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건강과 사회
  • 2018/09 제44호

의료기기 규제완화, 당장 멈춰야

의료비는 Up 건강보험 재정은 Down

  • 김진현
지난 7월 19일, 문재인 정부는 “혁신성장 확산을 위한 의료기기 분야 규제혁신 및 산업육성 방안(이하 의료기기 규제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핵심 정책은 세 가지다. 첫째, 혁신·첨단의료기기 허가 관련 규제 완화와 수가 인상. 둘째, 체외진단기기 허가에 대한 규제 완화. 셋째, 산병협력단을 통한 병원의 상업화.

특히 정부는 혁신적 의료기술에 대해서는 안전성·유효성뿐만 아니라 ‘잠재가치’까지 고려해서 허가하고 보상하겠다고 한다. ‘잠재가치’는 주로 기술혁신성을 반영한다고 한다. ‘기술혁신성’이 어떤 것인지는 보도자료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국회에 계류 중인 ‘의료기기산업육성법’이나 ‘첨단의료기기허가및기술지원특별법’ 등을 살펴봤을 때는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기반 의료기기, 로봇 기반 의료기기, 3D 프린터 기반 의료기기 등 융복합 의료기기인 경우 ‘기술혁신성’이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경우에는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의료기기도 허가·평가 절차를 통과할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정부가 노리는 효과는 세 가지다. 첫째, 인공지능을 활용한 의료기기와 같이 ‘안전해 보이면서 산업적 가치가 큰’ 의료기기는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일단 허가한다. 환자·의료진이 직접 쓰면서 평가하도록 한다. 둘째, 신속허가 된 체외진단기기를 이용해 민간부문이 환자 개인건강정보를 축적해 보건의료 빅데이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구축된 보건의료 빅데이터는 실손의료보험 상품개발, 신약 개발, 건강관리서비스 개발 등에 쓰인다. 셋째, 병원에서 연구개발한 기술을 벤처 창업·기술 이전 등을 통해 수익사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이번 정책이 시행되면 우려되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의료계 군비경쟁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의료기기 규제완화는 의료비 증가로 귀결될 것이다. 다음으로, 의료기기 규제완화가 단행되는 상황에서 예비급여는 신의료기기를 건강보험 재정으로 지원해주는 경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보건의료분야 혁신성장 정책은 주식시장 거품 형성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규제 완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데는 경제적 목적이 있다. 7월 18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하반기 경제여건 및 정책방향’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성장 둔화세가 뚜렷하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반도체 부문을 제외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 국면이며, 반도체 호황도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다. 이에 따라 2018년 예상 경제성장률도 하향 조정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강력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격적인 규제 완화의 첫 대상이 바로 의료기기 분야다. 
 
 

의료기기 규제완화 + 의료계 군비경쟁 = 의료비 증가

의료계 군비경쟁이 만연해 있는 한국 상황에서 의료기기 규제완화는 의료비를 증가시킬 것이다. 의학적 유효성이 부족하고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의료기기를 병원이 대거 도입하고 그 비용을 환자에게 전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계 군비경쟁(medical arms race)’이라는 단어는 미소 냉전 시기 ‘군비경쟁’에서 유래했다. 첨단 장비와 고급 시설을 경쟁적으로 도입하는 병원 간 경쟁을 뜻한다. 1950~80년대에 의료계 군비경쟁이 발생했던 미국은 의료비 지출이 크게 증가했고, 병원 수익성은 악화됐다.

한국에서는 아직도 의료계 군비경쟁이 진행 중이다. 의료계 군비경쟁의 가장 큰 해악은 바로 첨단 장비 도입과 시설 확장으로 인한 사회 전체 의료비 증가다. 병원이 첨단 장비 도입 비용을 환자에게 의료비로 전가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로봇 수술이다. 대형병원들은 수술로봇의 비용효과성이 제대로 검증되기 전에, 경쟁병원으로부터 환자를 뺏어오기 위해 로봇을 사들였다. 이후에 비용효과성이 떨어진다는 게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하지만 이미 수술로봇에 들어간 구입비용과 유지비용은 엄청난 규모이다. 이런 고정비용을 회수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로봇수술을 권유할 수밖에 없다. 의료인과 환자 사이에는 정보비대칭이 존재하기 때문에 환자들은 로봇수술을 받게 된다. 한국의 경우에는 실손의료보험이 있기 때문에 의료진이 로봇수술을 권유하기가 더 용이하다. 

최근 비슷한 사례가 바로 IBM의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 이하 왓슨)’ 도입 경쟁이다. 미래의료학자 최윤섭이 최근 발간한 ≪의료 인공지능≫을 참고해보자. 현재 국내에는 왓슨을 도입한 병원이 7개에 이른다. 이는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에 해당한다. 하지만 왓슨은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았으며 의학적 유효성을 입증하지 못한 상태이다. 심지어 왓슨의 성능을 검증한 정식 논문은 2개가 전부이며 이마저도 하나는 IBM의 후원을 받아 집필된 논문이다. 

대형병원들이 왓슨을 도입하는 이유는 의료계 군비경쟁 때문이다. 부산대병원, 대전 건양대병원, 대구 동산병원과 같이 대부분 지방의 상급 종합병원들이 도입했다. 서울 대형병원들과의 환자 유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고 도입하는 것이다. 수술 로봇과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왓슨에 대한 비용 자체는 환자가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병원이 간접적으로 비용을 환자들에게 전가할 경로는 무궁무진하다. 
 

의료기기 규제완화 + 문재인케어 예비급여 = 건강보험 재정 낭비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이 예비급여와 결합되었을 때, 결국 건강보험 재정을 통해 의료기기 업체를 지원하는 꼴이 된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8월 ‘비급여의 급여화’ 정책(일명 ‘문재인케어’)을 발표하며 모든 신의료기술에 대해 예비급여를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의료기기 허가·평가 절차의 대폭 강화이다. 그렇지 않으면 안전성, 유효성, 비용효과성이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의료기기가 예비급여 적용을 받고 시중에서 대량 유통될 수 있다. 이는 의료기기 업체 입장에서는 호재이나, 로봇수술의 사례와 같이 환자들에게 의료비를 증가시킬 우려가 있다.

이번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은 이미 박근혜정부에서 누더기가 된 의료기기 허가·평가 절차를 더욱 무력화시키는 조치이다. 허가·평가 절차가 허술해졌을 때 기업들은 혁신적인 기술 개발에 나서지 않고, 형편없는 제품이라도 일단 출시해서 돈을 벌고자 한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줄기세포 치료제다. 정부는 산업 육성을 위해 줄기세포 치료제를 무분별하게 허가해주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에서 공식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가 가장 많은 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실제로 효과가 있어서 임상에서 표준적인 치료로 쓰는 치료제는 없다. 예비급여를 통한 시장 판로 확보와 경제적 보상이 확실한 상황에서는 이렇게 유효성 없는 제품 출시 경향이 더 강하게 나타날 것이다. 

급여 혜택이 유효성 없는 기기의 대량 도입을 촉진할 수 있다는 미국 사례도 있다. 앞서 왓슨 사례와 같이 ≪의료 인공지능≫에서 대부분의 내용을 참고했다. 미국의 엑스레이 유방촬영술(mammography) 자동진단보조 시스템(CAD, Computer-aided detection)의 사례이다. 유방촬영술 CAD는 2015년 미국의학협회저널 내과지에 실린 논문에 의해 임상적 유효성이 없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2003~2009년 시행된 30만 건의 유방촬영술 CAD를 분석한 결과, 민감도와 특이도 측면에서 CAD를 사용했을 때와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가 없었다. 암을 찾아내는 비율도 CAD 사용군과 비사용군의 차이가 없었다.유방촬영술 CAD는 1998년 미국 식약청(FDA) 승인을 받았으나 10만 달러가 넘는 초기 투자비용 때문에 2001년까지만 해도 사용 비중이 5퍼센트가 안 되었다. 하지만 2002년 미국의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서 보상 급여를 증가시킨 후에 2008년에는 74퍼센트, 2012년에는 83퍼센트까지 사용 비중이 증가했다. 이미 FDA 승인 때부터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었으나 제조회사의 로비로 의료기기 허가와 보험 적용이 승인되었다.
 

의료기기 규제완화 + 혁신성장 = 주식시장 거품

정부가 보건의료분야 혁신성장 정책을 통해 키워주려는 기업은 바이오벤처다. 그런데 현재 주식시장에서 고평가되어 거품을 형성하는 주범이 바로 바이오벤처다. 최근 금융감독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부풀렸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는 사실상 보건의료분야 혁신성장의 모순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인위적으로 가치를 부풀리는 건 삼성바이오에피스뿐만 아니라 모든 바이오벤처의 공통분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작년부터 정부가 추진한 혁신성장 정책 대부분은 이런 ‘가치 부풀리기’를 도와주고 부추긴 측면이 있다.

혁신성장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먼저 중소·벤처기업에게 필요한 모든 규제 완화를 해주고, 중소·벤처기업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게 한다. 이후 국민연금을 동원해 코스닥 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해주고, 대대적인 선전 활동을 통해 중소·벤처기업의 주식가를 올려준다. 중소·벤처기업은 주식을 팔거나, 회사를 통째로 팔아 수익을 올린다. 그러면 많은 이들이 수익을 노리고 기술을 개발해서 창업한다. 이 과정에서 변변한 기술도 없으면서 과대·허위 광고로 주가를 올린 후 시세차익을 확보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기업인 네이처셀의 대표가 주가 조작 혐의로 구속된 사건이다. 

이번 의료기기 규제완화 정책은 두 가지 측면에서 주식시장 거품을 발생시킨다. 첫 번째로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신의료기기를 국가가 공식 인정해준다는 사실이다. 이는 신의료기기에 대한 과도한 대중적 기대를 유발함으로써, 무분별한 의료시술과 주식시장의 거품이 발생한다. 

두 번째로 문제가 되는 건 산병협력단 정책이다. 산병협력단은 병원이 연구개발한 기술·특허를 이용해 벤처기업 설립, 기술 이전 등을 해서 수익을 창출한다는 게 골자이다. 그런데 시장에 대한 장악력이 없는 일반 벤처기업과는 다르게 대형병원들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내원환자가 있다. 병원은 자회사인 벤처기업이 개발한 신의료기기를 이용한 의료행위를 환자들에게 시행할 수 있다. 심지어 이번 규제완화 대책으로 인해 의학적 유효성이 없어도 ‘혁신·첨단의료기술’로서 ‘잠재가치’를 인정받으면 예비급여를 적용받고 의료현장에서 쓸 수 있다. 이는 매출액 상승과 의료기기 홍보에 큰 도움이 되며, 주가를 상승시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 

산병협력단은 박근혜정부 시절 영리자회사와 기본적인 컨셉은 비슷하다. 다만 현재 혁신성장 정책의 혜택 때문에 주식 상장, 주가 상승, 시세차익 확보에 더 유리하다. 산병협력단에서 투자한 기업에서 나온 수익을 연구에 재투자한다는 제한조건을 붙여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벤처기업의 기본원리 중 하나가 연구진이나 경영진에게 벤처기업 주식을 줘서 성과를 분배하는 것이다. 투자한 병원이나 개발에 참여한 의료인이 주식거래를 통해 시세차익을 얻는 것은 규제할 수 없다. 병원과 의료진은 보유한 주식의 시세차익을 위해 신의료기기를 권유할 수밖에 없다.
 
 

혁신성장의 실패와 문재인 정부 보건의료정책의 모순

이번 의료기기 규제완화 대책 중 상당 부분은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던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사실 의료기기 허가·평가 절차는 이미 2014~15년 박근혜 정부 때 대대적인 규제완화를 거쳐 이미 누더기가 된 상태다. 2017년 문재인케어를 시행할 당시, 사회진보연대는 누더기가 된 의료기기 허가·평가 절차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예비급여가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의료기기에게 건강보험 재정을 낭비하는 통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의료기기 규제를 강화하기는커녕 이번 대책을 통해 더욱 무력화시켰다. 더 나아가 누더기 규제를 손쉽게 통과한 의료기기에 더 많은 보상과 지원을 약속했다. 

애초에 혁신성장이라는 정책과 의료공공성 강화라는 목표는 양립불가한 것이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책 결정의 우위에 서는 것은 경제이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이후부터 단 한 번도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완화 정책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 발표된 정책이 모두 작년 말부터 만들어오던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만 반도체 호황 덕분에 별로 한 게 없이도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규제 완화 속도 조절을 한 것뿐이다. 하지만 결국 모든 경제정책이 실패할 것으로 드러나자, 늦췄던 규제 완화 정책의 속도를 올린 것뿐이다. 

어떤 종류의 규제 완화 정책을 쓰든, 혁신성장 정책의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 내용 없이 구호만 무성한 4차 산업혁명 육성책과 주식시장 거품만 만들어내는 코스닥 활성화 정책으로는 기술 혁신을 이뤄낼 수 없다. 규제 완화와 의료비 지출 증가라는 결과만 남을 문재인 정부의 보건의료정책도 실패로 끝날 것이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할 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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