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사회운동

사회진보연대 계간지


2001.12.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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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報復)에서 정복(征服)으로, 전쟁 확대를 향한 유혹 : 탈레반의 붕괴와 미국의 중동지배

김용현 | 정책부장, 한반도위원회
약 2주전, 북부동맹에 의해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서 밀려나자마자, 국내외의 모든 방송과 신문들은 일제히 “탈레반의 이슬람 원리주의적 ‘폭정’으로부터 ‘해방된’ 아프간 민중의 모습”을 내보냈다.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하는 어린이들의 모습, 히잡(혹은 차도르)을 벗어 던진 여성들의 웃는 표정 등등.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바로 악랄한 군주의 지배로부터 힘없는 민중을 구해내는 정의의 기사처럼 북부동맹을 묘사라도 하려는 듯 말이다.
이러한 환호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공습을 시작한지 한 달이 넘어서도 뚜렷한 전과가 없어 고심하던 미국은 카불 함락 소식에 똑같이 축배를 들었다. 탈레반을 축출한 지금, 이제 미국은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제거하는 것만 남은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빈 라덴에 대한 보복이 끝난 후 미국은 아프간 지역에 민주적인 정부수립과 아프간 인민들의 인권 및 생활 향상을 돕는 것으로 자신의 보복일정을 마무리하면 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마치 영화가 이렇게 끝나면 재미없다는 듯) 부시 미대통령은 “탈레반 정권 붕괴 이후의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을 감안하면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며 […] 빈 라덴을 체포하는데 3년에서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연합뉴스 11/26)고 알 듯 말 듯한 이야기를 한다. 또한, 부시는 북한과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제조를 즉각 중단할 것, 그리고 만약 이것을 계속할 경우 (북한과) 이라크 역시도 테러조직이나 다름없다”라면서 이번 전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기간과 대상/범위를) 확대할 뜻을 계속 내비치고 있다.
아프간 전역을 자신의 영향력 하에 두게 된 미국이, 갑자기 이런 황당한 소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갑자기 빈 라덴을 잡는데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일까? 왜 보복전쟁을 대테러전쟁으로, 아니 ‘불량국가’들에 대한 전쟁으로 확전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인가? 혹시 이번 전쟁을 계기로 시작된 세계적인 ‘공안정국’을 ‘3년에서 10년정도’ 계속 끌고 가겠다는 무언가 다른 속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보복(報復)에서 정복(征服)으로, 미국의 ‘포스트-아프간’ 구상

아프간의 지형적 특수성, 그리고 알 카에다와 빈 라덴의 거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고려해 보더라도, 부시의 발언에서 우리는 미국이 빈 라덴의 체포/제거를 ‘일부러’ 미룬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발언을 거꾸로 생각해보면, 빈 라덴이 당장 잡히거나 제거된다면 사실 미국이 지난 9․11 테러사건 이후 취해온 행보의 근거들 또한 제거된다는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빈 라덴이 제거되면 미국이 이 지역에 향후 (정치적․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근거도 사라진다. 동시에 그동안 테러에 대한 미국의 정당한(?) 응징이라는 너무나 선명한 명분 때문에 숨죽이고 관망하던(정확히 말하자면 관망해야만 했던) 세계의 다른 국가들, 특히 누구보다도 아랍국가의 숨통을 트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즉, 이들 국가가 미뤄왔던 전쟁 과정의 불만이 미국으로 향할 수 있고, 미국은 그로 인해 정치적으로 부담스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아랍국가들의 정치지형에 대해서는 ꡔ월간 사회진보연대ꡕ 11월호의 「아프간 보복공습, 미국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와 같은 호에 실린 안키 호오펠트의 「이슬람의 봉기」를 참고.

따라서 우리는 최근 부시의 여러 발언의 이면에 당분간 빈 라덴의 체포/제거를 연기하고, (차라리) 보다 적극적으로 9․11 이후 자신이 형성한 현재의 ‘공안정국’을 앞으로 ‘3년에서 10년’ 정도 유지하려는 목적이 깔려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해, 미국은 현재의 국면을 장기간 연장해 ‘이번 기회에’ 문제되는 모든 것을 제거함으로써 중동지역에서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것이다(주로 ‘테러조직의 섬멸과 테러지원국에 대한 응징’이라는 미국의 지금까지의 ‘명분’은 오히려 서술어를 풍부하게 구사하는 차원에서 유지될 것이다). 말 그대로 미국은 “보복(報復)에서 정복(情服)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려는 듯, 미국은 최근 빈번하게 이번 전쟁의 ‘확전 가능성’을 매스컴에 흘리거나 내비쳐왔다.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는 확전의 대상이 이라크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특히 미국내의 분위기는 언론을 통해 느껴지는 것에 비해 더욱 격앙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예컨대 미국내 각종 이데올로그들은 걸프전의 전개와 사후 처리와 관련한 평가를 한창 벌이고 있고, 특히 당시 왜 후세인을 제거하지 않았는지를 두고 논쟁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들의 귀결이 어떻게 될지 두고봐야 할 문제겠지만, 이라크가 걸프전의 주범이자 현재도 테러지원국(즉, ‘깡패국가’)이라는 점을 다시 부각시켜 이라크의 (불가능한) ‘도발’을 사전에 차단하자는 것이다. 동시에 침묵 속에 갈등하고 있는 아랍국가에게 미국의 의지를 확실히 보여주고자 한다. 다시 말해 명시적으로는 테러지원국에 대한 공격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나머지 아랍국가를 그 직접적인 대상에서 제외하고 이라크만을 대상으로 하는 듯한 제스츄어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미국은 암묵적인 경고(“까불면 다친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며칠 전 뭔가 보여주려는 듯, 이라크에 ‘간단한’ 폭격을 단행했다(물론 결코 확전이나 의도적인 공격이 아니라 이라크가 순찰기를 공격하자 이에 대응한 방어적 차원의 폭격이었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흥미롭게도 현재 미국은 중동지역의 강력한 우방 사우디 아라비아를 압박하고 있다. 9․11 테러와 관련된 테러범의 대부분이 사우디인이라는 것, 이들에 대한 자금지원이 사우디 왕가 내부의 인물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등의 이야기로 사우디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그간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비추어볼 때 상당히 의아스러운 상황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미국이 그만큼 중동지역에 대한 자신의 ‘야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방증이 된다(심지어 미국 내 언론은 부시가 사우디마저도 공습할 것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내보내기에 이르렀었다.) 자세한 것은 <뉴스위크> 제 506호(2001.11.28) 「사우디의 ‘위험한 게임’」을 참고.

하지만, 이들 국가들에 대해 미국이 실제 (이번 아프간에 행한 수준의) 공습을 단행할 가능성, 나아가 확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는 실력행사를 제외한 무언의 협박과 경고가 이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아프간 보복공습을 전후하여 아랍국가는 자신의 무기력함과 대안없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확전은 미국 내에서도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고 장기간의 전쟁은 여러 가지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벌써부터 아프간 전쟁에 대한 비용과 득과 실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어쨌든, 미국은 확전이라는 카드를 통해 개전 초기와 마찬가지로 아랍국가들이 계속 그리고 항상 침묵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 하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당장, 아랍인에 대한 미국인의 무차별 테러라는 사적 폭력을 제외하더라도, 공식적으로 미국 내 아랍인에 대한 무영장 체포와 불법구금이 3천여 건에 달하였다(이에 대한 항의와 반발이 빗발치자, 미국 정부의 반응은 그저 ‘지금은 위기상황이다’라는 것, 그 과정에서 아랍인 피의자에 대해 일어난 일이니 기타 미국인은 ‘이해’해 달라는 것뿐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을 틈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무차별 폭력행사를 떳떳이 자행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인민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였고, 또다시 13세의 어린 소년이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심지어 외국기자의 취재를 무단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아랍국가와 PLO는 그저 침묵할 뿐이고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파이프라인’의 정치학: 석유, 천연가스 그리고 아프간에서 미국의 이해관계

한편, 미국이 현재 조성하고 있는 '공안정국'은 아프간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취자원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다른 주변국들에 비해 매우 유리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시도로도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이번 아프간 전쟁의 직접적인 이유로 석유와 천연가스를 들기에 무리가 따른다. 하지만, 아프간 및 주변지역에 대한 미국의 중장기 정책을 이해한다면 전쟁의 유지와 확대가 의도하는 또 다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즉, 이 지역 천연자원에 대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거의 영구불변한 미국의 정책적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다.
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 현재 이 지역 원유의 51%인 1,950만 배럴을 매일 수입하고 있다. 미 에너지 정보국은 2020년에 가면 미국은 원유의 64%인 2,580만 배럴을 이 지역에서 매일 수입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카스피해 지역의 원유 보유량은 세계에서 세번째(서부 시베리아와 페르시아만 다음으로)이고, 그리고 앞으로 15년에서 20년 안에는 페르시아 걸프만의 석유를 앞지를 만큼 충분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확실하게 이 지역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한다는 구상을 가질 것이다. 만약 미국의 구상이 성공한다면, 발틱 해와 동유럽을 포함하는 서쪽은 나토에 편입하고, 파이프라인이 지나는 아프간에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또한, 카스피해를 원점으로 삼아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이란을 밀어내고 서쪽으로는 유럽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최소한 아프간에 (미국의 말을 잘 듣는 정권보다도) 매우 ‘안정적인’ 정권이 수립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이 역할을 탈레반이 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즉, 탈레반 집권 초기, 미국의 입장은 어느 미 외교관의 말처럼, “탈레반은 사우디처럼 발전할 수 있다. 이 지역에는 […] 파이프라인이 건설될 것이기 때문이다. 원리주의적 통치에도 불구하고 우리[미국]는 그들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Ahmad Rashid, Taliban: Militant Islam, Oil, and Fundamentalism in Central Asia, New Haven Press, 2000.
다시 말해, 탈레반이 여성의 권리 및 시민의 자유와 해방을 억압할지라도 이 지역의 안정성을 가져올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용인해줄 수 있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98년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대사관에 대한 테러가 발생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은 탈레반을 공격해야 하는 국내외적 상황에 처했던 것이다.
일례로, 미국의 한 기업은 탈레반과 협상해 1997년 컨소시엄 계약을 맺었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양까지 천연 가스를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부설 공사였다. 그러나 이 미국기업은 1998년 [미대사관 테러사건으로 인해] 아프가니스탄 정세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컨소시엄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당시 대부분의 미국 내 경제저널들의 기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상반된 단어들로 도배되었다. 이 지역의 천연자원은 '엄청나며', '거대하고',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 지역은, '전혀 개발되지 않았으며', '고립되어 있으며', 결정적으로 '정치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하다. 따라서, 미국의 ‘포스트 탈레반 구상’의 핵심은 바로 (탈레반에게 기대했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정권의 안정성에 있다 미국의 ‘파이프라인의 정치학’과 관련해서는 인터내셔널 뉴스(PICIS 발행) 146호에 실린 「아메리카, 석유그리고 아프가니스탄」(시타람 예추리)와 리챠드 탠터의 'Pipeline Politics: Oil, gas and the US interest in Afghanistan'(http://www.zmag.org/tanteroil.htm)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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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되는 아프간의 정치 불안정과 북부동맹의 통치불가능

수많은 종족과 정파로 분열되어 있는 아프간의 현재 정치지형에서 정권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이후 구성될 정부가 어떤 종족과 정파를 중심으로 구성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다. 예상컨대, 현재 카불을 점령하고 벌써 통치에 들어간 북부동맹이 어찌되었건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역사와 정치지형에 비추어 볼 때, 과연 아프간에 안정적인 정권을 구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과연 북부동맹이 아프간을 통치함에 있어서 (탈레반에 비해) 정통성이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즉, 미국이 공언하는 것처럼 북부동맹의 카불입성이 지난 23년 간의 내전을 종식시킨 것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여러 가지 점에서 이는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첫째, 아프간은 전통적으로 중심적인 정치적 권위를 가지지 않았다. 따라서 수도 카불을 점령하는 것으로 아프간 전체를 수중에 넣었다고 할 수 없다. 즉, 카불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아프간 땅은 아직도 종족들간의 전쟁터나 다름없다. 탈레반이 집권하던 시기동안은 정통 이슬람교리에 의한 통치때문에 사회가 경직되었지만, 적어도 아프간에 질서와 안정이 존재했던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국토의 90%를 장악하고 있었으며, 게다가 아래로부터 지지를 얻은 유일한 정파였기 때문이다.
둘째, 북부동맹이 카불에 입성한 것은 1992년의 상황을 재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북부동맹(혹은 연합전선)은 아프간의 각종 게릴라인 ‘무자히딘’ 군대로 구성된 아프간 북부에 위치한 반탈레반 저항연합이다. 이 무자히딘은 1992년 소련군을 국외로 몰아내고 나지불라 정권뿐만 아니라 이 정권의 종족중심으로 편성된 몇몇 군대를 무너뜨렸다. 이 종족분파 및 군벌들의 연합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즉 가을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된 시점부터 탈레반에게 (무자히딘이) 패배할 때까지 아프간을 지배해왔다. 이들이 지배하던 시기는 엄청난 혼란과 살인적인 폭력으로 특징지어진다(당시 수도 카불의 1/3이 붕괴되었다). 카불시 전체에 부패와 타락이 만연하였고, 그동안 강도들과 마약왕들이 나라의 전체를 통제하게 되었다. 탈레반은 1996년 대부분의 권력을 접수하게 되었으며 안정과 질서를 갈망한 아프간인의 지지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프간인은 안정과 질서만 주어질 수 있다면 이슬람 원리주의적 체제의 지배라는 위험(예컨대, 여성들에 대한 억압, 세속적인 모든 것에 대한 금지 등등)마저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북부동맹은 엄청난 인권침해를 범해왔다. 한 국제 인권단체의 보고에 따르면, 북부동맹은 고의적으로 시민을 겨냥하여 사격하였으며, 즉결처형(재판없는 사형집행)을 자행하는가 하면, 민가를 불태우고 부수었으며, 어린아이를 징병하였고, 결코 어떤 명령권자도 이러한 인권침해를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이런 만행을 저지른 북부동맹은 마약거래로부터 운영자금이 조달되었다. 북부동맹의 간략한 전사에 대해서는 http://www.fpif.org/faq/0111northalliance.html를 참고하기 바란다.

셋째, 미국과 UN이 안정적인 “연합” 정권을 구성한다고 할 지라도, 마치 1992년과 1996년 사이와 같은 갈등이 또다시 벌어지게 될 것이다. 모든 아프간 종족과 정파가 미국이 주도권을 준 특정 종족 및 분파와 새로운 권력쟁투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현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전 국왕인 샤(Shah)중심의 연합정부 구상은, 이미 무자히딘이 소련군을 몰아내고 연합정부를 구성했던 1992년 당시에 미국에 의해 제기되었지만 무참히 실패했던 구상이다. 게다가 현재 이러한 연합정부 구성 안이 여전히 군벌과 종족대표들만을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어 더욱 커다란 문제가 된다. 언론은 성급하게 ‘여성해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미 대다수 여성과 여성조직은 연합정부 구상에서 (과거와 마찬가지로) 배제되었다. RAWA(아프간여성혁명연맹)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즉, 탈레반의 원리주의적 통치보다 더욱 잔인하고 악랄했던 건 바로 북부동맹 소속 정파들이라는 것이다. 보다 자세한 RAWA의 입장에 대해서는 http://www.zmag.org/rawana.htm을 참고.

게다가 아프간을 둘러싼 주변국들간의 공통의 합의가 부재하다. 역사적으로 아프간의 정치적 불안정은 주변국가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파키스탄의 경우 탈레반을 국가로 인정하고 방어/변호한 최초의 국가이지만, 그러나 이후 탈레반의 도전과 파키스탄 내의 파슈툰족에 대한 점증하는 대중적 영향력을 우려해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북부동맹을 지원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이는 자국내 무슬림의 반발을 우려해서이다. 한편, 이란은 아프간과의 국경문제와 아프간 내의 소수 쉬아파의 복지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1998년 마자리 샤리프에서 이란 외교관 9명이 살해되자 이란은 탈레반과 전쟁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이란은 북부동맹을 지원해왔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우는 중앙 아시아와 러시아에 이슬람 혁명운동이 수출되고 지원되는 것을 막는 것에 관심을 두고 있다. 특히 러시아는 다게스탄(Dagestan)과 체첸에서의 반정부 폭동 혐의를 탈레반에 두고 있으며, 러시아 역시 이를 계기로 북부동맹을 지원해왔던 것이다. 따라서 아프간과 주변국과의 관계는 항상 정치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만약 아프간 내전이 또다시 격화될 경우 이 중앙 아시아를 포괄하는 지역전체로 불안정이 확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동시에 지역전체의 격랑이 아프간을 내전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여기에 미국이 추가되었고, 아프간을 기반으로 한 미국의 중앙아시아 패권전략이 본격화한다면 커다란 지역적 분쟁 예고하는 것일지 모른다.

원한과 갈등, 궁핍과 야만의 새로운 시작만이 남은 아프간

따라서, 이번 전쟁의 진정한 성과는 처음의 선전과는 달리, 즉 빈 라덴의 체포/제거와 알 카에다의 섬멸이 아니라, 탈레반의 붕괴(그로 인해 재활성화 한 아프간의 정치적 불안정)와 세계적인 공안정국의 형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애초의 목적을 이룬 것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미국은 23년 간의 아프간 내전을 자신들이 종식시킨 것처럼 선전하고 있다. 또한, 탈레반에 의해 인간 이하의 삶을 살던 아프간 인민들을 해방시킨 것처럼, 그리고 앞으로 아프간의 발전을 위해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벌써부터 북부동맹은 분열하여 반목하기 시작하였고(북부동맹을 주도하는 3종족이 수도 카불을 나누어 통치하고 있다), 과도정부 구성을 위해 이른바 ‘6+2’ 회의는 주변국간의 이해조정에만 급급하고 있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현재 약 10만 명의 아프간 어린이가 몇 주안에 아사할 지경에 처해있다고 보고하였고, 또 따른 보도에 따르면 수많은 난민여성이 매춘으로 삶을 연명하고 있다(심지어 난민을 구명한답시고 공중에서 투하한 식량더미에 맞아죽거나, 폭탄을 식량더미로 오해하여 죽기도 하였다).
미국은 결코 아프간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 불안정을 해결할 수 없고, 이들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럴 의지도 없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지고 있다(얼마 전 미국은 아프간의 종족문제에까지 개입할 의사가 없음을 시사했다). 오히려 현재 예상되는 미국의 이후 구상은 아프간을 둘러싼 국가간 패권경쟁을 보다 전면화 하여 또다시 아프간 땅을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오랜 민족간, 종족간 분쟁으로 생긴 상처와 원한, 아픔과 갈등을 오히려 심화하여 해결 자체를 한층 오리무중으로 이끌고 갈 뿐이라는 것은 너무도 분명해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결코 이번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너무도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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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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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 개악 노무현 김대중 야권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