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교육
  • 2018/01 제36호

현대판 노예, 기간제 교사 보고서

  • 강서희
나는 8년 차 기간제 교사다. 올해 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대학교 성적 증명서와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등등 학교에서 요구하는 7~8가지 서류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맬 생각을 하니 앞이 아득하다. 어떤 학교에 가게 될지, 어떤 선생님들과 일하게 될지, 아니면 아예 구직에 실패해 학교에서 일하지 못하게 될지 알 수 없다. 

요즘에는 과목에 따라서 1년 짜리 기간제 교사 자리에 수백 명이 몰리기도 한다. 학교 관리자들은 “어떤 과목은 공고를 내자마자 원서가 무섭게 쌓이고 팩스가 고장 날까 봐 팩스로는 안 받”는단다. 일부러 지원자수를 줄이기 위해 “1년 짜리도 6개월로 낸다”고도 한다. 2월이 지나고 3월이 다가올수록 얼굴에 짙은 구름이 드리워지고 불안과 공포의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구직자들이 면접 대기실에서 서성인다.
 

실업의 공포를 아시는가? 더 이상 자리를 구하지 못할까 봐, 나이도 많기 때문에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일도 없을까 봐, 그렇지만 먹고 살아야 하니 돈은 벌어야 하는 사람이 서서히 벼랑 끝으로 몰리는 듯한 심정을 알고 계시는가? 계약 연장의 ‘은혜’를 베풀지도 모를 관리자가 시키는 일은 아무리 과중하고 부당해도 거절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할 수밖에 없는 ‘노예’ 같은 교사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으신지? 바로 비정규직 교사, 기간제 교사들이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학교들은 기간제 교사들의 ‘실업의 공포’를 이용하며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서울의 경우 교사의 11퍼센트가 기간제다.)
 

기간제 교사 고용 불안정과 이를 이용하는 학교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의 최대 계약 기간은 1년이다. (물론 6개월, 심지어 3개월짜리 계약도 있다. 일부 몰지각한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에게 갈 방중 월급을 아끼기 위해 자행하는 일명 쪼개기 계약이라는 얌체 계약 행태다) 하지만 휴직 형태에 따라 1년이 2년, 3년, 심지어 4년도 될 수 있다. 

인사권은 교장·교감이 갖고 있다. 주변 정교사들의 평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기간제 교사는 학교에서 일반 회사의 인턴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 다른 인턴은 그 기간을 무사히 보내면 정규직이 된다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우리는 평생을 인턴으로 보내야 한다. 그것도 떠돌아다니면서,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끔찍한 일이다.

아, 평생은 아니다. 이렇게 살 수 있는 것도 통상 우리 기간제끼리 ‘기간제 교사 정년’이라고 칭하는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마흔 이후엔 구직이 훨씬 어려워진다. ‘온전한 형태’의 자리를 구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부스러기 자리(위에서 말한 쪼개기 계약 자리)라도 어쩔 수 없이 가게 된다고들 한다. 

기간제 교사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고용 불안이다. 학교는 이것을 알고 이용한다. 기간제 교사 면접 합격 통보를 받고 학교에 가면 모든 정교사들이 외면하는 ‘어렵고 힘들고 구질구질한 업무’ 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이것을 거부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는 아무도 없다. 그 선에서 끝나면 다행이다. 학기 중에도 각종 업무가 치고 들어온다. 관리자들은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기간제 교사에게 지시한다. 이 역시 거부할 수 있는 기간제 교사는 없다. 
 

이 선에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일부 비상식적인 학교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진다. 얼마 전 강원도 모 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공연하는 영상이 공개되며 지탄을 받았었다. 남 일 같지 않았다. 1박 2일 교직원 연수에 가서 기간제 교사 장기자랑을 시키거나, 학교 축제에서 신임 교사가 공연하는 게 전통이니 걸그룹 댄스를 추라는 지시, 심지어 집 근처에서 한잔하고 있는데 생각나서 연락했다며 나오라고 하는 중년 남자 교사도 있다. 본인 취미인 토요일 산행에 기간제 교사들만 부르는 교감도 있다. 이 교감 선생님은 아침 6시 50분에 대책회의를 한다며 기간제 교사들만 소집했다. 

대체 이런 부당한 지시를 누가 따르냐고? 열심히, 적극적으로 한다. 미니스커트 입고 걸그룹 댄스를 춰야 하는 기간제 교사도 있다. 그 앞에서 술에 얼굴이 벌게진 중년 남교사들이 매우 열광한다. 신임 교사의 대부분은 기간제 교사다. 왜 학교의 전통을 1년도 안 되어 떠날 기간제 교사들이 이어야 할까?

요지는 하나다. 기간제 교사는 ‘노예’ 신세이고 대다수 일반적인 관리자들은 이를 소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일부 ‘악덕’ 관리자들은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질 높은 교육과 교내 민주주의를 위한 고용 안정

우리는 관리자들이 시키는 업무를 하느라 수업 연구 시간이 부족하다. 질 높은 수업,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수업을 할 수가 없다.

‘신분 공개 문제’ 도 있다. 내가 기간제 교사라는 사실이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 이를 이용하는 교사도 있다. 자기는 정교사인데 누구 선생님은 기간제라는 둥 이야기를 흘리면서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거다. 학교 현장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이러니 소신과 교육관을 펼치기 힘들다. 그 피해는 학생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예스맨이 될 수밖에 없다. 교장·교감이 비교육적이거나 권위적인 행보를 하고 이와 관련된 업무를 지시해도 이를 묵묵히 수행할 수밖에 없다. 교장·교감들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이를 이용한다. 실제로 어떤 교장은 학교에 10퍼센트 이상의 기간제 교사들이 있어서 매우 든든하다고 했다. 그가 교장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전교생을 운동장에 세워두는 아침 조회 부활이었다. 

학교의 일부 합리적인 교사들이 반대해도 관리자들은 이를 무시할 수 있다. 10퍼센트 이상의 기간제 교사들과 부장 교사들, 부장이 되고자 하는 교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즉 기간제 교사는 교내 민주화에 심각한 걸림돌이 된다. 기간제 교사의 고용 불안은 기간제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의 문제이고 선생님들의 문제다. 학교 현장 전체의 문제다. 
 

교육청이 나서야 한다

우리 기간제 교사들은 고용 안정을 간절히 바란다. 우선 고용주가 교장·교감이 아니라, 교육청이 되어야 한다. 매년 수백 장의 서류를 뿌리며 추운 거리를 헤매지 않을 수 있도록 교육청에서 고용을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같은 ‘노예’ 들이 더는 양산되지 않도록, 교육 현장의 비정상화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학교 현장의 계급이 사라질 수 있도록, 신규 기간제 교사를 뽑는 것을 멈춰야 한다.

기간제 교사 인력풀이 운영 중이다. 교감이 자신의 학교에서 일했던 기간제 교사들 중 ‘괜찮다’ 싶은데 더는 그 학교에 있을 수 없게 된 사람을 추천해서 인력풀에 올리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기간제 교사가 되고 싶은 구직자들은 항상 넘쳐나므로 많은 학교에서는 인력풀 선에서 이미 면접 대상자 선정이 끝난다. 즉 인력풀에 올라가지 못한 기간제 교사는 고용 기회를 아주 많이 잃는다. 

인력풀 등록 권한은 오직 ‘교감’에게만 있다. 기간제 교사는 또 한 번 ‘을’이 되어 교감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인력풀에 올려주십사 간청할 수밖에 없다. 인력풀에는 기간제 교사의 주된 업무, 출신 대학, 집 주소까지 자세하게 올려야 하므로 과정 역시 매우 번잡하고 구차하다. 이러한 인력풀 역시 아예 없애든지, 기간제 교사는 의무적으로 모두 올리게 하든지 대책을 마련되어야 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우리의 고용이 안정되어 인력풀 대신 교육청에서 우리를 관리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전교조에 바라는 점

나는 올해 전교조 조합원이 됐다. 기간제 교사는 가입 자격이 안 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함께 근무하는 전교조 선생님들께서 가입을 권유해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 성과급 반대 투쟁을 지지한다.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 현장을 떠받치고 있기에 그나마 대한민국 교육이 이 정도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교 현장에서 다른 비조합원 교사들보다 더 적극적으로 기간제 교사에게 권위를 내세우고 갑질하는 전교조 교사들을 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일하는 학교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의 깨어 있고 민주적이며 성실하신 모습을 보며 전교조를 다시 보게 됐다.

전교조가 우리를 기억해주고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전교조 조합원들의 학교에도 유령처럼 그림자처럼 투명인간처럼, 노예처럼 학교 현장의 궂은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기간제 교사들이 있다. 그들을 이용하지 말아 달라. 그들이 힘든 일을 하는 것을 당연시하지 말아 달라. 그들은 노예가 아니다. 같은 인간이고 교사다. 왜 그들이 그런 일까지 해야 하냐고 문제를 제기해달라. 모든 행동이 고용과 연관되는 우리는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를 같은 전교조 조합원으로 인정하고 우리의 고용 안정 투쟁을 지지해달라. 우리의 고용 안정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교조 선생님이 있는 학교의 문제이기도 하고 선생님 자녀 학교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가 고용안정이 되어 찬바람 부는 거리를 헤매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교장·교감의 노예로 머리를 조아리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우리도 학교 현장에서 전교조 선생님들과 함께 참교육을 멋지게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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