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7/10 제33호

세계를 휩쓴 우익 포퓰리즘의 위협

대안세계화 운동은 침체를 극복할 수 있을까

  • 조은석
우리는 커다란 전환기를 겪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브렉시트, 프랑스 국민전선의 부상과 사회당의 몰락, 독일에서 1945년 이후 최초의 파시스트 정당(AfD) 의회 입성 등 2007년 금융위기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했을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금융위기가 불러온 세계적 대침체(Great Recession) 이후 신자유주의 헤게모니는 큰 타격을 받았다. 트럼프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선출직 정치인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자유무역과 그 결과인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분명한 반대를 표명하면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으로 분류되던 ‘러스트 벨트’(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지역의 공업지대)의 백인 노동자표를 가져온 게 주효했다. 혹자는 어째서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었냐고 묻는 게 아니라, 왜 이제야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됐는지 질문해야 한다고 한다. 그 정도로 지난 수십 년 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로 인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양극화의 심화와 사회적 보호 해체, 생활 파탄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왜 세계화로 인한 불만이 이민자에 대한 적대, 여성과 유색인종·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을 상징하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표출되고 있냐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왜 지금까지 금융 주도의 세계화를 비판해 온 대안세계화 운동이나 좌파세력이 아니라, 인종주의와 보호무역주의 이데올로기를 섞은 우파 포퓰리즘 세력이 대중적으로 부상하고 있냐는 질문이다.
 
 

세계를 휩쓴 위기의 서로 다른 얼굴 

2007~2008년 경제위기 이전에도 금융세계화로 인한 위기는 멕시코·일본·핀란드·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스페인·러시아·아르헨티나·아이슬란드 등에서 금융위기의 형태로 나타났다. 하지만 국지적으로 발생한 위기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위협을 가하기보단, 반대로 신자유주의를 더 강화했다. 세계적 금융 네트워크에 대한 상호 의존적인 통합과 탈규제 정책으로 발생한 금융위기는 정치 개혁을 가속화하는 데 이용됐고, 이는 노동자와 노조의 협상력을 약화시켰다.

이는 양극화의 심화로 귀결됐다. 하지만 선진국 노동자들은 집단적 저항에서 해답을 모색하기보다는 저금리의 유동자금이 주도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ABS(자산유동화증권) 같은 금융 혁신이 부추긴 자산 가격 상승에 취해 있었다. 

2007~2008년의 세계적 경제위기는 국가별로 다른 모습으로 전개됐다. 위기가 서로 다른 경로로 전개됐기 때문에 그에 대한 정치적 대응 역시 달랐다. 예를 들어 스페인이 속한 소위 피그스(PIIGS,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영국) 국가들에서는 저금리로 발행한 국채에 대한 시장의 불안이 가중되면서 국채 위기가 나타났다. 이에 대응해 소위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 유럽연합집행위원회, 국제통화기금)의 해법인 ‘긴축’을 통한 내적 평가절하와 경쟁력 회복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그리스의 급진좌파정당 시리자는 집권에 성공하고 긴축반대 총투표를 성사시켰으며, 스페인의 M15(5.15)운동과 ‘분노한 사람들’의 정치적 의지를 이어받은 포데모스는 유럽의회 진입에 성공했다. 하지만 두 나라 노동조합의 대응은 일국적 대안을 기반으로 한 ‘위기 코포라티즘’일 뿐이었다. 위기의 성격은 국제적이었는데, 노동조합의 대응은 국내적 혹은 그 이하였기 때문에 긴축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독일을 비롯해 덴마크·네덜란드 등 북유럽 국가의 경우, 대침체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비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과 서방의 군사 개입, 기후변화로 인해 시리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난민이 발생했다. 이는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초래하고 있고, 이슬람국가(ISIS)의 발호는 대규모 인구의 이동으로 귀결됐다. 문턱에 난민들을 마주한 북유럽 국가에서는 인종주의적 색채가 강한 극우 또는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이 부상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진앙지였던 미국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양적 완화를 통해 금융 시스템을 구제했다. 하지만 위기 이후 양극화는 심화되고, 최근에서야 실업률이 2007년 이전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대침체 이후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나라다. 2011년 ‘우리는 99퍼센트다’라는 슬로건을 제시한 월스트리트 점령운동 이후, 미국의 경제·정치·환경·사회 위기가 불러온 폭발적인 사회운동들이 뒤따랐다. 2013년에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 반대 운동), 2014년에는 민중기후행진, 2016년엔 샌딩록 송유관 반대 투쟁, 2015년에는 ‘최저임금 15달러와 노조할 권리’ 운동이 미국 사회의 구조화된 이슈를 새롭게 제기했다. 그럼에도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다. 
 
 

포퓰리즘의 부활

기존의 정치규범과 지배적 세계관의 배신이 일어나는 가운데 각국에서 부상하는 새로운 (특히 우익적인) 대중운동을 포퓰리즘(인민주의)이란 틀로 볼 수 있다. 물론 포퓰리즘은 통일적인 정치적 기획이나 비전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정의가 쉽지 않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공통적으로 갖는 특징을 꼽아볼 수는 있다.

우선 포퓰리즘은 공동체를 계급으로 나누지 않고, 완전무결하고 순수한 국민으로 여긴다. 공동체의 안녕이 위협받는 이유는 ‘대중’과 대립하는 ‘엘리트’가 상류층의 이해만을 대변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직접 호소와 엘리트에 대한 불신이 포퓰리즘의 핵심이다.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자신들이 엘리트에 맞서 국민을 위해 싸운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이때 ‘국민’은 엘리트들이 외집단(내집단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질감이나 적대의 대상)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편애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들이다. 즉 우익 포퓰리즘은 국민·엘리트·외집단으로 이루어진다. 외집단의 자리엔 이민자·이슬람 교도·아프리카계 미국인 과격분자·난민·귀족노조 등 누구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들어갈 수 있다.

포퓰리즘의 부상은 자유주의의 무능력과 관련된다. 동시에 대안 이념의 부재 또는 무능력이라는 조건과도 상호 작용한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의 등장은 위기에 대한 대안 기획으로, 사회주의 혁명이 실패함으로써 등장했다. 오늘날 부상하는 포퓰리즘 역시 사회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갉아먹고 있다. 포퓰리즘의 부상은 위기의 심화를 나타내며, 자유주의를 비롯한 기존의 정치 이념이 위기에 빠졌음을 나타내는 징후로 읽어낼 수 있다. 문제는 세계를 해석하는 과학적 틀이 부재한 포퓰리즘에서는 갈등을 다룰 수 있는 적절한 틀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은 어디로 가는가?

유럽의 우익 포퓰리즘은 미국에 비해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들의 뿌리는 파시스트나 나치와 연관되어 있는데(프랑스 국민전선이 대표적), 지금의 우익 포퓰리즘이 발흥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유럽연합과 유로존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두 차례 세계 대전을 겪은 후 ‘전쟁의 위험을 어떻게 제어할 것이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 해결책은 나토 설립을 주도한 미국을 유럽 땅에서 유일한 압도적 세력으로 인정하는 것이었다. 미군에 의해 보장받은 안전으로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이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70년대 말까지 사회주의권과 직접 대면하고 있던 유럽경제공동체(EEC)는 유럽의 복지와 함께 발전했고, 경제 통합과 복지의 동시 추진은 유럽연합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냉전 종식 후 유럽의 복지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점차 퇴보했고, 유럽연합은 제대로 된 금융 정책과 사회 정책 없이 단일 통화를 도입하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정치 통합체 건설 과정에서 시장에 우선권을 주는 실수를 범했다. 민족국가는 화폐주권을 상실하고 재정정책의 자율성도 크게 제한 받았다. 

각국 국민들 간 연대가 부재한 가운데, 유럽 차원의 재정 정책 없이 진행된 경제통합이 가져온 유로화의 모순은 경제위기를 계기로 완전히 폭발했다. 유로화 도입은 독일 마르크화에 자국 통화를 영구적으로 고정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통화 및 재정 정책에 대한 제약이 설정된 아래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생산성 향상과 노동 비용 절감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이는 독일과 같은 중심부 국가의 경상수지 흑자와 그리스와 같은 주변부 국가의 적자로 귀결된다. 주변부 국가는 중심부 국가로부터 자본을 차입할 수밖에 없게 되어 주변부의 부채는 증가한다. 안타까운 것은 독일의 산업 수출이 세계 최저의 가격탄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산업 설비 등 독일 수출의 상당부분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살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노동비용과 인플레이션이 유럽 평균을 하회하는 독일은 범용품 생산과 수출에서도 다른 나라들을 압도한다. 부가가치 사슬 상위의 상품과 하위의 상품 모두에서 경쟁국가를 압도하는 독일의 경쟁력에, 2000년대를 거치며 하락해 온 독일의 실질임금까지 고려하면 독일 경제는 그야말로 따라갈 수가 없는 상대였던 셈이다. 결국 독일을 제외한 모든 나라들이 사이좋게 무역적자국이 됐다. 하지만 발권력을 동원하지도, 통화의 평가절하를 사용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재앙과도 같은 결과가 다가온다.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게 된 유럽 국가들은 차입은 더 늘리고 다시 그 돈으로 독일 수출품을 샀다. 채권을 구매한 은행들은 주변부 유럽 국가의 국채를 대규모로 구매했다. 이는 일종의 보험이기도 했다. 더 많은 주변부 국채를 보유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외채 위기는 개별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유로존 전체의 시스템적 위기가 되기 때문에, 더 많은 주변부 국채를 보유함으로써 혹시 모를 위기 상황에서 유럽중앙은행이 손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위기가 닥쳐 대차대조표를 살펴보니 은행권이 가지고 있는 주변부 국가 국채의 양이 너무 많아서 한 국가 수준에서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을 양으로 밝혀졌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 나온 대마불사(Too big to fail)가 아니라, 너무 커서 구제할 수 없는(Too big to save)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국채 위기 상황에서 발권력이 없으면, 돈을 찍어 낼 수도 없고, 통화의 평가절하도 불가능하다. 파산은 자국 은행 시스템을 완전히 붕괴시킬 것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내적 평가절하를 통한 물가하락과 임금하락을 통한 경쟁력 회복, 즉 긴축뿐이다. 은행과 금융기관의 무책임한 행태의 책임을 민중들이 지게 되는 꼴이다. 물론 사태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 위기가 가시화 되었을 때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중앙은행이 위험 국가의 국채를 사서 대차대조표 깊은 곳에 묻어 두었다면, 사태는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메르켈은 남부 국가들의 흥청망청한 정부 지출을 비난하는 쪽으로 선거를 이끌었고, 유럽 주변부의 외채 위기는 우리가 아는 대로 전개됐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노조들은 그리스 인민들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긴 했지만, 유럽을 하나의 “위험 공동체”로 부각시키고 여론을 바꿀 수 있을 만큼 신뢰가능하고 진보적이며 연대에 기반을 둔 대안을 제시할 능력은 없었다. 이는 지금까지의 국제연대 기획이 선언을 넘어 실제적인 중요성을 갖지 못한 한계를 반영한다.
 
독일 국채 기준 주요국채 스프레드  (출처 : European Commission)


대량 난민과 우익 포퓰리즘의 발호 

각국의 기존 정당들은 유럽연합이 제시하는 요구조건을 충실히 이행하고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불가피성을 설득함으로써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는 데만 열중했다. 초민족적 관료기구로 표상되는 유럽연합은 정치에 대한 대중의 소외감을 증폭시켰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유럽의 우익 포퓰리스트들이었다. 

얼마 전 끝난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은 예상대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하지만 12.6퍼센트의 득표를 얻은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9.2퍼센트의 지지를 얻은 좌파당을 제치고 제3당으로 부상했다. 사민당은 20.5퍼센트로 전후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사민당의 이탈표는 좌파당이 아니라 대거 ‘독일을 위한 대안’으로 몰렸다. 극우 정당에 투표한 이들은 대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 경제 불안, 이슬람 혐오와 반이민 정서 속에서 반외국인적이고 극우적인 정책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지지를 보냈다. 난민들과 이민자들로 촉발된 불안감 속에서 경제적 양극화와 불안정을 심화시킬 정당을 지지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유럽의 극우 포퓰리즘 부상의 배경이 된 이민자와 난민 행렬의 기원에는 서구 선진국 경제 개발의 역사적 부산물인 기후변화, 제국주의 시절 뿌려 놓은 지역분쟁의 화약고 위에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군사 개입이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리아가 속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농경과 인류문명의 주요 발상지로서 에덴동산이 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곳이었으나, 지금은 불모지가 돼버렸다. 시리아에서는 이미 내전 전인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기상관측 사상 최악으로 기록된 가뭄이 닥쳐 농민들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 기록적인 가뭄은 지구 온난화에 따라 지중해 동부 지역에 강수량이 점점 줄고 토양의 습도도 낮아진 것이 원인이다. 가뭄이라는 자연현상은 정치 불안의 촉매로 작용했다. 더욱이 미국의 제국주의적 중동 지배가 낳은 괴물인 이슬람국가(ISIS)에 대한 전쟁이 지속되면서 벨기에·프랑스·터키·이라크·독일 등에서 테러행위가 지속됐다. 시리아 내전은 내부의 복잡한 세력관계와 주변국가, 미국 및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심각한 인도주의적 위기 상황을 초래했고, 이는 거대한 난민 행렬을 낳고 있다. 
 
 

대안세계화 운동의 침체

앞서 지적했듯 포퓰리즘의 등장은 좌파적 대안의 부재를 동시에 의미한다. 그 틈을 인종주의적 반이민주의가 채우고 있고, 기존 정당과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은 매우 크다. 국제적 운동은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되어 있고, 연대 역시 쉽지 않다. 이런 현실은 일국적 차원에서 전투성을 가지고 투쟁을 잘 한다고 해서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역적 차원의 노동자 연대, 세계적 차원의 국제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안세계화운동의 문제의식은 소중하다. 하지만 유럽좌파당 내 대안세계화 운동의 기수였던 이탈리아 좌파 일부는 붕괴했고, 경제위기를 맞아 각국의 좌파들은 다시금 일국적 대응을 강화했다. 국제연대는 진지한 정치적 기획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었고, 독일노총과 좌파들은 유럽적 차원의 긴축에 대한 독일사민당과 정부의 입장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이주노동자 혐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사회적·문화적 공격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문재인 정권 등장 이후 함께 박근혜 정권을 반대했던 세력 가운데서도 이전 정권의 대이주민 정책을 적폐로 규정하고, 이주민에 대한 통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세계적인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흐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민주적 권리와 노동권을 방어하기 위한 투쟁이 중요하지만, 그를 위한 일국적 우회로(위기 코포라티즘)는 없다는 것이다. 국제연대와 이주노동자 조직화를 조합원과 함께 하는 실제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한다. 혹시라도 노동조합이 반이민 정서와 외국인 혐오에 기댄 시도를 할지 모르지만, 이런 모든 시도는 불가능할 뿐 아니라 단결의 기반을 훼손함으로써 결국 자기 발등을 찍는 행보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
 
 
필자 소개

조은석 | 전국건설노동조합 정책3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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