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 특집
  • 2018/10 제45호

주거복지 로드맵 1년,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

  • 이원호

주거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주거복지 로드맵 1년

정부가 주거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야기하며 관계부처 합동으로 <사회통합형 주거 사다리 구축을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을 발표한지 곧 1년이 된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한지 한 달 만에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를 위한 선별적·맞춤형 대응방안(6·19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6·19부동산대책에도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의 상승 폭이 확대되자, 문재인 정부는 <실수요 보호와 단기 투기수요 억제를 통한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라는 이름의 8·2부동산대책과 후속 정책들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는 부동산 3법을 ‘불어터진 국수’라고 표현하면서, ‘빚내서 집 사라’ 식의 정책에 맞춰 <주택법 개정안>,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안>,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이라는 부동산 3법의 규제를 완화하는 개악 안을 통과시켰었다. 문재인 정부의 8·2부동산대책은 이 규제 완화 정책을 사실상 원상태로 되돌려놓았다. 이 대책을 발표하면서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집을 투기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했고,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가격이 또 오를 기미가 보일 때에 대비해 정부는 더 강력한 대책을 주머니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며 투기 억제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9월 중으로 예고됐던 <주거복지 로드맵>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높아져 있었다. 부동산 시장 활성화든 부동산 시장 규제든 시장 관리정책으로만 접근하던 ‘부동산정책’에서, 종합적이면서 중장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주거정책’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기대였다. 
 

9월 발표 예정이던 주거복지 로드맵은 가계부채 정책과 맞물려 몇 차례 연기됐다. 장고 끝에 발표된 내용은 정부 주거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로드맵이라기엔 매우 미흡했다. 주거복지 로드맵은 ‘생애별, 소득별 맞춤형 주거 지원’과 ‘실수요자를 위한 주택공급’ 그리고 ‘임대차시장 안정(세입자 대책)’을 3대 주거복지망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정부 스스로 서민 주거안정을 위협하는 전월세 폭등 등 임차 가구의 주거불안을 큰 문제로 지적하면서도, 3대 주거복지망의 한 축으로 제시한 ‘세입자 보호 대책’은 추후 발표로 빠져 있었다. 그 내용은 연말에야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됐다. 사실상 세입자 보호 대책은 없었다. 

‘전월세 상한제’나 ‘계약갱신청구권제도’ 등 적극적인 세입자 보호 대책은 임대주택 등록 추이를 살펴 2020년 이후에 도입을 검토한다며 미뤘다. 전·월세 상승 폭을 일정 수준 이하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기 간이 끝난 뒤 세입자가 계약을 연장하도록 청구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계약갱신 청구권제도는 19대 국회에서부터 민주당이 당론으로 주장해왔던 것이었다. 지난 촛불 정국의 임시국회에서도 반드시 도입해야 할 촛불 개혁 입법 과제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도입 거부를 선언한 후 민주당의 정책에서도 실종됐다.

이러한 민간임대주택 시장의 통제 시스템은 임대료 문제를 겪고 있는 주요 선진국에서 이미 도입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국제연합(UN) 경제적·사회적·문화적권리위원회(사회권위원회)에 가입하고 사회권규약을 국회 비준한 1995년 이후 5년마다 사회권 이행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국제연합 사회권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사회권 이행상황 4차 정부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국 정부의 사회권에 대한 권고를 발표했다. 그중에는 ‘사적 시장에서 치솟는 주거비를 규제하는 메커니즘을 도입하고, 임차인의 더 오랜 계약기간을 보장하기 위해 임대차 계약 갱신을 제공’해야 한다는 권고도 포함되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은 없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복지 로드맵은 주거 ‘복지’ 로드맵이라기엔 주거 취약계층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대책이 모호하게 표현되어 있다. <인구주택총조사(2015)>에 따르면, 쪽방·비닐하우스와 같이 가시적인 비주택 거주민은 감소했지만, 저소득층에게 쪽방과 유사한 용도로 이용되는 고시원·숙박업소의 객실 거주민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거주공간으로 적합한 오피스텔을 제외한 비공식주택(주택 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수는 2005년 5만 7066가구에서 2010년 12만 9058가구, 2015년 39만 3792가구로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한국도시연구소 외, 2018, <유엔 주거권특별보고관 방한 대응 시민사회 보고서>) 비가시적인 비주택 거주민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비닐하우스·쪽방·고시원 등 비주택에 거주하는 주거취약계층에 대해 2018년도 상반기에 주거실태조사를 완료한 후 별도의 지원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었다. 아직도 소식은 없다. 

대선 공약이었던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이 10월부터 폐지돼 수급 대상자 확대가 예상되지만, 여전히 포괄 범위와 보장수준의 한계가 있다. 주거급여 소득인정액 기준을 중위소득 43퍼센트에서 2020년까지 45퍼센트로 확대할 것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차상위계층도 포괄하지 못하는 정도다. 주거급여의 기준임대료 수준 역시 쪽방이나 고시원의 월평균 임대료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주거복지망’이라는 발표가 무색하게,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복지망은 큰 구멍으로 존재했다. 오히려 공급정책만이 촘촘했다. 종합적인 주거복지 로드맵이라기엔 역대 정권마다 발표하던 주택공급 정책처럼, 문재인식 공급정책 로드맵을 발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나마 촘촘하게 제시한 주택공급정책도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권과는 거리가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 41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중 14만 호는 공적 지원 임대주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사용하기 시작한 ‘공적임대주택’이란 용어는 기존의 ‘공공임대주택’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임대주택이다. 공적임대주택은 박근혜가 만든 부동산 적폐인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뉴스테이는 임대주택 공급이라는 명분으로 공공택지 및 금융지원 등 공공자원을 투입하면서도, 브랜드 분양아파트 건설사들이 브랜드 임대주택을 건설해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해주는 대기업 특혜사업에 불과했다. 8년 동안의 임대기간이 끝나면, 분양이 가능하고 임대료도 높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기존의 뉴스테이에 일부 공공성을 추가하면서 이름만 바꿔 시행하고 있는데, 이것을 두고 저소득층의 임대주택 공급정책이라고 말한다.
 
 

봉인된 권리, 우리의 주거권을 요구하자! 

지난달 ‘미친 집값’으로 표현되는 집값 폭등에 대해 정부는 여덟 번째 부동산정책으로 <주택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했다. 반응은 뒤섞여 있다. 보수 언론은 종합부동산세 폭탄이라며 분노한다. 98퍼센트의 국민들은 나와 전혀 상관없다며 “차라리 종부세 좀 내 봤으면 좋겠다”는 자조의 말을 내던진다. 보수언론의 선동에 대응해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자조의 말들 속에는 도시에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들의 박탈감이 담겨있다. 2퍼센트 대 98퍼센트의 싸움인 양 그려지지만, 사실상 주택 구매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은 배제된 논쟁이다. 문재인 정부의 주거정책에는 여전히 주택 상품의 구매력을 갖춘 이들에 대한 관리방안으로서의 부동산 정책만 있을 뿐, 통제되지 않는 민간임대주택의 전·월세 걱정, 이사 걱정에 허덕이는 세입자들과 도시 빈민의 권리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식 거래 중개처럼 주간 단위로 발표되는 주택 가격 동향과 공인중개사무소 유리 벽에 붙어 A4용지 설명으로 진열된 상품화된 주택시장에서, 주거권은 ‘이제 그만 나가라’는 한마디에 갇히고 마는 봉인된 권리다.

10월은 주거의 날(매년 10월 첫 주 월요일)로 시작해서, 빈곤철폐의 날(10월 17일)을 거쳐, 도시의 날(10월 30일)로 끝난다. 주거의 상품화와 주거 불평등이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의 현실에서 이날들을 단순히 기념하고 축하할 수만은 없다. 주거권은 더 미룰 수 없는, 지금 당장! 실현해야 할 권리이다. 상품이 아닌 권리, 우리의 주거권을 함께 외치는 10월을 열어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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