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경제
  • 2018/03 제38호

위태로운 한국 경제, 도로 헬조선?

  • 김태훈

세이프가드에 이어 철강관세까지 꺼내든 미국

미국의 통상 압력이 거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세탁기와 태양광 셀·모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했다. 이어 2월에는 철강 수입에 대한 관세부과조치를 예고했다. “안보를 위협하는 수입품”에 대통령이 직접 관세를 매길 수 있게 한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미국 상무부는 미국 철강 수입 규제 방안 3가지를 대통령에 제안했다. 첫째, 모든 국가에 일률적으로 24퍼센트 관세를 부과할 것. 둘째, 12개국(여기에 한국이 포함된다)에 53퍼센트 관세를 부과할 것. 셋째, 국가별 대미수출액을 2017년의 63퍼센트로 제한할 것. 
 

규제 방안은 4월 중으로 결정이 된다. 여기에 한미FTA 재협상에서는 한국의 자동차·부품 수출을 문제 삼고 있다. 반도체도 예외는 아닌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대상으로 3건의 특허 침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환율조작국 지정 문제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신자유주의 금융화가 만든 고용 없는 성장과 불평등의 책임을 무역적자와 이주노동자 문제로 호도하는 트럼프의 우익 표퓰리즘은 미국 내에서도 확고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다. 일례로 블룸버그 통신은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대승을 일치감치 전망했다. 이번 중간선거는 하원 의석 전체와 상원 의석의 3분의 1을 뽑는데 민주당이 하원 다수를 차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물론 이는 언론의 예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실제 지난 앨라배마 보궐선거의 패배, 낮은 대통령 지지율, 총기규제 요구 확산 등 트럼프와 공화당으로서는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트럼프가 기존 지지자들의 재신임을 얻기 위해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 

트럼프의 정책이 실효성이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금융자본을 대변하는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철강 관세 조치에 대해서도 철강 가격을 올려서 철강을 소비하는 연관 산업의 더 많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보수 야당들은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연일 맹비난하면서 외교·안보 라인의 교체와 전략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통상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 야당의 비난은 정작 왜 한국 경제가 통상압력에 그토록 취약할 수밖에 없는지를 완전히 간과한,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 또한 이런 한국 경제의 대미의존성·구조적 취약성이라는 문제를 풀어갈 일관적 해법 없이 임기응변식 대응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능한 것은 분명하다. 
 

위태로운 수출주도 경제

한국의 무역의존도(GDP대비 수출입액)는 2016년 기준으로 63.9퍼센트로 일본 25.4퍼센트, 중국 33.3퍼센트보다 월등히 높고, GDP 규모가 비슷한 캐나다 52.7퍼센트보다도 높다. 게다가 2008년 이후로 수출지역 집중도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수출주도 성장이 동아시아 국가 간 경쟁에서 점점 더 강한 압력에 처하고 있다는 점은 심각한 위험요인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의 수입시장에서 주요 8대 수출품목의 시장 점유율이 대부분 하락했다. 미국에서는 2013년에 비해 철강·철강제품·정보통신·조선·정밀기기 등 5대 품목이 하락했다. 중국에서는 자동차·정밀기기가 특히 크게 하락했으며, 석유화학·철강·철강제품·조선 등 6대 품목 역시 하락했다. 

한국 경제는 중국과 베트남 등의 해외생산 공장에 부품을 수출하고 최종 생산물은 미국시장에 수출한다. 그리고 수출로 획득한 달러를 외환보유고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 국채를 구입하는데 사용하면서 다시 달러를 미국으로 환류한다. 이런 대미 의존 구조는 동아시아 수출주도 국가들에 전형적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글로벌 원하청 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경합도 하면서 최종 수출 시장인 미국을 두고 경쟁한다. 그런데 한국의 수출 산업의 기술경쟁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점차 축소되거나 거의 없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경우 글로벌 수요의 6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국이 2025년까지 현재 10퍼센트 수준인 자급률을 70퍼센트로 높이기 위해 약 170조 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정부 주도로 반도체 산업 펀드를 조성하여 기술력이 뛰어난 해외 기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 중이다. 현재 한·중 간 기술격차는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에서 2~3년, 범용 제품에서는 1~2년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게다가 한국 반도체 산업은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업구조인데, 고부가가치 제품인 비메모리 부문 시스템 반도체 시장에서의 시장 점유율은 4.7퍼센트에 불과하다. 반도체 생산 장비의 국산화율 역시 30퍼센트대에 불과해 대부분 미국, 일본 등에 의존하고 있다. 

자동차는 더 심각하다. 국내 자동차 수출은 2011년 315만대를 기점으로 점점 감소하고 있는데 이는 해외생산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해외생산이 감소하며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점유율이 낮아졌다. 중국 생산량이 30퍼센트 이상 감소했으며, 미국 생산량도 10퍼센트 이상 감소했다. 미국·유럽 자동차 업체와 글로벌 ICT(정보통신기술) 업체들은 자율주행 및 전기자동차 기술을 2025년 전후를 기점으로 미래 표준으로 부상시키려 하는데, 자율주행 및 전기자동차 분야에서는 중국과 시차가 없는 상황이다. 
 
 

높아지는 금융 불안정성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연준)의 금리 정책 전망을 두고 최근 국제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상승 랠리를 이어가던 미국의 다우존스 지수가 폭락하자, 한국 증시 역시 함께 급락했다. 레버리지 투자 비중이 높아진 것이 이러한 변동성을 키웠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코스피(유가증권)와 코스닥을 합친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지난 6개월 간 35퍼센트 증가했다. 특히 개인 투자자가 많은 코스닥 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48퍼센트 증가해 사상 최고치 경신을 이어가고 있다. 신용거래융자 잔액 증가는 개인 투자자가 증권사에 대출받아 주식 투자를 한 금액으로 빚을 내서 주식투자하는 경우가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인데 증권담보대출 규모가 2008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훨씬 뛰어넘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 정책, 낮은 이자율,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비은행 금융기업의 확대 등이 유동성을 극대화하며 금융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글로벌 유동성 축소가 신흥시장에 투자된 자금의 회수를 자극해 금융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올해 미 연준이 3월 중, 그리고 연중에 추가로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예상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16개 투자은행 모두 3월 금리인상을 예상하며, 연중금리 인상이 3~4회라고 예측하는 투자은행이 증가하고 있다. 현재 한국의 기준금리는 연 1.50퍼센트로 연준의 정책금리 상단과 같다. 2월 말 한국이 금리를 동결했는데, 미국이 3월 21일에 금리를 올리면 미국 금리가 한국보다 더 높아지는 ‘금리역전’이 발생한다. 이 경우 해외투자가 늘어나고, 국내투자가 빠져나갈 위험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은행이 수개월 내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확실하고,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상당한 수준이라면 외국인이 자본회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것처럼 세계적으로 금융 불안정성이 커지고, 한국 수출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외국인투자자의 동향이 중요해질 것이다. 실제로 지난 1월 17일 세계 3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그룹 회장이 방한해 경제부총리를 만난 후, 문재인 정부는 ‘셀 코리아’를 우려한다는 명분으로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 범위를 늘리겠다던 계획을 취소한 바 있다. 

한편 내국인의 해외직접투자 추세도 주목해보아야 한다. 해외직접투자는 주로 2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국민연금과 금융기관의 해외(미국)부동산투자와 제조업의 현지시장 진출 목적 투자가 증가했다. 해외부동산 투자는 채권처럼 안정적이면서도 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으나, 해외자산가격이 하락하면 국내로 금융 불안정성을 전이시키는 경로가 될 것이다. 또한 현지진출을 위한 해외직접투자는 무역장벽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중소제조업체까지 확대되는 추세인데, 궁극적으로 국내 투자·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도로 헬조선?

지난 겨울 우리는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재벌의 세습을 위해 국정을 농단하고 사익을 추구했던 대통령을 감옥으로 보내고, 재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이재용 삼성 부회장도 구속시켰다.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단지 그들을 구속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파괴해 온 우리의 삶과 권리를 되찾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이 만든 재벌 독식 경제를 바꾸는 길이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깊이 통합된 한국 경제가 변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아직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경제는 금융시장 개방·무역 개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재벌 수출 중심의 성장 일변도를 지속하며 구조적 취약성을 심화시켰다. 한편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외 금융·무역 리스크에 취약해졌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적 지배력을 통한 특권 추구에만 몰두한 재벌로 인해 기술 혁신도 한계에 도달해있다. 

점점 더 가시화 되고 있는 글로벌 유동성의 축소, 보호무역주의적 통상 갈등, 금융 불안정성의 증가는 국가 간 노동자들의 갈등과 분열을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노동자 간 경쟁을 격화할 것이다. 최근에 지엠(GM)이 한국 노동자들을 상대로 협박하는 모습처럼, 사회를 재건할 근본적 대안을 찾지 않는 한, 다른 선택지는 야만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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