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7/08 제31호

핵 발전 옹호론자들의 대표적인 궤변들

문제는 ‘누가, 어떻게 탈핵할 것인지’이다

  • 홍명교
지난 6월 19일, 우리나라의 첫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가 폐쇄됐다. 노후 정도가 심각해 진작 폐쇄됐어야 했다. 늦었지만 천만 다행이다. 밀양 송전탑 투쟁 등 피눈물나는 사회운동의 성과이자, 지난겨울 박근혜 퇴진 촛불 광장 한 켠에서 울린 ‘탈핵’ 구호의 성취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이후 원자력 연구자, 업계 등 원자력계와 조선일보, 중앙일보, 매일경제 등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비난이 거세다. 기존에 조용한 로비 방식을 구사하던 원자력계는 갖은 전술을 동원해 반대 여론 만들기에 집중하고 있다. 보수언론들도 연일 탈핵 운동을 ‘무지몽매하고 반민주적’인 집단으로 매도하기 위해 A부터 Z까지 다양한 논거를 들이대고 있다. 결정 과정이 엉망이라는 주장부터, 비전문적이고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힐난, 나아가 시간과 토론이 더 필요한 사안을 아무 대안 없이 결정하고 있다는 비판, 청와대에 들어앉은 전대협 출신 386 인사들이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이념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는 식의 황당무계한 주장까지 다양한 논거를 들이대고 있다.

대선 시기부터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세워왔던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예정되었던 고리 1호기 폐쇄 행사에서, 야심차게 탈핵 계획을 발표하며 공사 중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결정했다. 막대한 매몰비용의 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는 신고리 5·6호기 폐쇄 여부는 공론조사 과정을 거쳐 시민들이 결정하게 하겠다고 한다. 공론 조사라는 형식과 숙의 민주주의라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치적 부담을 덜기 위한 조처로 보인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공론 조사를 거쳐 신고리 5·6호기 공사 지속을 결정하면 그대로 따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보수언론의 공세가 물밀 듯 쏟아지는 지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이 주도해서 논의하고 결정할 문제인가?

핵 발전 지속 여부는 전문가들만이 논의하고 결정할 문제인가?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국가의 사활이 걸린 에너지 정책을 공청회나 전문가의 의견 수렴 없이 성급하게 추진해선 곤란”하다며, 정부의 탈원전 선언 및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결정이 “공청회나 전문가의 의견 수렴 없이 성급하게 추진됐다”고 비판했다. 전문가 집단이 참여하고 부지선정, 정부 승인, 원자력안전위원회 심사 등 겹겹의 과정을 거친 거사를 부지불식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에너지 믹스’라는 “너무도 무거운 국가대사”를 “비전문가 집단인 시민배심원단의 판단에 맡”겨선 안 된다는 거다. <조선일보>도 “아무리 많은 정보를 준다고 해도 전문가의 지식과 식견엔 턱없이 모자랄 수밖에 없는 시민 배심원”이 책임 있는 결정을 할 수 있겠냐며 거세게 비판했다.

‘전문가주의’는 원전을 둘러싼 갈등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논거 중 하나다. 지금껏 핵발전소를 어디에 어떻게 건설하고 운용하느냐를 결정하는 문제는 소수의 원자력 학자, 정치인, 거대 기업들의 차지였다. 핵 발전의 원리 자체가 발전소 방식, 종류, 풍향, 파도, 폐기물 처리 문제 등 꽤나 복잡한 기술적 문제들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이를 이해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으니 전문가들이 어련히 숙고해서 결정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폐기물 방사선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이들은 전문가들이 아니다. 그 바깥에 있는 지역 주민, 노동자들이 당사자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아일랜드 핵발전소 사고 때 피폭당한 노동자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진압에 투입된 노동자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서 죽은 주민과 노동자들은 모두 ‘비전문가’였다.

이처럼 핵발전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 나아가 인류 전체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사고를 일으켜왔음에도 여전히 핵발전소를 둘러싼 결정은 꽤나 불투명하고 비민주적인 구조로 이뤄진다. 일단 핵발전소 자체가 엄청난 출력을 갖고 있고, 작동 원리인 핵분열은 속도 조절이 어려워, 그 자체로 위험성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 군사 무기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뜨거운 문제도 안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제한된 부분에서의 전문성이 사회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정에 권위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전문가는 결코 어떤 이해관계에서 초월한 공평하고 공정한 존재가 아니다. 최근 환경운동 진영과 일부 언론의 핵 마피아에 대한 비판에서 알 수 있듯, 교수와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력 연구·개발 발주를 받아왔고, 원자력 기술과 교육 등 패키지 상품의 해외수출 등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집단이다. <2015년 원자력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핵발전 산업 총 매출액은 26조 6324억원으로, 급격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른바 전문가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는 연구·공공기관의 매출액에 한정했을 때 1조 2821억원에 달한다. 산업의 성패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매몰 비용 때문에 밀어붙여야 하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에 대해 <조선일보>는 “공론화 기간 동안 공사를 일시 중단만 해도 1000억원 이상 손실”이 생기고,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포기할 경우 이미 집행된 공사비 1조 6000억원과 기업들에 대한 보상비 1조원을 합쳐 2조 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비판한다. 이는 국민 세금으로 메꿀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너무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침소봉대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보단 잘못된 사업은 중단하는 게 보다 현명한 처사다. 이미 많은 비용이 들어갔더라도 문제가 있으면 중단하는 것이 추가적인 피해를 막는 길이다. 

대만의 경우, 2014년 4월 당시 공정이 97.5퍼센트나 진행되었던 원전 건설을 멈추기로 결정한 바 있다. 대만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탈핵 운동이 밑바탕이었고,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결정적 계기였다. 야당인 민진당과 탈핵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1999년 착공한 네 번째 핵발전소에 대한 건설 중단과 원자력 의존 발전 정책 수정 등을 요구하며 싸웠다. 12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국반핵행동’은 타이베이 중앙철도역 앞 도로에서 핵발전소 가동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고, 5만여 명 규모의 거리행진을 벌이는 등 활발하게 투쟁했다. 이처럼 시위가 날로 격화되고 있었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집권당으로서 정치적 부담을 지고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 1월 대만 입법원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2025년까지 원전 가동을 중단하고 완전한 ‘탈핵’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지난해 정권 교체한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공약이기도 했다. 11조 3000억 원의 매몰비용을 감당하며 아시아의 첫 ‘원전 제로’가 된 셈이다.

언제까지 ‘매몰비용’ 핑계로 에너지 체제 전환을 지연 혹은 거부할 것인가. 핵발전소는 한번 가동되면 5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 그 때문에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는 지난한 시간이 걸린다. 핵발전소 건설 중단, 지금이 논의의 적기다.
 

전기 요금만 올라간다?

원자력과 석탄을 줄이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으로 대체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기요금이 막대하게 오를 수 있다는 경고도 있다. 그 근거로 최근 5년 평균 전력 판매 단가가 1㎾h당 원자력 53원, 석탄 66원, LNG 142원인 점을 근거로 든다. 또, 국제 정세 변화로 석유나 LNG 공급이 불안해지면 에너지의 97퍼센트를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일면적 해석에 불과하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발전원별 균등화발전단가(LCOE)’[1]에 따르면 2022년이 되면 원전은 1MWh당 99.1달러, 석탄화력발전은 140달러인 반면, 풍력발전은 52.2달러, LNG 56.5달러, 태양광 66.8달러로 훨씬 저렴한 것으로 나왔다. 영국 정부가 발표한 ‘전력 발전 비용 보고서(Electricity Generation Costs)’ 역시 2025년이 됐을 때 1MWh당 균등화발전단가는 원전 95파운드, 석탄 138파운드인 반면, 풍력발전 61파운드, 태양광 63파운드, LNG 82파운드다. 5~8년 후면 신재생에너지와 LNG 발전단가가 원전이나 석탄보다 오히려 낮아진다는 얘기다. 현재 한국에서 계산하는 원전 발전단가는 핵폐기물 처리나 폐로 비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합리적인 단가를 계산하려면 발전소 설계와 폐로, 폐기물 처리까지 드는 비용을 합계해야 한다. 

전기료 인상을 우려하는 주장들은 2016년 기준 발전단가를 2029년까지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매해 감소하는 재생에너지 발전단가나 추가로 붙는 원전·석탄 상승비용은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미래 전기요금 예측은 그에 맞는 수급계획을 토대로 해야 하는데, 이 역시 공백으로 남아있다. 전력 수급계획은 전력수요 모델링을 통해 수요량을 예측하고, 필요 전력량과 공급량을 계산하는데 이때 전력 예비율을 어떻게 책정하느냐가 문제다.

전력 예비율이 5퍼센트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요즘처럼 폭염이 집중되는 한여름 일주일과 한겨울 일주일 중 하루 몇 시간 가량이다. 이 때문에 오후에 쓸 전력량에 대비해 오전에 전력 생산을 풀가동하기도 하는데 이런 방식은 심한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다. 전력 공급 구조의 개선을 통해 피크 시간대의 수급만 조절하면 과대한 전력 공급의 비효율을 막고 수급 조절이 어려운 핵발전의 축소를 끌어낼 수 있다. 전문가들이 해야할 일은 ‘전기요금 폭등’ 협박과 ‘전력 대란’ 우려가 아니라, 불확실하고 비효율적인 전력 수급 구조를 바꾸기 위한 노력이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은 시기상조?

탈핵 반대론자들은 풍력·태양광 전기 비중이 1퍼센트 미만인 상황에서 20퍼센트까지 늘리려면 “서울 절반 면적(3억㎡)에 꽉 들어찬 태양광과 제주도보다 넓은 면적(29억㎡)의 풍력 설비를 갖춰야 한다”며, 이것이 좁은 국토에서 가능한 일이냐고 반문한다. 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더라도 “(장기적 안목에서) 연구·개발과 투자를 꾸준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밋빛 전망을 근거로 중대한 에너지수급 계획을 짜면 재앙”이라는 것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는 비판이다. 하지만 이는 ‘핵발전의 지속’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될 뿐이다. 원전 및 화석연료 기득권 세력의 주장은 일방적이고 기득권 방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만능 해결책으로 여겨선 안 된다. 현재 재생에너지 대부분은 전력부문의 에너지 공급을 대체할 수 있을 뿐, 에너지 다소비 사회의 시스템과 에너지 민주주의에 있어서 재생에너지 연구·개발 자체만으로는 대안을 세울 수 없다. 한국의 에너지 중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40퍼센트 남짓이고, 재생에너지는 전력 에너지를 제한적으로 대체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에너지 문제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시스템의 전환은 사회·경제·문화 시스템과 민주주의 문제인 반면, 재생에너지는 기술적인 쟁점이 크다.

최근 월간 《워커스》 33호 ‘탈핵, 쇼미더머니’ 특집의 기사들은 태양광 발전 등 소위 재생에너지마저 자본이 잠식하고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의 전력 수급 방식과 비용, 고용 등 에너지를 둘러싼 민주주의의 문제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조선일보> 등이 내세우는 ‘핵발전과 재생에너지의 공존’이라는 방향과 하등 다를 게 없다. 보수언론과 원전 기득권 세력은 에너지 민주주의의 반대 방향을 가리킬 뿐이다.
 

누가 어떻게 탈핵할 것인가?

문제는 ‘누가, 어떻게 탈핵할 것인지’다. 정부의 공론조사는 기간이 짧고, 참가도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불안정성이 크다. 대상도 신고리 5·6호기만으로 한정되어 있다. 길고 광범위한 토론이 필요한데, 이는 사회운동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탈핵과 재생에너지 전환이 기술적인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보수언론의 발목잡기를 뿌리치고, 한발자국 더 나아가야 한다.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인 노동자와 시민들이 대안 사회를 조직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함께 행동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를 통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방향을 시민들과 함께 모색하고, 사회운동·환경운동 진영은 오랜 기간 축소되어 있던 왕래와 공동의 실천을 확대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에너지 체제의 전환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노동자,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아가는 시민들 사이의 분리를 주체적으로 전환하고 반자본주의적 생태 사회를 만드는 길로 이어져야 한다. ‘노동조합 따로’, ‘시민운동 따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지를 함께 토론하고 결정하는 대중운동이 가능하다면, 불평등과 비민주성으로 얼룩진 기존 시스템을 대체할 대안들은 충분히 만들 수 있다. ●
 
 

Footnotes

  1. ^ 균등화발전단가균등화(Levelization)란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비용 및 발전량을 연도별로 균일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발전소 건설 및 운영에 따른 비용과 발전량은 매년 변동되어 발전소별 발전원가의 비교가 용이하지 않다. 따라서 연도별로 불규칙하게 발생하는 비용과 발전량을 연도별로 균일하게 만들고, 화폐의 시간적 가치를 고려해 일정시점(상업운전 시점)으로 할인하고, 발전량도 동일시점으로 할인해 산출한다.
덧붙이는 말

본 글은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 에너지정의행동, 《정의로운 전환》(김현우 저, 나름북스), <녹색당 대안전력 시나리오>,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 주요 일간지의 탈원전 관련 최근 보도 등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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