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필름X정치
  • 2017/03 제26호

지중해엔 물고기보다 출생신고서가 더 많다

영화 <르 아브르>, 우리 곁의 미등록 난민에 대하여

  • 박진우 서울경기인천 이주노조 사무차장
<르 아브르>는 프랑스의 작은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갑자기 나타난 미등록체류 난민소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문제를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해결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다.
 

며칠 전 한 네팔 조합원이 사업장 변경 과정[1]에서 비자 기간이 만료됐다. 미등록 체류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급히 평택고용센터로 내려갔다. 평택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르 아브르>를 보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7년 한국사회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곱씹어 본다. 평택역에서 광장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내려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감시하는 경찰들이 있다. 그들은 역 광장 곳곳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단속하기 위해 순찰을 돌기도 한다.

그  경찰들이 무장을 한 채 미등록 이주난민을 단속하는 모습은 영화 속 경찰들의 모습과 겹쳐졌다. 영화에는 “굳이 이렇게 무장까지 한 채 단속을 해야 하나?”라는 물음에 “규정상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나온다.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그물총, 가스총, 계구 등과 과도한 폭력이 사용되어 매해 이주노동자가 사망하거나 부상 당하는 사례[2]가 많다. 법과 규정이라는 이름으로 매해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마르셀 막스는 우연히 아프리카 가봉에서 온 미등록 난민소년 이드리사를 만나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작은 변화를 맞이한다.
 

나 역시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난민 부부의 아들을 만난 적이 있다. 유창한 한국어로 아이돌 가수에 대해 수다 떠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피부색만 다를 뿐 또래 한국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아이는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을지, 부모님이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강제출국 당하는 것은 아닐지 늘 두려워했다. 활짝 웃는 아이의 모습 속에서 사회에서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난민 소년 이드리사는 본국을 탈출해 프랑스를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야만 한다. 앞서 밀입국에 성공한 엄마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막스는 이 어려운 과정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돕기로 한다. 하지만  소년을 추방시키려 신고하는 이도 있었다. 마을의 형사는 막스의 집에 아이가 숨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수사망을 좁혀온다.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르셀 막스와 함께 구두를 닦고 있는 이주노동자였다. 본인 역시 위조여권을 가지고 있어서 언제든지 강제추방을 당할 수 있음에도, 그는 소년을 돕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선다. 12년 전 이주노조를 만들었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떠올랐다. 2003년부터 386일간 이어진 명동성당 농성을 끝까지 지킨 100여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그 힘을 바탕으로 2005년 4월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난민 소년 이드리사를 안전하게 탈출시키기 위해 막스를 비롯해 야채장수, 빵집 주인, 구두닦이, 록가수는 힘을 모은다. 이드리사는 우여곡절 끝에 마을을 빠져나와 밀항선에 올라타지만 그를 쫓던 형사도 기어코 배에 올라탄다.
 

‘필름×정치(《오늘보다》 2015년 10월호)에 소개된 바 있는 영화 <웰컴>(필립 리오레, 2009)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웰컴>은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러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온 쿠르드족 소년 비랄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도버해협을 건너려던 중 수영 강사 시몬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실제 도버해협을 건너려던 난민 소년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쟁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피난 보트에 몸을 싣고 미지의 땅으로 탈출하는 제2, 제3의 이드리사와 비랄이 존재한다. 실제 아프리카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거쳐서 이탈리아로 진입을 시도하다 익사한 난민들은 2014년 3161명, 2015년 2869명, 2016년 4579명(유럽연합 국경관리청 통계)에 달한다. 다른 난민까지 포함하면 그 숫자는 엄청날 것이다. 이것이 비단 유럽만의 이야기일까?

2016년 한국으로의 난민 신청자는 총 7542명에 달한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난민인정 비율은 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OECD 주요 국가들의 난민인정률이 평균 21.8퍼센트인 걸 감안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대표적 난민 발생지역인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은 대부분 ‘인도적 체류비자’를 발급받는데, 6개월마다 연장을 해야 하는데다 사실상 제대로 된 사회보장혜택을 받을 수 없는 등 눈 가리고 아웅이다. 이렇듯 우리 주위에도 난민 문제는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게다가 앞으로 자라날 난민 자녀들까지 고려한다면, 유럽과 미국처럼 난민과 이주자 문제가 한국 사회의 핵심 쟁점으로 급부상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르 아브르>에서 막스와 함께 구두닦이를 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창은 스크린을 마주한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12년 전 기차 지붕에 매달려 왔어요. 이 위조여권을 사는데 8년이나 걸렸어요. 필요하면 의료보험도 받고 마음만 먹으면 투표도 해요. 가족과 살 수 있고 행복하지만 이 남자는 제가 아니에요. 지중해엔 물고기보다 출생신고서가 더 많죠. 이름이 없으면 추방도 힘드니까요.”

이주노동자 100만, 이주민 200만 시대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안정된 삶을 제대로 보장받게 하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합의가 아닐까? 단속 추방의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닥치는 요즘, 영화 속에서나마 인간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었다. ●
 

Footnotes

  1. ^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바꾸는 건 매우 복잡하다. 고용센터에 방문해 사업장 변경신청서를 제출하고 여러 과정을 거쳐 사업장을 알선 받아 취업해야 한다.
  2. ^ 여러 사례가 있다. 2010년 12월에는 김해에서 베트남 노동자 2인이 도박 현장 단속을 피하다 사망했다. 경찰은 가스총을 발사하고 삼단봉을 휘두르는 등 피해자들에게 무리한 폭력을 행사했다. 2013년 10월에는 대구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화장실 창틀을 넘으려하자 남성 단속반원이 창문을 세차게 여닫는 등의 무리한 진압으로 실명, 골절상을 입었다. 2016년 3월에는 경주 A자동차 부폼공장에서 일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휴식시간에 갑자기 나타난 출입국관리소 단속을 피하다가 높이 5m 담벼락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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