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진보연대 광주전남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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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10 제45호

착취와 차별을 거부하는 이주노동자 선언

2018 전국 이주노동자대회에 함께 하자

  • 정영섭

이주노동자 30년, 무권리의 시간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가 본격적으로 유입된 지 30여 년이 됐다.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속적인 임금인상과 노동조건 개선, 1988년 서울올림픽으로 상징되는 국가 선전효과 등이 결합하면서 저임금 노동력이 필요한 한국 사회에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런 제도가 없었던 탓에, 단기 비자나 관광비자 등을 통해서 들어온 이들은 미등록 체류 노동자가 됐다. 이때까지 정부는 미등록 노동자들을 사실상 묵인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중소기업협회 등에서 인력확대 요구가 지속되자 정부는 1993년 11월에 산업연수생제도를 도입했다. 이듬해 5월 산업연수생 2만 명이 입국했다. 산업연수생제도는 2004년 고용허가제 시행 이후 병행되다가, 2007년에 최종적으로 고용허가제로 일원화됐다. 산업연수생제도는 이주노동자를 연수생으로 보고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온갖 폐단을 발생시켜 ‘현대판 노예제도’로 불렸다. 여권 및 통장 압류, 욕설, 폭행, 저임금, 산재 미적용, 임금 미지급, 퇴직금 미지급, 브로커 횡포, 송출 비리로 이주노동자는 인권과 노동권을 철저하게 유린당했다. 이에 대부분의 연수생은 사업장을 이탈했고 2002년에 이르면 사업장을 이탈한 미등록 체류 비율이 80퍼센트에 달했다. 이즈음부터 미등록체류자에 대한 강제 단속추방이 본격화됐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고용허가제법)>은 2003년 8월에 국회에서 통과되고 2004년 8월 17일부터 시행되어 올해로 14년이 되었다. 주로 동남·서남아시아 16개 국가와 정부가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인력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고용허가제는 연수생이 아니라 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를 대하는 제도로 만들어졌지만, 이 역시 사실상 강제노동에 가깝다. 사업장 이동 원칙적 제한(예외적 허용), 업종 이동 제한, 고용주에 귀속된 재고용 권한, 4년 10개월의 단기 체류 기간 때문이다. (연속 5년 체류하면 영주권 신청자격이 생긴다는 이유로 체류 기간은 4년 10개월로 제한된다) 

이마저도 고용주의 이해만을 반영하여 지속해서 개악됐다. 1년 단위 계약을 3년까지로 늘려 한 사업장에 이주노동자를 더 길게 속박해 놓는다든지(사업장 변경 제한 강화), 3년 일하고 본국에 한 달간 다녀온 후 3년 더 일하던 것(3+3년)을 출국 없이 4년 10개월(3+1년 10개월) 일하게 만든 것이라든지(노동력 공백 방지), 4년 10개월간 사업장을 바꾸지 않은 노동자만 이후 고용주에 의한 재입국을 허용한다든지(사업장 미이동 유도) 사업장 변경 시에 기존에 제공하던 구인 업체 명단에 대해, 업체 명단을 노동자에게 제공하지 않고 업체에 구직 노동자 명단을 주는 방식으로 바꾼 것 등이 그런 조치들이다. 

2014년에는 퇴직금마저 개악했는데, 이주노동자의 퇴직금인 ‘출국 만기보험금’을 ‘퇴직 후 14일 내에’가 아니라 ‘출국 후 14일 이내에’ 지급하도록 고용허가제법을 개악했다. 고용허가제 체류 기간 만료 이후 초과체류 하는 이들이 늘어나자, 출국하지 않으면 퇴직금도 주지 않겠다고 법까지 바꾸며 엄포를 놓은 것이다. 2017년에 노동부는 숙식비 징수지침을 정하여 월 통상임금의 8~20퍼센트까지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해서 고용주가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갈취할 수 있게도 해 놓았다. 비닐하우스, 컨테이너에 살면서도 수십 만원을 뜯기는 노동자들이 여전히 많다. 

결국 고용허가제 하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이 실질적으로 무권리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다. 
 
 

이주노동자 임금은 깎되 숫자는 늘려라?

이주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어떻게 해서든 낮추려고 수를 써 온 대표적인 단체가 중소기업중앙회다. 과거 산업연수생제도 시절에 이 단체는 연수생 송출을 도맡아 강제적립금으로 수백억을 벌었다. 이 단체의 간부들과 연수생관리업체들은 뇌물 및 각종 비리로 처벌받기도 했다. 

최근에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을 문제 삼으면서, 이주노동자 임금을 깎는 수습제를 정부에 제안했다. 1년 차에 최저임금 80퍼센트를 주고 2년 차에 90퍼센트, 3년 차에 100퍼센트를 주자는 기상천외한 발상이다. 국적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근로기준법에도 어긋나고 전형적인 인종차별 정책인데 정부 중소기업벤처부는 이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심지어 일부 국회의원은 이를 법안으로 발의까지 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중소기업중앙회는 이주노동자 인력이 부족하니 내년에는 획기적으로 늘려달라고도 한다. 한마디로 싼값에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 있는, 권리 주장 없고 종속적인 이주노동자를 더 많이 활용하겠다는 뻔뻔한 작태다. 이들은 생산성 차이 운운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이 일하려 하지 않는 기피 업종에서 장시간 노동, 야간노동, 위험한 노동, 고강도 노동을 하고 있다는 건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등 임금은 전반적인 노동조건 하향 압력으로 작용하게 되어 다른 노동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차등 임금은 절대 도입되어서는 안 된다. 
 

강제 단속추방은 비극을 부른다

미등록 체류자 숫자가 33만 명을 넘어서서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정부 정책은 늘 천편일률적으로 강제 단속추방 강화로 귀결된다. 9월에 법무부가 내놓은 <불법체류·취업 외국인 대책> 내용은 △입국 전 단계부터 심사를 강화하여 불법 취업 위험군 유입 차단, △건설업과 유흥·마사지업 등에 대해 우선 집중단속, △특별 자진 출국 기간(2018년 10월~2019년 3월) 운영, △미등록체류자 숫자를 대외적으로 공표, △단속된 명단을 해당 국가에 제공하는 것 등인데, 집중단속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정부의 단속추방 강화 정책은 심각하게 우려스럽다. 지난 수십 년간 미등록체류자를 폭력적으로 단속 추방하면서 수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고, 사망에 이른 이들도 적지 않다. 정부가 다시 한번 단속추방을 강화한다면 야만적 사태가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8월에도 김포의 한 공사현장 식당에서 마구잡이식 단속을 피해 창문을 넘던 미얀마 노동자가 8미터 아래로 떨어져 뇌사상태에 빠졌다. 그는 결국 지난 9월 8일 세상을 등졌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단속반원이 다리를 잡자 중심을 잃어 떨어졌는데도, 단속반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비극은 비단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강제 단속 과정에서 발생하는 숱한 인권유린은 단속추방 중심의 정책 그 자체에 기인한다. 아무런 안전조치도 없이,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작정 노동현장, 주거지에 들어가 잡고 보자는 식의 단속은 지난 수십 년간 바뀌지 않았다. 비극을 부르는 단속추방을 중단하고 다른 정책을 세워야 한다. 
 
 

인종주의 반대, 이주노동자와 연대

난민 이슈를 계기로 인종주의가 발호하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 대응 역시 중요하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삶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질수록 이주민에 대한 배제 논리가 ‘국민’의 이름으로 횡행한다. 그러나 그 국민 역시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에서 배제와 억압을 위해 활용되는 이름이다. ‘국민이 먼저다’, ‘우리가 국민이다’라는 것이 우익 포퓰리즘의 공통된 구호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주민을 배제한다고 내국인의 복지와 일자리 조건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눈앞에 비난하기 쉬운 손쉬운 적을 만드는 것은 분노 표출을 통한 동원의 기제가 된다. 난민 배척은 결국 이주노동자에 대한 배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경제의 가장 어려운 밑바닥에서 기여하는 이들을 일자리 도둑이나 범죄자로 둔갑시키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인종주의가 아니라, 이주노동자, 난민을 포함하여 모든 이주민과의 연대를 추구해야 야만을 막을 수 있다. 
 

10.14 전국 이주노동자대회에 함께 하자

이주노동 30여 년의 역사 속에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아로새겨져 있다. 산업연수생들의 쇠사슬 농성, 미등록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 다양한 노동현장에서의 저항, 이주노조로 상징되는 노조 조직화와 투쟁 등에 이르기까지 착취와 차별에 맞선 노동자들이 존재해왔다. 

올해 상반기에 진행한 ‘이주노동자 투쟁 투어 버스’ 활동은 현장 노동자를 찾아가고 고용주와 지역노동청에 대한 항의 시위를 지속해서 진행하여 이에 참가하거나 소식을 접한 이주노동자들의 자신감을 고무했다. 몇몇 성과도 있었다. 노동부는 입국 후 이주노동자에게 본인 스스로 권리구제를 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교육할 수 있도록 개선을 하겠다고 했다. 또 숙식비 징수지침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투투버스가 찾아간 사업장의 여러 현안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10월 14일에 열리는 전국 이주노동자대회는 이러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가 모여 더욱 큰 선언으로 확대될 것이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 고용허가제 폐지와 노동허가제 쟁취’를 중심 요구로 하여, 같은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이주노동자의 권리 실현을 위해 행동할 것이다. 전국 각 지역에서 서울로 모이는 이주노동자들의 손을 맞잡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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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미등록체류자 난민 단속 추방 환영