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7/06 제29호

드라마·방송 제작현장에 만연한 적폐

“원래 그런 것은 없어요”

  • 이지윤
10월 26일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어느 누구보다도 잘 살 것이라 생각했던 친구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했던 친구다.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그만큼이나 글을 잘 쓰던 친구다. 그래서 우리는 친구의 죽음을 믿지 않았다. 
 
CJ E&M측의 사죄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대책위 기자회견 ⓒ씨네21
 

믿기지 않았기에 알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있던 친구였다. 가족들은 그 죽음을 믿지 못해 CJ에 질의서를 보냈다.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CJ는 가족들에게 답변을 보내 그의 동생에게 “방송계의 관행을 잘 몰라서 그런다”고 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다른 현장과 비교해 특이점은 없었다”는 것이 골자였다. 그래, 방송계가 다 그렇지 뭐, 라고 넘기고 싶었지만 너무 억울했다. 모두가 다 버티는 그곳에서 친구만 버티지 못한 거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것이 억울했다. 

유서를 보고 또 보고, 고인과 나눈 메시지를 살펴보며 혹시나 내가 알아채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반문했다. 현장에 있었던 시간은 남아있지만, 회사에서의 시간은 내가 확인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회사에 들어갔던 출입기록과 그가 남긴 서류들을 볼 수만 있다면 답이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CJ는 그 정도도 허락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가 근무에 태만했고 사회성이 떨어졌다는, 얼토당토않은 답변이었다. 

이것 역시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한빛과 3개월을 같이 일했지만 나는 그와 3년 동안 학생회 일을 함께했다. 2011년, 비상총회를 소집하고 본부를 점거하는 54일 동안 그는 절대 나태하지 않았다. 힘들다고 일을 놓아버리지 않았고, 함께 지내야 하는 사람들에게 차갑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바뀔 리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한에서 한 가지는 확실했다. 살인적인 근무 환경이었다는 것. 그에게는 숨 막히게 많은 일이 주어졌고 잘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녹취록에서 그는 촬영을 시작한 후 6개월 동안 단 하루를 쉬었다고 했다. 발신 통화 건수를 살펴봤다. 촬영기간 ‘발신’통화 건수만 1547건이었다. 다른 동료 스텝은 분개하며 “절대 태만할 수 있는 근무 조건이 아니었다. 쉴 시간이 있어야, 퇴근을 해야 태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증언했다.

알고 있다. 드라마 현장 다 그렇다는 것. 하지만 ‘원래 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원래 그렇다’는 것의 다른 말은 적폐다. 이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다. 내 친구의 죽음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서로를 비난해야 살아남는 이상한 세계 

많은 돈이 필요하지만 제작비는 한정되어 있고, 시청률 순위는 순식간에 뒤집히고, 70쪽 분량의 대본을 일주일 안에 찍어 정해진 시간에 내보내야 하는 드라마 현장. 나도 그 세계에 발을 담근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스탭들은 모두 죽을 만큼 일을 한다. 그런데, 혹은 그러다보니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혹여나 내가 실수를 했다면 내가 욕먹지 않을 유일한 방법은 남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이다. 작가가 글을 못 써서, 감독이 잘 못해서, 소품팀이 제대로 일을 못해서, 조연출이 일을 못해서, 미술팀이 감각이 없어서, 기획팀이 현장을 몰라서 등등. 

카톡방에서 서로에게 공개적으로 욕을 하거나, 다른 스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욕하고 비난하는 건 일상이다. 카톡방에서 가장 무서운 말은 “이거 누가 했니?”였다. 그 후에 분명히 욕이 쏟아질 테니까. <혼술남녀> 현장에서는 욕설과 비난을 넘어, 20명의 스텝을 교체하는 것으로 소위 현장의 군기를 잡았다. “너 일 못한다고 드라마 판에 다 소문났어”라는 말은 또 하나의 무서운 말이었기 때문이다. 

누가 어디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동네다. ‘tvN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회’(대책위)가 운영했던 제보센터에는 폭언에 대한 수많은 제보가 들어왔다. 하나하나 가슴을 후벼 팠다. 한 제보자는 이렇게 썼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가 나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위염으로 다가와서 밤 중에는 토를 하는 일도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벌거벗은 채로 명동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이었다.” 

모두가 하루에 몇 번씩 폭언을 들으며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동네. 그 곳에서 나조차도 막내 피디가 욕을 들을 때 편들어주지 못했다. 너무한 거 아니냐고 얘기하지 못했다. 용기 없는 내가 폭력적인 현장을 재생산하는 데 동참했던 것이다.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 

알고 있다. 이 동네에서 사고는 일상이고, 죽음은 우스운 것이라는 것. 하루 1시간 밖에 자지 못해 졸음운전을 하다가 중앙분리대를 박았다는 이야기는 여럿에게 들었다. 3시간 이상 자면 많이 잤다며 비난 받는 곳이다. 남들 다 밥 먹을 때, 막내가 같이 밥 먹고 있으면 혼나는 곳이다. CJ는 지방 촬영 시 숙박할 곳도 잡아주지 않아서 스탭들은 찜질방을 돌았다고 했다. 

4월 28일, 한빛의 추모제가 끝나고, 술집 옆자리에 있던 이는 고인의 죽음이 멍청하다고 했다. 자기가 죽어서 바뀔 것이 없는데 멍청한 거 아니냐고. 분노가 치밀어 테이블을 엎고 싶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다 비정상이지만 바뀔 기미는 안 보이니까. 나도 못했으니까. 그런데 일면식도 없는 다른 이가 그에게 조용히 반박했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고. 용기 있는 내 친구는 그에게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고 쓰인 뱃지를 건넸다.  

어떤 이도, 어떤 변화도 한빛을 대신할 수는 없다. 드라마 현장이 안 바뀌어도 되니까, 한빛만 살아 돌아와 술이나 같이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한빛은 세상에 빛을 남기고, 어두운 현장에도 작은 균열을 내고 떠났다. 

4월 18일부터 시작되었던 대책위의 활동으로 CJ와 대화가 재개되었다. 이번 사건만큼은 어둠속에 묻히지 않으면 좋겠다는 시민들과 방송 종사자들의 열망이 9000건이 넘는 온라인 서명으로, 160건에 달하는 제보로, 400명의 추모제 참가인원으로 드러났다. CJ가 전적으로 책임을 인정한 입장문을 낸 것도 함께 마음을 모았던 모든 이의 힘 덕분이다. 앞으로 대화를 통해 드라마 현장을 바꿀 수 있는 대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기를 바란다. 적어도 8시간 이상의 휴식과 수면시간이 정당하게 보장되는 현장, 밥은 제 때 눈치 안 보고 먹을 수 있는 현장, 성폭력이 묵인되지 않는 현장이 되기를 바란다. 

한빛의 죽음과 관련하여 600건이 넘는 기사가 발표되고 있음에도 방송국에서는 지금껏 한 줄의 언론기사도 나오지 않았다. 자신들도 드라마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란다. 죽음에 대한 묵인은 더욱 잔인하다. 더 이상 시청자들에게 잔인한 드라마를 소비하게 만들지 말라. 아무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CJ부터 사과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다면 현장은 달라질 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없다. 현장의 누군가가 용기 내어 말하기 시작했으면 한다. 한빛이 즐겨 읽었던 책처럼, 미래는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
 
 
고 이한빛 PD의 추모제에서 발언하고 있는 고인의 어머니 ⓒ부산일보
 
필자 소개

이지윤 | 빈곤사회연대에서 일하며 tvN신입조연출사망사건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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