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7/04 제27호

일터의 촛불 켜기, 촛불 이후 공단 조직화

  • 김경민
함께 맞은 봄이다. 마침내 박근혜를 끌어내리고 우리는 다시 한 번 광장에서 봄을 만끽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질문이 남아 있다. 박근혜 파면으로 정말 우리의 삶이 바뀔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쉽사리 긍정적인 답을 내놓을 수 없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탄핵안을 통과시켰고 끝내 대통령도 끌어내렸지만, 정작 우리들의 일터, 삶터는 변한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조기 대선을 마주한 지금, 광장에서 깨달은 우리 자신의 힘을 선거 공간으로만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 박근혜를 끌어내릴 수 있었던 힘을 우리의 일터와 삶터로 가져오지 않는다면 정권교체는 진짜 변화를 막는 알리바이에 그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위해 어떤 질문을 던지는 것이 좋을까. 그 참조점으로촛불 이후 공단 조직화 방안을 주제로 ‘공단노동자 권리찾기’ 토론회를 살펴보았다. 광장을 떠나면 ‘혼자’로 되돌아가는 개인들이 다시 만나고, 광장에서의 경험을 새로이 만들어갈 공간으로 노동조합을 사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욕구, 노동조합에 대한 욕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김혜진 상임집행위원장은 광장의 촛불을 일터와 사회로 확장시킬 유일한 길은 ‘조직’이며, 정치적 공간이 조금씩 열리는 지금이야말로 대대적인 노조 가입 운동이 절실한 시기라고 강조한다. 

87년을 상기해보자. 민주화 투쟁의 뒤를 이어 노동조합이 활발히 건설되었다. 김혜진은 당시 광범위하게 노조가 건설될 수 있었던 조건으로 3저 호황, 현장활동가들의 헌신, 그리고 노동조합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시대 인식을 꼽는다. 

이와 비교했을 때 현재의 조건은 그리 녹록한 것 같지 않다. 경제는 위기이고, 노동자들은 과거보다 집단적으로 일하지 않고 고용형태별로 갈라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단 노동자들은 사업장 단위에서 노동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인용된 실태조사를 보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회사에 노조가 불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회사의 경영악화 우려, 노조가입의 효과 부재, 노조에 대한 반감까지 포함하면 그 수치는 62.4퍼센트에 달한다. (2016년 11월, 시흥스마트허브 비정규직 근로자 실태조사) 

하지만 눈을 반짝이며 촛불 집회 일정을 찾아보는 노동자들이 곳곳에서 목격되는 지금, 변화에 대한 욕구와 노동조합에 대한 욕구가 증대할 것이란 예측도 있다. 따라서 대선 시기 대대적인 노조 가입 운동을 실시하자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노조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적인 접촉면을 보다 넓게 형성하는 것이다. 라디오 광고, 버스 광고, 선전전 등 방법은 다양하다. 
 
 
김혜진은 장시간 노동과 주말에도 이어지는 특근으로 촛불 집회에 나오지 못하는 공단 노동자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오랜 노동시간, 잦은 잔업과 특근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기회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과도 같다. 따라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현실, 자신의 삶을 바꾸기 위해 집단적으로 모이는 곳에서도 소외되는 현실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촛불을 들 기회는커녕 투표할 권리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삶이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일터의 민주주의이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노동조합 만들기

촛불이 열어준 기회를 이미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서울남부 노동자 조직화 사업단 ‘노동자의미래’가 바로 그 예다. 그동안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사업, 근로기준법 준수 캠페인 등의 사업에 초점을 맞추어 오던 이들은 촛불의 열기를 감지하고 촛불 집회를 기획했다. 
 
최순실 태블릿 PC가 공개된 주에 박근혜-최순실 규탄 집회를 피켓으로 홍보하자, 그날따라 유난히 노동법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노동자들이 집회 홍보를 보고 상담 받으러 온 것이다. 여기서 신호를 받아 12월 1일 구로에서 첫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를 열었다. 노동자들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기조로 신문도 제작해 뿌렸다. 박준도 정책기획팀장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존엄을 확인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권을 인지하고,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직장 민주주의의 실체”라고 강조했다. 촛불 이후의 조직화는 바로 이런 목표 아래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했다. 가령 취업규칙의 경우,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더라도 현장에서는 규범으로 작동한다. 그렇다면 이런 비민주적인 규범에 대해 노동자들이 문제제기하고 토론할 수 있게끔 하고, 이를 계기로 단체협약을 맺는 식의 조직화 투쟁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연차휴가를 회사에서 강제로 소진시키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자대표가 서면 합의를 하면 회사가 연차휴가일을 지정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은 근로자 대표를 민주적으로 선출하고 사업장 내 토론하는 문화를 정착시켜야 예방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렇듯 조직화 사업이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권리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고, 자기 조직화로 귀결될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한편 ‘노동자의미래’는 3월부터 ‘과로사·무료노동 없는 가디(가산디지털단지)구디(구로디지털단지)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과로사, 무료노동, 미지급 수당, 포괄임금제가 만연한 일터를 변화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이고, 찾아가는 무료노동·부당해고 신고센터를 운영 중이다. 광장에 모여 박근혜를 탄핵시켰던 그 힘을 이제 우리 일터를 바로잡는 데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삶을 재조직하자 

토론회에서는 봉제사업단, 섬유노동자 권리찾기 사업단과 조선소 하청 노동자 조직화 계획도 공유되었다. 먼저 봉제사업단은 2017년 조사사업을 통해 봉제노동자들의 인적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봉제노동자 당사자를 주체로 세우는 조직사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또 지난 2월 5일 창립총회를 갖고 출범한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이하 거통고조선하청지회)는 현재 34명의 조합원을 9월 30일까지 100명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김춘택 거통고조선하청지회 사무장은 “지금부터 지역의 힘을 한데 모으고 준비해 대통령 선거 이후 대대적인 하청노동자 노동조합 가입운동을 벌여”볼 것을 제안했다.  

이 맥락에서 거통고조선하청지회가 ‘지역지회’의 모델을 택한 것은 좋은 사례로 남을 것이다. 조선하청노동자는 짧은 기간 수시로 사업장을 옮겨 다니는 물량팀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런 조건에서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조합은 모든 하청노동자의 요구를 수렴하는 공간이 될 수 있다. 

한편 민주노총은 대선 시기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재벌체제 해체’ 요구를 걸고 투쟁을 지속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총파업’ 계획을 수립했다. 저임금·비정규직 주체의 파업 투쟁, 미조직 노동자, 중소영세자영업자, 청년·학생 등이 동참할 수 있는 공동행동 등의 방식으로 사회적 저항을 조직할 예정이다. 

대선 주자들은 “내가 되면 모든 게 바뀐다”며 호언장담하고 있다. 그러나 누가 그 자리에 가든 우리 삶을 순식간에 바꿔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앞으로는 여러분이 주인”이라고 감언이설을 흘려도, 당장 선거 다음날 일터의 주인은 여전히 우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쉽게 체념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삶의 일부를 바꾸는 경험을 했다. 이제 다시 그 힘을 삶을 재조직하는데 쏟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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