 되었다. 허무하게 죽고 싶지 않고 억울하게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집배원은 담당구역을 배정받아 혼자 일한다. 때문에 억울한 일이 생겨도 증명해 줄 이도 방법도 없다. 

집배원이라면 누구나 문제가 생겼을 때 본인의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홀로 전전긍긍 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그동안 집배원에게 블랙박스 설치는 안전한 일터를 위한 구체적 요구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답답한 정부기관의 끝판왕! 우정사업본부

이토록 집배원에게 간절한 요구를 우정사업본부는 고압적 노무관리의 빌미로 악용하고 있다. 블랙박스와 GPS기능이 함께 작동되는 장비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범 설치로 인하여 집배원들은 자신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노출되는 것은 아닌지 심리적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다. 그리고 이 압박은 전적으로 우정사업본부 측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블랙박스 장비의 기능 및 설치유무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부족할 때, 노동자가 두려움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반발이 커지자 우정사업본부 측은 ‘현재 GPS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현장을 안정시킬 만큼의 충분한 대답은 되지 못했다. 

이번 블랙박스 장비 설치는 과정부터 문제투성이다. 2016년이 지나기 전에 배정받은 11억여 원의 예산을 집행해야 했기에 졸속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주장이다. 현장에서 직접 이륜차를 운전하는 당사자들과의 논의가 없이 추진하다 보니 문제가 이만저만 아니다. 집배원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길에서 미끄러진다. 그때 가장 먼저 부서지는 것이 핸들과 백미러인데, 블랙박스와 GPS를 핸들에 설치한 건 한 달에 한 번씩 교체하겠다는 뜻과 같다. 또한, 이미 출고된 이륜차에 설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법개조에 속한다. 이후 관련 부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AS 과정에서 원활한 수리가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모든 의혹에 대하여 우정사업본부는 ‘1년간 시범 운영 후 논의해서 결정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대화만 있었다면 더욱 효과적이었을 정책을 비효율적으로 처리해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울 뿐이다. 
 

내 직장은 내가 지킨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우정사업본부가 노동조합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유추해 볼 수 있게 됐다. 함께 회사를 이끌어나갈 주체로서 노동조합을 바라보기 보다는 적당히 무마시키고 관리하면 되는 존재로 생각하는 전형적인 한국 사회의 시선 말이다. 우정사업본부의 해결방식은 늘 이런 식이다. 안전한 일터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규에 GPS가 딸린 블랙박스를 설치하여 노동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기. 동료가 죽어가는 걸 볼 수 없어 인력충원을 간절히 요구하면 정규직을 두 명 자르고 비정규직을 한 명 늘리기.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우정사업본부의 이러한 독단적인 태도는 결국 우편 공공성을 훼손하고 지속가능하지 않은 비전만을 제시할 뿐이다. 전국집배노동조합은 우편사업의 전망을 가장 잘 밝힐 수 있는 당사자는 노동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GPS 및 블랙박스 설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나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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