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조 할 권리
  • 2018/04 제39호

천만 시민의 9호선, 노동조합이 지키겠습니다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 박기범 위원장, 라기원 사무국장 인터뷰

  • 박상은
2009년 7월 개통한 서울 지하철 9호선은 강서에서 강남까지 30분 만에 연결하는 황금노선이다. 9호선 덕분에 월간 《오늘보다》의 사무실이 있는 연남동에서도 여의도나 강남에 가기 더욱 편해졌다. 9호선은 지하철 최초로 서울시 산하 공사 직영이 아닌 민자 운영방식을 택했는데, 2012년 4월 서울시메트로9호선이 기습적인 요금인상을 공지하고 시민들이 이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민자 운영방식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맥쿼리 등 외국 대주주가 서울시의 세금으로 ‘최소운영수익보장’을 통해 안정적 수익을 보장받고 있었다는 점이 알려졌고, 결국 맥쿼리는 2013년 10월 지하철 9호선 사업에서 철수했다.

맥쿼리 철수 후 4년여가 지난 지난해 11월 30일, 9호선의 파업소식이 날아들었다. “지옥철 9호선을 바꾸는 파업”이라는 기치로 진행된 6일간의 파업은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의 첫 파업이었다. 타 운영사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 이로 인한 살인적인 업무강도 등의 문제점을 알렸다. 파업 종료 후 길고 어려운 협상 끝에 올해 1월 23일 교섭을 타결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상황은 나아진 걸까. 공공운수노조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의 박기범 위원장과 라기원 사무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장시간 노동과 높은 이직률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에는 기관사, 역무원, 보안직원 등이 소속되어 있다. 박기범 위원장과 라기원 사무국장은 둘 다 기관사다. 지난 파업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9호선의 기관사 인력은 서울교통공사 4호선의 68% 수준이다. 적은 인력은 장시간·고강도 노동과 직결된다.

“서로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이 엇갈릴 때가 있어요. 이걸 교행이라고 하는데, 그 때 반대편 기관사에게 인사를 하려고 돌아보면요. 솔직히 이건 정말 부끄러운 얘기인데 … 다들 고개를 숙이고 있어요. 졸음운전을 하고 있는 거죠. 고개를 들려고 해도 들어지지가 않아요.”

한 바퀴 왕복을 한 뒤 휴게시간을 갖는데, 타 노선보다 운행시간은 긴 반면 휴게시간은 짧다. 휴게시간은 1시간~1시간30분 정도 되는데 휴게 시작과 종료 보고시간을 제외하면 실 휴게시간은 30~40분으로 줄어드는 경우도 있다. 

“피곤하니까 주로 밥을 안 먹고 그냥 자요. 실은 밥을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요. 구내 식당은 교대근무자들 스케줄에 전혀 맞춰있지 않아서 이용하기가 힘들고 근처에 식당도 없고요. 개화역에서 내리셔서 편의점 보셨죠? 거기가 도시락이 제일 많이 팔리는 편의점일걸요. 저희가 가장 자주 이용하는 곳이 거기거든요. 근데 편의점 음식도 하루 이틀이지 맨날 먹긴 힘들잖아요.” 
 
서울9호선노동조합 박기범 위원장 (출처 뉴스토마토)

열악한 노동조건은 높은 이직률로 연결된다. 많은 노동자들이 다른 궤도사업장으로 직장을 옮긴다. 노동조합이 설립되기 전인 2016년에는 기관사 5명 중 1명꼴로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밀폐된 공간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기관사들의 공황장애 등의 문제가 최근 몇 년 언론에 많이 보도되었는데, 이런 문제는 없는 것일까.  

“저희 쪽도 예외는 아닌 거 같아요. 실제로 그런 의심 케이스들도 있고요. 공황장애 등은 장기간 근무하면서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라 아직 개통한지 9년 밖에 되지 않은 9호선에서는 사례가 많지는 않아요. 이직률도 높다보니 기존 사람들이 떠나면 또 젊은 사람들로 채워지니까 또 드러나지 않고요.”
 

8년 만에 세운 노동조합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은 2017년 1월에 만들어진 노동조합이다. 개통은 2009년이니 8년 동안 무노조 사업장이었던 것이다.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은 이전부터 강했다고 한다. 촛불투쟁이 막 시작되던 2016년 11월, 노동조합의 필요성은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던 젊은 직원들이 1기 기관사인 라기원 현 사무국장에게 도움을 청했던 것이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의 시작이었다.  

“젊은 친구들이 찾아와서 노동조합을 같이 하자고 했는데, 실은 저도 겁이 났어요. 그런데 못한다고 얘기하기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박기범(현 위원장) 기관사를 설득해오면 하겠다고 했어요. 실은 안 할 것 같아서 공을 넘긴 건데 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전에도 두 차례 정도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있었는데 회사의 방해로 번번이 무산이 되었어요. 저는 이전에도 노동조합을 할 생각이 있었어요. 근데 한 명도 저한테 제안을 안 하더라고요? 제안이 왔을 때는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후배들이 선배들한테 손을 내밀었는데 그걸 뿌리칠 수는 없었어요.” 

지난 번엔 사측의 견제 속에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 실패 원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초동 멤버들이 보안을 유지하면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초동 멤버들의 교과서는 바로 노동법과 고용노동부 매뉴얼이었다. 

“저희는 교과서를 보고 노동조합을 만든 케이스예요. 민주노총에 계신 분과도 연결이 되어서 멘토처럼 도움을 받았고요. 그런데 책으로 만들다보니 현장과 다른 것들도 많더라고요. 고용노동부 매뉴얼 보니까 노동조합 집행부 임기를 3년으로 하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보통 2년 하고 재신임을 묻거나 하는 식이더라고요? 그런 걸 몰랐죠. 또 법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행동만 하니까 누구도 태클을 걸 수 없었던 것은 장점인데, 테두리를 못 벗어나니 투쟁이라는 게 줄 그은 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밀어붙이거나 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약한 지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밀어붙이는 게 약했다는 평가를 하지만,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은 조합원 가입대상 490명 중 430명 정도가 가입해 가입률은 80퍼센트가 넘는다. 첫 파업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생애 첫 파업

1월 말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지고, 3월부터 교섭이 시작되었다. 교섭과 조정이 모두 결렬된 후 9월 쟁의행위찬반투표를 통해 85.4퍼센트의 찬성표를 얻었지만 바로 파업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신청한 필수유지업무 중재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은 쟁의행위찬반투표 첫 날인 9월 11일부터 100일 이내 사측과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파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필수유지업무 중재 결과 발표 예정일도 고려한 기간이었다. 그런데 12월 중순에나 나올 것이라던 중재 결과가 생각보다 일찍 나왔다. 파업을 11월 말로 당겼다.

“저희는 사람의 안전과 직결된 업무인데, 회사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고 돈으로만 계산하니까요. 기본 휴게시간도 확보가 안 되어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들이 생겼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죠. 처음 노동조합을 만들 때부터 파업까지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가 전혀 양보할 곳이 아니었거든요.”

파업출정식은 11월 30일 아침, 서울시청 앞에서 진행되었다. 첫 파업을 시작하는 기분이 어땠을까. 

“한국은 파업에 대해 대부분 부정적 의견을 가지고 있잖아요. 욕을 먹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을까, 6일간의 파업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죠. 하지만 출정식 때 조합원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시청 앞을 가득 채운 모습, 또 맨 앞에 앉아있는 연대단위들을 보고, 또 언론이 어마어마하게 왔어요. 많은 사람들이 저희를 주목하고 또 저희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가 우물 안에서 노는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업 선언할 때는 감정이 복받치고 좀 울컥하더라고요.”

“파업 과정에서 조합원들이 똘똘 뭉치고 그 전에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밤도 새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 사람들도 이런 조직이 있었다면 같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인데 그 부분을 생각 못했었구나,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는구나 생각했어요. 집행부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똘똘 뭉쳐 일하는 게 제대로 된 조직이고, 그 뒷받침 속에서 집행부가 탑을 쌓아 가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박기범 위원장은 아무 희생 없이 파업을 마무리하고 회사와 힘의 균형이 맞춘 것이 큰 성과라고 본다. 이전에는 조합원들이 관리자의 눈치를 봤는데, 이제는 관리자들이 조합원의 눈치를 보고 있다. 핵심 요구사항인 인력문제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회사가 신규채용 20명, 조직개편을 통해 5명으로 총 25명을 충원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첫 단체협약도 체결했다. 한계가 없진 않았다. 충원인력 25명은 노동조합의 본래 요구였던 45명의 절반 수준이다. 인력충원의 어려움은 지하철 9호선 운영의 구조적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상한 운영구조

지하철 9호선은 1~8호선과 다른 운영구조를 가지고 있다. 9호선 건설에 서울시는 2조 8949억 원(83.7퍼센트)의 막대한 사업비를 사용했다. 반면 민간으로부터는 5631억 원(16.3퍼센트)를 투자받았을 뿐이었지만 민간투자 대주주로 구성된 서울시메트로9주식회사에 30년간의 운영권을 제공했다. 서울시메트로9(주)는 9호선 운영을 다시 서울9호선운영(주)에 위탁하였다. 프랑스계 기업인 RDTA가 80퍼센트, 현대로템이 20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서울9호선운영(주)은 서울시메트로9(주)이 주는 9호선 운영위탁 관리 운영비 내에서 사업을 운영한다. 
 

“저희는 서울시가 3조를 투입한 사업을, 겨우 16퍼센트를 투자한 민간자본에게 운영권을 맡긴 게 너무나 이해가 안 되는 거죠. 속내를 추측해보면, 서울시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기존의 지하철 운영체계가 비효율적이고 방만하다고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지하철을 개혁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9호선을 롤모델로, 즉 민영화 시범사례로 만든 것 같아요. 외자유치가 주목적이 아니라 철도 시스템을 개혁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9호선 운영은 처음 개통한 1단계 구간(개화~신논현)과 이후 개통한 2·3단계 구간(신논현~종합운동장, 종합운동장~올림픽공원, 3단계는 미개통)의 운영권도 나눠져 있다. 

“저희가 운행을 하면서 체감하는 어려움은 크게 없어요. 저희 소속 기관사들이 개화역에서 종합운동장역까지 다 운행을 하죠. 나중에 회사 간 수수료 조율을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회사가 나눠져 있다 보니 의견 조율이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현재 4량에서 6량으로 바꾸는 것도 서울시 계획 대비 많이 지연되고 있는데, 이런 회사 간 조율 문제도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9호선을 2개의 회사가 운영하느라 관리비가 중복으로 나가는 것도 문제고요. 이런 중복 비용이 현장인원을 줄이는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누구를 향해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

서울9호선운영(주)이 교섭대상이지만, 그 위에 서울시메트로9(주)가, 그 위에는 또 서울시가 있다. 노동조합은 누구를 향해 무엇을 요구해야할까. 10억 원의 자본금만으로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배당액으로만 234억 4800만 원을 가져갔다는 서울9호선운영(주)도 당연히 문제지만, 현 운영사와 교섭하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서울시로부터 30년 운영권을 얻은, 직원이 15명 남짓이라는 서울시메트로9(주)를 상대로 싸워야 할까?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은 서울시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고 본다. 서울시청 앞에서 파업출정식을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서울시는 저희가 9호선을 공영화하라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아픈 것이죠. 자기의 정책실패를 인정해야하는 것이니까요. 모든 것은 서울시의 민영화 정책에서 시작된 것이에요. 건설과정에 86퍼센트의 재원이 들어갔는데 어떻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때로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도 재원이 들어가고 있어요. 왜냐면 지하철 운영손실을 보전해줘야 하거든요. 계약관계에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에 서울시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계약으로 인한 문제이고, 가장 위의 원청회사로서 관리감독권과 책임, 또 시민의 안전에 대한 책임도 있다고 봐요. 저희 구호도 ‘서울시와 프랑스 운영회사는 책임져라’예요. 서울시가 움직여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요.”

서울시와 서울시메트로9(주)의 30년 계약이 만료될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입장이다. 서울시메트로9(주)와 서울9호선운영(주)의 운영계약이 만료되는 2023년도 아직 5년이나 남아있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 5년에 한번 이뤄지는 운영사의 수수료 재협상이 예정되어 있다. 9호선 노동조합은 이 재협상을 계기로 지하철 9호선의 문제를 알릴 예정이다.

“저희의 목표는 명확합니다. 9호선이 공영화되어서 도시철도가 1호선부터 9호선까지 하나로 운영되는 것이죠.”
 

9호선 안전과 공영화를 위한 시민사회대책위를 만들자

9호선 건설 당시 이명박에서 현재는 박원순으로 서울시장이 바뀌었다. 하지만 운영권 계약이 걸려 있는 만큼 9호선 공영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9호선운영노동조합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시민의 안전이라는 문제로 접근해서 서울시가 정책적으로 풀지 않으면 안돼요. 마침 올해 6월에 지방선거가 있잖아요. 그 때 9호선 문제가 공론화되어야 해요. 그 때 왜 아직도 서울시 재원을 이렇게 투여하면서도 시민이 고통을 받아야 하냐고 이야기를 해야겠죠. 공론화가 된다면 10월 수수료 재협상 시에 9호선 공영화 문제도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다는 게 저희의 주장입니다. 그런데 이건 노조 힘만으론 안돼요. 노동조합이 아무리 뛰어다닌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요. 정치권은 결국 여론을 먹고 사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여론의 힘이 필요합니다. 저희가 곧 시민사회대책위 구성을 제안하려고 하는데요, 여기에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광화문의 촛불이 이제는 사회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천만 시민의 9호선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다시 타올랐으면 좋겠어요. 저희 노동조합도 그 역할을 위해서 열심히 뛰고 투쟁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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