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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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귀연.HWP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장귀연 | 편집위원, 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대학원에는 발표 수업이 있다. 정해진 내용을 강의하는 식의 수업이 아니라, 수강생들이 각자 관심있는 주제를 공부하고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차례가 되어서 나도 발표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주제는, 글쎄, 한국 노동운동과 관련된 것이라는 것만 밝혀 둔다. 어쨌든, 그 수업 수강생 중에서 일본인 유학생이 있었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 및 코멘트 시간, 처음에 그는 조용히 있다가 뭐라고 말 좀 해보라는 교수의 재촉에 밀려 발표자인 내게 질문을 했다. “전 한국에 와서 정말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하나 있어요. 한국의 대학생들은 왜 노동문제에 그렇게 관심이 많지요?” 허걱, 뭐라고 답해야 하지? 내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는 한 마디 더 덧붙인다. “졸업하고 취직할 때를 미리 대비해서 노동조건이나 그런 문제를 생각하는 건가요?”
하하, 물론 우스운 질문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한국인 학생들은 입가에 웃음을 빼물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학생들이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후 그것이 자기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점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건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있어서, 그들의 행동과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설명 방식 중의 하나다.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은 장차의 이익을 예상하기 때문이다’라는.
사람이란 과연 무엇인가? 또는 톨스토이가 질문했듯이, 사람이란 무엇으로 사는가? 이는 고래(古來)의 철학적 질문이지만, 사회과학에서도 중요한 화두다. 아니, 사회과학의 질문은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보겠다고 덤빈 사회과학으로서는,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어떤 논리와 이유에서 움직이게 되는지를 안다면, 사회의 많은 부분을 법칙적으로 구성하고 예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 중 가장 강력하고 요즘 들어 더욱 강력해지고 있는 것이, 바로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인간관이다.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때, 얻을 이익과 그를 위해 지불해야 할 비용의 가치를 계산하여 흑자가 나는 쪽으로 결정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은, 경제학은 물론이고 사회학의 미시이론에서도 강력한 기반이 된다.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이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개념을 알았을 때, 나는 정말 맞는 말이다 싶었다.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할 때, ‘아, 맞아, 정말 그래’하고 무릎을 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그랬다. 내 삶과 경험을 생각해 보면, 매우 일상적으로 어떤 선택과 결정과 행동을 할 때 항상 이익과 비용을 재빨리, 플러스 마이너스…… 그리고 그 계산결과에 따라 행동한다.
뭐, ‘돈독 오른 년’이라는 나에 대한 일부의 비난(?)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물론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수입이 부정규적인 가난한 대학원생인 내게 일거리가 들어오면, 즉시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윙윙 돌아간다. 총수입, 거기에 들이는 시간, 시간당 수입, 현재 내 상황에서 그 액수의 효용성 정도, 금전수입 외의 부가가치(지속가능성, 신뢰획득 등), 그리고 기타 등등.
그러나 어찌 돈 문제 뿐이랴. 오늘 수업을 빼먹을까 말까. 술 마시러 갈까 공부할까. 집회에 나갈까 집에 있을까…… 이 모든 선택 상황에서, 무차별곡선이 뱅글뱅글 그려지고, 이익과 비용이 플러스 마이너스되고, 한계효용이 계산된다.
예를 들어, 연애를 계속할까 말까. 연애를 함으로써 얻는 이익 : 정서적 안정감, 성적 만족, 생활상의 편리함. 연애를 함으로써 치루는 비용 : 데이트하는 데 드는 시간 및 금전, 생활의 자유에 대한 제약, 관계가 악화되거나 싸웠을 때의 심적 고통. 나는 이익과 비용을 저울의 양쪽에 달아보고 무겁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결정한다.
또는, 한 친구가 갑자기 “오늘 너랑 술 마시고 싶어”라고 전화하는 경우. 그 친구와 나의 친분 정도, 내가 지금까지 그의 부탁을 거절하거나 받아들인 횟수, 반대로 그가 나의 부탁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한 횟수, 그에 따른 신뢰 획득의 가능성, 그 친구와의 신뢰관계를 지속했을 때의 장기적인 이익, 지금 술을 마시는 것에 대한 한계효용, 술을 마심으로써 다른 일을 못하게 되는 기회비용의 정도 등등. 머릿속의 계산기가 순간적으로 팬티엄 Ⅳ급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다.
사랑이나 우정을 어찌 그런 식으로 계산할 수 있겠냐고? 에이, 우리 좀 솔직해 보자.

가치와 가치

그런데, 이처럼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정신에 따라 충실히 살고 있는 나, 이번 추석에 집에 가서, 경제(economy)관념 없고 세상물정 모르고 어설픈 이상을 좆아 자본주의 사회에 순응하려 하지 않는다고, 한소리 듣고 왔다. 하긴 부모님 걱정, 이해 못하는 바도 아니다. 내 나이 또래인 부모님 친구의 자식들은, 모두들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애도 한둘 낳고 그 애를 위해서 보험도 들고 주식투자도 하고, 좀더 잘 나간 축은 검사니 의사니 이런저런 권력도 덤으로 가지고 있고……. 그에 비해, 우리 부모님 자식들의 꼬라지를 보자면, 집도 차도 없고 저축도 물론 없고 직장도 권력도 없고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 해서 당장 저 혼자 몫의 생활비 대기에 급급하고,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긴 하지만 도대체 공부나 제대로 하는 건지 공부를 해서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건지 묵묵부답이고……. “너희가 뭐가 못해서. 너희들이 서울대 들어갔을 땐 하늘이라도 짊어질 것 같더니만.” 우리 남매를 앉혀두고 한숨 푹푹 내쉬는 부모님 마음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좀 민망한 얘기지만, 나 역시 이른바 선망직종의 백 대 일 넘는 입사시험들 몇몇에 거뜬히 붙었었고, 해 본 적은 없지만 고시를 보라 해도 몇 년 내에 합격할 자신이 있다(시험에 관한 한은, 나는 고수급의 요령을 터득하고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말하건대, 내가 돈과 권력과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대단한 희생정신이나 고고한 이상 때문이 아니다. 나는, 그저, 단지,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원리, 나 자신의 이익을 좆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말이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내 계산기에서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추구,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가 훨씬 비싸게 매겨진다. 말하자면, 나도 내심 돈과 권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추구함으로써 얻는 이익과 치뤄야 할 기회비용을 계산해 보았을 때, 고시를 보거나 취직을 하는 것보다 지금 이 생활이 이익이라는 계산결과가 나와 그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했을 따름이다.
결국 가치는 가치와 같은 말이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가치’를 검색해 보라.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경제학적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주관적 의미에서이다. 그러나 둘 다 한자로는 價値, 영어로는 value이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논리를 구성하는 비용과 이익 및 가격의 기반이 되는 가치는, 그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가치관(價値觀)과 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세상물정 모르고 어설픈 이상에 따라 경제관념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지금 이 사회에서의 개인적인 출세가 아니라 사회의 진보와 민중의 세력화를 위해 무언가를 행동하기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결코 희생정신이 아니라 내게 비싼 가치를 지닌 어떤 것을 획득하기 위해서이다. 나의 가치관은 내 선택을 좌우하는 계산기의 가치를 구성한다. 나는 당당한 호모 이코노미쿠스다.
그러하니, 명절 때마다 부모님 찾아뵙고 한 걱정 들을 생각에 머리부터 아픈 동지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저는 제 이익을 좇아 잘 살고 있습니다”라고.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며칠 전 십년지기인 편집실장 홍석만 동지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토라지게 되어서, 이번 달 원고를 안 쓰겠다고 억지를 부렸다(물론 정말로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 좀 짓궂게 괴롭혀줄 생각에서였는데, 아니나다를까 “야, 그러잖아도 이번 달 펑크난 원고가 많아 메우기도 힘드는데, 너까지 그러면 어떡하냐?”라고 몸이 달았다. “나 요즘 글 못 쓰겠어.” “너 뭐 리포트도 쓰고 보고서도 쓰고 그러면서 이건 못 쓰겠다니?” “리포트는 학점이 나오고 보고서 작성은 아르바이트 거리로 돈이 나오지만, 이거 쓰면 학점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하하, 사실은, 학점이나 돈보다도, 사회진보연대에 글을 쓰고 동지들 및 독자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내 계산에서 엄청난 흑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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