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건강과 사회
  • 2018/07 제42호

의료계 군비경쟁의 어두운 미래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군사력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 경쟁적으로 첨단 무기를 개발했다. 핵폭탄 개발까지 이어진 ‘군비경쟁’이었다. ‘의료계 군비경쟁(medical arms race)’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병원들이 첨단 장비와 고급 시설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미소 군비경쟁의 결과는 참담했다. 인류를 파멸로 이끌 무기들이 대량 생산 되었고, 양국 재정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 의료계 군비경쟁의 결과도 다르지 않다. 1950~80년대에 의료계 군비경쟁이 발생했던 미국은 의료비 지출이 크게 증가했고, 병원 수익성은 악화되었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의료계 군비경쟁이 진행 중이다. 당분간은 이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시설과 장비 확장에 대한 규제가 없고, 대형 병원들의 수익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수익이 높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어 방문 환자 수가 계속 증가하고, 병상 가동률은 100퍼센트에 근접한다. 둘째, 장례식장 같은 부대사업과 로봇 수술 같은 비급여진료 수익률이 매우 높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의료계 군비경쟁의 결과를 분석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고가 의료장비 도입을 자세히 분석한다. 고가 의료장비는 의료계 군비경쟁이 의료비를 증가시키는 중요한 매개가 된다.


의료계 군비경쟁은 어떻게 의료비를 증가시키나: 로봇 수술의 사례

의료계 군비경쟁의 가장 큰 해악은 의료비 증가다. 2011년 미국외과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ollege of Surgeons)에 실린 논문을 보자. 저자들은 다섯 가지 수술 항목을 정해 동일한 수술이 지역에 따라 치료비가 얼마나 차이 나는지 비교했다. 그 결과 다섯 가지 수술 모두 경쟁이 심한 곳일수록 치료비가 상승했다. 저자들은 그 이유를 광고비, 고정비용 증가에서 찾는다(Chang DC, et al, 2011). 이중 고정비용은 생산량 변동과 관계없이 이미 지출이 결정된 비용이다. 주로 건물이나 기계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 즉 건물이나 장비에 투자한 비용이 커서 가격을 올리게 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로봇 수술이다.
 

병원 간 경쟁이 심할수록 로봇 수술 건수가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6년 미국의사협회 외과지(JAMA Surgery)에 실린 논문은 다섯 가지 수술을 대상으로 어떤 경우에 로봇 수술 건수가 증가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경쟁이 치열한 경우에 다섯 가지 수술 모두에서 로봇 수술 건수가 증가했다(Wright JD, et al, 2016). 종합해보면 병원 간 경쟁 심화는 로봇 수술과 같은 고가 의료 행위를 증가시켜 총 의료비를 증가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의료계 군비경쟁도 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로봇 수술이 복강경 수술보다 합병증을 덜 유발하는 것은 아니다. 수술 결과가 더 낫지도 않다. 가격만 3~5배 비싸다(한국보건의료연구원, 2010). 전문 용어로 로봇 수술은 ‘비용효과성’이 떨어진다고 한다. 가성비가 낮다는 말이다. 로봇 수술은 건강증진에 기여하지 못하면서 돈만 낭비하는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병원 입장에서는 굳이 도입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수술 로봇이 출시되고 얼마 안 돼, 미국과 한국 병원들은 수술로봇을 대거 사들였다. 수술 로봇의 비용효과성이 제대로 검증되기 전이었다. 병원은 수술로봇을 들여 경쟁 병원으로부터 환자를 뺏어와야만 했다. 이후 수술 로봇이 비용효과성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지만, 이미 수술 로봇에 들어간 구입 비용과 유지 비용이 엄청났다. 이런 고정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의사들은 로봇 수술을 권유할 수밖에 없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의 정보비대칭 때문에 대개 환자들은 로봇 수술을 받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실손의료보험이 있기 때문에 로봇 수술을 권유하기 더욱 쉽다.
 

첨단 장비 도입의 결과는 병원 수익성 악화

의료계 군비경쟁은 병원 수익성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2008년 한 의료경영학 학술잡지(Health Care Management Review)에 실린 논문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2000년과 2002년 미국병원협회의 자료를 이용하여 의료계 군비경쟁이 병원 수익성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2000년에 경쟁 병원을 따라 시설과 장비 확장을 한 병원들의 2년 간 수익성 변화를 추적했다.  첨단 의료 서비스는 일당·인당 비용을 모두 증가시켰다. 하지만 그만큼 수익은 나지 않았다. 영업 이익도 악화되었다(Trinh HQ, et al, 2008).
 

병원은 수익성 악화에 어떻게 대응할까. 치료비를 올리거나 행위량 자체를 증가시킨다. 환자와 보험 가입자에게 증가된 고정비용을 전가하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전략이 잘 먹혀들고 있다. 실손의료보험이 있고,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되어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더 이상 고정비용 전가조차 하지 못할 때다. 기계에 투자한 비용은 되돌릴 수 없다. 그렇다면 수익이 낮은 곳부터 부서 통폐합, 인력 감축을 하려 들 것이다. 1983~2000년 사이 미국 의료계에서 발생했던 구조조정과 인수·합병에는 이런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의료계 군비경쟁의 마지막은 구조조정: 미국의 사례

1983년 미국에 관리의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관리의료란 보험이 주도권을 쥐고 병원과 의료인을 통제해서 의료비 지출을 감소시키는 시스템이다. 보험자는 가입자에게 선불로 보험료를 받고 정해진 예산 안에서 최대 이윤을 내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의료비를 많이 지출하는 의료기관과는 계약을 해지한다든가, 비용이 높은 의료행위에 대해서는 사전에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한다. 

관리의료 때문에 1980~90년대 미국 병원계에서는 의료비 지출 삭감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보험회사가 요구하는 의료비 지출 수준을 맞춰야만 계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Devers KJ, et al, 2003). 이때 나타난 양상은 두 가지다. 첫째, 인수·합병. 비슷한 급의 병원들을 인수·합병 하는 수평적 통합과 1차, 2차, 3차 병원들을 모두 인수하는 수직적 통합이 동시에 발생했다. 둘째, 구조조정.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서는 모두 통폐합해 비용을 절감한다.
 

이 과정에서 인력도 감축된다. 1989년부터 1996년 사이에 미국에서 인수·합병된 병원을 조사한 결과를 보자. 부서 통폐합은 80~90퍼센트의 병원에서 발생하였으며 인력 감축은 각각 비 의료 지원 부문에서 60~70퍼센트, 의료 지원 부문에서 50~70퍼센트, 간호 인력 부문에서 약 60퍼센트의 병원에서 발생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줄었는지 살펴보면 정규직 간호사는 평균 6퍼센트 가량 해고되었고 정규직 LPN(간호보조인력)은 평균 32.1퍼센트나 해고되었다. 인수·합병 이후 비정규직이 증가했다는 병원은 20~30퍼센트에 달했다(Bazzoli, et al, 2002). 

가격 경쟁 과정에서 영리병원이 세력을 확장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미국에서 영리병원 체인이 급속도로 성장했던 1980~93년 사이에 비영리병원이 영리병원으로 전환된 경우는 174건에 이른다. 이들 대부분은 영리병원이 비영리병원을 인수하면서 이루어졌다(Needleman J, 1999). 

삼정KPMG, 엘리오&컴퍼니 등 병원 경영 컨설팅 업체들은 영리병원이 부실화된 병원을 정상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리병원은 인력 감축, 부서 폐쇄, 영리 추구적 의료행위를 통해 수익을 증가시키고 비용을 절감한다. 의료의 질은 떨어지고 환자가 부담하는 의료비는 증가하지만, 어쨌든 병원 수익성은 개선된다.
 

파국을 막을 수 있는 건 병원에 대한 과감한 규제뿐

병원 경영진의 입장에서는 의료계 군비경쟁을 스스로 포기할 수 없다. 시설과 장비 확장을 멈추면 다른 병원에게 환자를 빼앗겨 수익성이 악화된다. 이미 투자한 고정비용이 크기 때문에 영리 추구적 의료행위를 멈추면 막대한 손해를 본다. 군비경쟁을 멈출 수 있는 건 모든 병원에게 예외 없이 적용되는 강력한 규제뿐이다.

실행 가능한 규제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지역별 병상 총량을 관리하는 병상 총량제. 보건복지부가 각 지역별 적정 병상 수준을 산출하고, 과잉 지역에는 신설 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법이다. 오래 전부터 대안으로 제시되어 왔고, 최근 대한의사협회가 합의를 거부한 의료전달체계 권고문에도 포함되어 있었던 정책이다.

둘째, 고가 의료장비 규제. 민간 병원이 90퍼센트 이상인 한국에서 개별 병원의 고가 의료장비 도입을 강제로 막기는 어렵다. 대신 두 가지 방법으로 규제의 효과를 낼 수 있다. 먼저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신 의료기기는 아예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방법이다. 지금까지는 이를 비급여로 남겨 병원의 수익 창출 수단이 되어왔다. 박근혜 정부는 신 의료기술 평가 자체를 무력화한 바 있다. 신 의료기기가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대거 제도권으로 진입하게 해준 셈이다.

이와 반대로 신 의료기기 도입 단계부터 충분한 비용효과성 평가를 실시하고, 비용효과성이 떨어질 경우 사용하는 병원이나 민간의료보험사에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으로는 고가 의료장비에 대한 수가 조정이다. 고가 의료장비의 일련번호를 식별하여 대당 연간 보험급여횟수를 제한하는 이탈리아의 경우가 좋은 예다(오영호, 2013).

지금 건강보험은 20조 원의 흑자가 쌓여있다. 그러나 언제든 적자로 전환되는 날이 올 수 있다. 호황이 끝나고 경기가 침체되면 정부는 건강보험료를 인상하는 데 정치적 부담을 느낄 것이다. 결국 의료비 통제 방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환자에게 고정비용을 전가해왔던 병원들은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심지어 정부가 나서서 의료법인 간 인수·합병이나 영리병원 허용 정책을 시행할 수도 있다. 더 늦기 전에 강력한 규제로 의료계 군비경쟁을 끝내야만 한다. ●
 

참고문헌

 

오영호. 고가의료장비 공급과잉의 문제점과 정책방향. 보건복지포럼. 2013년 8월 통권 제202호, pp.73
한국보건의료연구원. 한국적 상황을 고려한 로봇수술에 대한 의료기술평가. 2010.
Bazzoli GJ, Losasso A, Arnould R, Shalowitz M. Hospital reorganization and restructuring achieved through merger. Health Care Manage Rev. 2002  Winter;27(1):7-20.
Chang DC, Shiozawa A, Nguyen LL, Chrouser KL, Perler BA, Freischlag JA, Colombani PM, Abdullah F. Cost of inpatient care and its association with hospital competition. J Am Coll Surg. 2011 Jan;212(1):12-9.
Devers KJ, Brewster LR, Casalino LP. Changes in hospital competitive strategy: a new medical arms race? Health Serv Res. 2003 Feb;38(1 Pt 2):447-69.
Needleman J. Nonprofit to for-profit conversions by hospitals, health insurers, and health plans. Public Health Rep. 1999 Mar-Apr;114(2):108-19.
Trinh HQ, Begun JW, Luke RD. Hospital service duplication: evidence on the medical arms race. Health Care Manage Rev. 2008 Jul-Sep;33(3):192-202.
Wright JD.  Tergas AI, Hou JY, Burke WM, Chen L, Hu JC, Neugut AI, Ananth CV, Hershman DL. Effect of Regional Hospital Competition and Hospital Financial Status on the Use of Robotic-Assisted Surgery. JAMA Surg. 2016 Jul 1;151(7):6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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