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7/04 제27호

텅 빈 노동공약, 무엇으로 채울까

  • 김동근
2017년 2월 기준 한국의 실업률은 5퍼센트, 청년실업률은 12.3퍼센트다. 취업준비자, 구직단념자를 합한 실질실업률은 30퍼센트가 넘는다. 비정규직은 1000만 명에 육박하여 전체 노동자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연간노동시간은 2000시간을 훨씬 넘어 OECD 평균에 비해 400시간 이상 더 길다.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한 우리의 노동 현실이다.

국가고용전략회의, 고용률 70% 로드맵 등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배제·탄압, 노동유연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에 불과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이에 대선주자들은 일자리 창출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핵심적인 공약으로 발표하고 있다.
 
그러나 공약들은 실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이기보다는 과장된 숫자로 포장된 공약(空約)으로 끝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노조 할 권리’를 확장하기 위한 방안은 대부분 비어 있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81만개?

문재인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를 창출하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5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공공부문 81만 명 일자리 확대’ 공약은 가장 첨예한 쟁점 중 하나로, 발표 후 보수언론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81만 개의 일자리 대부분은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가 아니며,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강바닥에 쏟아 부은 국가예산 22조 원이면 연봉 2200만 원짜리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2조 원은 4년 간 투여된 돈으로, 1년으로 따지면 5조 5000억 원이다. 81만 명을 모두 9급 공무원으로 채용했을 경우 연간 16조 원이 필요한데 순차적으로 확충한다고 해도 턱없이 모자라다.

경총은 한국의 일반정부지출 중 공공부문 종사자 보수가 21퍼센트로 OECD 평균인 23퍼센트와 비슷하여 추가 고용 여력이 없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해 문재인 측은 GDP 대비 일반정부지출의 규모가 OECD 평균의 3분의 2에 불과하기 때문에 공공부문 일자리 확충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이는 일반정부지출의 대폭적인 증가를 전제로 한 주장인데, 재원 확보 방안에 대한 입장은 공백으로 남아있다.

81만 개의 일자리 중 순증가하는 일자리가 17만 개에 불과하다는 점은 또 다른 쟁점이다. 세부내역 중 공무원 일자리 17만 개를 제외하고, 34만 개는 정부 예산으로 민간위탁이 이루어졌던 사회서비스 일자리이며, 30만 개는 공공기관이 민간에 용역을 준 일자리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규모는 상당히 과장된 것이다. 게다가 2017년 민주연구원(민주당)은 노동분야 사회경제정책포럼을 개최해서 공공부문 가운데 고임금층의 임금수준 저하를 통해 재원 일부를 마련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방식의 고용창출은 노동자계급 내부의 재분배에 불과하며, 전체 국민소득에서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반쪽짜리 비정규직 대책

안희정은 비정규직 상황이 큰 틀에서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두 축인 고용불안과 임금차별 중 고용불안은 불가피하며, 임금차별만 해결하면 된다고 주장하면서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노동유연화 기조를 유지하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무력화되면서 임금차별이 발생했으므로 동일노동의 범위를 확장하면 해결된다는 것이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적 개선을 통해 관철될 수 있는지 불확실할뿐더러, 임금차별만 해결하면 된다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 부재를 드러낸다.
 

문재인, 이재명, 안철수, 심상정 등 대부분 대선주자들의 비정규직 대책은 상시·지속 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공공부문 (상시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 강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등으로 대동소이하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있기 때문에 이에 조응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관건은 공약 이행 과정에서 비정규직 관련 공약의 우선순위를 얼마나 높게 설정하고 추진할 것인지가 될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공약으로 제시한다. 공공부문은 고용형태·임금 등에 대해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므로, 공공부문은 대선주자들의 비정규직 공약이 실제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될지 예상케 하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민주당은 비정규직이 고용된 부문에 ‘자회사’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방안을, 국민의당은 ‘직무형 정규직’을 도입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모두 고용불안을 일정하게 해결하는 대신 처우개선은 제한한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노동권 확대 없는 공허한 일자리 · 비정규직 공약

모든 대선주자들의 일자리 공약과 비정규직 공약이 불완전할 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집단적 노사관계, 즉 노동3권의 확장이 매우 중요하지만, 관련 공약은 과소하다. 특수고용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성 강화 등 노동권 확장 정책이 일부 제시되긴 했지만 타임오프제도 폐지,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강제제도 폐기, 부당노동행위 근절, 공무원·교사 노동기본권 보장 등 중요한 항목들은 도외시하고 있다.
 
지난 20년 간 광범위한 노동유연화가 이루어진 일차적 요인은 노동유연화를 허용하는 제도 개악이었지만, 이와 더불어 타임오프제 시행,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그리고 이를 악용한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의 빈발로 인한 노동3권 제약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따라서 일자리·비정규직 대책은 적극적으로 제시하면서 집단적 노사관계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은 민주노총을 배제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 일반에게 직접 호소하는 전략이었는데, 이번 대선에서 각 후보들의 공약도 이러한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심상정은 ‘노동개혁을 정부의 제1의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한편 임기 내 노조 조직률 30퍼센트 달성, 노동부총리제 도입, 고용노동부 확대 개편, 고용청·근로감독청·산업안전청 분리 설치, 노동전담검사제 도입 등을 공언했다. 집단적 노사관계에 관련된 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노동 관련 정책의 실현의지를 전반적인 기조를 통해서 분명히 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하청노동자의 원청과의 직접교섭권을 보장하고, 원청의 대체인력 투입을 금지하며, 하청업체 교체 시 고용·근속·단협을 승계하도록 하겠다고 밝히는 등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권 확대 정책을 가장 전향적으로 내놓았다.
 
 

노동회의소, 민주노조 우회 전략?

문재인은 ‘노동회의소 설립’을 집단적 노사관계 관련 대책으로 내놓았다. 비정규직과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실업자 등 일정기간 고용보험 납부 실적이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며, 고용보험의 재원을 활용하는 노동회의소를 설립한다는 것이다. 노동회의소는 법정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에 상응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대한상공회의소와 노동회의소가 산업·경제·사회·노동 관련 정책을 논의하는 중앙정부 단위 노사관계 기구인 ‘대한민국노사위원회’를 설치해 노사정 대타협을 재시도한다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노동회의소의 설립 취지는 ‘90퍼센트의 비조직 노동자 이익을 대변하고 보호’한다는 것인데, 노동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가장 기본적 조직인 노동조합을 우회하는 법정노동단체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퇴행적이다. 법률적 지위도, 역할도 모호한 노동회의소는 관변단체로 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노총을 배제하는 허구적 ‘노사정 합의’를 만들어내면서 노동조합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낮고, 미조직 노동자의 이익이 대변되지 못하는 것은 현실이다. 그러나 관변단체 설립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는 없다. 미조직 노동자의 이익은 단결할 권리 확대를 통해 해결해야 하며,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고용불안, 원청 사용자의 책임 회피 및 사용자성 불인정, 노동자성 불인정, 그리고 노동조합 활동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노조 할 권리’로 노동공약의 빈 공백 메워야

대선 후보들의 노동 공약들을 검토하다보면, ‘일자리’, ‘비정규직’ 대책에 못지않게 ‘노조 할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제시된 공약들은 불완전하고 실현가능성도 낮다. 일자리 창출 방안은 부풀려졌으며,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질 역시 담보하기 어렵다. 비정규직 대책 역시 고용불안, 노동조건 양자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게다가 어떤 후보가 대통령이 되든 실제 공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자본의 격렬한 저항이 있을 것이다.

20대 대선은 조기대선으로 인해 각 진영의 정책적 준비도 미진한데다, 어떤 세력이 집권하든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정권이 될 것이다. 여기에 더해 경제 상황도 불안정하다. 노동 정책은 왜곡되고 좌절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제시된 공약들의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 현장에서 정책의 현실화를 담보할 민주노조의 존재가 중요하다.
 
대선 과정에서는 집단적 노사관계 관련 공약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한편, 대선 이후 공약의 이행을 강제할 수 있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면밀히 준비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김동근 | 보건의료 공공성, 노동자운동 강화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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