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오늘평화
  • 2018/07 제42호

앞으로 10년, 두 눈 부릅뜨고 평화로 나아가자

6.12 북미정상회담과 평화운동의 과제

  • 사회진보연대 반전팀
회담 직전까지 무수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북미정상회담 얘기다. 5월 24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돌연 회담을 취소했다. 북한이 5차례 핵실험을 실시했던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 더욱 놀라웠다. 북한은 “아무 때나 어떤 방식으로든”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자세를 낮췄다. 5월 26일에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2차 남북정상회담이다. 성과는 있었다. 남북정상회담 직후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 며칠간의 해프닝은 비핵화 해법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은 줄곧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로 표현되는 일괄타결 방식을 고수했다. 4~5월 동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리비아식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카다피의 최후를 목격한 북한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미국의 해법에 따르면 체제 보장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커졌다. 10년이 더 걸릴지도 모르는 비핵화가 완료되어야 비로소 경제협력, 제재 해제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북한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단계적·동시 조치’로 맞섰다.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 공동성명에 따른 비핵화 방식이다. 북한이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해나가면 나머지 나라가 상응한 조치로 에너지, 경제협력, 평화체제 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행동 대 행동’ 원칙이다. 물론 미국의 입장에서는 완전한 비핵화에 미치지 못하는, 어설픈 결말이 될 수 있었다.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양국 간의 차이를 좁혀보고자 했다. 문재인은 김정은에게 ‘북미 적대관계 종식, 경제협력’이라는 트럼프의 생각을 전달했다. 동시에 김정은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확약 받았다고 한다. 결국 6월 12일, 70년 만에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의 최고 지도자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구체적 합의는 없었다

지난해만 해도 한반도 긴장 수위는 역대 최악이었다. 거듭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고강도 한미연합 군사훈련, 대북제재, 미국의 북한 선제타격 시나리오 등이 연일 터져 나왔다. 따라서 군사대결이 아닌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 그리고 북미정상회담 자체는 역사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번에 양국 정상이 도출한 합의 자체는 매우 ‘포괄적’이다. 특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아직 양국 간에 구체적인 합의가 많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 셈이다. 수개월 간의 실무접촉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보장에 대한 세부 로드맵은 나오지 못한 것 자체가 한반도 핵문제를 둘러싼 복잡한 상황과 어려움을 보여준다.


합의문을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 내부에서 여러 비판이 쏟아졌다. CVID 중 어떤 것도 확약을 받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한국에서는 보수 언론과 정치세력들이, 미국에서는 민주당 세력들의 비판이 거셌다. 트럼프는 미국 내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연일 김정은과 신뢰를 쌓았다고 말하며 회담의 성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들은 이후 합의문 이행을 둘러싸고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6.12 북미정상회담 합의 내용
  •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미-북 관계 수립 
  • 한반도에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양국의 노력 
  •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의 재확인과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북한의 노력 
  • 이미 확인된 유해의 즉각 송환을 포함, 전쟁포로 유해 발굴
 

앞으로의 난관, 생각보다 거대하다

합의문 이행은 이제 막 본 궤도에 오르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에 이어 미사일 엔진 시험장도 폐기하기로 했다.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조치는 이에 상응하는 것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비핵화 시한이 트럼프 임기 내라 언급하며 후속 고위급 회담을 곧 열겠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 핵시설, 핵물질 등에 대한 사찰 및 검증 목록을 작성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는 등 대화 분위기는 이어지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 협상이 낙관적이리란 보장은 없다.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민주당의 공세는 단지 트럼프를 비난하는 정치적 수사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2008년 이후 계속되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미국 민주당은 미국 주도의 아시아-태평양 경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사체제를 확고히 하고자 했다. 오바마의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이다. 트럼프는 이를 ‘미국 우선주의’로 전면 수정했다. 결국 미국 내의 북미정상회담을 둘러싼 갈등은 동북아시아, 나아가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미국 국가 차원의 전략 수정으로 북미정상회담 이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에 중국과의 이해관계 갈등은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또한 핵무기와 핵시설 등에 대한 사찰과 검증 문제도 있다. 과거 6자회담 사례에서 보았듯, 곳곳에 암초가 가득하다. 북한 핵 시설을 직접 검증한 적도 있는 핵물리학자 지크프리드 헤커 박사는 “정치적·기술적 복합성으로 북한 비핵화에는 15년 정도가 걸릴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는 엎치락뒤치락하는 협상과정이 길고도 지루하게 반복될 것임을 시사한다. 
 

영구적인 평화의 조건을 만들자

 
 
‘한반도 비핵화’는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핵 선제공격 정책과 확장억제 정책의 철회를 포함해야 한다. 남북미의 군축과 주한미군의 철수로 전쟁의 물질적인 기반이 사라져야 한반도 핵 대결의 근본적 원인이 해소될 것이다.

최근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을 비롯한 크고 작은 한미군사훈련이 중단되고 있다. 보수 언론은 벌써부터 한미동맹이 흔들린다며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 평화운동은 단호하게 군사훈련 중단이 평화의 조건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해야 한다.

단순히 한미 양국 정부의 훈련 중단을 환영해서만도 안 된다. 트럼프의 군사훈련 중단의 배경에는 ‘비용 문제’가 숨어있다. 이는 곧 한국 방위비 분담금 인상, 한국과 일본의 군비 증강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번 평화 국면을 계기로 다시는 전쟁을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려면, 훈련 중단 뒤에 숨어있는 군비 증강 요구를 거부해야 한다. 평화운동은 군사훈련 중단을 시작으로 사드 철거, 나아가 한국과 북한, 미국의 군축까지 요구해야 한다.

협상과 이행의 과정에 셀 수 없는 난관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염원해 온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이 저절로 주어질 리도 없다. 평화의 조건을 스스로 제시하고 실현하는 평화운동을 일구어 나가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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