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노동보다
  • 2018/06 제41호

연쇄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까

반복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갈등

  • 박준형

청년들의 반발

지난해 인천국제공항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발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런 양상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이 쟁점이 된 기간제 교사, 서울교통공사 등에서도 반복되었다. 최근에는 철도공사에서도 비슷한 집단적 반발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재작년에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한 ‘교육공무직’ 법안이 정규직 교사와 취업준비생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되기도 했다.
 
정규직 전환에 대한 반발을 주도한 것은 정규직 청년 직원들이었다. 정치 사회적 쟁점들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청년들이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에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주었다. 많은 공공기관 노조에서 현장 간담회나 의견수렴을 진행할 때 세대별 온도차가 드러난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정규직들이 취업 기수별로 (정규직 전환 반대) 성명서를 낸 적이 있는데, 젊은 기수일수록 강경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반면 이미 자녀가 비정규직으로 취업에 나서야 하는 상황을 경험한 장년층에서는 다른 태도도 종종 목격되었다.
 
(서울신문)

정규직 전환에 반발하는 주장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의 피켓이 잘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경쟁채용만이 공정하다’는 것이다. 절차적 ‘공정성’에 집착하여, 경쟁시험제도가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이미 취업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 자신들이 획득한 일자리의 사회적 가치를 저하시키는 것으로, 혹은 자신들의 ‘성공을 위한 노력’을 폄하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이미 제기된 많은 비판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할을 정당화하고, 사회 경제적 차별을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한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러나 단지 일부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주장일까?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이나, 학교 비정규직의 교육공무직 전환(법안)에 반발한 취업준비생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취업준비생들은 ‘공정한 경쟁’이 있었다면 자기들이 취업했을 정규직 일자리를 빼앗기는 것으로 바라보았다. 이 논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촛불정신’의 일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촛불 내부의 모순을 보여주는 징후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정유라 이대 부정입학에서부터 공기업 채용비리 수사까지 이어진 논리가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논거로도 소환된 것이다. 

청년 세대의 이런 논리는 처음이 아니다. 이미 2013년에 발간된 책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오찬호 지음)는 당시 대학생들의 이데올로기가 이 쟁점에 대해 똑같은 입장이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당시 대학생들이 지금의 공공기관 정규직 직원들이 되었다.
 

내재화된 비정규직 차별

지난 20여 년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의 결과 정규직-비정규직, 대기업-중소영세사업장으로 노동시장이 분할되고 격차가 누적되었다. 노동자를 분할하여 고용을 유연화하고 임금을 저하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이러한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양한 논리, 이념이 동원되었다. 우리가 보는 장면들은 그것이 한 세대에 걸쳐 내재화된 결과다.

차별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된 대표적인 논리가 능력주의다. 일자리의 중요도에 따라 고용형태가 달라지거나 성과급제에 따라 임금차별이 발생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제시되었다. 노무현 정부도 비정규직 문제 해법으로 ‘핵심-비핵심 업무 구별’(비핵심 업무의 외주화 정당화)을 제시하는 등 이런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 조장했다. 업무 간 구별에는 성별화된 기준도 적용되었다. 학교비정규직, 사회서비스(돌봄) 등 여성이 많은 직종은 체계적으로 평가 절하되었다.

지금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이 어려운 것도, 그동안 차별을 정당화하는 주장에 근거해서 고용구조, 기업의 조직구조, 임금과 인사제도가 모두 변모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수행하는 업무가 구분(단절)되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더라도 하나의 조직 안에서 임금과 근로조건의 격차를 축소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 되었다. 이런 구조는 거꾸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논거로 활용된다. 비핵심의 미숙련 업무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은 이러한 차별 구조는 온존한 채 고용형태만 단순히 변경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위해선 업무의 설계, 기관(회사)의 조직 구조까지, 비정규직 분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차별적 구조들을 함께 손봐야 한다.
 

노조의 대응: 기업별 노사관계라는 벽

각 공공기관에서 정규직 노조의 태도도 큰 문제였다. 물론 노동조합의 노선, 집행부 성격에 따라 입장은 크게 달랐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력한 노동조합들조차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비정규직의 전환이 기존 정규직 조합원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을지, 내심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일부 노조들은 기존 정규직 직원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기도 했다.

문제는 일부 어용노조에서만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인천공항공사 정규직노조와 같은 반발이 서울지하철노조, 철도노조 등에서도 나타났다.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젊은 조합원들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역설적 모습도 나타났다. 이른바 ‘민주노조’들도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해를 고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특정한 기업, 특정한 고용형태의 직원의 이해로 제한된다면 한계는 분명하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업별 정규직 노조는 비정규직들이 정규직 전환을 통해 결국은 조합원이 될 수밖에 없을 때에만 마지못해 나서게 될 뿐이다. 그 전에는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 

노조가 자신이 기반하는 조합원과 상충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은 힘든 판단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이 대변하는 대상 자체를 바꾸어낼 필요가 있다. 조직형태에서는 기업별 노조를 넘어서는 것, 운동 노선에서는 소속 조합원의 협소한 이익 방어를 넘어서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남용 구조부터 바꾸어야

지금의 청년 세대가 비정규직 차별을 내재화한 이유는 구조적으로 좋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경쟁논리가 교육과 취업에서 전면화된 결과다. 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적응하기 위한 개인의 합리적 선택인 것이다. 따라서 차별적인 관념이 발생하고, 이러한 관념을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 소통하면서 사회적인 이데올로기가 형성된다. 도덕적인 비판은 별로 효과가 없다. 구조에 근거한 이데올로기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어떻게든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 없이, 이런 구조에 최적화된 제도와 관행도 바꾸기 어렵고 이데올로기도 바꾸기 어렵다. 왜곡된 공정성 관념을 변화시키기 위한 논쟁은 계속되어야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다른 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뉴시스)

한편 청년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이런 사회구조를 형성한 책임이 있다고 인식한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386세대이지만, 이들에게는 외환위기를 불러오고 신자유주의 개혁을 추진한, 주범보다 더한 공범들이다. 이미 기존의 조직된 사회운동, 노동조합조차 “기성세대”로 인식되며 청년 세대를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고용구조를 변화시키는 책임을 자임하지 않고 청년들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될 리가 없다.

같은 시기에 일부 민간기업에서도 진행된 정규직 전환에 비해 왜 공공부문에서 이러한 갈등이 더 부각되었을까. 우선 공공부문은 사회적으로 ‘공정성’ 기준이 더 강하게 기대된다는 점, 새 정부 들어 정책이 빠른 속도로 추진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고용안정과 근로조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일자리가 하나의 특권, 지대로 여러 주체들에게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임금 비교 분석(2014)>에 따르면 공공기관 정규직의 월평균임금(정액급여+특별급여)은 509만 원으로, 민간기업 정규직 385만 원에 비해 32.2퍼센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 3.7퍼센트는 공공기관에 근무하기 때문에 추가로 받는 순임금격차인 반면, 격차의 주된 요인(28.5퍼센트)은 학력, 근속 등 속성의 차이였다. 고용안정성의 차이가 연공급 체계에 따른 임금인상으로 큰 영향을 주는 것이다. 공공부문은 높은 생애임금을 기대할 수 있는 일자리가 된다. 민간부문의 일자리 질이 계속 저하되면서 공공부문 일자리가 특권이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경쟁이 벌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정규직-비정규직-실업자(취업준비생) 간의 자해적인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에서만 해법을 찾을 수 없다. 민간부문의 고용안정성과 임금수준을 높이는 상향평준화를 통해서 공공부문에 집중된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들도 민간부문의 일자리가 더욱 개선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에 연대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정규직 노동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이지만, 우리 사회와 노동자운동이 반성할 지점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 어디부터 고쳐나가야 할지 책임있게 논의하고 대책을 만들어 낼 기회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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